평균 나이 70대 중반의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치매라는 핫 이슈


평균 나이 70대 중반의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어제 거기 사는 그 할머니 정정하셨잖아. 그런데 갑자기 요양원 들어가셨더라고. 아휴 이제 못 보겠네.” 70대 중반쯤 되는 어르신들의 세계에서 핫 이슈는 건강이고 그중에서도 치매 그리고 요양원이다. 당신들의 말에 의하면 “우린 죽어야 나오는 거야”라고 하셨다. 농담이 아닌 진심이 담긴 말이었다. 그분들에게 절대로 가서는 안 되는 곳. 한편으로 씁쓸했다. 내 조부와 조모는 두 분 다 치매가 있으셨고, 두 분 다 각각 요양원에서 돌아가셨다. 내가 가장 마지막으로 본 할아버지의 모습은 할아버지께서 나고 자란 전라남도 곡성의 한 요양원 침대에 누워 계시는 모습이었다. 나를 보고 어린아이처럼 엉엉 우셨고, 갓 대학생이었던 나도 함께 울었던 기억이 난다.


보건복지부의 '2023 노인복지시설 현황'에 따르면 2023년 말 기준 전국 노인복지시설은 모두 8만 9천643곳으로 5년간 어린이집이 9천 개 줄 때 노인복지시설은 1만 3천여 개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초고령화 시대에 맞춰 앞으로도 이런 증가세는 더욱 두드러질 것이다. 우리는 지금 살아가는 공간을 아름답게 설계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생의 마지막을 보낼지도 모르는 곳은 왜 세상과는 단절된 병동 같은 곳이어야 하는가? 삶의 가장 마지막을 보내는 곳. 요양원이란 대체 어떤 공간이어야 하는가? 네덜란드 호그벡Hogeweyk 마을의 사례는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해준다.

호그백 치매 마을의 초기 프로젝트를 이끌었던 이본 반 아메롱겐의 TED 영상 
노인 돌봄을 재정의하는 '치매 마을' The "dementia village" that's redefining elder care 

평범한 일상의 리듬 지키기

네덜란드 호그벡 마을은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의 남동쪽에 위치한 웨스프Weesp 지역에 있는 치매 환자를 위해 조성된 마을이다. 27개의 주택이 있고 주택당 6~7명의 어르신이 거주하며, 총 188명의 치매 어르신을 수용하고 있다. 이들은 식사 준비 과정에 참여하며 밥을 직접 짓기도 하고,  장을 보거나 공연장을 이용한다. 간병인이나 가족들이 요리와 집안 관리를 주로 담당하지만, 호그벡 마을 입주민들도 원할 때마다 집안일에 참여할 수 있다.


참여한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내가 스스로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존감을 높이는 동시에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기여할 수 있다는 ‘살아있다'라는 증거가 된다. 국내에서는 요양원에 입소한 어르신들에게 규정상 무언가를 시키면 안 되게 되어있다. 가까운 지인은 요양원 간호사로 10여 년을 일한 분인데, 어르신들이 워낙 심심해하시니 양파껍질 까는 것과 몇 가지 야채 다듬는 일을 드린 적이 있었다. 그런데 치매가 있는 분인 줄 알 수 없을 정도로 집중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모습에 본인도 놀라셨다고 한다. 보통 요양 시설은 돈을 지불하고 이용하는 서비스이니 당연히 조리사가 모든 것들을 다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호그벡 광장 앞 분수대에서 입주민들이 쉬고있는 모습. ©Be Advice / De Hogeweyk / Vivium Zorggroep

호그벡 마을의 공동창업자이자 <시니어>호 인터뷰로 만난 일로이 반 할Eloy van Hal은 “내가 선택한 적이 없는 메뉴가 눈앞에 나타나면 치매를 가진 분들은 당황해할 수도 있다.”라고 말한다. 스스로 식사 준비에 참여하며 내가 할 일을 선택하는 이 평범한 일상은 반백 년을 훌쩍 넘게 살아온 분들에게 당연하고 익숙한 과정이다. 상당 부분 자율로 이들의 생활이 이뤄진다. 가정 집 내 거실의 한 상에 둘러앉아 다 같이 식사하는 모습은 온전한 공동체의 모습이다. 방문하여 둘러본 한 의료 서비스 관계자는 “누가 환자인지, 가족인지, 직원인지 모르겠네요.”라는 평을 남겼다. 입소자들은 그만큼 살아왔던 방식 그대로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일상을 보낸다.


이 곳은 전통적인 요양원이 병원처럼 관리되고, 치매 환자들이 제한된 환경에서 생활하는 것에서 벗어나는 탈시설을 추구한다. 그래서 엄격하게 관리되는 환경이 아닌 평범한 주거 지역에서 생활하는 것처럼 느끼도록 설계됐다. 평범한 일상을 누리는 삶으로 슈퍼마켓에서 쇼핑을 하고 카페나 극장에 가는 등의 일상 생활을 보낸다. 결과적으로 사회와의 연결을 유지하면서 고립을 방지한다.

