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뉴스레터 15호를 발행합니다.
종일 내리는 비와 폭염. 여름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습니다.
지난 6월2일에는 재단의 훈훈한 행사가 있었습니다. 리영희와 오랜 세월을 함께한 선생님들을 모시고 각자의 인생에 서로가 끼어들어간, 서로를 직조한 경험과 기억을 듣는 자리였습니다. 그곳에는 각자의 순정한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언론계의 오랜 친구 임재경, 리영희가 선비라 부른 후배 신홍범, 리영희의 꼿꼿한 자존심을 국면마다의 키워드로 읽어내는 언론계 후배 김선주, 제도권 밖의 조교로 시작해 중국문제 연구자 후배로, 재단 이사장까지 엮여들어간 백영서. 이렇게 네 분 선생님들이 김언경 이사 진행으로 정담을 나누었습니다.
이번호 ‘재단과 함께하는 사람들’은 백영서 선생님이 글을 써주셨습니다. 70년대의 감옥은 소위 잡범들에게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학교였을 뿐 아니라 ‘양심수’들에게도 새로운 인연이 맺어지는 고요하지만 끓는 공간이었습니다. 감옥에서 나온 20대의 백영서가 그 감옥에서 맺은 인연에 따라 40대의 리영희를 찾아가는 걸로 시작하는 리영희와의 인연을 써주셨습니다.
지난 2월 대한민국 법정에서 베트남 민간인 학살에 대한 정부의 배상책임이 인정된 후 재단은 베트남전쟁 당시 리영희의 신문기사를 중심으로 김효순(뉴스레터 11호), 백승욱(뉴스레터 12호) 두 분의 글을 실은 바 있습니다. 이번호에는 관련된 세 번째 글을 싣습니다. <아카이브평화기억>의 심아정 선생 글입니다.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국가배상 판결을 위해 분투한 심아정 선생은 이제 국가 너머의 성찰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국가가 압도적인 행위주체인 것도, 개인은 그 엄청난 자장의 힘 속에서 살아가는 것도 맞지만, 자신이 서 있는 그 자리가 만들어지기까지 행해진 잘못들을 뒤늦게나마 알아차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인정하려 드는 것, 각자는 그렇게 자신에게 있을지 모를 가해성을 발견하고 이를 통해 연대하자고 얘기합니다. 무기수입만이 아니라 무기수출이 더 부끄러워지는 그런 연대입니다. 귀한 글을 보내주신 백영서 심아정 선생님 고맙습니다. |
리영희는 더 이상의 연구와 탐사에 기초한 글쓰기를 내려놓은 후, 집에 가지고 있던 대부분의 서적들을 정리했습니다. 중국에 관련한 책들은 백영서 선생을 통해 창비로, 중국 외의 국제관계 서적은 홍근수 목사를 통해 평통사로, 그 외의 문학, 역사 등의 책은 군포도서관에 기증했습니다. 이번 기회에 기증된 책들을 사진으로 소개합니다. |
평통사에 기증한 국제관계 관련 자료 및 서적들. 오른쪽 위 두 개의 단에 미 국무부 외교문서가 보인다. 펼쳐져 있는 책은 미 국무부 외교문서 중 1952~1954년의 문서를 다룬 제15권. |
군포중앙도서관 1층에 진열된 리영희 기증도서. 리영희의 사진과 약력이 함께 소개되어있다. 왼쪽 아래에는 리영희가 사용한 안경, 만년필, 친필 원고가 전시되어있다. |
재단 사업 토크쇼 '리영희와 친구들'
|  |
6월 2일 금요일, 재단에서는 리영희 선생과 함께 활동하신 후배 분들을 모시고 토크쇼 ‘리영희와 친구들’을 진행했다. 토크쇼는 재단의 김언경 이사 진행으로 임재경 선생(전 한겨레 부사장), 신홍범 선생(전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장), 백영서 선생(세교연구소 이사장, 연세대 명예교수)께서 참여해주셨다. 테이블에는 앉지 않았지만 김선주 선생(전 한겨레 논설주간)께서도 객석에서 함께 해주셨다. 두 시간 가까이 이어진 대화의 자리를 통해 리영희 선생과의 추억을 공유할 수 있었다. | |
재단과 함께 하는 사람들 내 삶의 균형추, 리영희백영서 / 연세대 명예교수, 세교연구소 이사장 |  |
각종 기사를 오려내 주제별로 보관한 많은 스크랩북, 돈이 없어 제대로 된 것을 구할 수 없어 봉투지를 사다가 송곳으로 뚫어 끈으로 매고 풀칠해 만드신 누런 수제 스크랩북에 압도당했다.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 관한 이러저런 책들을 뒤적이며 선생이 어느 대목에 밑줄을 치고, 어떤 메모를 달았는지를 살피는 것은 그분과의 은밀한 대화라 희열을 안겨줬다. | |
리영희 아카이브 베트남전쟁 참전군인,가해자성과 PTSD에 가두지 않는 청자들을 기다리는 이야기들 아정 / 아카이브평화기억/FIPS/IW31 |  |
우리는 우리가 맺고 있는 복잡다단한 관계망 속에서 자신도 모르는 채 가해의 구조에 놓일 수 있다. 때문에 가해자임을 알아차리고 인정하는 일은 부단한 과정일 수밖에 없다. 끊임없이 자기가 놓인 구조를 의심하고 되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해자성을 인식하게 되는 것은 주체로 서는 일이며, 존엄의 선언이기도 하다. 누군가 가해자성을 인정하는 순간, 거기에는 이제까지 생각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물음이 생겨난다. 그리고 그 물음엔 이제껏 당연시되어온 폭력을 멈추게 할 힘이 내재되어 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