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 ‘거상 김만덕’,

‘시그널’, ‘덕혜옹주’, ‘사임당, 빛의 일기’

‘보이스’, ‘마더’, ‘미스터 션샤인’

‘부부의 세계’, ‘마인’, ‘인간실격’

지금 나열한 이 작품들 에는 평단의 호평을 받았거나, 혹은 엄청난 인기를 끈 작품들이라는 점 외에 몇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이름만 대면 알 법한 어마어마한 배우들이 여자 주인공을 맡았다는 점입니다. 혹시나 모를 분들을 위해 어떤 분들이 계신 지 읊어 볼까요? 이영애, 이미연, 김혜수, 김희애, 전도연, 김서형, 김민정, 이보영, 이하나, 김태리. 단 한 명도 예외 없이 독보적인 비주얼과 연기력으로 ‘믿고 보는’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배우들이죠.

두 번째는 이 배우들이 연기한 캐릭터입니다. 앞서 말한 작품 속 여주인공들은 모두 그동안 보아왔던 여성 캐릭터들과는 조금 다릅니다. 시대의 눈치를 보지도 않고, 시대에 순응하지도 않으며, 시대를 탓하기보다 앞으로 나아가길 선택합니다. 그렇기에 그녀들은 때로는 욕망에 충실하고, 사람이라면 응당 누구나 품고 있는 이면을 숨김없이 보여줍니다. 

세 번째는 모두 김윤아의 노래가 OST로 삽입된 작품이라는 점입니다. 자우림의 메인 보컬이자 솔로 아티스트로서도 독보적인 음악 세계를 펼쳐오고 있는 김윤아는 자신이 참여한 모든 작품에서 노래로 함께 연기합니다.

소리 내어 울지 못하는 누군가를 대신해 울었다가, 갈 길을 잃고 흔들리는 이에게 결국 스스로를 다잡을 건 스스로 뿐이라며 담담한 충고를 건네죠. 배역을 바꿔가며 한없이 슬프다 또 세상 없이 씩씩하고 천진한 그녀의 목소리가 화면을 타고 흐를 때면, 이대로 잠시만 화면이 멈추었으면 하는 바램을 갖게 됩니다.  

여성들이 스스로에게 솔직하길 주저하지 않고, 멋대로 재단되길 거부하는 극 안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흐를 때, 아마 그녀는 부여한 적 없을지도 모를 거창한 연대마저 느낍니다. 그녀의 목소리가 좋습니다. 앞으로도 더 많은 극에서 함께 노래해 주길.

저는 낙관주의자입니다. MBTI는 ENFP이고요. 매사 긍정적으로 임하면 안될 일이 없다고 믿고 있어요. 속된 말로 대가리꽃밭🌸이라고도 하죠. (참고로 자우림 최애곡은 <Something good> 입니다 😉)

하지만 이런 저마저도 코로나가 창궐한 이후로 긍정 에너지가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어요. 항상 빛날 것 같던 미래는 생각지도 못한 역병으로 인해 한치 앞도 보이지 않고, 그러다 보니 자꾸 지난 날을 돌아보며 작은 일까지 후회하기도 했습니다. 코로나 블루였어요.

달리 말은 안 해도

나 너 너 너 너무 지쳐 있다는 걸 다 알아

어디로든 가 보자

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

어디든 데려가 줄게

길을 따라 넓은 세상에

홀라 홀라레이

자유로운 너를 믿어

단단한 마음 이미 네 안에 있잖아

자우림 <HOLA!> 中

그러던 그해 여름, 자우림의 신곡 HOLA!가 힘이 되었습니다. 지친 마음을 다독여주는 가사와 밝고 희망찬 멜로디로 울적했던 날들을 위로받기도 했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마냥 ‘에이, 괜찮아, 잘 될거야!’ 하는 무조건적 긍정보다 힘든 이 상황을 인정하고 또 공감해주는 게 필요했던 것 같아요. 마법의 주문을 외우듯 홀라 홀라레이 하고 따라 부르다보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어요.

HOLA! 의 메시지는 단순합니다.
바로 지금 각자 서 있는 곳에서 
서로 서로 의지하며 어려움을 털어내자는 것,
그리고 자신의 강함을 믿고 
오늘 살아 있음을 향유하자는 것입니다.
 
과거를 후회하거나 미래를 염려하기보다 
오늘 존재함을 축하하는 찬가입니다.

자우림의 여름 미니앨범 [HOLA!]

'자우림이 직접 전하는 수록곡 소개' 中

해가 뜨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두운 법이라고합니다. 우리 모두 조금만 더 기운내서 오늘을 살아가요. 구독자 분들의 4월을 응원합니다. 홀라 홀라레이! 

* 김윤아가 출연한 예능 <온앤오프> 45화는 티빙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여름카레 만드는 부분 클립 영상은 여기!

죽고 싶은데 죽을 용기가 없는 날마다 자우림의 노래를 들었다. 허공에서 흩날리다 사라지게 둘 수밖에 없는 생각들. 내 방에서 태어난 음울과 음률은 죄다 한강에 빠져 죽었다. 나 대신, 그들이 뛰어들었다.* 이렇게 말하면 자우림 멤버들이 불편해하려나. 그나마 다행인 사실은, 중고등학교 때만 그랬을 뿐, 지금은 전혀 그런 마음으로 듣지 않는다. 분위기가 너무 우울해질 까봐 환기 좀 시켜보자면, 중학생 시절 노래방에 갔다 하면 무조건 매직카펫라이드를 열창했다. 때때로 신나고, 가끔은 우울했던, 그 모든 시간에 김윤아의 목소리가 함께 였다.

소위 ‘힐링송’이라 불리는 다른 노래들과 달리 자우림의 위로는 괴짜 같은 면이 있다. 그 냉소를 사랑한다. 마냥 해맑은 목소리로 “다 괜찮아질 거야. 세상은 아름다워”라고 위로하는 게 아니라, “원래 세상은 뭣 같아. 나도 너처럼 힘든 적 있었어.”라는 위로. 축축하고 어두운 생각의 늪에 빠져 ‘나만 이렇게 사나?’ 싶을 때, “여기 나도 있어”라며 손 내미는 음악.

 지금이 아닌 언젠가, 여기가 아닌 어딘가.

나를 받아줄 그곳이 있을까?

가난한 나의 영혼을 숨기려 하지 않아도,

나를 안아줄 사람이 있을까?

(샤이닝 중에서)

이정도로 사소한 것을 신경 쓰는, 힘들어 하는, 결국엔 우울한 시간을 보내는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때로는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로가 되기도 한다. 더 나아가 김윤아는 이렇게 노래하는 것 같다. “별종이면 뭐 어때? 그렇기에 세상은 더 흥미로워.”

요즘도 우울한 마음이 가랑비처럼 마음을 적실 때면 자우림 음악에 손이 가긴 하지만, 위태로운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자우림의 음악을 들으며, 아름답진 않아도 흥미로운 세상을 좀 더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으니까. 오늘도 나는, 자주색 비가 내리는 숲을 거닌다.

* 박연준 저 『모월모일(2020)』 중 인용 및 차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