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협한 이달의 케이팝> 인터뷰 시리즈
 허탄회 ➌ 

안녕하세요. <편협한 이달의 케이팝>을 발행하는 일석입니다. 벌써 ‘허슴탄회’ 세 번째 인터뷰네요. 오늘은 내리사랑으로 유명한 에스엠에서 오로지 샤이니만을 좋아한다는 하경 님의 이야기를 담았는데요. 샤이니는 케이팝 팬들에게 다양한 관점을 선사한 분명한 상징성을 지닌 그룹이지만, 한편으로 온유의 존재를 인식할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복잡해지기도 합니다. 하경 님이 본격적으로 샤이니를 좋아하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온유가 사회면에 난 이후였다고 하는데요. 10년 동안 샤이니를 좋아해 온 하경 님에게 샤이니를 좋아하는 복잡한 마음과 내리사랑이 이어지지 않는 이유 등에 대해 물었습니다. 곧 12월이네요. 볼이 얼 정도로 날이 추워지면 하굣길 버스 안에서 <푸른밤>을 듣던 때가 생각납니다. 에스엠타운 코엑스 아티움은 사라졌지만, 이곳에서라도 우리의 마음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래 버튼을 누르면 하경 님이 선곡한 에스엠의 음악을 들으실 수 있으니, 음악과 함께 인터뷰를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초식남과근육남 #샤이니와투피엠
 일석   샤이니를 좋아하기 전에 투피엠을 좋아했다고요. 스스로 ‘암흑기’라 부르는 시절이라고 했는데, 그때 이야기 좀 해주세요(웃음).
 하경   투피엠이 한창 상승세를 타던 시기에 출연했던 <아이돌 군단의 떴다! 그녀>라는 프로그램을 엄청 재밌게 봤어요. 그때의 저는 지금과는 또 다른 저인데, 남자에 관심도 많고 사회가 만든 ‘남성성’을 추앙하던 시절이에요(웃음). 샤이니와 투피엠이 비슷한 시기에 데뷔해서 ‘초식남 VS 근육남’으로 묶어서 언급되기도 했는데, 저는 ‘근육 남자’를 좋아했으니까 샤이니에게 매력을 못 느꼈고요. 돌이켜보면 멤버들을 진심으로 좋아했다기보다 친구들이랑 같이 덕질하는 게 즐거웠던 것 같아요. 일종의 또래문화였던 거죠. 어디 가서 투피엠 좋아한다고 했을 때 “걔네가 누구야?”라는 질문을 들을 일도 없고, 친구들이랑 대화도 잘 통하니까 더 열심히 덕질했던 것 같아요. 당시에 일산 근처에 살아서 친구랑 새벽에 몰래 방송국에 가기도 했거든요.

 일석   투피엠은 얼마나 좋아했어요?
 하경   1년 남짓이나 됐을까요? 박재범이 탈퇴할 때 탈덕했어요. 좋아하던 그룹이 순식간에 와해되는 걸 보면서 어린 마음에 상처를 크게 받았죠. 팀의 리더였고, 인기 멤버였는데 하루아침에 매국노가 됐잖아요. 탈퇴 이후에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다른 멤버들이 마치 박재범을 대역죄인처럼 몰아가는 모습을 보니까 허탈하더라고요. 문제를 정확하게 언급하지도 않고 함께 활동했던 멤버를 그런 식으로 취급하니까 팬으로서 실망스럽기도 했고요. 덕질이라는 게 부질없다는 생각도 들었고, 딱히 관심 가는 그룹도 없어서 한동안 덕질을 쉬었어요.

