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글항아리 X 계정)
이번 주 최민서 인턴기자가 소개하는 책은 50년만에 국내에 번역된 남성성 연구의 고전, <남성 판타지>입니다. 최근 플랫 인스타그램에서는 이 책으로 도서 증정 이벤트를 진행했는데요, 1000페이지가 넘는 압도적인 두께에도 불구하고 여느 때보다 많은 입주자님이 국내 번역만 기다려왔다며 관심을 보여주셨어요. 벽돌책이 조금은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는 분이라도, 이 리뷰를 읽다 보면 읽어봐야겠다는 마음이 드실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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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라우스 테벨라이트 저, 김정은 역 <남성 판타지> (글항아리)
‘벽돌책’의 개념을 다시 써야 할 것 같은 두께. 완독한 것만으로도 올해의 업적 감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이 책은 사실 입주자분들뿐만 아니라 수많은 독자가 번역을 기다렸던 책이기도 합니다. 50년가량의 시차가 존재하는데도 우리가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뭘까요? 또 어떤 맥락으로 읽어나가야 할까요.
클라우스 테벨라이트가 <남성 판타지>를 쓰게 된 계기에서부터 시작한다면 조금 더 다가가기 쉬울 것 같은데요. 테벨라이트의 아버지는 전형적인 군인 남성이었습니다. 전쟁과 학살에 직접 종사한 적은 없어도 국가에 대한 복종, 의무, 충성을 중시한 파시스트였습니다. 그는 제대로 소통할 수 없었던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며 이 책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스스로의 남성성에 대해 성찰하고, 자기 내부에 존재할지도 모르는 아버지라는 존재의 모순을 알아보고자 했던 것입니다.
테벨라이트는 자유군단 군인의 자서전, 소설, 편지 등의 텍스트를 분석해 나갑니다. 나치즘의 핵심 세포가 된 자유군단은 1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사회주의 혁명을 진압한 군인들이기도 합니다. 테벨라이트는 자유군단에서 나치로 이어지는 남성 폭력의 역사를 추적합니다. 어떻게 폭력이 몸에 새겨져 작동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요. 질서가 무너진 세계에서 군인들은 두려움을 느끼는 동시에 갑옷을 다시 꺼내 입습니다.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몸을 기계화하고 살인 욕구를 수긍하며 “군인 남성 특유의 육체성”을 만들어갑니다.
흥미로웠던 것은 책이 파시즘과 파시스트 남성이라는 존재를 바라보는 시각이었습니다. “파시즘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파시즘은 현실을 생산하는 파괴적 방식”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파시즘은 특정한 사상을 믿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를 인식하고 반응하는 방식에 가깝습니다. 파시즘을 설명하고 이해하려는 기존 도서들은 파시즘을 정치적 지배 체계로만 파악했습니다. <남성 판타지>는 타 연구와 달리 개인의 육체 구조와 신체적 감각에서 문제점을 파악합니다. 그들의 정서가 어떻게 표출되는지, 그들의 증오 감정, 그들의 분노, 그들의 기쁨과 두려움이 어떻게 분출되는지를 살핍니다.
테벨라이트는 자유군단 군인을 문제가 있는 하나의 개인으로 치환하지 않습니다. “파시스트 남성이라는 존재가 고립된 현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남성적 유럽적 자아가 만들어낸 산물”이라고 말한 것처럼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생겨난 현상으로 바라보지도 않습니다. 정치, 사회, 이념이 그들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폭력을 내면의 차원에서 형성된 문제로 바라봅니다. 폭력 말고 타인과 관계맺는 다른 방법을 배우지 못한 채 세계와 접속했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인 것이죠.
이렇게 만들어진 남성 자아는 여성을 무해한 이미지와 남성성을 위협하는 이미지로 나눕니다. 이들에게 위협적인 여성은 제거해야 하는 대상이 되고, 좋은 여성 역시 비생명화되고 물화되지요. “남성 자신의 무의식과 욕망 생산 안에 들어 있는 여성성”도 마찬가지로 무찔러야 하는 대상이고요. 이러한 여성성에 대한 공포와 자아의 해체, 분열을 막기 위한 몸부림은 폭력성을 지닌 파시즘으로 이어집니다. 현실을 마주하지 않고 자신들이 만들어간 환상을 지키려 폭력을 일삼습니다. 파시즘이 백색 테러이자 인종 말살, 여성 혐오로 이어졌다는 것도 예시와 함께 보여줍니다.
<남성 판타지>가 2018년에도, 2026년에도 새로운 현재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시길 바랍니다. 책의 후반부에는 2018년에 작성된 저자의 후기가 있습니다. 테벨라이트는 독일의 뉴라이트(새로운 극우파)에 주목합니다. 이들을 두고 “낯설기도 하고 익숙하기도 한” 풍경이라고 표현하고, 자유군단과 나치를 연상시키게 한다고도 말합니다. 나아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남성 테러리즘의 활동에 대해서도 언급합니다. “출산 능력을 지닌 여성 육체에 대한 깊은 증오감”과 노골적인 여성 혐오를 드러내는 이들은 인터넷을 통해 몸집을 키워나갑니다. 민주주의 혁명이 가능할 것이라는 초기 인터넷의 낙관론이 지나간 뒤, “인터넷의 잠재력을 제대로 활용한 것은 우익 포퓰리즘”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남성 판타지>가 주목받는 이유와 맞닿아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반복적으로 이야기되는 ‘이대남’ 극우화 현상 역시 이런 맥락 속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극단적인 반공주의나 안티 페미니즘 성향을 드러내고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무분별한 혐오를 발산합니다. 이들이 느끼는 박탈감은 ‘여성’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지만, 그 분노는 약한 위치에 놓인 존재에게 표출됩니다. 집단으로 고립된 채 존재하던 과거와 달리 이들의 증오감은 인터넷을 통해 더 멀리 퍼져나갑니다.
현상 너머의 구조를 바라보는 방법은 고전 도서에 있기도 합니다. 파시즘의 탄생과 나치즘의 발전, 그리고 나아가 전 세계적으로 반복되고 있는 남성 극우화 현상에 주목하고 싶다면 <남성 판타지>에 도전해 보시길 추천합니다.
(✨Paid partnership with 글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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