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께는 낯선 이름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지난해 6월 경력 기자로 입사했습니다. 〈시사IN〉에서 맞이하는 두 번째 가을 문턱에서 처음, 제대로 인사드립니다.
최종 면접 합격 통보 전화를 받자마자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냈습니다. 경력 기자 채용 모집 공고를 보고 직접 지원한 건 〈시사IN〉이 처음이었습니다. 그만큼 함께하고 싶었던 회사였으니, 합격 소식을 듣고 고민할 이유가 없었습니다(물론 전 회사에 인사 잘 하고 격려 받고 나왔습니다^^).
설렘이 가득했습니다. 밖에서 동경하고, 부러워하고, 질투했던 〈시사IN〉 선·후배와 함께 일할 수 있게 됐으니까요. 2015년 수습기자를 막 뗐을 때, 개인적으로 주간지 기자로서의 방향성을 제시해준 〈시사IN〉 기사가 있었습니다. 전혜원 기자가 쓴 메르스판 ‘가만히 있으라’입니다. 당시 저도 취재하고 기사를 쓴 내용이었는데, 같이 두고 보면 얼굴을 들기 힘들 정도로 잘 쓴 기사였습니다. 주간지 기자로서 앞으로 어떻게 취재해야 하고 또 어떻게 기사를 쓰면 좋을지 일종의 힌트를 얻었습니다. 그걸 저만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활용해서 쓴 기사를 〈시사IN〉 경력 기자에 지원할 때 첨 부한 포트폴리오 맨 앞줄에 적어 냈습니다.
김은지 기자는 국회에 취재하러 가서 〈시사IN〉 기자라고 밝히면 가장 먼저 이름이 나오는 기자 중 한 명입니다. 독자 여러분께서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시겠지만, 김은지 기자는 〈시사IN〉의 굵직굵직한 보도에는 항상 이름을 올려와서 한 번도 보지 못했는데도 왠지 알고 지내는, 또는 알고 지내야만하는 기자처럼 느꼈던 선배였습니다. 〈시사IN〉에서 일할 수 있다면 김은지 선배 밑에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이건 입사 전후로 이야기한 적은 없었는데, 공교롭게도 제가 처음 배치된 정치팀의 팀장이 김은지 기자였습니다 :)
원하는 걸 다 이룬 듯이 입사한 직후, 가득 품고 들어왔던 설렘은 금세 충격과 공포로 바뀌었습니다. 〈시사IN〉이 경력 기자를 채용한 건 창간 이후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신입이 아닌 경력 기자로 입사했으니 ‘열심히’ 보다는 ‘잘’ 해야 한다고 다짐하고 있었는데, 그냥 잘해서는 안 될 자리였습니다. “네가 처음 뽑은 경력 기자야”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불현듯 면접 때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시사IN〉에 부족한 게 뭐냐는 질문에 딱히 떠오르지 않아 마지못해 한 답이 “예전만큼 특종 기사가 보이지 않는다”였거든요. 그 말에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었던 겁니다(아직도 책임 못 지고 있어 참담한 심정입니다).
첫 2주일 사이, 〈시사IN〉이 두 권 발행되는 동안 선후배들이 일하는 모습을 어깨너머로 지켜보면서는 망연자실했습니다. 밤낮없이 현장을 뛰어다니며 하는 취재, 마감의 고통을 ‘즐기고’ 있는 모습들이 눈에 보였습니다. 저 역시도 주간지에서 이직했고 다른 언론사 기자들이 일하는 것들도 보고 들어 왔지만, 이렇게 일하는 걸 좋아하는 기자들은 처음 봤습니다. 심지어 경력 기자를 처음 뽑아 본 〈시사IN〉 ‘고인물’ 선후배들은 기자라면 당연히 이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입사 직후 선후배들을 지켜보며 느꼈던 충격과 공포는 1년이 지나면서 자부심이 됐습니다. 독자 여러분과 선후배들은 저를 어떻게 생각하고 계실지 모르겠지만, 〈시사IN〉을 향한 제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도 확인하고 있습니다.
저는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 나오는 대화나 의견이, 대립과 갈등에 그치지 않고 합의 또는 약속으로 이어지려면 신뢰할 수 있는 사실과 정보가 제공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디어 채널이 다양해지면서 대화나 의견 교환, 주장은 정치인도 할 수 있고 전문가, 학자, 시민들도 할 수 있게 됐지만 합리적 판단의 근거가 되는 사실과 정보를 발굴하고 검증, 전달해 건전한 공론장을 만드는 것은 기자가 할 일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기자가 공론장을 만드는 힘은 그가 속한 언론사로부터 나옵니다. 다양한 미디어 채널의 활용도와 잠재력을 넉넉히 인정하더라도, 잘 훈련된 기자들이 사명감, 문제의식, 분노, 열정을 한 움큼씩(+마감 의무 한 스푼) 담아 취재 계획 수립→오랜 시간 구축한 노하우와 네트워크를 활용해 발로 뛰어 기사 생산→노련한 베테랑 기자들이 검증해 세상으로 전달하는 언론사 시스템은 지금도, 앞으로도 대체 불가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기사들은 국가와 권력, 기관과 집단을 감시하고 공론장을 만들어 활력을 불어넣습니다.
아직 〈시사IN〉에 ‘덜 고인’ 눈으로 봐도, 이 시스템은 〈시사IN〉이 가장 잘 갖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시스템이 작동하는 동력은 님을 비롯한 독자 여러분들로부터 나옵니다. 〈시사IN〉의 가치를 알아봐 주시고, 보내주시는 응원과 의견은 기자들에게 큰 힘이 되고 한편으론 마음을 다시 잡게 합니다. 좋은 시스템과 동력을 갖춘 곳에서 기자로 일할 수 있게 된 제가 할 일은, ‘잘’ 한 취재로 건전한 공론장을 만드는 기사를 쓰는 것입니다. 늘 그래오셨듯, 앞으로도 지켜봐 주세요.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입사 면접 때 했었던 문제의 ‘특종 답변’에 책임졌다는 소식을 전해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소중한 제보는 moon@sisain.co.kr로만 보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