 일석   그럼 언제부터 샤이니에 관심을 갖게 된 거예요?
 하경   처음부터 샤이니라는 그룹을 좋아한 건 아니었고, 시작은 멤버들에 대한 작은 관심이었어요.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했는데 타이포그래피 수업에서 가사집을 만드는 시간에 이런저런 가사를 찾아보다가 우연히 종현의 ‘엘리베이터 (Elevator)’라는 곡을 발견한 거예요. 노래를 들을 때 가사보다는 멜로디에 집중하는 편이었는데, 그 노래는 하나의 이야기처럼 다가오더라고요. 그 노래를 계기로 종현의 음악에 관심이 생겨서 그해 겨울에 ‘디 아지트THE AGIT’ 공연에 다녀왔어요. 공연은 당연히 좋았고, 무엇보다 종현과 팬들의 관계가 인상적이었어요. 투피엠을 좋아할 때는 저조차도 미디어에 등장하는 정형화된 ‘빠순이’의 역할이었던 것 같은데, 그날 본 광경은 제가 알던 덕질의 형태와 사뭇 달랐거든요. 아이돌과 교감하고,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된 거죠. 그날의 모든 장면이 참 좋았어요. ‘산하엽 (Diphylleia grayi)’ 무대 중 뿌연 스모그 위에 꽃 모양으로 수놓은 불빛들, 어둡지만 따뜻했던 조명, 빈손으로 온 저에게 팬라이트를 빌려주던 팬분의 얼굴 등 그날의 장면이 기억 한구석에 남아 지워지지 않네요.
JONGHYUN ‘THE AGIT - THE STORY by JONGHYUN’
 일석   콘서트에서만 느낄 수 있는 현장감과 감동이 있죠. 그리고 같은 해 10월에 태민에게 입덕했다고요.
 하경   종현과는 또 다른 마음으로 태민을 좋아하게 됐는데요. ‘MOVE’를 보고 오타쿠가 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좋아하는 거랑 덕질은 다르잖아요. 무슨 말인지 아시죠?(웃음) ‘MOVE’는 남자 아이돌이 누군가의 응시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기존의 케이팝 문법과 달랐다고 생각해요. 모든 남자 아이돌이 호감을 가지거나 소화할 수 있는 콘셉트는 아니잖아요. 태민이기에 할 수 있는 퍼포먼스죠. 역동적이지 않지만 묘한 텐션이 느껴지는 분위기를 태민이 탁월하게 표현한 것 같아요. 태민은 말랐다는 이유로 “게이 같다”는 말도 많이 들었는데, 차별과 혐오가 담긴 반응에 개의치 않고 자신의 음악을 표현하는 다양한 방식을 체득한 멤버예요. 예전보다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남성성’을 돋보이게 하려는 용도로 여성 댄서를 무대에 세우는 경우도 있잖아요. ‘ADVICE’ 뮤직비디오에도 여성 댄서가 등장하는데, 그들의 성별이 강조되기보다 태민과 하나의 팀으로서 장면을 만들어요. 멤버들의 솔로 활동뿐만 아니라 샤이니의 무대가 대부분 그런 식인데, 그런 면에서 샤이니라는 그룹에 호감이 생겼어요.
TAEMIN ‘Advice’ MV
#샤이니의상징성 #우리애는한남아니야
 일석   샤이니가 지닌 상징성이 분명한 것 같아요. 샤이니라는 그룹을 통해서 보이그룹을 바라보는 팬들의 관점도 확장됐을 거라고 생각하고요.
 하경   샤이니는 성별에 따라붙는 고정관념에 대항하는 포지션이었던 것 같아요. 샤이니의 음악과 무대에서 외부의 평가에 변명할 필요도, 위축될 필요도 없다는 태도가 잘 드러나는데요. 샤이니는 장발 스타일을 하거나 크롭티, 치마 등 흔히 ‘여성적’이라 여겨지는 의상을 즐겨 입고,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감정과 사랑을 노래하는 그룹이거든요. 대중이 샤이니를 어떻게 정의하는지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지금까지 샤이니라는 그룹이 보여준 행보 자체가 퀴어하다고 생각합니다.

