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사적인 영화관입니다.
003호                                                                                                                 

슬픈만큼 빛나는 사연, <우먼 인 골드>(2015)
 
#2차대전 #구스타프 클림트 #문화재 반환

안녕하세요, 구독자 여러분.
새해를 맞아 여러분께 소개해 드릴 영화는 바로 <우먼 인 골드>입니다
<우먼 인 골드>는 황금빛으로 일렁이는 사랑에 가득 찬 연인을 묘사한 그림인 '키스'로 잘 알려진 세계적인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유작,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에 얽힌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혹시 갑자기 미술 이야기가 등장해서 놀라셨나요? 이 영화는 단순한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전기 이야기가 아니랍니다. 영화는 아름다운 미술작품과 함께 그에 관련된 슬픈 역사도 전달하고 있어요. 또, 문화재 반환과 그에 대한 소송이라는 소재까지 다루고 있습니다. 이렇게 영화가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만큼, 이번 호에서는 여러분들이 영화를 좀 더 쉽게 감상할 수 있도록 소재가 된 미술 작품과 그에 연관된 역사적 배경을 설명해 드리려고 합니다.
     

   
🎞 <우먼 인 골드> (2015)
  • 감독 : 사이먼 커티스
  • 출연 : 헬렌 미렌(마리아 알트만 역),              라이언 레이놀즈(랜디 쇤베르크 역) 등
  • 장르 : 드라마, 역사
  • '우먼 인 골드'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유작 '아델레 블로흐-바우어'를 둘러싼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 러닝 타임 : 109분
  • 예고편  📺 (YouTube) 
ⓒ네이버 영화
※아래부터는 영화 내용을 일부 포함하고 있으니 스포일러에 주의해주세요!

가족의 추억이 담긴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

영화는 1998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시작합니다. 주인공 마리아는 미국에서 살고 있지만 모국은 미국이 아닌 오스트리아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유대인인데요, 오스트리아 출신 유대인이 어째서 미국에 있는 것일까요? 이에 대한 답이 영화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부분입니다.

우선 마리아의 집안은 오스트리아 빈에 정착한 유대인 집안이었습니다. 마리아 집안사람들은 미술 애호가로 당대 많은 화가, 오페라 가수 등 다양한 문화·예술계 인사들과 교류했어요. 그중에는 오스트리아의 유명 화가이자 영화의 중심 소재인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을 그린 클림트도 있었습니다. 

구스타프 클림트,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 1907
 그림의 모델인 아델레는 마리아의 이모였어요. 아델레와 그녀의 남편 페르낭드는 클림트의 후원자였고 클림트는 후원자인 아델레를 모델로 하여 작품을 그린 것입니다.

클림트는 이 그림을 모델인 아델레에게 선물합니다하지만 얼마 후 아델레가 43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죽고, 그림은 그녀의 남편 페르낭드에게로 소유권이 넘어가죠자식이 없던 아델레 부부는 그들의 조카에게 이 그림을 조카들에게 남긴다는 유언만을 남기고 생을 마감합니다그런데 그림은 1998년 당시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조카인 마리아가 갖고 있지 않았어요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을 포함한 구스타프 클림트의 걸작들은 마리아의 고국인 오스트리아의 벨베데레 미술관에서 전시 중이었습니다어떻게 된 사연이었을까요? 


🎨구스타프 클림트 알아보기
  • 오스트리아 출신 화가
  • 작품에서 따스한 금색을 많이 사용하여 '황금의 화가'로 잘 알려져있음
  • 대표작 : <키스> (1907) 등

그 정답은 당시 세계정세에 있는데요당시 세계정세는 아델레의 초상만큼 아름답지 않았습니다나치가 세력을 확장해나가고 있었고 오스트리아도 곧 나치에 넘어가려고 하고 있었어요결국 오스트리아는 1938년 나치에 의해 병합됩니다. 합병 이후 페르낭드의 재산은 나치에 의해 몰수당했고, 이 그림도 나치에 의해 오스트리아 정부에 그림을 강제로 빼앗겼던 것이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도 마리아가 아니라 오스트리아 정부의 소유가 된 것이죠. 그래서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마리아는 가족들과의 추억이 담긴 시절을 회상하고 그 추억이 담긴 그림을 되찾기 위한 노력을 합니다. 

