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들불입니다. 오늘 들불레터에서는 남은 연휴기간 동안 부담없이 즐길 수 있으면서, 동시에 값진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책들을 준비해봤어요. 아직 2월 밖에 안되었지만 2022년 올해의 책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드는 책들로 준비해보았으니, 여러분도 들불의 픽을 믿고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  그럼 들불이 소개하는 책들과 함께 풍성하고 따뜻한 설 연휴 보내시길 바랍니다!

들불의 PICK 👍
  • 『트랙을 도는 여자들』, 차현지
  • 『허구의 삶』, 이금이
  •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 『망고와 수류탄』, 기시 마사히코

   「트랙을

"름이는 죽은 여자를 떠올렸다. (...) 름이는 죽은 여자를 지우고 자신을 넣어 보았다.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운동장 트랙 위를 걷던 여자들을 한 명씩 대입해도 무방했다. 전혀 레어한 일이 아니었다. (...) 문득 누워있는 름이에게 두려움이 훅 끼쳐 왔다. 그것은 살아내야한다는 두려움이었다."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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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의 삶』, 이금이
   저는 책을 읽기 전, 표지를 보고 대강의 줄거리를 그려보는 버릇이 있습니다. 『허구의 삶』 표지를 보면서도 어김없이 똥촉을 세워보았습니다. '음 넓은 들에 사람이 혼자 있군.. 이 사람은 외톨이일거야.. 제목에 '허구'가 들어가는 거 보면, 진실 되게 살지 못해서 외톨이가 되어 버린 이야기겠네'
   저의 짐작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 소설 속 등장인물인 '허구'는 사람의 이름이고, 그는 외톨이가 아닙니다. 하지만 그는 다른 시간 속의 또 다른 '나'를 본다고 말합니다. 그의 말은 일반적인 상식 선에서 진실 되지 못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로 인해 가장 친한 친구에게 신뢰를 잃기도 하고요.
   사람들은 삶이란 선택의 총합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이 말을 하는 사람들은 그 '선택'이란 것에 나의 의지와 주관이 얼마나 작용했는지 고려하진 않죠. 어쩔 수 없이 어떤 선택에 내몰린 사람, 애초에 선택을 할 권한 자체를 가지지 못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은, 그 선택이 만들어낸 상황과 현재의 나를 분리하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허구는 거짓된 삶을 산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삶을 그저 살아낸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이 책의 가장 큰 재미는 책의 중반부까지 이 책의 장르가 SF인지 아닌지 헷갈린다는 점입니다. 하필 허구의 이름이 '허구'인 바람에, 독자는 더 의심을 하게 될 수 밖에 없죠. 허구가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결말에 가까워질수록 허구에 대한 의심은 거두게 되고, 부끄럽고 숙연한 마음만 남게 됩니다. 어린 시절의 허구와 상만을 보듬어 줄 어른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자꾸 생각하면서요.

"'나는 어떤 어른인가'라는 질문은 오랫동안 가슴속에 들어 있던 이야기의 발효제가 됐다. 세상 모든 아이들은 존재 자체로 존중받거나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 그런 경험이 없는 아이는 자라서도 외피만 어른일 뿐 내면엔 상처 가득한 아이가 들어 있는 가엾은 존재다.' - 작가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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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서 아이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어요. 아이는 어른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저는 『유진과 유진』에서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작품을 쓰면서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아이들이 뭔가 어려움이 있을 때 어른들에게 달려갈 수 없는 분위기구나 하는 걸 느꼈어요. 저는 그 점이 참 안타까웠어요. 그래서 이번 작품을 통해 정말 네가 힘들어 도움을 청했을 때 너를 거부할 어른들은 없다고,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어요.” - 활동 내용 중에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저는 누군가 인생책을 물어오면 굉장히 난처해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작년부터는 올해의 책을 뽑는 일도 그만뒀습니다. 대체로 실패 없는 독서를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책마다 전혀 다른 좋은 감상을 느끼기 때문에 그 좋음을 비교하는 일이 의미 없게 느껴지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이런 제가 처음으로 인생책으로 꼽고 싶은 책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룰루 밀러의 논픽션 데뷔작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입니다. 
   책 중반부까지의 핵심 줄기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전기입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19세기에 활동했던 어류 분류학자인데요.  
   수전증이 있는 생화학자였던 아버지에게서 '넌 중요하지 않으니 너 좋은 대로 살라'는 말을 들었던 어린 시절의 저자 룰루 밀러에게는 애석하게도 '너는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버지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효과를 내게 됩니다. 그렇게 빛을 잃은 듯한 삶을 이어오던 저자는 어느 날 어쩌면 내 삶에서 '빛'을 품을 수 있는 계기가 될지도 모를 인물을 만나게 되는데요. 그가 바로 전기의 주인공 '데이비드 스타 조던'입니다. 저자는 '아무 약속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 희망을 품는 비결, 가장 암울한 날에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비결, 신앙 없이도 믿음을 갖는 비결'(p.66)을 데이비드에게서 발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죠. 그리하여 저자는 데이비드의 자료를 닥치는대로 찾아 읽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저자는 데이비드의 삶 속에서 데이비드가 가졌던 과학적 신념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종국엔 그가 갖고 있던 우생학적 사고와 과오들을 지적하며, 혼돈과 질서의 대결적 구도가 아닌 '삶의 공존'이라는 새로운 질문을 던지게 되는데요. 
  이 책의 흐름을 짐작하거나 성격을 정의하는 일은 무의미합니다.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구성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이죠. 하지만 책장을 덮을 즈음이면, 이 책이 품고 있는 인간에 대한 사유가 변칙적인 구성을 통해 이어질 수 밖에 없음을 순순히 납득하게 됩니다. 인간이란 본래, 예측할 수 없는 존재니까요. 

