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밤이 새도록 박쥐 (이윤설, 『누가 지금 내 생각을 하는가』)
나야 네 곁을 오리처럼 뙤뚱뙤뚱 따라다니던 그래 나야
불빛 한 점 날아와 부딪치는 다방 창가
너는 턱 괴어 애인을 기다리지만
베토벤 교향곡 음표들처럼 거꾸로 천장에 매달려
네 크림빛 눈물이 나태하게 풀리는 동안
퐁당 퐁퐁당 네 이마 위로 각설탕을 빠뜨리는, 그래 바로 나야
네가 정중히 뒷문을 가리키며 꺼지라고 소리치던 나야 나
네가 쓰레기라고 말했던 나야 나, 검게 탄 미소로 뒷걸음치다
난 자동차에 치였을 뿐
신발이 구르고 어깨를 감싸던 검정 망토가 풀썩 덮쳤지
삐뽀삐뽀 사거리 순서가 뒤얽혀
신호등이 앵무새의 호동그란 눈을 치켜뜨고
경광등을 켠 고양이들은
거리로 몰려나왔지만 딴 세상의 똘마니들이 도래한 거야
힘들어 죽겠는 망토의 두 팔을 쫙 펼치자 때마침 바람이 폭풍이
아하 비틀,
할 줄 알았겠지만 나는 붕 날아올랐어
해와 달이 쌍생아처럼 서로
껴안고 나무들은 머리를 흔들며 비명을 지르고
작고 순하지만 성질이 불같은 집들이 바람의 살집 아래
화들짝 눈을 떴어
더러운 환풍구야 식당 뒷문이 흘리는 비웃음아
굴욕을 토하는 골목들아 날 봐
납작한 사거리 납작한 마을 납작한 산
접부채처럼 활짝 펼친
날 좀 봐 주름이 좀 이뻐
날아가는 내 날개 사이로 하늘이 다 비치고
높이 솟다가 문득 내려앉는
나야 나
너는 애인을 기다리다
한 점 불빛 날아와 부딪는 커피잔을 훌쩍 들이마셨을 때
거꾸로 매달린
나를 본 거야 맞아 나야
너는 스푼을 내던지며 박쥐, 라고 소리쳤어
다방 목조계단을 쿵쾅쿵쾅 뛰어내려와
문을 열었고, 순간 삐거덕거리는 계단의 무릎이 꺾이고
놀란 네 몸이 와르르 무너졌지 나야 그래 나야
네가 쓰레기라고 말했던 그래
이제는 달을 지우고 사라지는 지붕과 지붕 사이
눈빛이 칼날같이 그려진 나야
얼굴을 파묻고 검정 망토에 손깍지 끼면
발밑이 떠오르고 두 팔 벌리어 바람의 양감을 느낄 수 있고
조타수처럼 방향을 조종할 수도 있지
날아가는 나를 알아보는 이는 없겠지만
내 검은 그림자는 숲에서 죽은 새의 몸처럼 눈에 띄지 않는
숨을 비밀이겠지만 갈대숲의 흔들리는 고뇌 속에
내 눈물이 떨어진 걸 아무도 모를 테지만
여전히 사랑을 원하는 삐진 표정이겠지만
울먹이는 밤엔 창 열어 눈을 마주쳐보아도 좋아
밤의 책장이 저 혼자 덮이거나 부엌 등이 파닥 튀거나
알지 못할 천공의 울림이 가까이 다가오면
나 잘살고 있어 네가 쓰레기라고 말했던 그래 나야
지붕과 지붕 사이 붕 떠올라 달을 쿡 찌르고
쿡, 쿡, 쿡, 웃어 죽겠는 나야 나
눈빛이 칼날같이
이제 나야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