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띵동.
행운의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언니단원 여러분, 오랜만이에요! 
지난주 은유 작가님의 편지 함께 잘 읽어주셨나요?
오랜만에 보낸 편지를 반갑게 맞아주셔서 감사해요. 

이번 주에는 온라인으로 『해방의 밤』 심야독서회를 열었는데요,
각자 일과 육아를 마친 자리에서 줌을 켜두고 같은 책을 읽으니
집에 있는데도 연결된 느낌이 들어서 참 따뜻했습니다.

심야독서회에 오신 독자분들과 
『해방의 밤』에서 좋았던 부분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는데 
여성의 '욕구'를 다루는
오늘의 편지를 가장 많이 꼽아주셨어요.

언니단 여러분도 좋아하실 것 같아서 보내드립니다. 

그럼 함께 읽어봐요!



은유

작가. 책과 사람이 있는 현장에서 글쓰기를 배웠다. 『글쓰기의 최전선』 『쓰기의 말들』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있지만 없는 아이들』 『크게 그린 사람』 『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다』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다가오는 말들』 등을 썼다. ‘메타포라’ ‘감응의 글쓰기’ 등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얼굴 아래 작은 얼굴. 언뜻 성모마리아상의 평온함이 스칩니다. 그런데 엄마의 낯빛은 아이가 뒤척일 때마다 어둡게 졸아듭니다. 사정을 모르는 아기의 몽글몽글한 살냄새는 모니터 바깥으로 태평하게 새어 나오죠. 아기가 있는 줌 수업 풍경. 너무 귀엽고 슬프고 짠하고 좋아서 저는 자주 울 것 같았는데요. 코로나 시국을 맞이하여 집에서 할 수 있어서 참여한다는 여성 학인이 이번 글쓰기 수업에도 세 사람이나 있었습니다.


아이가 깨서 젖 먹이고 켤게요. 화면이 꺼집니다. 똥 치우고 왔어요. 대화창에 메시지가 뜹니다. 젖먹이는 품에 안겨라도 있지만, 세살배기는 작은 네모 화면에 난입하고 엄마 목에 아기 원숭이처럼 매달렸죠. 엄마가 저녁 7시 반부터 10시까지 이어지는 수업을 위해 만화를 켜놓고 간식을 챙기는 등 대비를 해놓아도 그새 지루해진 아이가 엄마를 찾았어요. 한번은 치카치카를 하는 아이의 앙증맞고 가지런한 치아가 잠시 노출되어 줌 화면에 웃음이 번졌죠. 「우리 동네 구자명씨」라는 고정희 시인의 여성사 연구 연작시처럼 ‘줌 수업의 사랑눈씨’ 라는 기록으로 남겨두고픈 명장면들이었습니다.


사랑눈은 다른 학인들에게 방해가 될까봐 늘 노심초사했죠. 비디오 끄기와 켜기, 음소거와 해제 버튼을 눌러가며 가까스로 수업에 참여하다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어요.


“다른 분들에게 너무 미안하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드네요.”


저는 날아오는 공을 받아치듯 말했습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때는 이렇게까지 해야 합니다.”


용케도 시간은 흘렀고 히말라야 12좌 등반길처럼 가팔랐던 12주 수업을 마치는 날이 왔습니다. 소감을 나눌 때 사랑눈은 다짐했습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한다’는 말을 붙잡고 버텼으며 다른 분투하는 엄마에게도 포기하지 말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되겠다고요. 이것이 서로에게 용기가 된다는 거로구나 싶어서 저는 뿌듯했습니다.


그런데 고백하자면 저도 ‘이렇게까지’가 무얼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건지 잘 모릅니다. 그냥 ‘해야 한다’는 직감만 믿고 따를 뿐이죠. 우리는 알아서 행하기도 하지만 행하고 나서야 왜 무엇을 했는지 알게 되기도 하죠. 저도 나중에 알아챘어요. 손에 쥔 건 비록 앙상한 글 몇편일지라도 애를 쓴 그 순간순간이 저를 조금씩 변화시켰다는 걸요. 그건 주부에서 작가로 직업이 달라진 차원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변화예요. 욕구하면 안 되는 사람에서 욕구해도 되는 사람으로, ‘욕구에 대한 욕구’를 스스로 허용하게 됐습니다.


‘욕구란 세계에 참여하고자 하는 노력’이라고 캐럴라인 냅은 『욕구들』에서 정의해요. 그런데 이 세계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 여자는 하지 말아야 해요.


“먹지 마, 커지지 마, 멀리 가지 마, 많이 원하지 마.”


꽤나 익숙한 명령이죠. 사랑눈이 다이어트 실패기를 두 페이지나 되는 글로 썼던 것처럼 먹지 말아야 하고요. 사랑눈이 전문직이지만 직업적 야망을 갖지 않게 된 것처럼 남자보다 잘나가도 안 되고요. 사랑눈이 수업 하나 들으면서 배우자, 아이, 동료들에 대한 죄의식에까지 시달리는 것처럼 나의 필요는 가족의 필요를 위해 포기해야 하고…


이렇게 ‘하지 마의 세계’에 갇힌 사람은 최초의 욕구가 발동했을 때 ‘잘하는 법’을 고민하기도 전에 내가 이걸 해도 되는 사람인가, 하는 자기 의심과 싸우게 됩니다. 캐럴라인 냅이 떠올리는 자기 어머니의 모습도 다르지 않았죠.


