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전 장애인 노동력 착취사건, 30개월만의 선고를 기다리며
(염전 장애인 노동력 착취사건 법률지원 후기)

어울리는 사람 기린

(염전 장애인 착취사건 첫번째 재판기일 2022. 01. 22.)

마스크와 앳된 구마군의 모습이 긴 시간이 흘렀다는 것을 짐작하게 합니다. 


“피고인 A 징역 9년 6월, 피고인 B 징역 3년, 피고인 C 징역 1년, 피고인 D 징역 10월, 피고인 E 벌금 500만 원 선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정신없이 공판 방청 기록을 적어 내려가다가, 장 내가 술렁이는 기분에 이끌려 지난 2년 6개월여 공판 방청 중 어쩌면 거의 처음으로 피고인들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았습니다. 눈이 제법 커지기도 하고 인상을 조금 찌푸리기도 하는 것 같았지만 지금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이 사건이 모두 끝난 이후에도 영영 이해하기 어려울지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제발 이제라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해 주기를 바라는 놓지 못한 미련이 눈을 흐리는 것일지도요.

 

21년 11월 중순 무렵 구속 전이던 피고인을 염전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나름 반갑게 인사를 건넸고, 자기소개를 했고, 당신을 절대 미워하지 않으며, 다만 활동가들이 피해자들을 도울 수 있도록, 피해자들이 염전에서 나와 자립할 수 있도록 협조해 주실 것을 부탁했던 기억이 납니다. 긴 대화가 이어졌고 표면적으론 서로 퍽 나쁘지 않게 첫 만남을 마무리했지만 그럼에도 피고인과 제가 여기까지 오게 된 까닭은 당시 제가 건넸던 그 이야기들이 설득력이 부족하여 피고인에게 진심으로 전달되지 못했던 까닭도 있었겠지요.

 

피고인이 다른 곳으로 보내버린 피해자들을 찾느라 새벽 공기를 가르며 이곳저곳을 찾아 헤매던 시간과, 어렵게 용기 낸 피해자를 다시 회유하여 염전으로 돌아오도록 종용하는 피고인들을 지켜보면서 당신을 미워하지 않는다는 제 말이 얼마나 가벼운 입방정이었는지 종종 깨닫기도 했습니다. 특히 증인석에 선 피해자들을 강하게 압박하며 진술을 유도하던 피고인 측 변호사들의 질문들은 피해자들이 그간 염전에서 겪었을 비인간적인 대우를 떠올리게 하는 것들이어서 사실 그 순간만큼은 피해자들을 대신하여 그 고통의 시간을 피고인들에게 모조리 갚아주고 싶은 충동에 놓인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긴 시간 그들의 항변 아닌 항변을 들으며 적게나마 피고인들의 억울한 마음도 이해가 되기도 했습니다. 유사 이래 늘 관행적으로 행해져 왔던 근로자 채용, 노무 관리 방식과 육체노동 현장의 방만한 인권 감수성 속 죄가 죄인지 모른 채 그들의 표현대로 단지 열심히 사업을 영위하였을 뿐인데 결국 법정 안 심판대에 오르게 되었으니까요. 그래서 그들의 표현대로 “문제라고 해서 문제가 되는” 상황으로밖에 인식하지 못하는 그들의 한계도 일부 인정할 수 있었습니다.

 

구형이 있던 날 공판 방청을 마치고 피해자들을 찾았습니다. 검사님께서 주요 피고인에게 9년 6개월의 형을 내려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고, 피고인은 억울한 점이 많으니 잘 살펴달라고 마지막 변론을 했음을 설명하자 피해자 한 분이 대뜸 “거봐 죽어도 인정도 안 하지”라며 너털웃음을 보이셨습니다. 별달리 말을 더 보태지 않고 주말에 무엇을 먹으러 갈지 물으며 늘 그렇듯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습니다.


동행은 지난 2년 6개월간 총 27번의 공판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습니다. 물론 민사는 별도로 하고요. 이 사건만 해도 장애인 사법절차 지원 신청서와 같은 가벼운 서면부터 50페이지가 넘는 의견서 등 서면 제출 횟수도 헤아려 보니 벌써 스무 건이 넘어갑니다. 심지어는 저와 이소아 변호사님은 여러 차례 직접 증언대에 서기도 했습니다. 피고인 입장에서는 어찌 보면 가히 지긋지긋한 존재들이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공판 초반 피고인들이 활동가들이 합의금을 노리고 사안을 부풀린다는 취지로 항변하던 것도 그들 입장에선 나름 합리적인 의심이었을지 모릅니다.

 

물론 저도 긴 시간을 거슬러 2021년으로 돌아간다면, 이렇게 지난할 줄 알았다면…. 시작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하지만 선고기일을 앞두고 마지막 탄원서의 문장을 마무리하면서 저에게 그때도 지금도 단 하나 바뀌지 않은 마음 한 가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요즘 부쩍 눈부시게 자립의 기쁨을 누리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이 사건 피해자들을 바라볼 때면 지금 이들의 반짝이는 일상이 마치 2021년 11월의 고민하던 저에게 확신을 건네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선고 기일이 무척 기다려집니다. 엄벌 탄원은 핑계일 뿐 어떤 이유로도 인간의 존엄은 훼손될 수 없으며, 장애 시민의 존엄을 파괴하는 관행과 관습이 엄연한 죄이고, 더 나아가 피해자들의 존엄을 복권하는데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는 것이 우리가 성숙한 시민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책임 있는 일이라는 것을, 이번 판결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해 봅니다.

피고인들이 만약 모든 범죄를 인정하고 피해자들의 자립과 회복을 위해 뜻을 함께했다면 어땠을지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만, 지난 2년간의 재판을 지켜보며 점차 그러한 기대가 사라졌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범행을 부인하고 피해자를 탓하며 자기 행동을 정당화하는 피고인들에게 가벼운 처분이 내려진다면, 이처럼 타인의 삶을 빼앗는 다른 범죄에도 면죄부를 줄 뿐 아니라, 어떠한 사과도 보상도 받지 못한 이 사건 피해자들에게도 작은 위로조차 되지 못할 것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피고인이 지은 죄만큼, 피해자들이 빼앗긴 삶의 존엄한 가치만큼 피고인을 엄벌에 처해주시기를 간청하며 바랍니다. 엄중한 법의 심판을 통해 누구의 삶도 존엄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는 인권의 가치를 분명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탄원인 피해자 000의 후견인 이기림

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
법적인 조력자를 넘어 세상을 향한 첫걸음에 함께하는 ‘동행’이 되고 싶습니다.
E-mail: companion.lfpi@gmail.com
Tel: 062-351-0518
광주광역시 동구 천변우로339, 제일오피스텔 302호 
수신거부 Unsubscribe
사용된 일러스트는 Lazypink Whale(신주욱)의 작품이며, 일러스트와 로고 저작권은 '동행'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