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께 보내는 서른두 번째 흄세레터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어느덧 2022년도 끝을 맞이하고 있네요. 이 이 레터를 받아보실 때쯤엔 2023년 계획을 한두 가지 정도 갖고 계실까요? 저는 버킷 리스트처럼 구체적인 목록을 작성하지는 않고, 태도에 대해 생각하는 편인데요. 2023년의 목표는 '방어적인 태도에서 벗어나기'입니다. (모호하죠...? 합리화하기에 아주 좋습니다.)
저는 《동 카즈무후》의 주인공이 의심과 질투로 무너진 데에는 그의 '방어적인 태도'가 결정적이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주인공의 몇몇 모습에서 제가 겹쳐 보이더라고요??? 주인공의 끔찍한 태도에서 거울을 보는 듯한 기분을 느끼다니요. 모른 척하기 싫어서 (할 수도 없고요) 2023년의 태도로 삼았습니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제가 방어적으로 굴면 말해달라는 부탁도 해놨어요. 제가 이런 태도에서 벗어나기까지 어떻게 헤매는지 레터에 소개할 날을 기다리며, 오늘은 편집자 세&랑이 뽑은 《동 카즈무후》 미리보기와 추천 콘텐츠를 소개해드릴게요.

《동 카즈무후》 미리보기 1


“카피투를 보러 가는 게 어떠니? 산샤의 아버지가 너를 집에 초대했다고 하지 않았니?”

“그러셨어요.”

“그럼 가보지 그러니? 물론 네가 원한다면 말이다. 카피투가 오늘 나와 함께 일을 끝내려고 돌아올 예정이었는데, 그 친구가 하룻밤 묵고 가라고 한 게 틀림없어.”

“젊은 남자들과 시시덕거리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주스치나 당이모가 넌지시 말했다.

내가 그때 그녀를 죽이지 않았던 것은 오로지 손에 쇠몽둥이나 밧줄, 혹은 권총이나 단검조차 들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눈빛만으로도 누군가를 죽일 수 있었다면 그녀는 이미 죽은 목숨이었을 것이다. 하느님의 실수 중 하나는 사람의 팔과 치아만 공격 무기로 쓰게 하고, 다리는 도피 또는 방어 무기로만 쓰게 한 것이다. 눈은 첫 번째 목적에 충분히 부합하는 무기가 되었을 것이다. 한 번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적이나 적수를 막고 쓰러뜨리거나, 바로 복수를 실현할 수 있게 할 것이다. 또한 정의를 무너뜨리는 바로 그 살인자의 눈에서 측은지심이 우러나와 희생자를 위한 눈물을 흘리기도 할 것이다. 주스치나 당이모는 나의 눈을 외면했다. 하지만 정작 나는 그녀가 넌지시 건넨 그 말을 외면하지 못했고, 일요일 11시에 인발리두스 거리로 달려갔다.(217~218쪽)

세's pick

자신이 사랑하는 카피투를 두고 당이모가 던진 말에 벤치뉴가 발끈하는 장면입니다. 벤치뉴는 '동 카즈무후(무뚝뚝 경)'라는 별명에 걸맞게 겉으로는 좀처럼 내색하지 않지만, 속으로는 끝까지 가는 캐릭터인 듯해요. 현실에서 절대 만나고 싶지 않은...😓 하지만 소설의 매력은 그런 거죠. 현실에서는 마주하고 싶지도 않은 사람과 일도 덜 힘들이고 겪어낼 수 있다는 것...

《동 카즈무후》 미리보기 2


“카피투는 잘 지내고 있나요?”

출항일을 미루려던 상황에서 그 질문은 경솔했다. 그것은 내가 신학교를 혐오하는 주된 또는 유일한 이유가 카피투였음을 인정하는 것과 같았고, 여행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나는 이 말을 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나의 말을 바로잡고 싶었지만 방법을 몰랐고, 그는 나에게 틈을 주지 않았다.
“평소처럼 즐겁게 지냅니다. 사리 분별을 못 하는 아이입니다. 동네 건달 놈을 잡으면 결혼하겠지요……."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린 듯했다. 적어도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은 확실히 느꼈다. 내가 매일 밤 울고 있는 동안 그녀가 즐겁게 지내고 있었다는 소식이 그런 효과를 불러일으켰고, 지금도 그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을 정도로 내 심장의 격렬한 박동 소리가 이어졌다. 다소 과장이 있을 순 있겠지만, 인간의 말은 바로 이와 같다. 서로를 보완하고 조율해가는 크고 작은 것들의 복합체다. 반면 이 경우 청중은 귀가 아니라 기억임을 이해한다면 정확한 진실에 도달할 것이다. 그 순간 심장이 뛰던 소리가 아직도 내 기억에 생생하다. 그것이 첫사랑의 감정이었다는 것을 잊지 말길 바란다. 나는 주제 지아스에게 카피투가 웃거나 노래하거나 뛸 때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그녀가 무슨 일에 희희낙락하는 것인지 상세히 이야기해달라고 요청하려고 했지만, 시간을 확인하고는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아니다, 다른 생각이 아니었다. 잔인하고 알 수 없는 감정, 순수한 질투, 나의 내면의 독자였다. 그러한 감정들이 내가 혼자 주제 지아스의 말을 되뇔 때 나를 갉아먹었다. “동네 건달 놈.” 사실 이것은 내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재앙이었다.(172~173쪽)

랑's pick

'믿기 어려운 사람.' 이 대목을 보고 곧바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이때부터 소설을 읽는 태도가 변했답니다.

👀편집자의 추천 콘텐츠👍

키키 스미스 : 자유 낙하

고전을 읽다보면 여성 캐릭터를 그리는 방식에 아쉬움을 느끼곤 합니다. 작품 속에서 여성들은 소모적으로 쓰이거나 정형화되기 일쑤죠. 키키 스미스는 독일의 페미니스트 예술가입니다. 여성의 몸을 소재로, 전통적인 여성상(예술이 여성을 다뤄온 방식)을 깨부수는 작품들이 인상적입니다.

전시 기간은 2023년 3월 12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무료로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4개월마다 만나는
하나의 테마, 다섯 편의 클래식
📚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시즌 3. 질투와 복수
011 폭풍의 언덕

에밀리 브론테 | 황유원 옮김

012 동 카즈무후

마샤두 지 아시스 | 임소라 옮김

013 미친 장난감

로베르토 아를트 | 엄지영 옮김

014 너희들 무덤에 침을 뱉으마

보리스 비앙 | 이재형 옮김

015 밸런트레이 귀공자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 이미애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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