“애초에 자신에게 욕망하고 원할 권리가 있는지조차 확신하지 못하고, 자신의 필요들을 부끄럽게 여기며, 심지어 그 필요들을 거의 인정조차 하지 못하는 젊은 여자를 상상하게 된다.” (122~23면)


저 ‘젊은 여자’는 내가 너무 유난인가 싶어 주저앉길 반복하던 저이기도 하고요. ‘그냥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동화책이나 읽어주고 같이 시간 보내면 될걸, 이렇게 화를 내고 속상해하면서까지 수업을 들어야 할까? 남편 말대로 나중에 애들 크고 할까?’ 되뇌는 사랑눈이기도 합니다. 맞아요. 만국의 엄마들이 ‘조용하지만 끈질긴 불안, 모기의 잉잉거림처럼 성가신 내면화된 경고’에 시달립니다. 존재에 가해진 금기와 제약이 이렇게까지 완강하기에 무언가를 하려면 이렇게까지 힘겨운 것 같습니다.

사랑눈은 온라인이 아니라 오프라인 현장에 오길 소망했습니다. 동료들 실물도 보고 싶고 글쓰기 수업이 열리는 망원동 이후북스에서 책 구경도 하길 바랐죠. 드디어 오프라인 수업에 참여한 날엔 아이들의 방해 없이 엄청 집중해서 무언가를 하는 경험이 너무 오랜만이라며 울먹였죠. 또 집에 있는 아이들한테는 미안하지만 생각보다 걱정되지 않는다며 까르르 웃었습니다. 사랑눈만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갓난쟁이 떼어놓고 나온 김라임씨도, 김지현씨도 육아 해방의 소회를 밝힐 때 삐져나오는 눈물과 웃음을 어쩌지 못했어요. 자신의 욕망이 타당하다는 걸 몸은 느끼는 거겠죠.


『욕구들』에서 저자는 ‘ 딸 ’의 목소리로 묻습니다. “어머니가 결코 갖지 못했던 것을 어떻게 나 자신에게 허용할 수 있어?” 가슴이 철렁하면서도 뻥 뚫리는 말입니다. ‘ 하지 마 ’의 세계에서 엄마를 구원하는 멋진 문장이죠.


사랑눈이 이렇게까지 하는 건, ‘나중에’ 라는 시간은 영영 도래하지 않으며 지금 자신이 원하는 바에 따라 행동해도 된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증여이고, 원함에 관해 아이들이 본받을 만한 모범이 된다는 점에서, 동화책을 읽어주는 일에 비해 모자람 없는 어머니의 일이라고 믿어도 좋을 것입니다.

함께 만드는 해방의 밤 ✨
마케터의 '독서의 밤' 짧은 후기🌟
오픈 후 순식간에 마감된 심야독서회! 은유 작가님과 함께 책을 읽고, 그 자리에서 대화를 나누다보니 생생한 감상들이 쏟아졌습니다. 읽다 '울컥했다'는 표현이 반복해서 나왔는데요. 문장 하나에 부족했던 생각이 떠올라 찔리기도, 위로받기도, 용기를 얻기도 했습니다. 책을 통해 조금씩 해방되는 현장을 목격하며 실시간으로 감동했어요. 언급된 모든 문장을 소개하고 싶지만 한 가지만 남겨봅니다.
사는 방식이 여러 갈래라는 걸 아는 게 해방이죠. (p279)
해방을 모색하는 신년의 밤 🌘
혹시 아쉽게 심야독서회를 놓치셨나요? 은유 작가님과 함께하는 본격 북토크가 열립니다. 설을 앞두고 우리 해방 이야기 실컷 나누어요!

💫일시 : 2월 7일 수요일 저녁 7시 30분
💫장소 : 창비서교빌딩 50주년홀
💫진행 시간 : 1시간 30분 
💫사회 : 양경언 평론가 
나를 살린 책들이라면 남도 살릴 수 있으리라.│사색에 잠긴 밤에 듣는 𝐩𝐥𝐚𝐲𝐥𝐢𝐬𝐭

심야독서회에 함께한 플레이리스트를 언니단원에게도 공유해요! 『해방의 밤』을 읽은 마케터가 추천하는 음악들을 모아봤어요. 고요한 밤, 잔잔한 팝송과 함께 내 자신에게 집중해보세요. 🎧

”노동자가 연장을 내려놓고
펜을 잡는 시간 밤은,
사유가 시작되는 시간,
존재를 회복하는 시간,
다른 내가 되는 변모의 시간이다.“ 


님, 오늘 편지 어떻게 읽으셨나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때는 이렇게까지 해야 합니다.”


저는 은유 작가님의 이 단호한 말이 무척 위안이 되었어요. 


왜 너만 유난이냐는 소리를 들을 때,
사는 게 힘에 부칠 때,
저는 오늘의 편지를 떠올리게 될 것 같아요. 


님도 '욕구하는' 것들을 성취하는 2024년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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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편지에 대해 같이 이야기 나누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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