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탈환작전[풀칠 9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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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번 주 풀칠 마감 당번 마감도비입니다. 한 주간 잘 지내셨나요?

저는 요즘 행복에 대해 생각할수록 깊은 수렁에 빠지는 나쁜 버릇을 고치려고 노력 중입니다. 일상을 행복하게, 저녁을 평안하게 보내고 싶지만 회사는 저를 가만두질 않네요.

그래서, 이번 풀칠 주제는 ‘직장인의 취미’입니다. 부제는 ‘왜 나는 행복할 수 없는가?’라고 할 수 있겠네요. 지난 93호 풀칠레터(행복을 찾아서)가 직장인 ‘희망편’이었다면 이번 호는 ‘절망편’이라고나 할까요.

풀칠러님들은 팍팍한 직장생활에도 스스로를 충전시킬 수 있는 취미를 가지고 계신가요?

‘왜 우리는 세상에 이 크나큰 빈 상자(箱子) 속에 툭툭 채집(採集)되어야 했을까.’ 기형도 시인의 미발표 시 <거리에서>의 한 구절이다.

요즘 내가 자주 곱씹는 구절인데 내 삶이 너무 무심하게 내던져진 거 같아서 그렇다. 일이 좀 고된 걸 너무 과장하는 걸까. 그런데 일이 힘든 건 괜찮은데 삶이 없어졌다고 느낄 때는 좀 견디기가 힘들다.

2년 전인 6월 15일은 지금 직장에 첫 출근하는 날이었다. 경력직인데다 두 번째 직장이었지만 그때만 해도 약간은 열정이 있었는데. 요즘은 소진되고 있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최근에 연봉 협상이 있었는데 뭐랄까, 내 건강 내 시간 다 잃어가며 얻은 게 겨우 이정도인가 싶어서 허탈했다.

그래서 나는 요즘 취미 있는 직장인들이 많이 부럽다. 일을 다닐수록 무색무취한 인간이 되어가는 듯한 기분에 잠긴다. 한때는 ‘취미인간’이라고 자부했었는데.

얼마 전에 스스로도 좀 놀란 일이 있었는데, 비즈니스 미팅에서 취미가 뭐냐는 상대의 질문에 답이 궁해 ‘넷플릭스 보기’라고 답했다. 맞은 편 벽에 걸린 중식당의 메뉴판이 어쩐지 낯설게 느껴졌다.

지금 직장에서 2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면서 무작정 힘들기만 한 건 아니었다. 나름 적성에 맞는 일을 하면서(아니었다면 버티지도 못했을 테다) 나름 주변의 인정을 받았지만 계속된 야근과 불규칙한 주말 근무에 취미를 잃고 말았다.

2년 전의 나에게 취미가 뭐냐고 물어보면 운동과 공연 보기라고 답했을 거 같다. 문제는 야근이 잦아지니 운동을 이어서 할 수 없었고, 주말에도 때때로 업무를 봐야 할 때가 있어서 공연을 예매할 엄두가 안 났다.

20대에는 그냥 취미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건줄 알았는데 지금은 그게 다 시간과 체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라는 걸 절감한다. 직장인이 되고 나니 취미도 기획이고 일종의 능력이 아닌가 싶다.

최근엔 드라마를 정주행하기 시작했지만 정말 간절히 ‘내가 이 시간에 이거 아니면 안 돼’라는 마음은 아니었다. 일종의 보상심리에서 비롯된 구실 갖추기랄까. 물론, 유튜브를 보는 것도 좋고 넷플릭스를 보는 것도 다 좋지만. 하루의 남고 남는 시간에 겨우 보는 드라마 한편이 아니라 저녁 시간을 좀 향유하고 싶다.

말장난 같지만. 즐거워야 해서 즐기는 일이 아니라 즐거워서 즐기는 일을 찾고 싶다. 나는 숨통이 트였으면 좋겠다.

그래도 아주 죽으란 법은 없는 것인지 최근엔 새로운 취미의 싹을 찾았다. 조금 민망하지만 ‘사진 찍기’다. 외근과 지방 출장이 잦은 탓에 하루에도 여러 곳을 휘젓고 다니는데, 그 와중에 본 생경한 풍경, 사람 사는 모습, 도시의 경관 등을 틈틈이 기록한다.

얼마 전엔 해외 출장을 다녀와야 했는데 가기 전에 누가 그랬다. 예쁜 사진 많이 찍고 오세요. 해외가 아니어도. 이제는 내 일상도 한 장의 예쁜 사진으로 남길 수 있으면 좋겠다.