 일석   샤이니가 강한 힙합 사운드의 곡을 선보이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데, 음악이나 콘셉트적으로 달라진 부분이 있다고 느끼는지?
 하경   이제는 어떤 모습도 샤이니라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데뷔할 때는 ‘컨템퍼러리 밴드’를 표방했지만, 그동안의 활동을 보면 한 단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그룹이라고 생각해요. 그들의 음악 스펙트럼이 점점 확장되고 있으니까요. 신보를 낼 때마다 멤버들이 “샤이니 같지 않다”는 반응을 즐기는 것처럼 보이고, 특히 타이틀곡을 선정할 때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 같더라고요. 잘 들여다보면 샤이니는 항상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 그룹이에요. 애초에 ‘줄리엣 (Juliette)’을 부르다가 ‘Ring Ding Dong’을 부른 그룹이잖아요(웃음).

SHINee ‘Ring Ding Dong’ MV
 일석   확연하게 콘셉트가 다른 두 그룹을 좋아하며 느꼈던 차이점이 있나요?
 하경   각 그룹을 덕질했던 나이대도 다르고, 가치관의 차이도 크다 보니까 덕질 방식이 달랐는데요. 투피엠을 좋아할 때는 팬사인회 응모하려고 앨범도 사고 오프라인 스케줄에 참여하기도 했다면, 샤이니를 좋아할 때는 성인이었지만 오히려 소비 위주의 덕질을 하지 않게 됐어요. 초반에는 앨범 판매량에 기여하고 싶어서 앨범을 여러 장 구매하기도 했는데, 굳이 내가 이들의 성적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겠더라고요. 돈을 써서 음원 총공을 할 수도 있고, 앨범을 많이 살 수도 있지만, 줄 세우기에 동조하는 게 작품을 만드는 작업자를 존중하지 않는 방식처럼 느껴지더라고요. 듣지도 않을 앨범을 사서 쌓아두는 것보다 콘서트에 가서 즐겁게 응원하고, 그 시간을 통해 행복한 기운을 얻으면 충분한 것 같아요.

 일석   샤이니를 덕질하면서 했던 고민이 있다면?
 하경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남자 아이돌을 응원하는 행위에 대해서 고민하게 됐어요.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 사건, ‘N번방’ 사건 등 사회적으로 큰 사건을 지나면서 고민이 많아지던 시점에 태민을 좋아하기 시작했거든요. 19년도에 태민의 단독 콘서트에 갔는데, 그의 무대가 너무나 멋졌던 동시에 가까이서 본 태민이 ‘남자’라는 걸 인지한 순간 기분이 이상하더라고요. 과연 내가 사랑하고 있는 대상은 누구인지, 한국 사회를 병들게 하고 여성들을 동료 시민으로 취급하지 않는 그들과 이 사람이 다르다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지, 결론적으로 내가 알 수 없는 영역인데 내가 이 사람의 어떤 면을 보고 좋아하는 건지 마음이 정말 복잡했어요. 남자 아이돌을 영업할 때 “우리 애는 한남 아니다”라고 하잖아요(웃음). 한 사람의 인격과 생활 태도를 왜 팬들이 해명해야 할까요? 좋아하는 남자 아이돌의 무고함을 팬들이 증명해야 하는 현실이 서글픈 것 같아요. 무엇보다 이런 고민을 하게 만든, 많은 것을 용인한 사회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하고요. 지금도 많은 여성들이 딥페이크 텔레그램 성착취로 고통받고 있고, 얼마 전에는 엔시티 멤버가 성범죄를 저지르기도 했잖아요. 제가 본격적으로 샤이니를 덕질하기 시작했을 때는 온유가 이미 사회면에 난 이후였기 때문에 내적인 고민이 깊어졌어요.

