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동 날라리, 🍊오렌지족🍊을 기억하시나요?
그들을 감싸고 있는 이 도시(공간) 전체가 / 하나의 거대한 수정 샹들리에
- 유하,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1991)
0. 2025년, 서울, 압구정
압구정동 날라리, 🍊오렌지족🍊을 기억하시나요?

지금도 대중매체에 종종 등장하는 이 용어는 실제로 그 시대를 겪지 않은 사람에게도 그다지 낯설지 않습니다. 코리아나미술관이 자리한 여기 ‘압구정’은 1990년대 초반, 이전과는 다른 사회·문화적 감수성을 지닌 장소로 여러 문화적 분석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술은 이 문제적 공간—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을 어떻게 바라보고, 또 대응해 왔을까요?

이번 리서치 딜리버리에서는 ‘압구정’을 하나의 샘플로 삼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당시 사회현상을 객관적으로 고찰한 1992년 전시 《압구정동: 유토피아/디스토피아》를 살펴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사회와 연결되는 통로로서의 ‘미술관/실험실’을 함께 사유해 보고자 합니다.

그럼, 1990년대로 시간을 거슬러가 볼까요?

◀◀

리서치 딜리버리 vol.5에는...


[RESEARCH]
1. 1992년, 서울, 압구정
2. 《압구정동: 유토피아/디스토피아》(1992)
3. 아직 끝나지 않은 질문들

[PLAYLIST]
🎵 Editor’s 플리 추천 🎧

[NEWS]
내 손안의 작은 실험실, ZINE

1. 1992년, 서울, 압구정

1990년대 초반의 한국은 억눌림과 해방, 통제와 자유가 공존하던 과도기였습니다. 군사 정권의 잔재가 남아 있었지만,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세계화에 대한 열망과 변화의 기대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었지요. 여기에 ‘3저(저달러·저유가·저금리)’ 호황이 맞물리며 중산층의 소비 여력이 비약적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전쟁과 결핍의 시대를 거친 이전 세대와 달리, 풍요 속에서 성장한 젊은 세대는 절약과 근면의 윤리를 과감히 거부하고 소비를 자기표현의 언어로 받아들였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사회적 질서에 대한 도전이자 문화의 저항이면서도, 억눌려 있던 욕망의 해방이기도 했습니다.


이 욕망의 시각적 무대가 된 곳이 바로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이었습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 고급 아파트 단지와 수입 브랜드 매장이 들어서며, 압구정동은 부와 세련됨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부상했습니다. 이러한 환경은 과시적 소비와 통 큰 씀씀이로 자신을 연출하던 젊은 세대—이른바 오렌지족*의 등장을 촉발했고, 이들의 활동은 압구정동을 도시 욕망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욕망이 과잉의 형태로 확장되면서, 화려한 소비의 표면 아래에는 도덕적 공허와 계층적 위선이 뒤섞인 어두운 그림자도 드리워졌지요. 이러한 양면성은 문학과 영화 등 대중문화 속에서 다양한 서사로 변주되었습니다.


한편, 1990년대 초반은 문화연구Cultural Studies가 본격적으로 확산되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군사정권의 완화로 표현과 담론의 자유가 확대되며, 억눌려 있던 문화적 욕망이 비평 언어와 학문 탐구로 전환되기 시작했지요. 이러한 변화 속에서 1992년 현실문화연구가 발족하였고, 문화연구의 일환으로 전시 《압구정동: 유토피아/디스토피아》를 선보였습니다. 전시는 압구정동이라는 장소를 매개로 1990년대 한국 사회가 맞닥뜨린 근대성의 양가적 얼굴—유토피아적 기대와 디스토피아적 불안—을 탐구한 실험이었으며, 예술가와 학자들이 협업해 도시의 욕망과 그 이면을 시각적으로 드러내 보였습니다.


* 오렌지족은 동시대 대중의 욕망을 자극했고, 이들을 따라 하려는 '낑깡족'이 뒤이어 등장했습니다. 수입 과일인 '오렌지'가 부와 세련됨을 상징했다면, '낑깡'은 그 세계를 동경하는 이들이 스스로를 부르던 유쾌하면서도 자조적인 이름이었습니다.