"나는 온순하고 음울하며, 먼지를 뒤집어쓴 것처럼 창백한 이 남자가 아무에게도 눈에 띄지 않은 채 미끄러지듯 슬그머니 지나다니다가, 어느새 어떤 목적의 빛으로, 공기로, 빛나는 물질로, 뭐가 되었든 아무튼 그 목적으로 서서히 차오르는 모습을 그려보았다. 목적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 p.76
『망고와 수류탄』, 기시 마사히코
   제가 위에서 인생책을 꼽기 어렵다는 말씀을 드렸던가요? 갑자기 그 말을 취소하고 싶어졌습니다. 왜냐면 제가 올해 만난 또 다른 인생책을 지금 소개하려고 하기 때문인데요 😅
   책의 표지에는 망고 그림과 함께 '생활사 이론'이라는 말이 적혀 있습니다. 또, 저자가 서두에 '이 책은 생활사 조사 방법론과 이론에 대해 적은 것'이라고 밝히기도 하죠. 
   아니, 갑자기 웬 생활사 이론서를 소개하느냐고 반문하시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우리가 학교나 여타 기관에서 배우는 이론서 그 이상의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생활사 조사란, '사람들의 인생 속에 실제로 존재하는 삶의 고단함, 고통, 고독, 행복, 슬픔, 기쁨, 분노, 불안, 희망을 청취하는 조사'입니다. 조사 현장에서 들은 이야기를 통해 그 사람들이 어떤 역사적 상황과 사회구조 속에서 살아왔는지를 생각하는 것이죠. (p.13) 생활사 이론서 답게, 책에는 저자가 진행한 구술청취조사의 내용들이 담겨 있고, 그를 통한 저자의 통찰과 방법론적 접근법이 담겨 있습니다. 
   저자는 생활사 조사를 통해 상황 또는 역사와 구조가 가지는 '의미'를 사회적으로 토의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함을 강조하죠. 우리는 타자의 시간과 유리된 삶을 살고 있다는 이유로, 타자를 이해하려는 시도 조차 하지 않습니다. 또, 우리의 상황에 대해서는 설명하길 원하지만, 타자의 상황에 대해서는 맥락을 파악하려는 시도 없이 타인과 행위 자체를 일대일로 관계짓는 우를 범하곤 하죠. 바로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이 책을 읽어야합니다. 우리가 생활사를 조사하는 조사원은 아니지만, 이 책을 통해 인간 전체에 대한 이해를 확장하는 방법에 대해서, 타자에 대한 관용에 대해서 배울 수 있으니까요.

"'인간에 관한 이론'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그런 상황에 있다면 그런 행위를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는 '이해', 또는 그런 상황에서 한 그 행동에 얼마나 책임이 있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이해'의 집합이다. (...) 이 이론에 의해 얻을 수 있는 것은 가혹한 상황 속에서도 사람들이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삶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그 상황의 가혹함을 축소할 필요는 전혀 없다는 '이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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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고와 수류탄』의 「담배와 코코아」에서 코자의 나카노쵸라고 하는 번화가에 모여드는 폭주족에게 강간을 당한 친구의 이야기를 전하는 구술자가 그의 친구를 '불쌍하다'고 표현하지 않은 것에 대해 저자는 "소녀들은 불쌍한 피해자도 아니며, 자유롭고 씩씩한 저항의 투사도 아니다. 현실의 쓴맛은 그 사이 어딘가에 있다. 그리고 이 괴로움은 괴로움으로 표현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괴로운 경험과 그 표현은 생활의 실천적 문맥 안에서 경험되며 표현된다."고 말합니다.  이어 그들이 가혹한 상황 속에서도 즐거움과 재미를 찾아냈던 것을, "우리는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어떤 행위나 상황에 대해, 그것이 실제 어떠했는지에 대해 지식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은 복잡하고 풍부하며 예상을 배신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한편으로 우리는 우리들을 끌어들이는 역사와 구조가 얼마나 잔인하고 냉혹한 것이 될 수 있는지를 알고 있다. 만약 이 둘 사이에 모순이 생기는 경우 어떻게 해야 좋을까?" 라며 질문을 던집니다.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 속 시대적 상황은 분명 절망적이지만, 그들은 노동교실에서 이어갈 수 있었던 배움에 대해, 그곳에서 만난 수많은 소녀들에 대해 즐거운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시의 수모로부터 느꼈던 모욕감에 눈물 지으며 이야기 하다가도 웃으며 추억을 되새기기도 하죠. 절망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그들의 기억을 기시 마사히코의 이론에 기대어 이해해보자면, '거시적인 역사와 구조의 가혹함, 그리고 미시적인 개인 행위의 창조성과 주체성을 모순 없이 해석할 수 있는'  장면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외에도 <미싱타는 여자들> 속 인물들을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책에 제시되어 있으니, 미리 읽어보고 극장에 방문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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