#사회면에난멤버 #분리된팬덤
 일석   온유는 클럽에서 한 여성의 신체 일부를 두 차례 만졌다는 혐의로 입건돼 경찰 조사를 받았고, 결국 무혐의 처분을 받았죠. 당시 샤이니 팬덤이 ‘온유 지지 철회 및 탈퇴 요구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어요.
 하경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사리 분별을 못할 정도로 만취한 상태에서 타인의 신체를 함부로 만진 건 잘못이죠. 아이돌이 아니라 그 누구도 하면 안 되는 행동이잖아요. 본인의 잘못으로 자숙했는데, 그 이후에 태도가 반성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아서 개인적으로 탐탁지 않았어요. 샤이니라는 그룹을 끝까지 응원하고 싶은 마음과 별개로 이 그룹을 응원하는 것이 그의 행동을 옹호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편치 않아요.

 일석   아무리 분리해서 생각한다고 해도 그들은 같은 그룹 멤버이자 동료인데, 당시 어떤 심정이었나요?
 하경   다른 멤버들이 그의 행동을 용인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멤버들에 대한 경계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지만, 그 상황에서 멤버들에게 결정권이 없었을 테고, 그 멤버 때문에 이 그룹을 떠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컸거든요. 그를 없는 사람 취급하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어요. 어쨌거나 팀 활동을 할 텐데, 샤이니라는 그룹을 폄하하거나 불매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해서 소극적으로 대응했던 것 같아요. 상황이 그리 단순하지 않기도 했어요. 그 일이 있던 해에 종현이 세상을 떠나서 팬들이 어떤 논의를 이어갈 겨를이 없었거든요. 그 멤버에게 도덕적 책임을 묻는 일보다 눈앞의 슬픔이 우선이었으니까요. 상황상 그 멤버가 자진해서 탈퇴하기도 어려웠을 거고, 팬들은 팀의 존폐를 더 걱정했어요. 여러모로 상황이 복잡했죠. 그렇게 시간이 막 흘러버린 것 같아요.

 일석   팬들이 그 일에 대해 적극적으로 논의하거나 입장을 정리하기 힘든 시기였네요. 
 하경   당시에 온유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를 응원하는 ‘4인 지지’ 의사를 표명하는 팬들도 있었는데, 시기상 ‘4인 지지’라고 하면 마치 종현을 배제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 상황이었어요. 정말 힘든 시기였기 때문에 많은 팬들이 눈을 감기를 택했던 것 같아요. 이제서야 그때의 논의들이 하나둘씩 이어지고 있는데, 그전까지는 그를 언급하지 않는 게 멤버들에 대한 예의이자 그 멤버를 지지하지 않음을 표현하는 방법이었어요.

 일석   팬덤 내 분위기는 어떤가요?
 하경   온유를 옹호하는 팬과 그렇지 않은 팬으로 최근에 더 명확하게 분리된 것 같아요.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그 멤버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걸 금지하기도 했고요. 돌이켜보면 그 시기에 온유를 지지하지 않는 팬덤의 존재를 확인하고 나서 마음을 놓기도 했던 것 같아요. 만약 샤이니 팬덤 전체가 온유를 응원하고 그의 복귀를 바랐다면 아마 지금까지 좋아하긴 힘들었을 거예요.

#종현 #아이돌과팬이라는관계
 일석   그해 12월에 종현이 세상을 떠났어요.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팬과 아이돌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
 하경   종현이 늘 팬들에게 우리는 가까운 관계라고 말해줬지만, 어쩌면 어느 관계에도 해당하지 않는 이의 죽음에 슬퍼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죠. 슬픔을 이겨내는 방법 같은 건 모르지만, 종현의 어두운 면이나 힘들었던 것만 기억하지 않으려고 애썼어요. 그가 지나온 시간을 함부로 추측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요. 어떤 모습이든 다 그 사람의 일부분으로 보고 싶었거든요. 이 사람을 쉴 수 없게 만드는 아이돌 산업과 우울증을 고백할 수 없는 사회적 분위기 등 당시에 그가 놓였던 여러 가지 억압적인 상황에 대해 고민했던 것 같아요. 