2. 《압구정동: 유토피아/디스토피아》(1992)

- 기획: 현실문화연구
- 기간: 1992. 12. 12. - 12. 30.
- 장소: 갤러리아백화점 미술관*
- 참여 작가: 김복진, 김환영, 박불똥, 박혜준, 변영주, 서숙진, 신지철, 이지누, 조경숙, 조하익, 정기용

《압구정동: 유토피아/디스토피아》(이하 《압구정동》)에는 사진, 영상, 디자인, 건축 등 다양한 장르의 작가들이 참여했습니다. 전시장에는 광고나 압구정동 거리를 나타내는 이미지 중심의 작품 100여 점이 전시되었으며, 또한 당시 신세대 문화를 대표하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환상 속의 그대〉(1992)와 신해철의 〈도시인〉(1992)이 재생되기도 했습니다. 비록 현재 전시 및 작품 이미지 원본은 찾아보기 어렵지만, 당시 기사와 비평문에 남은 전경 사진을 통해 현장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비록 전시 및 작품 이미지 원본은 찾아보기 어렵지만, 당시 기사와 비평문에 남은 전경 사진을 통해 현장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전시와 병행 출판된 동명의 책 『압구정동 유토피아/디스토피아』(1992)에서 전시 참여 작가 10명의 작품 이미지를 볼 수 있습니다.
각 작품은 압구정동 거리와 그곳의 사람들, 당대 유행했던 브랜드 로고, 잡지, 광고 이미지 등을 콜라주 하여 소비문화를 시각화하고 있습니다. 그 중, 이지누(그림 ⑧)는 압구정동의 청년을 피사체 삼아 짧은 인터뷰 형식의 문장들로 세대의 얼굴과 그 내면을 기록했고, 건축가 정기용(그림 ⑨)은 압구정로 건물의 형태와 배치, 위치적 특성 등을 분석, 확장하며 ‘서울’이라는 도시 공간과 그 구조를 해석했습니다.
이처럼 《압구정동》은 대중소비사회의 이미지를 통해 1990년대 초반 한국 사회의 풍경을 집약적으로 드러냅니다. 전시가 열린 장소인 갤러리아 백화점은 당시 압구정동 문화를 상징하는 대표적 공간으로, 이곳에서 변화된 사회문화적 환경을 예술을 통해 읽어내고 실험하려 했던 기획의 의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책 『압구정동 유토피아/디스토피아』에는 압구정동을 향한 건축, 문학, 사회학, 미학 등 서로 다른 분야 연구자의 시각이 담겨, 당시 한국 사회의 문화를 다각도로 탐구하려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제목 ‘압구정동: 유토피아/디스토피아’가 시사하듯, 《압구정동》은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라는 양극 사이의 스펙트럼을 동시에 다루었습니다. 전시와 또 다른 소통 매체인 출판을 함께 아우르는 시도를 통해 사회에 대한 해석의 통로를 확장하면서, 소비문화를 단순히 비판하거나 미화하지 않고 한국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본질에 다가가려 했던 실험이었습니다. 

* 당시 명칭은 ‘갤러리아미술관’, ‘갤러리아갤러리’ 등으로 혼용되었는데,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시행(1992.12)에 따라 공식 명칭이 ‘갤러리아 아트갤러리’로 바뀐 것으로 추정됩니다.
3. 아직 끝나지 않은 질문들
▶▶
다시 지금, 여기의 시간으로 돌아와볼까요?

