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참 여름 준비를 하고 있어. 지난 연휴에는 미뤄왔던 선풍기 청소를 했고, 이번 주말엔 에어컨 청소를 불렀어. 특히 에어컨 청소는 더울 때 부르려고 하면 이미 예약이 꽉 차 있을테니 이 글을 보자마자 예약을 알아보도록 해. 올해엔 새로 이사한 집에서 처음 여름을 맞는 거라 여러모로 두근두근해. 이 집이 더운 편일지, 시원한 편일지 상상해보면서 말이야. 아마 우리집은 더울 것 같아. 동향이라 아침 햇빛이 대단하거든. 여름이 오기 전에 미뤄왔던 커튼을 꼭 사야겠어. 게으른 편이지만 이렇게 다음 계절을 준비하는 최소한의 행동만으로 찾아오는 미묘한 설렘이 좋아. 예상 가능한 어떤 시기의 예상 불가능한 사건을 기다리는 기분이거든.

매주 뉴스레터를 쓰기 위해 새로운 무언가를 보는 게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야. 최대한 재밌는 걸 소개해주고 싶은데, 막상 시도한 게 별로일 때도 꽤 많거든. 혹은 요샌 거의 시리즈물이 많아서 시즌을 다 챙겨보다보면 2~3주씩 걸릴 때도 있어. 왜 갑자기 하소연이냐고? 완결을 보지 못했지만 시도했던 여러 콘텐츠들을 한번에 묶어서 소개하는 특집을 위한 빌드업이랄까! 모두 최근 2주 사이에 봤던 것들이야. 이번주엔 관람중인 드라마 [데드 투 미], [러브 & 데스], [카자마 키미치카 -교장0-], 리얼리티쇼 [넥스트 인 패션], [어글리 딜리셔스], 애니메이션 [스킵과 로퍼], [전생했더니 슬라임이었던 건에 대하여], [백스트리트 걸스: 조폭아이돌]의 첫인상 리뷰를 전해줄게.

1. [데드 투 미]

친구가 “내용은 진지한데 그렇지 못한 인물들”이 나온다며 실없이 웃기다고 추천해줘서 보게 됐어. 누군가를 잃은 사람들의 슬픔 치유 모임에서 만난 젠과 주디는 각각 뺑소니범에게 치여 죽은 남편과 심장마비로 죽은 약혼자를 잃은 아픔을 가지고 있어. 두 사람은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에 통화를 하며 빠르게 친해져. 하지만 곧 밝혀지는 진실들 속에 두 사람의 우정은 어떻게 될지 궁금해지는 이야기야. 일단 속도감 있는 전개와 30분 내외의 러닝타임이 무척 맘에 들었어. 슬픔이 화로 표출되는 사람과 거짓말로 표출되는 사람의 만남이 재미있어서 [데드 투 미]는 정주행을 끝까지 하게 될 것 같아.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어.

2. [러브 & 데스]

1980년 캔디 몽고메리 살인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드라마야. 엘리자베스 올슨이 친구의 남편과 불륜을 저지른 후 결국 친구를 끔찍하게 살인했던 주부 캔디 몽고메리 역을 맡았어. 니콜 키드만이 제작해서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야. 아직 1화밖에 공개되지 않아 더 지켜봐야겠지만, 첫인상은 다소 지루했어. 착실하게 전형적인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서사를 이어가는데 이미 유명 사건이라 전체적인 내용은 알고 있는 상태에서 그 과정을 어떻게 보도록 붙들어 둘 것인가의 관점에서 봤을 때 아직 인상적인 요소는 발견하지 못했어. 실제로 캔디 몽고메리는 사건 발생 후 모두가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변호해줬다고 하는데, 엘리자베스 올슨 특유의 정답같은 미소가 반전을 일으킬 때는 궁금하긴 해. 같은 소재를 다룬 디즈니플러스의 [캔디: 텍사스의 죽음]과 비교해서 보는 것도 흥미로울 거야. 매주 목요일 웨이브에서 새 에피소드가 공개돼.

3. [카자마 키미치카 -교장0-]

기무라 타쿠야가 백발에 한쪽 눈동자를 다친 경찰학교 교관 카자마 키미치카로 변신해 비주얼적으로 화제를 모았던 드라마 [교장]의 스핀오프야. [교장]에서 교관 카자마는 경찰학교에 입학한 훈련생들을 '매의 눈’으로 지켜보며 자질을 검증하고 걸러내기 위해 노력해. 과묵하고 감정 표현이 전혀 없지만 학생들이 숨기고 있는 비밀을 밝혀내는 귀신같은 인물이야. 현역에 있을 때 실력자로 이름을 날렸던 그가 어떤 사고 이후 이렇게 되었는지 이번 [카자마 키미치카 -교장0-]에서 드디어 밝혀지는거야. 맥락을 이해하려면 [교장] 시즌1 1화라도 보는게 좋아. 기무라 타쿠야의 레전드 작품이기도 한 수사물 [히어로]를 떠올린다면 실망할 수도 있어. 감정이 절제된 캐릭터다보니 추리 과정의 긴박함이 덜하고, 자신이 직접 해결하기보단 교육생을 가르치는 과정이라 전면에 드러나지 않거든. 그리고 드라마에서 비현실적인 고증을 못견디는 사람이라면(그건 바로 나) 조금 힘들 수 있어. 그럼에도 기무라 타쿠야를 사랑했다면(그것도 바로 나) 일주일에 1시간 정도는 투자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해. 매주 목요일 왓챠에서 새 에피소드가 공개돼.

