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비일까요?
움큼 "인스타 하세요?"

저는 출·퇴근에 하루 2시간 30~40분 정도를 소모하는 ‘경기러’입니다. 아침엔 주로 졸면서 가지만, 퇴근길엔 자리에 앉을 수가 없어서 멀뚱멀뚱 핸드폰만 보며 오는 경우가 잦습니다. 유튜브를 보다 쇼츠를 열개 훌쩍 넘도록 보다, 인스타 피드를 한 바퀴 쭉 돌고 릴스까지 봐도 봐도 집에 도착하질 못하는 날이 대부분입니다.


제가 구독하는 인스타 계정 중에는 ‘회장님’도 계신데요, 나름 친숙한(?) 회장님의 게시물이 꽤 화제가 되는 것 같아 그분의 게시물과 맥락을 살펴보고, 회장님의 인스타로 인한 부작용을 좀 살펴보려고 합니다.

  1. AI계의 ‘스타’ 젠슨 황, 샘 올트먼, 사티야 나델라를 만난 최태원 회장
  2. 오너의 인스타 : 구성원에게 날리는 DM
  3. 그럼 어떻게 해? :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 AI계의 ‘스타’ 젠슨 황, 샘 올트먼, 사티야 나델라를 만난 최태원 회장

최근,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피드에 흥미로운 사진이 올라왔습니다. 최근 가장 핫한 IT 기업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3명과 만난 사진이 올라왔거든요. 주가가 가장 가파르게 오른 기업 중 하나로 꼽히는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 챗GPT의 아버지로 불리며  전 세계를 인공지능(AI)의 파도로 휩쓸어버린 기업 오픈AI의 샘 올트먼, 애플을 넘어 전 세계 시가총액 1위에 오르며 새로운 전성기를 구가한다는 평가를 받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사티야 나델라 CEO까지.

최태원 SK회장이 글로벌 빅테크 CEO들과 찍은 사진을 최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게재했습니다. 최 회장이 함께 사진을 찍은 사람은 왼쪽부터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샘 올트먼 오픈AI CEO, 사티야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 ©최태원 회장 인스타그램

최 회장은 한 명만 만나도 화제가 될 만한 인사와의 미팅을 연이어 진행하며 화제를 모았습니다. 최 회장이 이들과 만난 이유는 AI 분야 협력을 위해서였을 거라는 해석이 나옵니다. SK하이닉스는 AI의 발달과 함께 수요가 크게 늘어난 HBM(고대역폭 메모리·High Bandwidth Memory) 시장 1위를 차지했죠. 여기에 더해  '에이닷'을 서비스하며 인공지능 시장에서 추가 성장을 노리고 있는 SK텔레콤도 있구요.


이런 기업들이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엔비디아나 오픈AI, 마이크로소프트 등 기업과의 협업을 강화할 수만 있다면야 재벌 총수라도 기꺼이 미국으로 달려갈 만합니다. 만난 김에 보도자료도 좀 배포하고, 회장도 '간지'나게 인스타그램에 사진 한 장 올리면 좋죠. 딱딱하고 부담스러운 재벌 이미지를 부드럽게 희석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도 있구요. 최 회장은 실제로 딱딱하기보다 부드러운 이미지를 만드려는 생각인지 샘 올트먼, 사티야 나델라를 만난 인스타그램 작성글에는 "샌프란시스코와 시애틀에 와서 IT 인싸들과 매일 미팅하고 있습니다"라고 썼고, 젠슨 황을 만나고 올린 사진에는 "각도가 중요합니다"이라고 글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최 회장의 인스타그램 게시글을 두고 '인스타질'이라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오는 분위깁니다.

갓비디아 CEO와 사진을 찍어 올렸지만 욕이 한 바가지네요. ©최태원 회장 인스타그램

이 게시글에 비난 댓글이 폭주한 이유는 최 회장이 최근 아내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과의 이혼 소송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1조3800억원짜리 이쁜 사랑"이라는 댓글은 최 회장이 최근 2심 판결에서 20억원의 위자료에 더해 1조3800억원 규모의 재산분할 판결을 받은 점을 비꼬는 것으로 보입니다. 최 회장이 만약 1조3800억원을 그대로 물어줘야 한다면, 그룹의 지배구조도 흔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픈AI의 샘 올트먼과의 사진을 올렸을 때도 비슷한 분위기입니다. 지난 게시글에는 이혼을 언급하는 댓글이 많았는데, 여기에 더해 최근 재무적 어려움을 겪는 SK그룹에 대한 거론도 나오는 분위깁니다.

샘 올트먼과 찍은 사진도 올렸지만 분위기는 비슷합니다. 이쪽에서는 이혼과 관련한 지적보다는 회사가 어려운 상황임을 지적하는 댓글이 더 많아 보입니다. ©최태원 회장 인스타그램

SK그룹은 전기차용 배터리나 수소 등 신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했지만 경기가 급격히 둔화되고 전기차·수소로의 에너지 전환이 늦어짐에 따라 급격히 재무구조가 악화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에 사업 조정까지도 진행 중인데요. 이런 상황에 '오너 회장이 인스타그램에 사진이나 올리며 자랑질 하냐'는 식의 비판이 나오는 것입니다.