아매오 : 취미를 묻는 말에 관성적으로 독서라는 답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이게 정말 내 취미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히려 아예 떠오르지 않는 게 낫겠다. 그보다 더 찡하더라고요. 어느 웹툰에서 봤던 좀비가 떠올랐습니다. 생전의 마지막 기억에 의존해 같은 행동만 반복하는 좀비요. 그래서 사실 지금 이 코멘트를 쓰는 것도 약간 힘겹습니다. 별 생각 없이 ‘제 취미는 독서인데요’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려니 더 써지지 않았거든요. 이거야말로 즐거워야 해서 즐겁다고 여기는 억지 텐션이 아닐까. 진지하게 취미 탈환 작전을 펼칠 때인 것 같습니다.

파주 : 마감도비님의 에세이를 읽고 잠시 생각에 빠졌습니다. 나의 취미라 부를 만한 것은 무엇인가, 하고요. 다른 사람들에게는 집에서 보통 배를 긁고 있다고 말하곤 하는데 SNS 기록을 뒤져보니 사실은 저도 꽤 취미부자더라고요. 피드로 주측하건대 2주에 한 번 꼴로 콘서트와 페스티벌을 쏘다니던 때가 있었고요. 좋아하는 감독의 GV도, 해외여행도 남들 못지 않게 다녔으니까요. 심지어 전설의 초록원피스 백예린 직캠이 탄생했던 그 페스티벌도 마감도비님과 갔었더랬죠.

저는 무언가를 배우기보다 감상하는 것에만 주로 취미를 가지는 편인데요. 그래서 가끔은 제 취미가 값비싼 추억팔이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고로 취미라는 건 즐거워야 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취미 같은 것을 생산적으로 굴려야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당장의 행복감을 위해 돈과 시간과 마음을 쏟는 행위 자체가 취미의 본질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당장 이 풀칠레터도 취미를 발판으로 삼아(사실은 일터의 괴로움을 토해내기 위해) 시작한 프로젝트가 아니었던가요! 쓸모 없는 일도 실컷 즐기다 보면 뭐라도 되겠죠. 다만 그러기 위해서 늘 건강 만큼은 잘 챙기시길… 노동이든 시간이든, 그 무엇으로부터든 마감도비님의 자유를 기원합니다.

야망백수 : 취미를 붙잡고 있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요즘 매일 절절히 느끼고 있습니다. 피아노, 먼지가 쌓였고요. 자전거, 지하철역 앞에 일주일째 세워져있습니다. 가끔씩 이것저것 그려서 올리던 인스타 계정은 폐업 직전입니다.억지로 시간을 내서라도 할까 싶다가도, 애를 쓰는 건 어쩐지 취미답지 않다고 느껴져서 그냥 누워서 배나 긁습니다. ‘먹고 살기 바빠서'라는 말은 어찌나 근엄한지. 중대한 훼손도 이 말 앞에선 으레 일어나는 일이 되어버립니다. 또 하나 묘한 일은, 먹고 사는 데 집중할수록 많이 먹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책상 한켠에 탕비실에서 가져온 과자가 잔뜩이네요. 언제쯤 나를 먹여살리면서도 그걸 위해서만 살지 않는 법을 배우게 될까요. 이번 주에도 밥벌이 그 이상의 풀칠을 꿈꾸며 야근을 합니다. 법카로 저녁을 시켜 먹습니다. 아, 배부르다 !

BY.야망백수

▲ 취미의 조건

풀칠러A

"나는 돈을 버는 데 쓸 시간과 에너지를 아껴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옷을 입을 것이다." 아 이토록 멋진 선언이라뇨!

아매오

우리의 삶은 돈을 버는 시간과 돈을 쓰는 시간 둘로 나뉘는 게 아닐까요. 양쪽의 시간 모두에서 행복과 평안을 얻으시길 바라겠습니다.

풀칠러B

동료들의 옷을 궁금해한다는 아매오님의 동료분들이 부럽습니다. 저는 관종이라서요! 늘 생각하고 있었지만, 저희 회사는 인원이 적은 여초 회사라 그런지 특별히 정해진 복장 규정이 없어 편하게 입으면서도 암묵적으로 적당히 너무하다 싶은 옷은 또 안 입는 그런 분위기에요. 샌들을 신는 걸 고민하고 계신다는 마감도비님의 글을 맨발에 크록스 샌들을 신은 채 읽고 있는 저입니다. 저는 굉장히 자유로운 영혼이면서도 눈치를 사서 보는 편인데요, 제가 의도치 않게 사내 패션문화(?)를 바꿔나가고 있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습니다. 계약직 아르바이트를 길게 하다가 최근에 정직원이 되었는데, 아르바이트 시절 중간에 노랗게 탈색을 해서 지금까지 유지 중이거든요. 홍대에 별별 사람들이 다 있다는 게시글 중에서 '캐주얼한 직장인'과 '거적때기 입은 힙한 사람들'을 섞어놓은 게 제가 아닐까 싶은데요. 상사 한 분께서 두어번인가 'xx씨는 머리 관리를 참 잘하는 것 같아~' 하는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는데, 이게 혹시 적당히 눈치껏 머리색을 차분하게 바꾸라는 말을 돌려서 하시는 건 아닐까? 하고 고민해보았으나, 그렇다고 한들 정해진 규정이 있는 것도 아니니...라는 약간의 배짱으로... 여전히 노란 머리 휘날리며 출근 중입니다. (회사가 홍대 쪽인데 오늘 다른 분께서 제 머리는 홍대 그 자체!라는 코멘트를 남기시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저는 세상 사람들이 다들 옷을 너무 재미없게(?) 입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아매오님의 패션 욕심을 쌍수 들고 환영합니다. 앞으로도 재밌게 입어주세요! (ps. 제 사무실 슬리퍼도 dobby is free 입니다. 스파오에서 팔 때 회사 분들과 단체로 구매했어요.)

