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공방 29호
  2025년 12월 5일 계절공방 29호 - 0.9에서 1이 되기 위한 순간 

  한 해의 마지막 페이지에 들어선 12월. 인디언은 12월을 ‘다른 세상의 달’ 혹은 ‘침묵하는 달’ 등으로 부른다고 해요.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하며 차분히 시간을 보내려는 인디언의 지혜가 느껴지는 이름입니다. 우리도 인디언식 이름 짓기를 따라 12월에 이름을 붙여본다면 어떨까요? 저는 ‘토핑 추가의 달’이라고 짓고 싶어요. 모든 게 완성된 듯싶지만, 근사한 토핑 정도는 추가할 수 있는 시간이니까요. 사실 마지막에 얹는 토핑이 전체의 맛을 결정하기도 하고요. 오늘 계절공방은 마지막에 얹기 좋은 토핑 같은 콘텐츠로 준비했습니다. 0.9에서 1이 되기 위한 지금, 마음껏 더해보면 좋을 거예요.
Editor. 송쏘
[Interview]

『29.9세』 고선경 시인이 20대의 마지막 달을 보내는 법

[Editor's year-end moments]

연말을 기념하는 방법

[계절책장]
연말을 위한 책
[계절문장]
고선경, 「치명적으로 달콤한」, 『29.9』에서
『29.9세』 고선경 시인이 20대의 마지막 달을 보내는 법  
  새해가 다가온다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 연말입니다. 제야의 종을 울리고 나서도 13월이 찾아오고 2025년이 계속될 것만 같지 않은가요? 어떤 시절의 끝을 마주하고 새로운 시작을 도모하는 일은 참으로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는 그런 순간마다 시집을 펼치게 되더라고요. 시를 읽고 있으면 마음 놓고 길을 잃어버릴 수 있고, 정처 없이 떠돌아도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거든요. 
  그러니 오늘은 2025 시의적절의 마지막 권, 『29.9세』로 돌아온 고선경 시인을 만나봅니다. 산문집을 출간한 지 반년 만의 신간! 그의 작품을 꾸준히 읽어온 독자로서 무척 반가운 소식인데요. 하루 한 편씩의 글을 그러모아 꼬박 한 달을 엮어낸 ‘시의적절’ 시리즈로 만나 볼 수 있으니 더욱 좋지요. 매일 한 꼭지씩 읽다 보면 12월을 무사히 보내고 반가운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할 수 있을 거예요.
Editor. 송쏘
연말을 기념하는 방법
데이오프 연말정산북으로 기록하기
  이번 연말, 다들 어떻게 보낼 계획이신가요?
  연말이 다가오면 저는 묘하게 분주해지곤 합니다. 기념일에 크게 연연해하지 않는 편인데도 한 해의 끝과 새해의 시작이 맞닿은 이 시기만큼은 시간의 경계를 선명하게 느끼고 싶어 그냥 지나치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면 연말을 맞이하는 방식도 삶의 시기마다 달랐습니다. 어릴 땐 가족들과 시상식을 보며 TV 앞에서 새해 카운트다운을 외쳤고, 성인이 되고 나서는 친구들의 자취방이나 에어비앤비를 빌려 자정을 기다렸죠. 서른을 앞둔 해에는 바르셀로나 광장에서 열두 번의 종소리에 맞춰 포도 한 알씩 먹는 스페인 풍습을 따라 하다 포도즙을 줄줄 흘렸던 기억도 있습니다.
  그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연말을 보내오던 제게, 3년 전부터 조금 다른 루틴이 생겼습니다. 12월의 어느 하루, 친구들과 함께 모여 ‘데이오프 연말정산북’을 작성하며 한 해를 정리하는 시간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어느새 세 권이 쌓였고, 네 번째 해를 맞이하기 위해 올해분을 미리 주문해뒀습니다.

  저희의 회고 방식은 이렇습니다.

 

  1. 각자 한 장 분량으로 올해의 회고록을 작성합니다.
  2. 먼저 끝낸 사람이 “끝” 하고 외치면, 휴식을 취하거나 다음 장으로 먼저 넘어갑니다.
  3. 모두가 작성을 마치면 첫 번째 질문부터 순서대로 자신의 답과 이유를 공유합니다.

     3-1. 특별한 이유가 없을 땐 답만 간단히 말해도 되고, 건너뛰고 싶은 질문은 패스해도 됩니다.

     3-2. 다른 사람에게 궁금한 점이 생기면 언제든 질문을 던져도 좋습니다.

 

  함께 모여 한 해 회고를 하면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됩니다.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을 순간도 친구의 이야기를 통해 의미있게 떠오르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서로를 응원하게 됩니다. 그래서 연말정산 회고는 저와 친구들에게 단순한 기록 이상의 역할을 해왔습니다. 손에 잡히는 결과물을 만들어준다는 점도 좋지만, 무엇보다 서로의 한 해를 함께 되짚어볼 수 있다는 사실이 더 소중하게 다가오는 작업인 듯합니다. 한 사람의 인생은 결국 기억의 무늬로 이루어진다고들 하는데요, 우리는 그 무늬를 조금 더 선명하게 남기고 싶어 기록을 이어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연말을 보내는 방식에 정답은 없지만, 올해를 조금 더 깊이 기억하고 싶다면 작은 기록의 시간을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요?