🧐 오너의 인스타 : 구성원에게 날리는 DM

'멸공' 발언과 관련해 셀 수 없이 많은 논란을 일으켰지만 여전히 '멸공'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정용진 회장의 모습이 인스타그램 프로필 글에서 드러납니다. 오른쪽의 '멸공'은 왼쪽의 '우.....ㄹ'과 'ㄴ....ㅑㅁ'을 뒤집은 모습. ©정용진 회장 인스타그램

비난 댓글을 한 바가지 받은 최 회장 입장에서는 이렇게 얘기할 것 같기도 합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 했는데?” 그 입장도 이해가 가긴 합니다. 인스타그램 대표 빌런(?)으로 꼽히는 정용진 신세계 회장처럼 ‘멸공’타령을 하며 정치적 논란을 빚은 것도 아니고, 일론 머스크처럼 주가를 폭락시킨 것도 아니고 말이죠. 

'멸공' 발언과 관련해 셀 수 없이 많은 논란을 일으켰지만 여전히 '멸공'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정용진 회장의 모습이 인스타그램 프로필 글에서 드러납니다. 오른쪽의 '멸공'은 왼쪽의 '우.....ㄹ'과 'ㄴ....ㅑㅁ'을 뒤집은 모습. ©정용진 회장 인스타그램

그렇지만, 최 회장의 인스타그램 글 게시가 적절치 않았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특히 SK 직원분들 사이에도 그런 의견이 많더라구요.기자 시절부터 알고 지낸 SK그룹 직원 분들께 의견을 여쭸고, 인스타 콘텐츠 그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의견은 없었지만, 동시에 우호적인 여론은 슬프게도 한 분도 주지 않으셨네요. A는 반도체 계열, B는 에너지 계열, C는 지주사, D는 건설 계열에 근무하는 분입니다.

A : 1조 3800억원 재산분할 판결 나오고는 어이가 없더라구요. 근데 더 어이없는 건 판결 나오고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TM(Top Management·그룹 내에서 최 회장을 지칭하는 말)이 올린 인스타그램이었어요. 자기 때문에 내가 속한 회사는 팔려나갈 수 있다는 얘기까지 나오는데 그 와중에 인스타라니, 눈치가 없는 거죠.

B : 재산분할 때는 그런가보다 했습니다. 대법원 판결도 아니고, 재산분할이 그렇게 합리적인 판결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거든요. 제가 실망한 건 AI만 외치는 그의 인스타였어요. 그룹 전반의 체질개선이 필요하다고 부르짖더니 개선책은 내놓지도 못하고. 인스타에서 셀럽 시늉만 내고 경영 메시지를 건질 게 없더라구요.

C : 회사가 안팎으로 시끄러울 때는 아무래도 저자세를 유지해야 하는데, 판결의 억울함과 부당함을 호소하고 직접 사과문을 발표할 땐 언제고 인스타 업로드라뇨. 솔직히 제어가 안됩니다. 하지 말라고 쓴소리 할 임원도 없고, 회장님 본인도 그만둘 생각 없어 보여요.

D : SK그룹은 기업을 샀다 합병했다 분할했다 상장했다 하면서 PE(Private Equity·사모펀드)처럼 운영한다는 평가가 있었어요. 투자 실패와 오너 이혼이 겹치니 그룹이 PE에게 날아갈 판이 돼버렸네요, PE처럼 경영하다 PE 소유가 되게 생겼네요.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실제로 한 말과는 조금 다르지만 (인생→시간의 낭비) 뜻은 인스타에도 통하는 것 같습니다. ©나무위키(트인낭)

SK그룹은 최근 운영 최적화(Operation Improvement·OI)를 통한 비용절감과 성과 확대라든지, 계열사 간 합병을 통한 현금 확보 등에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실제로 추진되지 못한 계획이 바깥으로 유출되는 등 임직원들의 불안감이 극에 달한 상황입니다. 그룹 경영진들은 ‘임직원이 기강이 해이해졌다’는 메시지까지 내놓는 와중에. 이 와중에 인스타라니 영 좋아보이진 않았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사태가 최태원 회장의 인스타그램 때문이냐? 그렇지는 않은 것 같기도 합니다. 정확히는 회사가 안팎으로 흔들리는 가운데, 최 회장의 인스타그램은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이었다고나 할까요. 


저는 기업 오너의 언행 하나 하나가 이해관계자에게 보내는 DM(Direct Message)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딱딱한 공식 석상에서 벗어나 상대적으로 친근한 공간인 SNS에서 활동은 거부감을 줄이는 효과를 볼 수도 있습니다. 다만 많은 관심이 쏠리는 재벌 오너의 글은 개인의 생각이나 기업 소식을 올리더라도, 그 내용이 잘못되지 않더라도 ‘TPO(Time Place Occasion)’에 맞지 않으면 역효과를 보기 십상입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이번 게시글은 적절한 타이밍도, 적절한 장소(게시장소;인스타그램)도, 적절한 상황도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최태원 회장은 (비록 실패했지만) 부산 엑스포 유치를 위해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과정에서 SNS 포스팅을 적극 활용했고, 이를 통해 국가 경제에 기여한다는 이미지를 쌓는 데 성공했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당시 게시글에는 진심으로 최 회장을 응원하는 댓글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게 반응이 좋은 시절도 있었다는 말입니다. 8만여명의 팔로워들이 최태원 회장이 싫어서 모인 건 아닐 테니까요. ©최태원 회장 인스타그램

반면 이번에는 똑같이 ‘열일’하는 사진을 찍어 올렸어도 여론이 영 좋지 않았죠. 실제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서도 영 회장님에 대한 여론은 좋지 않습니다. 