 일석   아이돌은 어떤 역할 수행을 해야 하잖아요. 본인의 마음 상태를 티 낼 수 없는 상황을 알기에 더 마음이 아픈 것 같아요. 
 하경   종현의 노래 중에는 힘들다고 목 놓아 부르는 노래도 있지만, 누군가를 응원하는 노래, 세상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하는 노래도 많거든요. 그런 노래들이 그가 분투하는 모습처럼 느껴져서 참 힘들죠. 팬들의 마음을 공감해 주고 위로해 주는 그의 다정한 면모를 좋아했는데, 막상 본인이 외롭고 슬픈 상황에서도 팬들을 응원해 줬다고 생각하니까 죄책감이 들기도 했고요. 저도 나름대로 표현하고 응원했지만, 제가 종현에게 위로를 받았던 만큼 종현에게도 저의 마음이 닿았을지는 모르겠어요. 제게 큰 힘이 된 사람인데, 저는 어떤 도움도 되지 못했다는 게 가장 슬픈 것 같아요. 나중에 종현 소품집 [이야기 Op.2]를 들으면서 이렇게 얘기를 많이 했는데 몰랐구나 싶었거든요. 인스타그램에 우울증을 암시하는 블랙독 그림을 올리기도 했고요. 이렇게 자주 얘기했는데 하나도 몰랐어요.

 일석   저는 종현이 진행하던 라디오의 애청자였는데, 한동안 그 시간에 라디오를 못 들었어요. 그를 가까이서 혹은 멀리서 좋아하고 응원했던 사람들은 이 마음을 어떻게 감당하고 있는지 너무 걱정되더라고요.
 하경   예전에는 종현이 보고 싶을 때마다 에스엠타운 코엑스 아티움에 마련된 추모 공간에 갔었거든요. 그런데 그 공간이 사라지니까 정말 막막하더라고요. 거길 가면 이 슬픔을 같이 공유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자체로 위로가 됐거든요. 오랫동안 좋아했지만 연예인이기 때문에 추모 공간에 방문할 수 없는 현실이 슬펐고, 앞으로 어디에 가서 이 마음을 나눠야 하는지 막연했죠.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일석   샤이니를 좋아하는 시간이 하경 님에게 어떤 의미였나요?
 하경   세상을 보는 방법이 조금 달라졌어요. 친구나 주변 사람들이 저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는데, 그들의 우정을 보면서 제 주변 사람들의 소중함을 깨닫게 됐거든요. 또 직업인으로서 저 연차에도 저렇게 열정적으로 할 수가 있구나 싶어 본보기가 되기도 했고요. 덕질할 때 좋은 점은 한 사람의 역사를 훑어볼 수 있다는 건데, “노력하면 된다”는 피상적인 말들을 이 사람들의 인생을 통해서 제 삶에 적용할 수 있는 게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태민이적 #내리사랑의부재 #여돌을대하는마음
 일석   태민이 에스엠 나간다고 했을 때 어땠나요?
 하경   기존에 보여줬던 작업과 비슷한 결을 보여줄지 아니면 색다른 음악을 시도할지 예측이 안 되더라고요. 그동안 에스엠에서 보여준 장르나 작업물이 온전히 태민 취향인지 궁금하기도 했고, 저는 에스엠의 음악 퀄리티가 제일 좋다고 생각해서 걱정한 것도 사실이에요(웃음). 다행히 태민의 음악성은 계속 이어 나가는 것 같아요. 콘셉트나 뮤직비디오는 좀 아쉬웠는데, 앨범 프리뷰 영상은 만족스러워서 앞으로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 크게 체감한 변화는 무대 횟수가 늘었다는 건데요. 샤이니가 에스엠에 있을 때 비교적 투어를 적게 한 편인데, 태민이 해외 투어 등 무대를 더 많이 하고 싶다는 의향을 내비친 적이 있거든요. 에스엠을 나간 뒤에 바로 해외 투어를 하는 걸 보고 하고 싶었던 걸 하는구나 생각했어요.
TAEMIN [ETERNAL] Album Preview
 일석   내리사랑이 유구한 회사인데, 하경 님은 오로지 샤이니만 좋아한다고요. 그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는지?
 하경   왜 그럴까요?(웃음) 그 부분에 대해 깊게 고민해 봤는데요. 우선 엔시티 드림의 경우는 반바지를 입고 ‘Chewing Gum’으로 데뷔했을 때, 남자아이들을 대상화한다는 느낌이 시각적으로 강하게 다가와서 반감이 들었어요. 그 나이대의 이미지를 극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으로 대상화할 수도 있다는 걸 직접적으로 느낀 것 같아요. 같은 이유로 뉴진스가 데뷔했을 때도 꺼림칙한 면이 있었거든요. ‘줄리엣 (Juliette)’ 활동 당시 샤이니의 대상화된 모습도 여전히 달갑지 않고요. 엔시티 위시도 특정 콘셉트를 소화한다기보다 ‘소년’의 모습을 재현한다는 인상을 받아서 딱히 관심이 생기지 않더라고요. 엔시티 127은 장르적으로 제 취향이 아니고요.
NCT DREAM ‘Chewing Gum’ MV
개인적으로 콘셉트나 구체적인 상황이 없는 사랑 노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예를 들어, 에프엑스의 ‘첫 사랑니 (Rum Pum Pum Pum)’나 ‘NU 예삐오 (NU ABO)’ 같은 노래는 사랑에 빠진 순간을 새롭게 표현하는 반면 라이즈의 ‘Love 119’는 평범한 사랑 노래로 들리더라고요. 데뷔 초반에는 청춘 콘셉트라고 생각했는데, 이 노래는 특정 콘셉트보다 성인 남성의 모습이 두드러지는 것 같아요. 이러한 방식은 유사연애로 이어지게끔 유도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f(x) ‘첫 사랑니 (Rum Pum Pum Pum)’ MV

