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말씀드리지만, 제 MBTI는 INFJ입니다. J의 특징은 계획을 세우기도 하지만, 세운 계획이 흐트러질 때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라고 하죠. MBTI의 존재를 알기 전에도 저는 이미 계획을 잘 따르기 위해 스트레스를 받는 저로부터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즉흥적인 계획 변경의 장점을 열심히 찾아내서 스스로에게 세뇌를 시켰어요. 지금은 순간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지만 빠르게 극복할 수 있는 정도로는 살기 편안해졌습니다.
그런데 MBTI는 유전적인 면도 크지 않을까요? 제가 보기에 저희 가족은 동생을 제외하면 모두가 파워 J거든요. 가족 여행으로 어디를 가든 한달 전부터 계획을 세우고 지도를 구입하고 이동 루트를 같이 확인하고, 밥을 먹을 장소와 일몰 시간까지 체크하곤 했습니다. 저도 J니까 일정을 알고 이동하는 것이 예측 가능해서 편안했죠. 하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결정적으로 아쉬울 수 밖에 없는 부분이 있었어요. 무엇일 것 같으세요?
바로 운전하다 마주친 길거리 노점상에서 파는 간식을 먹어본 적이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언제 어디로 이동해서 어떤 식당에서 밥을 먹을지 전부 계획이 있는데 중간에 갑자기 발견한 포도 파는 트럭이나 찐옥수수 파는 노점상에 즉흥적으로 차를 대고 간식을 산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밥을 먹을 계획이 없다 하더라도 보통 이런 트럭은 갑자기 눈 앞에 나타나잖아요. 그 순간 즉흥적으로 저걸 사자! 생각하고 운전대를 꺾는다는 결정을 내리기가 참 힘들어요. 그런 부모님을 너무나 이해합니다. 네, 파워 J는 유전입니다.
그래도 가끔 휴게소에 들렀다가 옥수수 술빵을 보면 사주실 때가 있었어요. 자주는 아니었지만요. 그것 또한 이해합니다. 지금은 못 먹는 것이 거의 없지만 어릴 때는 입도 짧고 뱃고래도 작은 초딩이었거든요. 옥수수 술빵 같은 걸 사줬다가는 그야말로 간식 먹고 입맛 버려서(사실은 배가 불러서) 기껏 찾아간 여행지에서 사준 밥을 먹지 않았을 거예요. 이렇게 부모님의 마음을 알아갑니다.
덕분에 지금도 옥수수 술빵을 보면 채워지지 못한 그리움이 차오릅니다. 술빵은 술떡처럼 옥수수 가루에 막걸리를 넣고 발효시켜 만드는 빵입니다. 술떡 혹은 기정떡이나 기지떡을 먹어보면 쪄서 만드는 설기떡이나 찧어서 만드는 절편과 달리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질감이 매력적이죠. 생막걸리에 들어간 효모로 발효시킨 덕분에 생겨나는 식감입니다. 술떡은 쌀가루, 그리고 술빵은 옥수수가루라는 차이점이 있지만 그 가볍고 말랑한 식감은 비슷하죠. 은은한 막걸리 향과 옥수수 가루의 단향, 그리고 질리지 않고 커다란 한 조각을 순식간에 먹어치울 수 있을 정도로 가벼운 질감만큼 무던한 맛. 옥수수 술빵의 그 모든 특징을 좋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