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단어산책의 규연입니다.

안녕하세요, 규연입니다.
두 번째 산책을 나설 준비가 되셨나요?
지난주의 첫 번째 산책은 어떠셨나요? 저에게 단어산책은 오래도록 마음속에만 간직하고 있었던 프로젝트라 그런지 다른 사람들이 이 글을 읽게 된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더라도 어디 한 군데 모난 부분은 없었으면 좋겠다, 하고 바라는 마음으로 첫 산책을 준비하다 보니 시작하는 글부터 단어 하나하나의 이야기, 마무리 글까지 고민거리가 넘쳐 났습니다.
 
두 번째 산책을 준비하는 지금은 어느덧 장마도 끝나가고 있습니다. 며칠 동안은 하늘에 구멍이 난 건가 싶을 정도로 하루 종일 퍼붓는 비 때문에 나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습니다. 우산은 쓸모가 없어진지 오래, 집 앞에 잠깐 나가는 것만으로도 옷이 흠뻑 젖어버려서 산책을 나갔다 오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야만 했습니다. 집 안에서 할 수 있는 재미난 일들을 찾아서 열심히 움직이고, 마감이 한참이나 남은 일들도 부지런히 해보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심심해졌습니다. ‘심심하다하고 혼자 중얼거리다가 문득 심심한 감사의 말씀이 떠올라 그 이후 한참동안이나 머릿속에서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이없는 전개이지만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니 두 번째 산책의 주제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말들이 되었습니다. ‘혹시 잘못 들은 건가?’ 하고 두 번, 세 번 생각해보게 만드는 심술궂은 말들을 모으면서 괜히 친구들과 서로 말도 안 되는 걸로 말장난을 치던 어린 시절이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장마의 물기가 채 가시지 않았지만 어느 정도 갠 하늘이 한결 가벼운 오늘, 두 번째 단어산책을 나서볼까요.
어린 시절, 저는 참 웃기기 쉬운 아이였던 것 같습니다. 온갖 것이 다 재밌었던 행복한 꼬마이기도 했지만, 몇 가지 이상한 단어들에 꽂혀서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웃음보를 터뜨리곤 했습니다. 유독 좋아했던 단어 중 지금 떠오르는 것은 두 가지 정도인데요, 두 번째 단어산책의 시작점이기도 했던 심심하다방정하다라는 단어입니다. 생각하던 의미와는 전혀 다른, 너무 정상적이라서 더 생뚱맞은 그 단어들은 설명을 듣고 나서도 몇 번이나 거짓말이 아닌지 물어보았던 것이 기억납니다. 들을 때 마다 도대체 왜 저렇게까지 어려운 말을 써서 이상한 문장을 만들어내는 걸까궁금해 하면서 어른들은 가끔 참 바보 같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상장을 받는 아이들은 품행이 방정하고감사의 인사는 왠지 '심심'해야 할 것만 같은 게 매번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느 새 머릿속에 박혀 버린 듯합니다. 아직까지도 왜 그런 상투적인 문장들이 남아있는 것인지 가슴으로는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고 바보 같은 말이라는 생각도 혼자 조용히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말로도 충분히 바꾸어 말할 수 있을 텐데 한 번 붙어버린 문장들은 쉽사리 지워낼 수 없는 것인가 짐작만 할 뿐입니다. 

사실 심심한 감사의 말씀의 심심은 평소에 쓰는 지루하고 재미없다라는 뜻의 심심하다와는 다르게 (심할 심)’ 자와 (깊을 심)’ 자를 사용합니다전하고 싶은 마음의 정도와 깊이가 매우 극진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전혀 다른 단어이지만 일반적인 글쓰기에서는 한자를 병기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에 헷갈리는 문장이 만들어지곤 합니다이렇게 동음이의어가 되어버린 단어들은 결국 문맥으로 파악할 수밖에 없습니다.
방정하다라는 말은 본래의 의미보다도 항상 방정맞다가 먼저 떠올라 아직까지도 그 둘의 강력한 연상 작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상황은 상장을 받을 때가 유일했는데, 근엄한 목소리로 상장을 수여하는 교장 선생님이 진지한 분위기와는 전혀 딴판인 방정하다라는 단어를 말했을 때 느껴지는 두 이미지의 충돌이 왜 그렇게 재밌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위 학생은 품행이 방정하고 학업 성적이 우수하므로 이 상장을 수여함.’이라는 말은 언제 들어도 까불거리면서 장난치는 아이의 얼굴만 떠오릅니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마음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말들. 혹시 읽는 내내 떠오르는 단어가 있으셨나요? 자기 전에 괜히 생각날 정도로 이상한 단어가 있다면 제게도 알려주세요. 다 같이, 혼자서 조용히 웃어요!
'음? 흠...'
: ? 와 ... 사이를 걸으며 마주친 단어들

편독이라는 단어도 심심하다와 같이 한자를 병기하지 않고 한글로만 단어를 사용하다 보니 동음이의어가 되어버린 경우입니다. 하지만 편독의 경우에는 의미 두 가지가 정반대이기 때문에 문장의 맥락을 잘 파악하지 못한다면 완전히 다른 내용으로 오해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누군가 사람들을 놀리려고 작정하지 않는 이상, “‘편독하지 말고 편독하자”, 라는 문장을 볼 일은 없겠지만 하나의 단어가 문장의 해석을 활짝 열어두는 역할을 해, 읽는 사람이 이해하고 싶은 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글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왠지 모르게 매력적이라 느껴집니다.


