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문학 평론가, 번역가, 교수이자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글들을 써내는 저자 김지은에게 아동문학은 세 번째 사람의 목소리를 전하는 문학입니다. 세 번째 사람이란 국외자”, “선악의 이분법이 관심 두지 않는 제3의 존재”, “무명의 누군가”, “말없이 혼자 앉아 있는 아이기도 해요. 그리고 동화는 그 아이가 미미한 음량으로 건네는 대답을 들어주고 맞장구쳐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책은 아동문학과 소년 주인공, 죽음, 폭력, , 사랑 일 등의 주제를 다룹니다. 또 작가론, 현장 비평 등도 함께 엮여 있는데, 모르는 작가, 모르는 작품에 대한 비평도 전혀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습니다.(아동문학 평론집을 다 읽게 될 줄 저도 몰랐달까요😬) 섬세한 분석과 시각에서 한국 아동문학의 지형을 역사적·문화적·철학적으로 조망하는 글을 따라가다 보면, 내가 살고 있는 세계의 잘 보이지 않던 영역이 조금씩 들어옵니다. 이러한 아동문학 비평이기에, 좋은 아동문학에 대한 고민은 또한 어린이를 어떻게 동등한 사회 구성원이자 시민으로 대하고 존중할지에 대한 성찰로 이어지지요. 어린이들과 어른들 모두에게 동화가 필요한 이유를 이해하고 느낄 수 있고요. 좋은 동화를 소개받고 싶은 독자에게도 의미 있는 책입니다.
 
동화 안에는 첫 번째 사람과 두 번째 사람의 이야기에서 잘 들려오지 않았던 국외자의 목소리가 들어 있었다. 나는 그것을 세 번째 사람의 목소리라고 부른다. [] 동화에는 어린이의 목소리가 들어 있지만 그 목소리는 어린이만의 것이 아니다. 평생 단 한 번도 이야기의 주인공이었던 적이 없는, 가시화되지 못했던 세 번째 사람들의 서사가 동화에 들어 있다. 아동청소년문학은 세 번째 사람들의 문학과 가장 먼저 연대하며 세 번째 사람들의 삶이 존중받는 세상을 가장 열렬히 꿈꾼다.”6

최근에 읽은 가장 아름다운 책을 꼽으라면 바로 떠오를 책이에요. 체험으로서 책 읽기라는 감각을 오랜만에 느끼게 해준 그림책이기도 합니다. 앞서 소개한 김지은의 비평이 말하는, 말없이 혼자 앉아 있는 아이에게 속으로 말거는 그런 작품입니다. 시인 조던 스콧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이 책은 말을 더듬는 아이의 움츠러든 내면과 아픔 그리고 자기를 긍정하는 과정을 아름다운 시적인 글과 그림으로 펼쳐 보입니다. 이런 설명이 옹색하게 느껴질 만큼, 그림책만이 전할 수 있는 먹먹한 감동과 깨달음, 읽기 경험이 충만하게 담겨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나는 아침마다 목구멍에 달라붙는 낱말들의 소리와 함께 깨어나요.
나는 돌멩이처럼 조용해요.”
 
아빠는 내가 슬퍼하는 걸 보고 나를 가까이 끌어당겼어요.
그러고는 강물을 가리키며 말했어요.
강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보이지?
너도 저 강물처럼 말한단다.’”

어린이에게 강요되는 여자다움과 남자다움에서 벗어나 멋진 사람이 된다는 것에 대해 말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 안의 여전한 성별 고정관념과 그것을 재생산하는 언행을 새삼 되돌아봤어요. 이 책은 예를 들어 여자아이에게 칭찬에 매달리지 말자.” “왜냐고 물어보기를, 싸움을 두려워하지 말자.고 이야기하고, 남자아이에게 “감정과 생각을 말로 표현하자.” “작은 꿈, 나만의 꿈을 꾸자.고 제안합니다. 그 외에도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다양한 문제의식과 실천적 지침을 담고 있어요. 어떻게 말하고 표현하고 대응하면 좋을지 익힐 수 있도록 말이죠. 한편 어른들도 읽어야 할 책인 것 같습니다. 어린이들이 자기다움을 키워가는 데 방해가 되는 의식적·무의식적 말과 행동을 어른들이 먼저 바꿔야 할 테니까요.
몸에 대해 다루는 대목에서 여성에게 강요되는 외모 기준의 예시로 ‘작은 이 나오는데요. 해방자 신데렐라가 보여주는 다른 상상력 중 하나가 바로 “‘작은 구두가 맞는 여성이 왕자의 신붓감이라는 편견을 깨는 장면입니다. 왜냐면 늘 바삐 움직여 일하고 마을을 누비는 신데렐라는 튼튼하고 잘 자란 발을 가지고 있거든요!