엑소는 에스엠 아이돌 중에서도 특히 이성애를 강조하는 그룹처럼 느껴지는데요. 엑소의 음악은 정말 제 취향이지만, 그들에게 과몰입할 수 없게 만드는 이유기도 해요. ‘늑대와 미녀 (Wolf)’, ‘나비소녀 (Don't Go)’, ‘TENDER LOVE’ 등 노래하는 대상의 성별이 언급되거나 예상되는 노래가 많잖아요. 유사연애는 아이돌을 대상화하는 또 다른 방식이기도 하고, 제가 아이돌을 좋아하면서 기대하는 영역이 아니라 유사연애 콘셉트가 두드러지는 그룹은 깊게 빠지기 어려운 것 같아요.

EXO ‘TENDER LOVE’ Eye Contact Video
 일석   에스엠의 여자 아이돌 콘서트도 여러 번 다녀왔다고 했는데, 그들에 대한 애정이 덕질로 이어지지 않은 이유도 궁금해요.
 하경   그들의 음악을 좋아하고, 활동을 응원하지만 저는 아직도 여자 아이돌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무대 위에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여전히 고민스러워요. 예전보다 나아졌다고 하지만 성적 대상화도 심각하고, 노출이 심한 불편한 옷을 입고 남자 아이돌은 하지 않는 동작을 하잖아요. 여자 아이돌의 노출에 점점 무뎌지는 것 같아요. 그러니 개선되지 않는다고 느끼고요. 결국에는 산업이 뒤집어질 만큼의 변화가 있어야 해결에 될 텐데 그렇게 될까요? 산업 안에서 대우가 너무 다르잖아요. 걸그룹을 좋아하는 게 저에겐 더 어렵고 고민되는 일인 것 같아요.