전 국민에게 우리말 중 제일 불가사의한 말을 딱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높은 확률로 연패가 가장 많은 표를 받지 않을까 싶습니다. 경기에서 져도 연패’, 경기에서 이겨도 연패라고 하니, 문맥에 따라 파악하려고 해도 신문의 헤드라인에서 주로 발견되는 단어라 짧은 한 문장으로는 승패의 여부를 쉽게 판단할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승리의 연패에서 ()’패권을 잡았다라고 해석하면 쉽다라는 서울대 국문과 민현식 교수님의 말을 기억하고 있으면 정말 쉬워질까요.
 
많은 사람들이 경기에서 이기는 것을 연승이라고 하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나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설상가상으로 연패(連霸)’연승마저도 그 의미가 다릅니다. ‘연패(連霸)’의 경우 올림픽과 같은 대회에서 연속으로 우승하는 것을 일컫는다면 연승은 대회 전체가 아닌 대회 속 하나하나의 경기, 즉 대회의 일부에서 연속으로 우승하는 것을 말합니다.
 
도무지 쉬워질 것 같지 않은 단어입니다.


단어들은 사회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할 뿐만 아니라 문화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그 모습을 바꾸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꼭 한자 때문이 아니더라도 여러 가지 헷갈리는 단어들이 계속 생겨납니다. ‘끊다도 또 하나의 미스터리한 단어입니다. ‘시작이라는 극과 극의 의미를 함께 가진 동사로, ‘끊다의 수많은 사전적 정의 중 그만두다10번과 11, ‘시작하다3번의 의미에서 온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헬스 뒤에 붙는 단어가 끊다라는 건 기회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헬스를 끊고(시작하고) 난 이후에 언제든 끊고(그만두고) 싶으면 나한테 유리한 쪽으로 말을 바꿀 수 있는... 기회?


애초에 ()’라는 한자부터가 문제입니다. ‘품을 팔다의 의미와 함께 품을 사다의 의미를 한 단어 안에 동시에 가지고 있으니 괜히 누가 일부러 헷갈리라고 만들어 둔 단어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기도 합니다. 사람을 부리는 쪽에 해당하는 고용인()’품을 사다라는 의미를, 일을 해 주는 쪽에 해당하는 고용인품을 팔다라는 의미를 사용합니다. ‘의 경우에는 서로 다른 한자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일상적으로 고용인’이나 '고용자'라는 단어를 마주하는 경우에는 주로 사람을 부리는 사람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 대부분 남의 일을 해 주는 사람은 ()’를 붙여 피고용인’, '피고용자'라고 칭합니다하지만 고용인’과 '고용자'의 두 가지 의미를 모두 알게 된 이상앞으로 이 단어들이 등장하는 글을 볼 때마다 한 번 쯤은 혹시?’ 하는 마음이 들 것 같습니다.
  

이 단어는 사실 개인적으로 항상 헷갈리는 단어입니다. ‘상서롭다라는 말이 상스럽다라는 말과 발음이 비슷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어릴 때부터 상서롭다가 좋은 의미의 단어라는 게 자꾸만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상스럽다는 한자 ()’‘-스럽다가 합쳐진 형용사로 ()’떳떳하다’, ‘항상’, 혹은 범상하고 평범하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니 저는 상서롭다상스럽다만 헷갈린 것이 아니라 상스럽다라는 글자 자체의 의미 형성 과정에도 항상 의문을 품고 있었습니다. ‘사랑스러운 것은 생김새나 행동이 사랑을 느낄 만큼 귀여운 데가 있다는 것이고, ‘스러운 것은 모난 데가 없이 복이 있어 보이는 데가 있다는 것인데 왜 스러운 것은 떳떳하고 일관성 있다는 근면성실을 뜻하는 단어가 아닌 것일까요. 더 혼란스러운 것은 심지어 상스럽다가 북한어로는 즐겁고 좋은 데가 있다라는 긍정적인 의미라는 것입니다.
 
궁금증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상스럽지 못하다라는 말까지 이어졌습니다. 보통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표현인데, 그렇다면 천하고 교양 없음을 의미하는 우리말의 상스럽다가 아닌 즐겁고 좋음을 의미하는 북한어의 상스럽다로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요. 혹은 상서롭지 못하다의 잘못된 표현인 것일까요. 국립국어원의 온라인가나다를 통해 질문을 남겨 두었는데, 어서 답변이 올라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혹시 다들 알고 있는데 저 혼자만 바보 같이 궁금해 하고 있는 걸까요?)

좋아서 시작한 프로젝트인 만큼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성 들여, 완성도 있는 모습으로 내보이고 싶다는 의지가 점점 욕심의 형태로 바뀌어 메일 전송 버튼을 누르는 데까지도 한참을 망설였습니다. 지난주 첫 단어산책은 최선을 다해도 언제나 부족한 점이 발견되기 마련이다하고 설득해 준 주변 사람들 덕분에 용기내서 나설 수 있었습니다.
혼자 고민하고 주저했던 시간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해보고 싶었던 일을 드디어 행동으로 옮겼다는 뿌듯함이 온몸을 감싼 듯 기분 좋은 한 주였습니다. 그저 글 몇 편만으로는 뉴스레터가 만들어 질 수 없다는 것을 몸소 깨닫게 되었지만 어쩐지 힘들어서 더 신나고 더 재미있었습니다.
 
앞으로의 산책도 즐거운 마음을 가득 담아 한 걸음 씩,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한 걸음 씩 이어나가자고 다짐했습니다. 두 번째 단어산책도 저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의 산책은 어떠셨나요?
친구에게도 단어산책을 추천해주세요!
단어산책 공유하기 ↓
🌳 산책에 대한 피드백이 있다면
gyuyeonkim0416@gmail.com 으로 메일을 보내주세요

🌳 수요일에 발송되는 메일을 놓치지 않기 위해
gyuyeonkim0416@gmail.com을 주소록에 추가해주세요

🌳 메일을 그만 받고 싶으시다면
수신거부 Unsubscribe 를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