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새벽 에세이〈닿고 싶다는 말〉 #2
#영.레터 10. 〈닿고 싶다는 말〉
  안녕하세요, 구독자 님. 활기찬 한 주 보내고 계신가요? 오늘은 열 번째 '영.레터', 전새벽 작가〈닿고 싶다는 말〉을 보내드리는 두 번째 날입니다.
안전거리에 대하여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어떤 스타일의 연애를 하세요?”
 
  그것참 스타일리시한 질문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말했다.

  “전력질주요.”

  평생 커다란 외로움을 껴안고 산 탓인지, 나는 마음에 드는 사람이 나타나면 늘 호들갑을 떨었다. 만난 지 3시간 만에 고백을 결심하고 사귄 지 3일 후에는 결혼을 결심하는 식이었다.

  애정 공세도 계속되었다. 애정 표현, 선물, 스킨십 같은 걸 멈추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어떤 사람은 그런 것을 ① 처음 경험해본다며 좋아했고, 어떤 사람들은 ② 부담스러워하며 싫어했다. 그러나 양쪽 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모든 ① 은 끝내 ② 가 되었다. 그러나 멈출 수가 없었다. 나는 뒷걸음질 치는 사람을 늘 바투 따라붙었다. 상대에게 공간을 내주지 않는 내 연애 스타일은 매번 실패로 끝이 났다. 관계가 실패할 때마다 외로움과 불안은 증폭되었고, 그 결과 나는 더 전력질주형이 되어갔다.


  회사 선배 C는 명문대 출신에다 집도 부유했다. 그는 누구보다 일찍 출근하고 누구보다 늦게 퇴근하는 성실한 사람이었다. 상사가 부르면 재깍 달려갔고, 후배가 말을 걸면 커피를 사주면서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웠지만, 태도만 봐서는 나무랄 데가 없었다.

  그럼에도 C는 동료들과 변변한 관계를 맺지 못했다. 그는 내가 다니는 회사로 이직해 와서 다시 퇴직하기까지 걸린 약 이 년의 시간 동안, 회사에서 친구를 한 명도 만들지 못했다. 어느 날, 그 이유를 알게 됐다. 회사에서 일을 하는데 가까운 동료 하나가 코털이 보일 만큼 가까이 다가와 얘기를 하기에 “뭐야, 왜 이래?”라고 했더니, “C 흉내 내는 거야. C가 늘 이렇게 얘기하잖아”라고 하는 것 아닌가. 그랬다. C의 문제는 ‘적당한 거리’라는 걸 모른다는 데 있었다.


  가끔 딸아이와 피아노를 가지고 논다. 그리고 조금씩 내가 아는 것을 알려준다. “이게 도미솔이야, 듣기 꽤 괜찮지?” 그럼 딸아이는 방긋 웃는다. “이건 도미b솔이야. 아까보다 슬프게 들리지?” 그럼 딸아이는 슬픈 표정을 짓는다. “이건 어때?” 그러면 딸아이는 인상을 확 찡그린다. 마지막으로 누른 건 도레b솔이다.

  화음의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건 1음과 2음 사이의 거리다. 둘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을 때의 소리는 밝다. 메이저 코드다. 간격이 좁아지면 슬퍼진다. 이건 마이너 코드. 아주 좁아지면 짜증나는 소리가 들린다. 이걸 불협화음이라고 한다.


  타인과의 거리를 너무 좁혀 결국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사생활에 참견하는 직장 상사, 상대의 인간관계를 통제하려고 드는 연인, 훈수를 두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는 배우자의 부모 등.
 
  C는 사생활에 간섭하는 유형은 아니었지만, 대화할 때 몸을 상대방에게 가까이 갖다붙이는 쪽이었다. 자칫 균형을 잃어 몸이 기울면 바로 입술박치기를 할 거리에 늘 C는 서 있었다. 부담을 느낀 상대방이 티 나지 않게 뒷걸음질을 치면, C는 집요하게 거리를 좁혀왔다. 모르고 하는 행동일 거였다. 모르고 하니까 다들 대놓고 흉을 보지는 못하고, 속으로 C를 싫어했다. 미묘한 것에 둔감한 사람. 배려심이 없는 사람. 적당한 거리라는 걸 모르는 사람. C는 악의 없는 마이너 코드였다.

  전력질주라는 내 연애 스타일은 한층 더 질이 나빴다. 내 불안을 잠재운다는 목적으로 타인의 안전한 공간을 마구 침해했다. 나는 악질적인 불협화음이었다.


  불안의 시기에서 덜 불안한 시기로 접어들며, 나는 사랑하기 좋은 때가 무엇인지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사랑하기 좋은 때는 극심하게 외로울 때가 아니었다. 사랑하기 좋은 때는 혼자 있어도 괜찮을 때다. 혼자서도 평온한 상태일 때 타인과 조화를 누릴 수 있다. 불안하고 심히 외로운 상태라면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타인을 그저 이용할 소지가 높다. 일방적인 이용은 결코 사랑의 지향점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모든 깨달음은 너무 늦게 온다.
  적절한 거리감이라는 것은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정해진 규칙도 없고 어디서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눈치껏 살아야 할텐데 그것도 쉽지가 않습니다. 오늘 레터도 당황스러우시길 바라며 일부러 좀 그렇게 써보았습니다. 첫 인사를 드리고, 냅다 글을 드린 다음, 담당자의 코멘트를 이야기하는 식으로요. 

  구독자 님은 어떠신가요? 일상에서 비슷한 경험이 있으신가요? 저도 '적절한 거리감을 두기'를 종종 어려워하는 사람이라, 구구절절 공감하면서 글을 읽었습니다.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건 아니지만, 어떤 노래가 떠올랐습니다. 

네가 한 발짝 두 발짝 멀어지면 난 세 발짝 다가갈게
우리의 거리가 더 이상 멀어지지 않게
네가 한 발짝 두 발짝 다가오면 난 그대로 서 있을게
우리의 사랑이 빠르게 느껴지지 않게
한 발짝 두 발짝〉_ 오마이걸

  다른 사람과의 거리 조절이 어려울 때마다 떠오르는 가사인데, 가사대로만 행동해도 좋으련만 저는 상대가 한 발짝 두 발짝 다가오면 세 발짝 다가가는 사람이라 일을 그르치곤 합니다. 과연 가능할진 모르겠지만, 오늘부터 저는 글에 나온 대로 '너무 가까우면 불협화음'이라는 말을 떠올리면서 인간 관계를 좀 덜 망쳐보려 합니다. (하하...) 

  다음 '영.레터'는 금요일에 찾아뵙겠습니다. 날씨가 엉망인 수요일이지만, 기분만큼은 상쾌하게 보내실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좋은 저녁 보내세요 🤗

- 담당자 Jay
“내 글쓰기의 목적은 소중한 것들에게
‘닿고 싶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정으로
닿고 싶다는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러려면 가끔 멀어져야 한다.”

전새벽 작가가 써내려간
공허한 마음에 관한 관찰 보고서

〈닿고 싶다는 말〉 


7월 초 출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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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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