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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제주에는 무슨일들이 일어나고 있을까요 🤔❓
매주 월요일 JEMI가 제주의 이야기를 쉽고 재밌게 들려줄게요 🧚🏻

이번주 JEMI
1. 제주 이승용 변호사 살인사건 무죄에서 유죄로
2. 광복 77주년 제주에서는 어떤 항일운동이 있었을까? (3)

자료화면 출처: 그것이알고싶다 유튜브 캡쳐화면
제주 이승용 변호사 살인사건 무죄에서 유죄로

 잔인한 수법으로 사람을 살인하여 제주도 전체를 들썩이게 한 ‘이승용 변호사 살인사건’은 오랫동안 범인을 잡지 못한 제주의 대표적인 장기미제 사건이었는데요. 오랜 기간 끝에 범인을 잡아 법정에 세웠지만 1심에서 살인죄 무죄, 협박은 유죄로 나왔어요. 그러나 얼마 전 열린 항소심에서는 살인죄가 무죄에서 유죄로 바뀌며 징역 12년을 선고했어요.  어떻게 무죄에서 유죄로 뒤집혔는지 오늘 제미에서 알아보도록 할게요.

무슨 사건인지 알려줘🗣
 지금으로부터 23년 전인 1999년 12월 5일 아침 제주도에서 검사 출신의 이승용 변호사가 자신의 승용차 운전석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는데요. 신체 여러 군데가 흉기에 의해 손상된 상처들로 피를 흘린 채 발견됐다고 해요. 보통 사람이 저질렀다고 보기에는 살인 수법이 정말 잔인하여 흉기 사용 경험이 많은 조직폭력배의 범행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오랫동안 범인을 잡지 못했어요.

그러다 지난 2020년 한 시사프로그램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살인을 교사하였다고 주장한 김모씨가 나타났고, 경찰은 재수사를 통해, 살인교사를 주장한 김모씨를 살인 등의 혐의로 기소를 했어요.

김모씨는 왜 인터뷰를 한거야?🤔
 돈을 목적으로 방송사 측에 접근했다고 해요. 김씨는 방송을 통해 유족과 접촉하여 범인을 잡게 해준다는 명목으로 돈을 타거나, 장기미제였던 사건이었던 만큼 언론의 주목도가 높은걸 이용해 출연료를 타기 위해 방송에 출연했다고 2심 판결문에 나와있다고 해요. 그렇다면 왜 위험을 무릅쓰고 출연했을까요?

공소시효가 지난줄 알 았던 김씨는 공소시효 완료 전 해외에 도피했는데요. 당시 규정에 따르면 형사처분을 피하기 위해 해외 도피를 하게되면  그 기간 동안 공소시효가 정지됐고, 공소시효 완성일이 2015년 12월로 미뤄졌어요. 그러나 2015년 7월부터 태완이법이 적용되어 살인사건에 대해 공소시효가 폐지돼 원래 예정됐던 공소시효 만료는 무효 처리가 됐지만, 이 규정을 모르고 이미 공소시효가 만료된 줄 알았던 김씨는 방송에 출연했다 덜미를 잡히게 됐어요.

*태완이법: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으로 1999년 5월 대구에서 발생한 김태완(당시 6세) 군 황산 테러 사건을 계기로 발의돼 시행된 법안

무죄에서 유죄로👩🏻‍⚖️
 검찰은 김씨가 직접 범행을 실행에 옮기진 않았지만 사전에 공범과 범행을 공모하는 등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고 판단, '공동 정범'으로 보고 살인 혐의를 적용해 무기징역을 구형했어요. 그렇지만 1심에서는 김씨가 정황상 살인을 한 것은 맞지만 실질적인 증거가 없어 협박죄는 인정되나 살인죄는 무죄로 판단했는데요. 이번 2심에서는 김씨가 범행을 공모한 사실을 인정하였고, 범행 당시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는 특별 제작된 흉기가 사용된 사실을 알고 있었고 이는 피해자가 사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였다는 것으로 보아 유죄를 선고하였어요.

이승용 변호사 사건 방송을 담당한 이동원 PD는 취재를 하는 동안 이승용 변호사가 꿈에 많이 나왔다며 피해자의 한을 이번 판결로 조금이나마 풀어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어요.

*공동정범: 2명 이상이 범죄를 공모한 뒤 그 공모자 중 일부만 실행에 나아간 경우 실행을 담당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공동으로 범죄 책임이 있다는 법리

by.묵묵

자료화면 출처: Sun
광복 77주년 제주에서는 어떤 항일운동이 있었을까?
(3)법정사 항일운동

  님 올해는 일제로부터 조국의 광복을 맞이한 지 77주년이 되는 날인데요. ‘빼앗긴 들에도 봄날은 온다! ’선조들은 일제에 의해 빼앗긴 조국을 찾기 위해 36년의 일제강점기 동안 전국각지에서 항일운동을 진행했어요. 제주도 또한 예외는 아니었는데요. 이번 시간에는 제주항일운동의 마지막 시간으로 ‘법정사 항일운동’에 대해 알려드릴게요!

법정사 항일운동이란?
  법정사 항일운동은 서귀포시 도순리에 위치한 법정사에서 승려들이 중심이 되어 국권 회복을 위해 일으킨 항일운동이에요. 법정사 인근 마을 주민 700여 명이 함께 했고, 제주도 내 최초의 항일운동이자 종교계가 일으킨 전국 최대 규모의 무장항일운동으로 불리고 있어요.

법정사 항일운동 어떻게 진행된?
 법정사 항일운동이 일어났던 1918년은 제주도민들이 일제의 행정 장악 및 경제적 수탈에 의한 피해를 직접적으로 느끼는 시기였어요. 이에 격분한 법정사 주지 김연일, 방동호 등은 일본인 관리와 상인을 제주도에서 내쫓고 독립을 위해 거사 6개월 전부터 준비에 들어갔어요. 그리고 1918년 10월 7일, 마침내 모두가 약속했던 그날이 찾아왔어요. 

법정사 예불에 참석했던 선봉대는 인근 마을 주민 700여 명과 함께 전선과 전봇대를 절단 및 파괴하고 경찰관 주재소를 습격했어요. 이 습격으로 인해 일본 경찰 3명을 붙잡고, 무고하게 감금되어 있던 13명의 구금자를 풀어줬어요. 하지만 총으로 무장한 기마 순사대의 공격으로 참여자들은 검거되거나 흩어지게 됐고 법정사가 불에 타면서 법정사 항일운동은 종료됐어요.

법정사항일운동 평가는 어때?
  법정사 항일운동은 단순한 종교적 차원의 운동이 아니라 일제의 경제적 침탈에 대한 도민들의 항일투쟁이었으며 국권회복운동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요. 하지만 여전히 참여했던 인원의 절반이 애국지사나 순국선열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묵묵하게 독립운동을 진행했던 제주도민들, 그들의 감사에 잠시 고개를 숙여 감사를 드리는 것을 어떨까요?

찾아가는길👉🏻법정사(클릭)
 by.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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