가장 평범한 디자인과 연결감

일로이 반 할과의 인터뷰에서 인상 깊은 것은 ‘가장 평범한 디자인’을 추구한다는 점이었다. 만약 ‘디자인한다’라고 하면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든다고 생각할 수 있다. ‘유니크하게 디자인해봐’라고 말하지 ‘평범하게 해’라고 말하는 디자인 디렉터는 아마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때로는 익숙함에서 느껴지는 편안함이 좋을 때가 있다. 우리가 오랜 기간 여행을 떠나있다가 집으로 돌아와 편안한 침대에 누울 때의 감정처럼 말이다. 나이가 들수록 내가 오랜 기간 사용했던 방식, 익숙한 스타일이 심리적으로 편안함을 준다. 단지 물건이나 공간뿐 아니라 오랜 기간 만나온 사람들도 편하다.


요양시설에 ‘입소’한다는 것도 얼마나 불편할 수 있는 일생 일대의 사건인가 생각해봐야한다. 상당수 남자들에게 ‘입소'라는 단어는 꽤 익숙한데, 신병교육대에서 입소를 환영한다는 문구와 함께 엄격하게 관리되는 규율, 평상시 잠을 청하던 집과는 완전히 다른 환경, 낯선 사람들, 경직된 분위기 등이 ‘입소'라는 단어에서 떠오르지 않는가?


호그벡에서 제공하는 4가지 인테리어 스타일 중 ‘전통적인 네덜란드 스타일’의 집. 벽에는 네덜란드 전통 그림이 걸려있다. 호그벡은 국가 예산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입주민들은 최소 비용으로 시설을 이용할 수 있으며, 나머지 생활 필수품은 국민 연금으로 구입한다. ©Be Advice / De Hogeweyk / Vivium Zorggroep

그래서 호그벡 마을은 공간 디자인도 가장 익숙한 환경을 지향한다. 현관문이 달린 네덜란드식 주택으로, 아파트와 달리 문을 열면 바로 바깥으로 나갈 수 있다. 입주민들의 대부분은 바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내부 공간은 개인 공간과 공용 공간으로 나뉘어 있다. 방문객이 개인 공간을 함부로 들여다볼 수 없게 설계한 동시에 네덜란드 사람들의 문화를 반영한 디자인이다. 입주민들은 네 가지의 모델을 선택할 수 있다 전통적인 네덜란드 스타일, 코스모폴리탄 스타일, 네덜란드 가정집 스타일, 현대적인 스타일 등을 제공하고 있고, 각 스타일에 따라 인테리어와 가구,  카펫, 심지어 접시 모양까지 모두 다르다. 일로이 반 할은 “누군가는 네덜란드 전통 민속 음악을 좋아하는데, 하루 종일 클래식 음악이 나온다면 신경이 예민해질 수 있죠. 그런데 언어 능력이 저하되어 음악을 바꿔 달라고 정확히 요청하지 못한다면 좌절을 경험하고, 공격적인 태도까지 보일 수 있어요.”라고 말한다. 지난번 핀란드 오디 도서관을 조사했을 때 시각장애인의 길 찾기를 위해 출입구의 사운드 비콘 소리까지도 세밀하게 디자인한 사례가 있었는데, 결국 최적의 사용자 경험은 작은 디테일에 있음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함께 자전거를 타고 다닐 수 있는 환경 ©Be Advice / De Hogeweyk / Vivium Zorggroep

저녁밥 짓는 냄새가 나고 아늑한 벽난로가 있는 가장 평범한 공간을 구현하고자 하는 것. 우리가 치매 어르신들을 생각할 때 그들은 치료받고 침실에 가만히 누워있어야 할 존재라는 편견이 있지만, 누구라도 자신이 살아온 환경에서 살아가야 할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지켜져야 한다. ‘자신이 익숙한 집이나 지역사회에서 지속적으로 나이들기’ 에이징 인 플레이스Aging in place라는 개념도 이와 맞닿아 있다. 얼핏 들으면 에이징 인 플레이스가 집과 지역사회라는 공간에만 한정된 개념이라 생각할 수도 있는데, 실제로는 폭넓은 상호작용을 내포하고 있다.


‘시간에 따른 에이징 인 플레이스: 집의 형성과 해체’라는 연구 논문에서는 에이징 인 플레이스에서 말하는 공간이 주변과 상호적인 맥락 안에서 결정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연구자인 루스Ruth와 바네사Vanessa 그리고 카밀라Camila는 맨체스터에 거주하고 있는 네 명의 은퇴자들을 선정하고 이들을 시간 간격을 두고 인터뷰하는 종단 연구를 진행했다. 이를 통해 집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정립되는지를 연구했는데, 이웃과의 폭넓은 사회적 관계가 뒷받침되는 경우 집은 긍정적인 애착을 가져오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이웃과의 단절은 머물고 있는 집이 오히려 고립감을 강화하는 장소가 되어버리기도 했다. 연구 참여자인 진Jean과 바이올렛Violet은 은퇴이후 건강이 악화되어 이동성이 감소하고 배우자와의 사별 등 아픔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거주하고 있는 지역의 주민들 또는 교회 공동체와의 끈끈한 유대관계를 유지하여 집이라는 공간에서 긍정적인 애착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산드라Sandra와 존John은 이웃과의 접촉이나, 가족의 방문이 점차 줄어들어 사회적 유대 관계가 축소되다 보니 집은 고립의 장소가 됐다.