4. [넥스트 인 패션]

2인 1조로 구성된 18명의 신진 디자이너들이 경쟁을 통해 우승을 쟁취하는 패션 서바이벌 리얼리티 쇼야. 패션 디자이너 탠 프랜스와 패션모델 알렉사 청이 진행하고, 개인적으로 [퀴어 아이]에 등장하는 탠 프랜스를 좋아해서 보게 되었어. 이야기는 심플해. 기대하는 장면이 나오고, 기대하는 감정을 충족시켜 주거든. 과도한 비판이나 어그로, 악마의 편집이 없고 굉장히 속도감 있는 편집으로 아무 생각 없이(감정 소모 없이) 볼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야. 다만 모든 화면이 1~2초마다 바뀌는 편집이라 연달아 보니 기가 빨리긴 하더라고. 뭔가를 보고는 싶은데 이야기를 따라갈 에너지는 없을 때 보니 즐거웠어. 시즌1에 한국인 디자이너 ‘민주 킴’이 등장하는데, 그녀의 스타일이 제일 맘에 들다보니 괜히 한국 사람으로서 반갑더라고!(나..애국심 있는걸까?) 3년 만에 돌아온 시즌2는 지난 3월 공개됐고,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어.

5. [어글리 딜리셔스]

세계적인 셰프 데이비드 장의 미식 여행 다큐멘터리야. 다른 음식 프로그램과 다른 점은 에피소드마다 한 메뉴를 정하고, 그 메뉴의 지리적, 문화적 기원과 새롭게 변형된 스타일에 대해 폭넓게 이야기한다는 점일거야. 최근 계속 넷플릭스 Top10 시리즈에 있어서 보게 되었지만 이 다큐의 지향점 대비 담론이 깊이 있다고는 느껴지지 않았어. 음식 뿐 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의 엘리트주의적 사고가 얼마나 무의미한지 생각하게 되지만, 그걸 표현하는 방식이 단순히 같은 메뉴로 이름을 알린 전 세계의 식당을 방문하고 먹어보는 것이라는게 단편적인 느낌이었어. 다만 워낙 대중적으로 반응이 좋았으니 취향차이일 수 있어서 한번 시도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어.

6. [스킵과 로퍼]

시골 출신의 우등생 이와쿠라 미츠미가 도쿄로 전학을 온 후 새로 사귄 친구들과의 고교생활을 그린 청춘 애니메이션이야. 고양이를 닮은 주인공 캐릭터에서부터 나는 마음을 빼앗겼어. 특히 파스텔톤의 작화가 청량해서 매력적이야. 일본 애니 하면 성적인 코드가 무조건 있을 것 같아 편견을 갖게 되는데 그런 점에서 불편함이 없달까! 내용도 로맨스보다는 관계 속에서 성장하는 10대의 풋풋함이 중심이라 간만에 정화되는 기분으로 볼 수 있었어. 그럼에도 복잡하고 미묘한 인간의 심리를 꽤 날카롭게 그려서 공감되는 지점들도 있어. 모처럼 새 에피소드가 기다려지는 애니야! 만화책 원작으로 현재 8권까지 발간되었고, 매주 수요일 티빙, 웨이브, 라프텔, 매주 목요일 왓챠에서 볼 수 있어.

7. [전생했더니 슬라임이었던 건에 대하여]

몇 달 전 ‘회빙환’ 웹툰 특집 했던 거 기억나? 그런 장르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아마 이미 봤을지도 모르겠어.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한 남자가 갑작스런 사고로 죽은 뒤 정신을 차려보니 이세계의 슬라임이 되어 있는거야. 게임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슬라임은 모든 몬스터중 가장 약한 존재야. 그런데 이 슬라임은 여러 사연이 있어 이미 만렙 슬라임인거지. 먼치킨 물을 좋아한다면 재밌을거야. 누가 봐도 미물인 존재가 알고보니 이세계 최강자?! 이런 느낌 뭔지 알지? 점점 커져가는 세계관이 재미있어서 난 틈틈이 볼 생각이야. 넷플릭스, 티빙, 웨이브, 쿠팡플레이, 왓챠, 라프텔에서 볼 수 있어.

8. [백스트리트 걸스: 조폭 아이돌]

내 새로운 길티플레저에 등극한 애니메이션이야. 야쿠자 3인은 어느 날 큰 잘못을 한 탓에 두목에게 뭐든 하겠다고 싹싹 빌어. 그런 그들에게 돌아온 말은 “아이돌이 요새 돈을 잘 벌더라. 너네 아이돌 해” 결국 혹독한 성전환 수술과 훈련 덕에 지하돌로 꽤 인기를 얻었지만 야쿠자로서의 자아와 아이돌로서의 자아가 충돌하며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이 유머포인트야. 솔직히 일본 특유의 젠더 감수성이 떨어지는 장면들이 불편할 때가 꽤 있는데, 무대 뒤에서 쩍벌하고 병나발을 부는 장면이나, 야쿠자 조연 오디션에서 쓸데없이 리얼한 연기를 선보인다거나 하는 원초적인 저질 개그에 나는 저항없이 웃고 말았어. 어디가서 재밌다고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우리 다들 이런 거 하나씩 있잖아.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어.

레이지 카우 소사이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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