물론 한 사람의 힘으로 세상을 확 바꾸기는 어렵지. 하지만 어린이가 세상을 똑바로 보고 무엇인 잘못된 것인지 알면 앞으로 세상을 분명히 달라질 거야. 무엇이 잘못됐는지 아는 어린이들이 함께 목소리를 낸다면 말이야.”53

로드킬로 도로 위에서 죽어간 동물들과, 그들에게 깊은 정성, 애도의 마음을 담아 작별 인사를 건네는 할머니의 이야기입니다. 표지를 펼치면 바로 면지에서부터 어두운 색조의 그림과 장면을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짧은 문장으로 이루어진 페이지들이 시작돼요. 차에 치여 찢어지고 터지고 동강 난 동물들의 주검을 꿰매고 덮어주고 빗어가며 정성껏 보살피는 할머니의 모습, 그리고 잠깐 쉬렴.” “어디 불편한 데 없지?” 같은 일상적인 혼잣말은 따듯하고 슬프게 다가옵니다.
이른바 도시와 문명에 의해 위협받고 고통받아온 동물들, 약자들의 쉽게 망각되는 무고한 죽음을 아주 구체적인 이미지와 정서와 행위로 성찰하고 기억하게 되는 경험, 이런 것이 어린이 문학의 힘이겠지요. 현실에서라면 동네에서 이상하고 조금은 제정신이 아니라는 소문이 났을지도 모를 할머니, 즉 세 번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것도요.

. 강아지가 트럭에 치여 죽었습니다.”
김혜리, 이정모, 홍한별 외,
다시 동화를 읽는다면, 반비
 
누군가 어린 시절의 책에 대한 기억을 나누면 거의 언제나 귀를 쫑긋하게 됩니다. 이 책에서 김혜리 기자, 김용언 편집장의 글을 읽고선 저도 중고책방에서 열심히 엘리너 파전의 책을 찾았던 기억이 있어요. 우리가 동화 속 주인공에게 어떻게 자신을 투영하고 견주며 예민하고 힘겨운 시간을 통과했는지, 책은 어떤 안식처가 되고 책과 함께 한 사람은 어떻게 성숙하는지, 동화는 어떻게 거듭 새로워지는지 17가지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나를 퇴행시킴으로써 재무장시킨다. 한 번도 인생에 실망하지 않은, 한 편의 나쁜 글도 쓰지 않은, 아직 괴물과 마주친 적 없었던 과거로 나를 데려가 다시금 좋은 인간, 아름다운 세계, 훌륭한 문장을 탐내게 한다.”36~37
리베카 솔닛, 멀고도 가까운, 반비

서로 다른 장소와 인물, 주제를 엮어가며 이야기의 힘에 대해 말하는 이 책에 동화에 관한 몇몇 대목이 등장합니다. 이 책의 주요 주제 가운데 하나인 어머니와 딸의 관계를 다루면서 솔닛은 어머니가 남긴 살구 더미와 대면하고는 동화를 다시 읽습니다. 동화라는 이야기의 속성에 대한 통찰을 엿볼 수 있고, 신데렐라 다시 쓰기가 솔닛에게 어떤 맥락의 작업인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동화는 문제에 관한 이야기, 문제에 휘말렸다가 그것에서 나오는 이야기다. [] 대부분의 이야기에 담긴 핵심은 역경에서 살아남는 일, 세상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는 일, 자기 자신이 되는 일이다. 어려움은 늘 필수 사항이지만, 거기서 무언가를 배우는 건 선택 사항이다. 대부분의 동화는 힘없는 자들의 이야기다. [] 하지만 그들은 그 와중에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한다.”2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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