아매오

재밌게 입는다! 되게 재밌는 표현이네요. 백종원 아저씨의 맛 평가에서 “허허, 이거 재밌네?”라는 표현이 어느 정도 레벨이었죠? 꽤나 칭찬이었던 것 같은데ㅎㅎ 더 재밌게! 입어볼 수 있도록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풀칠러C

전환형 인턴중입니다. 팀원들도 너무 좋고, 맡은 직무도 제 성향이랑 잘 맞아서 오래 일하고 싶은 마음이 첫날부터 계속 들었어요. 하나 문제는 최종과제 pt입니다. 그걸로 전환여부가 결정되죠.
현업과 관련된 문제라 난이도도 높고 개선방안은 커녕 문제를 이해하는 데에도 힘에 부치네요. 의지만 있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요즘 절실히 느끼고 있어요. 생각보다 업무시간은 짧고, 퇴근 후에도 붙잡고 있는다고 해도 막상 풀리는 문제는 없고 …
저 자신의 쓸모에 대해서 계속 고민하게 되고, 점점 다가오는 발표날짜에 비해 해나간게 없는 제 비루한 과제상황이 너무 처참하고 두렵습니다. 회사에서 제 한 몫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걸 하루하루 느끼는 사회 초년생의 넋두리였습니다..

마감도비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계시는군요. 자기 능력을 검증받아야 하는 시간만큼 괴로운 순간도 없죠. 그렇지만 자기 쓸모를 가지고 너무 괴로워하지 않기를 바라요. 사탕발림이 아니라 우리는 제 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조직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는 걸 종종 잊거든요.
저는 풀칠러님이 최종과제 PT로 너무 많은 불안을 껴안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물론 준비에 최선을 다해야 하고 발표 순간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준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 순간에 모든 게 결정 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한 번의 발표는 결국 풀칠러님께서 그간 조직에서 성취해온 맥락들 속에 놓일 테니까요.

팀원들과 잘 지내고 직무와 자기 성향이 일치하는 것만큼 회사라는 조직이 바라는 점이 있을까요? 저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최선을 다하시고 푹 주무시길. 응원하겠습니다.

풀칠러D

아매오 님 분홍색 양말 너무 귀여워요! 가장 쉽고 확실하게 분위기를 바꾸는 데에는 양말만 한 게 없는 거 같아요. 저도 입사하고 3개월 동안은 다음 날 신고 갈 양말도 미리 생각했어요. 옷을 입어 보고, 다림질까지 한 후에 잠을 잤거든요. 물론 지금은 그러지 못하고 있어요. 다림질할 시간에 영어 공부를 하는 중이에요. 이직 준비를 하려고 보니 그놈의 영어 성적이 또 필요하더라구요.. 아직 사회 초년생이라 '가고 싶은 회사' 대한 기준이 없었는데 오늘 풀칠을 보고 나니 하나 생겼어요. 입고 싶은 옷을 입을 수 있는 회사로 가고 싶어요. 옷을 선택하고 입는 과정이 누구에게나 다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닐 수 있지만, 저는 제가 입고 싶은 옷을 다림질하는 게 재밌거든요. 아매오 님처럼 동료들의 옷을 구경하고 옷으로 스몰토크를 나눌 수 있는 회사로! 옮겨보겠습니다! 이번 주 풀칠도 재밌게 잘 봤어요. 항상 감사해요:)

아매오

교복을 입고 학창시절을 보내셨다면 아시겠지만, 우리는 복장규제 아래에서도 어떻게든 개성을 찾아 반영하는 민족이었죠. 다림질 할 시간에 영어 공부라! 다림질을 거의 하지 않는 저에게는 없는 시간을 살고 계신 풀칠러님이 부럽습니다. 원하는 결과 얻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