#에스엠의음악성 #광야 #아티스트보호
 일석   에스엠과 타 소속사와의 차별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하경   앞서 말했듯이 저는 에스엠 음악의 퀄리티가 제일 좋다고 생각하는데요. 에스엠에서 아무리 별로인 노래를 내더라도 다른 회사보다는 낫더라고요(웃음). 성적에 연연하기보다 각 가수에게 맞는 노래를 선정하고, 시기적절하게 획기적인 아이템을 반영하는 능력도 탁월한 것 같아요. 에스파의 경우에도 세상에 없던 새로운 콘셉트는 아니지만 걸그룹에게 접목한 건 처음이잖아요. 에스엠의 모든 결과물이 다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에스엠이 한 번씩 획을 긋는 독보적인 앨범을 낸다고 생각해요.

 일석   대표적인 앨범을 소개한다면요?
 하경   명반으로 회자되는 레드벨벳의 정규 2집 [Perfect Velvet]을 빼놓을 수 없죠. ‘빨간 맛 (Red Flavor)’으로 맑고 강렬한 ‘레드’의 이미지를 보여줬다면 이 앨범을 통해 단순히 귀엽지만은 않은 레드벨벳의 섬뜩함과 기괴함을 보여줬죠. ‘벨벳’ 콘셉트를 확실하게 보여준 앨범이에요. 이후에 어떤 노래를 불러도 ‘레드벨벳의 음악’이라고 납득할 수 있게끔 기반이 된 앨범이라고 생각해요.  
Red Velvet ‘피카부(Peek-A-Boo)’

태연 정규 2집 [Purpose]는 오로지 노래 하나로 승부하는 앨범인데요. 이전에는 편안한 멜로디의 발라드나 청량하고 시원한 노래를 선보였다면, 이 앨범은 타이틀곡을 포함해 전반적으로 묵직하고 깊이감이 있는 곡이 수록되어 있어요. 태연의 가창력과 음색이 돋보이죠. 이후에 나온 정규 앨범이 [INVU]인 걸 감안하면, 태연 음악의 결을 만든 앨범이 아닌가 싶어요. 특히 ‘사계 (Four Seasons)’ 뮤직비디오를 좋아하는데, 태연의 다양한 모습과 함께 ‘사계’라는 주제에 맞게 무언가가 시작되고 사라지는 이미지가 잘 드러나요. 에스엠은 정규 2집이 명반이라는 주장에 걸맞은 선정이네요(웃음).

TAEYEON ‘사계 (Four Seasons)’ MV
 일석   최근 에스엠 엔터테인먼트의 행보 중 가장 아쉬웠던 점은 무엇인가요?
 하경   광야요(웃음). 재밌다고 하는 분도 있지만, 저는 에스엠의 장점을 지우는 방식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룹마다 다른 스타일의 음악을 선보이고 각자의 세계관을 만들어 나가는 게 에스엠의 장점인데, 광야로 인해 가수들을 하나의 세계관으로 묶어버리니까 오히려 회사 직원들이 하나의 프로젝트를 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아이돌이 대상화된 인물이 아니라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할 때 팬들이 더 과몰입하게 된다고 생각하는데, 광야는 아이돌이 특정 캐릭터를 수행한다는 점에서 팬심에 역행하는 방식이었던 것 같아요. 각 그룹의 세계관을 촘촘히 묶을 수 있을 정도로 큰 계획이 아니었으면 없어지는 게 낫다고 봐요.

 일석   마지막으로 에스엠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하경   에스엠에 사랑받는 그룹이 많은 만큼 아티스트 보호에 더 신경 썼으면 좋겠어요. 이미 많은 이들을 떠나보냈잖아요. 특히 여자 아이돌은 손쉽게 비난의 대상이 되고, 딥페이크 범죄 등에 노출되어 있으니 더 세심하게 신경 썼으면 해요. 아이돌이 노동자로 인정받고,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기를 바랍니다.
⚡️편협한 이달의 케이팝⚡️
15일에는 ‘케이팝은 핑계고’
마지막 날에는 ‘편협한 이달의 케이팝’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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