결과적으로 에이징 인 플레이스라는 개념은 집과 더 넓은 이웃 사이의 연결감, 사회적 상호작용에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내는 요양 시설 역시 연결감을 강화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호그벡 마을에서는 함께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과의 식사와 대화도 좋지만 레스토랑이나 극장도 외부인에게 개방되어 있어서 외부 사람들도 치매 환자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접점이 생긴다.


에이징 인 플레이스는 이웃 사이의 연결감, 사회적 상호작용 ©Be Advice / De Hogeweyk / Vivium Zorggroep

형태는 심리를 따른다 Form Follows Psychology

특별함이 아닌 평범함을 위한 디자인. 여기서 접근성과 포용성을 고려한 디자인의 개념의 범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디자인한다’는 것은 결과물이 상당 부분 가시적인 것이기 때문에 눈으로 보이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은 결과물의 스타일과 감각에만 집중하게 된다. 하지만 디자인은 목적지를 향해 이미 길이 깔려진 기찻길을 달리는 기차 같은 개념이 아니다. 순간순간 맞닥뜨리는 많은 과정과 상황적 변수를 끌어안는 노를 젓는 항해와도 같다. 앞서 살펴본 대로 에이징 인 플레이스에서 말하는 ‘장소’는 사람들의 경험과 기억, 이웃들과의 상호작용이 내포된 넓은 개념이지 않은가?

누군가와 대화하고 연결되다는 감정을 느끼고자 한다면 공용의 공간을 통해 함께 만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스웨덴 셀보의 공동주택 설계에서 ‘거주자들끼리 주간 2시간 교류하기’ 의무조항이 좋은 예시다. 물론 꼭 이렇게 의무적인 만남이 아니더라도 자연스럽게 서로 동선이 겹쳐질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지역 사회 내에서 더 많은 접점을 찾고자 한다면 개방된 공간에서 외부인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 누군가가 어떤 공간 안에 방문할 때 편안한 기분으로 공간을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 공간에서 방문자에게 환대를 표현할 수 있는 요소를 넣는다. 어르신들의 마지막 여정에도 이들의 심리적 욕구에 주목해야 한다. 고립감이 아닌 사회와 연결되어 있다는 감정, 작은 일이더라도 내가 해낼 수 있다는 성취감, 내가 스스로 움직이고 행동할 수 있다는 선택권에 따라 공간과 시스템의 디자인이 반영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포용적인 디자인이란 겉으로 보여지는 것을 넘어 그곳에 머물고 있는 심리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대게 이런 것들은 디테일한 요소에서 나온다. 밥을 짓는 과정에서 흘러나오는 냄새를 맡는 것, 작은 일이라도 내가 참여하는 과정, 그리고 내가 익숙한 멜로디의 음악과 장식 등 진정으로 사용자의 심리적 편안함을 먼저 고려하여 디자인하는 것이다. 미국의 역사적인 건축가인 루이스 설리번Louis Sullivan은 1896년 그의 에세이에서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라는 디자인 철학을 표현했다. 어떤 물건이나 건축물의 디자인은 그 목적이나 기능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하며 사용 방식과 행태가, 형상form을 결정짓는 주요 요소가 된다는 말이다.


나는 이에 빗대어 ‘형태는 심리를 따른다Form follows Psychology’ 고 말하고 싶다. 디자인이나 구조는 사용자의 심리적 상황과 요구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그렇다면 사용자를 깊이 이해하는 교감의 자세가 올바른 디자인으로 안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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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수 (hello@missionit.co)
주식회사 미션잇 대표로, 장애인과 고연령층 등 그동안 소외되었던 사용자 경험에 대해 연구한다. 2021년부터 장애인 관찰 조사와 전문가 인터뷰에 기반한 MSV 소셜임팩트 시리즈를 발간하고 있다. 장애인 이동, 발달장애 아동의 놀이, 개발도상국 안전, 시니어의 디지털 접근성 등과 같은 현대 사회 이슈를 디자인 관점에서 조망한다. 삼성전자에서 디자이너로 일했으며, 런던에서 사회적기업가정신Social Entrepreneurship을 공부했다. 
주식회사 미션잇은 장애인, 고연령층 등 지금까지 주목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사용자 경험을 연구하는 디자인·콘텐츠 기업으로, 포용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위한 깊이 있는 전략을 만듭니다. MSV는 Meet Social Value의 약자로 콘텐츠의 선한 영향력을 지향하는 미션잇의 브랜드입니다. MSV 뉴스레터는 포용적 사회를 지향하는 2,000명이 넘는 독자분들이 구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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