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낸이 오지윤
받는이 님  


길동은 6키로에 거대한 머리통과 앞발을 가졌다. 입 근처에 동그란 흰색 무늬가 있어 한마디로 곰돌이 상이다. 길동은 2달 전부터 우리집에 머물며 평생 함께 할 집사가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다. 그는 애교가 많은 만큼 질투가 많다. 내가 오복이를 쓰다듬고 있으면 컹컹 소리를 내며 뛰어와서 머리를 들이밀고 오복이와 내가 누워 있으면 그 사이에 끼어 눕기도 한다.



길동은 오복과도 아주 잘 지냈으나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하나 있었다. 가만히 앉아 멍 때리는 오복에게 서서히 다가가 똥꼬를 들이대는 길동. 우연이라 보기 힘들다. 정확히 오복의 얼굴 앞에 똥꼬를 대고 가만히 기다린다. 그러면 오복은 망설임 없이 그의 똥꼬를 정성스럽게 핥아준다.



처음엔 이 광경을 받아 들이기 힘들었다. 오복이는 2년 동안 기른 자식인지라, 내 자식이 다른 냥이의 똥꼬를 핥아주는 모습을 보자니 안쓰러웠다. 길동이에게 돈을 뺏기는 오복이를 보는 기분이랄까. 나도 모르게 둘을 떼어 놓으며 “오복아 왜그래”라고 한 숨 쉬며 말했다. 오복이 너 이런 애 아니잖아. 남의 똥꼬 핥는 그런 애 아니잖아.



내 기분이 요상했던 것은 아마 ‘똥꼬 빤다’라는 표현 때문일 것이었다. 아무래도 광고회사에 다닐 때 처음 배웠던 것 같다. 과격한 말을 하길 좋아하던 AE 팀장님이 “광고주 똥꼬 좀 빨아줘야죠”라고 했던 것 같고 습득력이 빠른 나는 그 표현을 종종 활용하기도 했다. 너무 노골적인 카피를 써서 CD님께 잔소리를 들을 때는 “광고주 똥꼬 좀 빨아줘야죠”라고 웃으며 상황을 모면하려고 했다.



나는 못난 집사였으나, 오복이 너를 그렇게 기른 적은 없었다. 나는 시도 때도 없이 엉덩이를 들이미는 길동을 쳐다봤다. 좀처럼 오복이를 핥아주지는 않고 늘 받기만 하는 길동. 길동이가 오복이보다 더 높은 서열을 잡은 것 같아서 왠지 오복에게 미안해. 길동이를 데려와도 되냐고 오복에게 물어본 적도 없었으니까. 오복이는 길동이가 원할 때마다 열심히 길동이를 핥아주고 있었다.



“그러니까 길동이가 완전 서열 정리를 한거지.”

이런 상황을 미진에게 털어 놓았는데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었다.



“고양이들은 서열이 더 높은 고양이가 낮은 고양이의 똥꼬를 핥아줘.”

이 말을 들은 나는 환하게 웃으며 박수를 쳤다. 오복이가 길동이보다 서열이 높다는 게 왠지 위안이 된 것은 임보자(유기묘를 임시보호하는 사람)로서 부끄러워야하는 일일가. 평소 품행이 다른 고양이들에게 모범이되는 오복이는 나처럼 ‘을’의 마음이 아니라 너그러운 ‘어른’의 마음으로 길동이의 똥꼬를 핥아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 이러니 말이 되는군. 역시 오복이는 어른이었어. 고양이들은 진짜 어른이이었어.



얼마 전 상무님과 여럿이 식사를 했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 저마다 개성있는 리액션을 뽐냈다. 나는 오복이를 생각하며 나의 세치 혀를 아끼기로 했다. 말을 줄이고 밥을 더 열심히 먹었다.


오늘은 길동이 사진으로 대신합니다. 길동이가 정작 입양을 가면 많이 슬플거에요. 그래도 좋은 집사를 하루 빨리 만나기를 바라봅니다. 나와 다른 종족의 생명체와 함께 산다는 건, 지구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신비롭고 가치 있는 일 중에 하나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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