<우먼 인 골드> 중, 
어린 마리아와 아델레가 집안에 걸린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나치와 오스트리아

안슐루스라고도 하는 1938년에 이루어진 나치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정치 합병은 영화 속에서 마리아의 회상을 통해서 묘사됩니다. 히틀러와 그의 군대는 마치 개선장군처럼 빈으로 입성하는데요,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이들을 향해 환호합니다. 나치를 환영하는 사람들 속에서 유대인인 마리아와 그의 가족들은 혼란스러워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을 합니다. 이들의 걱정과 크게 다르지 않게 나치는 오스트리아에서도 유대인 박해 정책을 시행했고,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았습니다. 회상 장면 내내 마리아와 그의 가족들은 박해당하는 유대인들을 보며 겁에 질려있죠. 결국 나치가 그녀의 집안까지 위협하자, 그녀는 남편과 함께 나치 점령 하에 있던 오스트리아를 탈출하기로 결심하고 미국으로 이민을 떠납니다. 그렇지만 빈에 남아있던 그녀의 아버지는 죽임을 당하게 되고, 나치는 마리아 집안의 많은 예술품들도 압수해갑니다. 그래서 마리아에게 빈은 자신의 고향이지만 마냥 그리워할 수만은 없는 공간이었어요

마리아를 연기한 헬렌 미렌은 “(마리아에게 빈은) 너무나 힘든 상황에서 떠나야만 했던 곳이니까요.”라고 말했는데요, 이처럼 마리아에게 빈은 아픔이 담긴 곳이었을 거에요.

나치의 입성을 환영하는 오스트리아 사람들
건물에는 나치를 상징하는 하켄크로이츠가 걸려있고 
거리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나와 환호하고 있음
빈은 왜 마리아에게 슬픈 공간이 되었을까요. 당시 나치는 빈에 무력 충돌과 전쟁 없이 '무혈입성' 즉, 피를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입성했는데요, 영화에서도 드러나고 위의 사진에서도 보이듯이 당시 빈의 사람들은 나치를 환영했어요. 이들은 왜 히틀러를 경멸하지 않고 오히려 그와 그의 군대를 환영했던 것일까요

1930년대 독일에서는 국가 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즉, 나치당이 많은 국민의 지지를 받아서 세력을 확대하고 있었어요. 1932년 총선에서는 나치당이 승리하기도 했어요. 이런 나치당의 물결은 국외로도 뻗어나가 이웃 국가였던 오스트리아에게도 전해졌습니다. 오스트리아에는 이 영향을 받은 오스트리아 나치당이 활동하고 있었어요. 이들은 나치 독일과의 통일을 주장했고, 자신들을 탄압하는 당시 수상을 암살해버릴 정도로 극단적인 성향을 갖고 있었습니다. 오스트리아 나치당은 보수주의, 국수주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고 1932년 지방선거에서 높은 지지율을 얻기도 했어요. 

이 세력을 바탕으로 해서 1938년 안슐루스가 이루어지기 전에 히틀러의 요구로 오스트리아 나치당 출신 인물로 오스트리아의 수상이 바뀌기도 했어요. 히틀러 자신에게 유리한 사람을 임명한 것이죠. 그리고 새로 임명된 오스트리아 나치당 출신의 수상은 독일과 오스트리아 합병에 당연하게도 찬성했고, 1938년 나치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합병되었습니다. , 합병 이전에 오스트리아에서 나치화가 상당히 진행되어 있었다는 뜻이에요. 이런 사실은 영화 속에서 오스트리아 나치들은 독일을 환영할 것이라는 대사로 표현되었어요.
🕵 오스트리아 합병 이후의 흐름
1938년 오스트리아를 집어삼킨 나치 독일은 더 나아가 체코-슬로바키아의 수데텐 지방을 요구했어요. 이런 독일의 야욕 대해서 영국과 프랑스는 처음에는 유화 정책을 펼쳐 나치 독일을 잘 달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뮌헨 회담에서 독일의 요구를 수용해 주어요. 그런데 독일은 영국, 프랑스의 바람과 달리 멈추지 않고 1939년 독일이 폴란드의 회랑 지대까지 요구합니다. 이에 영국과 프랑스는 유화 정책을 포기하였고, 독일의 요구를 거절해요. 그러자 독일은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되었습니다. 