*c-lab 9.0 《미술관/실험실》은 “미술관은 왜 실험하는가, 그리고 실험은 어떻게, 누구를 통해 이루어지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하여 여전히 그 답을 찾아가는 여정에 있습니다. 이번 리서치 딜리버리에서는 이러한 질문의 연장선상에서 《압구정동: 유토피아/디스토피아》를 하나의 역사적 좌표로 다시 소환하였습니다. 현실문화연구가 시대의 징후를 읽어내고, 압구정동 문화를 한국 사회 근대성의 증상으로 진단하려 했던 시도는 예술이 동시대의 현실을 사유하고 사회적 변화를 탐구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30년이 지난 지금, 지식의 생산과 유통은 가속화된 네트워크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다학제 연구와 예술 실천은 더 자유롭게 서로를 횡단하며, 새로운 사유의 지형을 그려나가고 있죠. 이러한 환경에서 우리는 과연 어떠한 시대적 징후를 읽어낼 것이며, 그것을 예술이라는 언어로 번역하여 발화할 수 있을까요? *c-lab 9.0은 예술과 기술, 사회, 문화의 경계 위를 표류하며 그 접촉면에서 발생하는 동시대의 변화를 포착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사유와 실천의 가능성을 계속해서 탐색하고자 합니다. 앞으로도 여러분과 함께 끊임없이 질문을 생성하는 살아 있는 사유의 장으로서 이 실험의 여정을 이어가겠습니다.
🎵 Editor’s 플리 추천 🎧
에디터가 이번 호를 작성하며 반복 재생했던 플레이 리스트입니다. 
함께 들어볼까요?
서태지와 아이들, 〈환상 속의 그대〉 (1992)
“모든것이 이제 다 무너지고 있어도 / 환상속엔 아직 그대가 있다”
신해철, 〈도시인〉 (1992)
“구겨진 셔츠 샐러리맨 / 기계 부속품처럼 큰 빌딩 속에 / 앉아 점점 빨리 가는 세월들 / THIS IS THE CITY LIFE”
이효리, 〈잔소리〉 (2007)
“압구정 자주 가지 말아요 / 예쁜 여자 많아 불안해요” 
처진달팽이(유재석&이적), 〈압구정 날라리〉 (2011)
“셔츠가 다 젖을 때까지 압구정 / 돈이 없어도 오늘만은 날라리”
내 손안의 작은 실험실
2025 전시 연말 정산 ZINE

2025년에 관람했던 전시의 티켓, 리플렛, 사진을 모아 한 권의 진(Zine)으로 만들어봅시다. 간직하고 싶은 기억과 나만의 해석을 담은 전시 연말 정산 진 만들기, 함께해요! 
👀이미지 출처
① 쿠팡플레이 YouTube 「SNL 코리아 시즌4 – 장기하 편」(2023. 9. 3.), 영상 캡처 (링크)
② 90년대 압구정 갤러리아 백화점 동관 이미지, 디지털강남문화대전 (링크)
③ 「90년대 신세대 풍속도 해부」, 『한겨례』, 1992. 12. 10. 
④ 「압구정동 유토피아전 오렌지족 문화 한마당」, 『경향신문』, 1992. 12. 18.
⑤ 최범, 「'현실문화연구'의 〈압구정동 : 유토피아/디스토피아〉 텍스트와 이미지가 만나는 또 하나의 방식」, 『월간 디자인』, 1993, no.1, pp.118-123.
⑥ 『압구정동: 유토피아/디스토피아』 앞표지 및 뒷표지(초판본).
⑦ 『압구정동: 유토피아/디스토피아』 신지철 작품 이미지(왼쪽), 조혜정 글(오른쪽).
⑧ 『압구정동: 유토피아/디스토피아』 이지누의 작품 이미지.
⑨ 『압구정동: 유토피아/디스토피아』 정기용의 작품 이미지.

※ 『압구정동: 유토피아/디스토피아』 스캔 이미지는 출판사 '현실문화'의 허가를 받아 연구 및 참고 목적으로 게재하였습니다.
📚참고문헌
― 김필호 외, 『X: 1990년대 한국미술』, 서울: 현실문화, 2016.
― 문혜진, 『90년대 한국 미술과 포스트모더니즘』, 서울: 현실문화, 2015.
― 윤난지 외, 『한국 동시대 미술 : 1990년 이후』, 서울: 사회평론아카데미, 2017.
― 곽현지, 「《압구정동 유토피아/디스토피아》에 대한 연구」, 석사학위논문, 홍익대학교, 2020.
― 송은영, 「강남다움의 한 기원, 1990년대 압구정동 문화와 문학」, 『서울과 역사』, no.116, pp.153-188, 2024.
― 최범, 「'현실문화연구'의 〈압구정동 : 유토피아/디스토피아〉 텍스트와 이미지가 만나는 또 하나의 방식」, 『월간 디자인』, 1993, no.1, pp.118-123.
― 최형민, 「압구정동: 유토피아/디스토피아전」 「살아있는 미술」 새가능성 모색」, 『중앙일보』, 1992.12.9. (링크)
― 이문재, 오민수, 「욕망의 ‘해방구’ 압구정」, 『시사저널』, 1992.1.16. (링크)
― 「압구정동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디지털강남문화대전 (링크)

*c-lab은 독자의 의견을 소중히 읽고 있습니다.

*c-lab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남겨 주세요.

info@spacec.co.kr  |  02-547-9177
06024 서울시 강남구 언주로 827 스페이스 씨
published on November 7,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