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손편지를 기가막히게 잘 쓰는 친구, 승연이 있다. 여기서 ‘잘’은 ‘빈도’와 ‘능력’ 모두를 의미한다. 누군가에겐 꽤 귀찮은 일인 손편지를 ‘자주’ 쓰는 것만으로도 능력이지만 승연에겐 ‘감동적’인 손편지를 써 내는 특별한 기술이 있다. 그녀는 ‘안녕?’ 같은 뻔한 인사로 편지를 시작하지 않는다. 작년 생일날 그녀가 써준 편지의 첫 문장은 “나는 잔디를 좋아해”였다. 그 다음에는 그녀는 좋아하는 것들을 몇 개 더 나열했고(피스타치오와 젤라또 아이스크림), 마지막에는 나를 좋아한다는 문장을 썼다.
대학 시절부터 꾸준히 그녀의 편지를 받다보니, 그녀가 세월에 따라 어떻게 변해가는지도 편지에 묻어난다. 학생 때 승연이는 ‘동경’이나 ‘부럽다’같은 말을 자주 썼었다. 나를 얼마나 좋아해주는지가 느껴져서 행복하기도 했지만 그녀가 스스로를 더 사랑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늘 마음을 졸였다. 따뜻한 문장들 사이에서 그녀의 외로움을 보았다고 하면 오만한 일이겠지만 다행히 해가 거듭되면서 그녀의 문장들은 더 단단해져갔다.
그리고 그녀의 가장 최근 편지에는 이런 문장이 써 있었다.
“You are the butter to my bread”
호텔 조식으로 나온 노릇노릇한 식빵이 떠올랐다. 나는 버터와 딸기잼 뚜껑을 열기 전에 맨 빵 하나쯤은 그대로 먹는 편이다. ’바스락’하고 빵가루가 떨어져 식탁보까지 지저분해지는 순간. 맛있다. 포슬포슬한 흰 부분은 순도 100% 탄수화물처럼 씹을수록 달달해진다. 뭉쳐진 탄수화물 공이 목구멍을 지나 공복 상태의 위장으로 무겁게 떨어지는 감각을 느끼면서 잠이 달아나고 의식이 명료해진다. 그렇게 첫번째 빵을 먹고나면 버터를 한 숟갈 듬뿍 퍼서 빵위에 넓게 바른다. 버터의 수분기 탓에 ‘바스락’소리는 크게 나지 않지만 음, 짭짤하다.
노릇한 빵은 있는 그대로도 맛있다. 근데 버터를 바르면 풍미가 달라진다. 당신이 있어도 없어도 난 있는 그대로 멋진 사람이지만, 당신이 더해지면 또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어요. 나는 승연이의 문장을 이렇게 읽었다.
어린 시절 우린 참 샌드위치같은 친구들. 엎치락 뒤치락 겹겹이 쌓여, 하나가 되지 않고는 못 베기던 우리들. 그러다 와르르 쏟아져도 웃기만 하고 화도 못냈던 우리들.
이제는 각자가 너무 커져서 더이상 한 데 엉킬 줄도 모르지만 만나면 그날만큼은 색다른 풍미가 나는 사이가 됐구나. 그걸로도 좋구나. 단단해진 승연의 문장들에서 나는 고소한 냄새. 그럼 나는 있는 그대로 맛있는 빵인가. 덜컥 겁이 난다. 나는 혼자 있어도 외로워하지 않고 고소한 향기를 풍길 수 있는 사람일까.벽에 붙여 놓았던 승연이의 엽서를 떼어서 식빵 자세를 한 오복이 옆에 앉았다. 그녀의 편지를 차분히 다시 읽으며 숨을 골라 봅니다. * 글과 사진의 일부는 출처를 밝히고 공유할 수 있습니다. 글과 사진의 저작권은 오지윤에게 있습니다. * [보낸이 오지윤]의 글과 사진에 대한 자유로운 답장은 언제든 감사한 마음으로 읽겠습니다. 읽고 싶은 주제나 종류의 글이 있다면 거침 없이 답장해주세요. * [보낸이 오지윤]은 일요일 밤마다 글과 사진을 보내드립니다. [지난 글 읽기] 버튼을 통해 다른 글도 감상해주세요. * [보낸이 오지윤]의 구독은 인스타그램 @jeee_oh 의 프로필 링크에서 구독 신청 폼을 통해 하실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