과거의 아픔이 오늘의 의지로
 
이런 아픈 역사 때문에 마리아는 가족과의 추억이 담긴 장소도, 그림도 모두 잃게 되었습니다. 다시 영화의 첫 장면으로 돌아와, 1998년 미국에서 마리아는 가족의 추억이 담긴 이 그림들을 되찾기 위해 변호사 랜디 쇤베르크와 함께 오스트리아 정부의 클림트 작품 소유권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며 무려 8년간 오스트리아를 상대로 반환 청구소송을 벌입니다. 

마리아와 변호사 랜디의 모습 ⓒ네이버 영화
🕵 변호사 랜디 쇤베르크
마리아의 변호를 맡은 랜디 역시 유대인으로 이들 집안도 나치 독일의 억압을 피해 미국으로 이민을 왔습니다. 영화 속에서 랜디의 할아버지는 저명한 작곡가로 언급되는데요, 그의 할아버지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미국의 작곡가이자 화가이자 작가인 아르놀트 쇤베르크입니다. 그는 능력을 인정받아 1925년 베를린 예술 학교의 교수에 임용되었지만 얼마 안가 히틀러가 집권하였고, 유대인이었던 그는 나치의 명령으로 학교에서 해임되고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습니다.
8년간의 긴 싸움 끝에 마리아와 오스트리아 사이의 공방은 마리아의 승리로 끝났고, 클림트의 그림은 마리아에게로 돌아왔습니다. 이 그림은 모두가 볼 수 있게 하고자 하는 마리아의 의견에 따라 경매에 붙여졌고, 그림 애호가인 로날드 로더에게 1억 3,500만 달러라는 매우 큰 금액으로 낙찰되어 현재 뉴욕 노이에 갤러리에 전시되어 있어요. 
🕵 로날드 로더는 누구인가요?
  • 로날드 로더는 화장품 기업 '에스티 로더'의 창업주인 에스티 로더의 아들이에요.
  • 그는 어린 시절부터 박물관을 자주 구경하면서 고대의 미술 작품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 또 유럽에서의 유학 경험과 일했던 경험 덕에 유럽 예술가들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어요.
  • 화장품 사업으로 부를 쌓은 로날드 로더는 2001년 노이에 갤러리를 짓고 미술품들을 전시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에디터는 아직 반환되지 않은 우리나라의 많은 문화재들이 떠올랐어요. 그만큼 마리아의 사례가 굉장히 이례적이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이 영화를 새해 첫 영화로 소개해 드린 데에는 이런 거창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 아니에요. 영화 속에서 표현되는 과거와 오늘로 이어지는 연출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아픈 과거를 돌아보면서 오늘과 그리고 내일의 의지를 다지는 마리아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래서 여러분들도 2022년을 맞이해서 지난해의 일들을 정리해 보고 앞으로의 계획을 다듬는 시간을 보내셨으면 합니다. 

처음으로 한국사가 아니라 세계사를 다루어보았는데요, 모쪼록 여러분들이 영화를 보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우먼 인 골드>는 역사 영화이기도 하지만 아름다운 미술품 이야기와 더불어 흥미로운 법정 공방까지 다루고 있어서 많이 어렵지 않게 감상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주시는 관심에 보답할 수 있게끔 새해에도 <史적인 영화관>을 열심히 가꿔나갈게요🙇‍♀️ 
史적인 영화관
에디터 챙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