사실 이 정도는 약과일 정도로 화가 나있으시더라구요. ©블라인드 SK그룹라운지

‘인스타질’로 인해 기업 가치의 직접적인 하락이 발생하지 않더라도 기업인과 기업은 많은 유무형의 가치를 잃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구성원의 몰입감과 충성심입니다.


기업의 HR부서에서는 구성원의 회사를 향한 충성심과 업무 몰입감을 높이기 위해 기를 쓰고 노력합니다. 각종 복지 혜택을 만들거나 지원제도를 만들고, 회사의 문화를 개선해 인재를 붙잡기 위해 애씁니다. 이런 노력이 허망해지는 순간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오너를 보며 ‘내가 저 새X 돈 벌라고 일하는 건가’하는 생각이 드는 때입니다.


제 경우도 그랬습니다. 전 직장 오너는 대한민국의 정치와 경제와 문화에 ‘고나리질’ 하는 데에 심취한 사람이었습니다. 석학과 만날 기회를 만들어놨더니 자신의 개똥철학을 설파하는 데에 시간을 쓰지 않나, 대기업 오너 일가나 고위 정치인과의 만남을 주선해도 듣기보다 자기 말을 하는 데에 더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다음 날 기사화를 위해 밤 늦게까지 기사거리를 정리하던 어느 밤 ‘현타’가 오더라구요. ‘아 내가 X빠지게 일해봐야 회장 떵떵거리는 데에나 도움되겠구나’ 하구요.

🤗 그럼 어떻게 해? :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이런 일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실 저는 오너가 인스타를 못하게 계정을 뺏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진지). 재벌 본인의 인스타그램은 당연히 잘 활용하면 장점이 있지만, 잘 활용했을 때 장점이 1이라면 잘못 썼을 때 단점은 100은 되는 것 같아서요.

관리 안된 사례로는 정용진 회장을 꼽을 수밖에 없네요. 중국에서 면세점하는 기업 오너가 이런 글을 올리면, 내가 아무리 중국을 싫어하고 북한을 혐오해도 수용하기 어려울 것 같은데요. ©정용진 회장 인스타그램

기업 오너는 걸어다니는 대외리스크 덩어리입니다. 회장이나 그와 가까운 사람이 내뱉는 한 글자 한 마디마다 전부 바깥에 알려지면 의도치 않은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비록 그 의도가 나쁘지 않고, 내용이 그릇되지 않은 경우에도 그렇습니다, 이번 최태원 회장의 IT 인싸력 자랑 포스팅처럼요. 


잘 썼을 때 장점보다 잘못 썼을 때 단점이 크다면 가장 좋은 해결책은 안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그게 안 된다면 비서실과 홍보실 같은 조직에서 다닥다닥 달라붙어서 관리라도 해야죠. 인스타 포스팅은 그룹 회의에서 발표하는 경영 메시지보다도 더 큰 파급력이 생길 수 있는 만큼 관리의 대상이 돼야하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회장에게 '인스타 하지 마십쇼'라고 말하는 일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일처럼 쉽지 않습니다. 저는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수 있을까, 싶기도 하네요. 


제 지인 중에는 대기업에 다니며 그룹 PR을 담당하다 오너에게 질려서 이직한 지인이 있습니다. 그분의 이야기로 오늘 레터를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E : "전대 회장 때는 회사 재계 순위가 팍팍 오를 정도로 성장을 거듭했거든. 그땐 우리 오너가 자랑스럽고, 성장하는 회사도 자랑스러웠다. 근데 그 아들이 부회장 되고 나서는 그게 안되는 거야. 그래도 믿어보려고 했지. 근데 인스타에 ‘똥글’ 쓰는 거 몇 번 대처하다보니 현자타임이 오더라. 내가 오너 망나니짓 하는 거나 관리하려고 회사를 다니는 건 아닌데 싶어서."

편집/윤문 | 구현모

개설 2개월 만에 조회수 2000만

에디터 <움큼>의 코멘트

매일 도로 위에 2시간 30분의 시간을 버리고 출퇴근하면 아무래도 저녁엔 녹초가 되곤 합니다. 피곤해서 스트레스 받는 콘텐츠는 싫고 뭘 볼까 고민할 대면 요즘은 최화정님의 유튜브 콘텐츠를 자주 봅니다. 너무 나도 밝고 기운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저도 기운을 얻는 것 같아서요. 최화정님처럼 기운차게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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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Zoe • 구현모 • 찬비 • 나나 • 오리진 • 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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