Editor. 햄사리

연말을 위한 책

 This is it will be different

 연말이 되면 괜스레 울적해져요. 영어 공부 앱 결제를 고민하던 게 불과 엊그제 같은데 그사이 11개월이 지나갔죠. ‘도대체 이게 뭐지? 올해는 뭘 한 거지?’라고 자책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되거든요.
 그래서인지 연말이 되면 아주 집중해서 봐야 하는 심각한 소설보다는 가볍고 산뜻한 책을 고르고 싶어집니다. 이런 책을 찾는 지인이 있다면 늘 추천하는 작가는 바로 ‘메이브 빈치’예요. 메이브 빈치의 소설은 일일연속극 같거든요. 보통 평일 저녁 시간대에 하는 일일연속극은 여러 미덕이 있어요. 기본 이상으로 재밌고, 다양한 삶이 묻어나며, 잠깐 한눈을 팔더라도 어느 정도 맥락을 이해할 수 있죠. 게다가 모두에게 거슬리지는 않는 방향으로 결론지어버리니, 뻔해 보여도 이만큼 편안한 게 없죠. 
  메이브 빈치의 작품은 겨울에 또 찰떡입니다. 그의 대표작 『그 겨울의 일주일』부터 시작해 『올해는 다른 크리스마스』까지 겨울에 어울리는 책들이 많거든요. ‘This is it will be different.’ 마치 연초마다 외치는 문장 같지만 바로 『올해는 다른 크리스마스』의 원제목인데요. 이 크리스마스 단편소설 속 인물들이 얼마나 예상하지 못하는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지 지켜보고 있노라면 그래 이게 바로 인생이지 싶습니다.

Editor. 지지
  친구에게 자주 선물한 인생 책 

  ‘인생 책’이라는 거창한 단어를 앞에 두고 어떤 책을 선택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최근 친구들에게 가장 많이 선물한 김화진 작가의 『동경』을 소개하기로 했습니다. 이 책을 읽을 때면 누군가가 떠오르고, 선물하고 싶어지곤 했거든요. 아마 그건 이 책이 이야기하는 것에 깊이 공감하고 나누고 싶다는 뜻이기도 할 테니까요.
  30대 초반의 세 여성의 우정 그리고 일과 꿈 사이에서 흔들리는 마음을 세밀하게 표현해 놓은 소설인 『동경』을 읽으며 누군가의 일기장을 몰래 보는 듯한 착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살아가는 이 나이대의 고민에 대한 어렴풋한 답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이 독서의 가장 큰 매력이지 않을까요? 앞으로도 조금씩 나이를 먹어가며 그 나이의 저만의 답을 찾을 수 있는 인생 책을 자주 만나고 싶습니다.
 
  가끔 약에도 체해. 그럴 때 있잖아. 선의에도 걸려 넘어지잖아. 그런 걸 우리가 어떻게 다 알겠어. 우린 겨우 서른 언저리잖아._김화진, 『동경』 p.74
Editor. 다소루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을 읽는 연말 
 
  연말에 읽을 책을 고르다 보면 한참을 고민하게 됩니다. 한 해를 점검할 자기계발서나, 사두고 미뤄둔 숙제 같은 책을 집어 들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저는 가장 좋아했던 책을 다시 꺼내 드는 쪽을 택했습니다. 바로 안윤 작가님의 소설집, 『모린』입니다.
  저는 이 책을 떠올리면 왠지 모르게 핫초코가 떠오릅니다. 찬바람이 불면 자연스레 핫초코가 생각나는 겨울의 공식처럼, 제게는 겨울이 오면 『모린』이 떠오릅니다. 마침 이 책의 초판 발행일도 레터 발행일의 딱 1년 전인 2024년 12월 5일이더군요. (마치 운명처럼요!)
  이 책에는 사랑과 상실이 담겨있습니다. 삶에 있어 커다란 감정인 건 분명하지만, 그 모양은 저마다 유일하지요. 안윤 작가님은 이런 유일한 사람, 그리고 사랑을 아주 담담하게 그려냅니다. 저는 이 담담함이 좋았어요. 나만이 하는 ‘특별한’ 사랑이 아니라, 내가 하는 ‘유일한’ 사랑의 시점을 비춰주는 것 같아서요.
  모린의 의미는, 유일한 사람, 그 ‘유일함’에 대해 진득하게 생각해보고 싶다면 이 단편집을 권합니다. 당신이 좋아하는 따뜻한 겨울 음료를 곁들여서 말이에요.
Editor. 디또
*해당 표지는 북클럽문학동네 이달책 14호 특별 한정 리커버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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