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피고 지고 해를 지나 어김없이 돌아오듯, 올해로 스물두 해를 맞이한 팩토리2의 전시와 기획 프로그램도 매번 익숙한 이름과 새로운 내용으로 돌아옵니다. 팩토리2의 2024년 일사분기도 변함없이 익숙함과 새로움으로 꽉 찬 예술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분주하게 보내고 있습니다. 4월 말에는 작년에 이어 팩토리2의 고유 디자인 브랜드 ‘팩토리 에디션’이 추구하는 ‘Seamless Flow: 감상과 경험의 경계 없는 교감’과 궤를 같이하는 개인 창작자의 브랜드를 초대해 구성하는 전시/팝업숍인 《한적한숍》이 돌아옵니다. 올해는 ‘한적한숍’의 기본적인 개념과 형식을 유지하되, 작년과 같은 자리로 회귀하기보다는 올해만의 새로운 패턴과 어셈블리지를 통해 예상치 못한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만들고자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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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뉴스레터에서는 지난 3월에 열린 이상균 개인전 《DATUM》을 계기로 진행된 이경희 에디터와 이상균 작가의 인터뷰, 그리고 올해 팩토리2가 주목하는 주제인 ‘소수성, 경계성’을 탐구하는 현재 진행 중인 아카이브 전시 《그렇게 침묵들은 저물어 가고》를 소개합니다. 또한, 곧 다가올 2024년의 《한적한숍》에 대한 정보도 미리 공유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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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인터뷰어 이경희 / (우) 이상균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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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이러했다. 가장이자 사회인으로서 수십 년의 수많은 시간을 가족보다 전국의 건설 현장에서 더 많이 보낸 아버지의 졸업작품전을 사진으로 기록해 보자는 것. 하지만 아주 작은 것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건설의 세계에서 시간을 보내온 아버지와 다르게, 아들은 아버지를 위해 기록했던 사진들을 작업실에서 다시 들춰보며 캔버스 위에 자신만의 시간을 재구성한다. 실재, 그리고 실재를 보고 그리지만 결코 실재가 아닌 것을 그려 나가며 스스로가 무엇을 작업의 기준으로 삼는지를 추적해 간다. 그리고 그렇게 따라간 기준들은 작가가 작업실로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직면하는 화가로서의 태도와 방향이 된다.
과거에는 아버지와 아버지의 일을 소환해 그들만의 서사를 작업의 출발점으로 끌어왔다면, 지금은 거대하거나 혹은 한적한 자연 속에서 자연을 거슬러 특정한 기능에만 충실한 콘크리트 구조물을 코앞에서 마주할 때의 압도적인 물리력을 겪는 작가 혼자만의 경험이 쉼 없이 작업을 하게 하는 힘이 된다. 이상균 작가와 최근 팩토리2에서 열린 《DATUM》 전시를 계기로 지난 7년 동안 같은 소재를 두고 다양하게 변주해 온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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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전시 타이틀이 ‘DATUM’이다. 자료나 기준이란 뜻을 전시 타이틀로 정한 것에 대한 이야기로 인터뷰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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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준비 중 건설, 건축, 공학, 제조, 금형 등에서 사용하는 공학 용어 ‘데이텀’이 떠올랐다. 사전을 찾아보면 ‘자료’, ‘기준’ 등으로 나오는데, 그중에서도 ‘기준’이란 의미가 내겐 중요했다. 이는 어떤 대상을 측정할 때 기준이 되는 점, 선, 면을 의미하는데, 필요한 부품을 복제하거나 실측할 때도 쓰는 용어이다.
‘기하 공차’라는 영역에서 사용하는 예로, 레고 블록을 들 수 있다. 블록 두 개를 서로 맞추어 낄 때 그 사이에 아주 미세한 이격이 필요하지 않나. 너무 딱 맞으면 끼거나 빼는 게 어려우니 최소의 한계치(공차)를 남겨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데이텀’이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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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standard나 norm을 떠올리기도 했는데, 의도하신 것은 공학에서 실제 사용하는, 어떤 일을 착수하는 데 필수적인 기준점, 혹은 아주 정확한 지표 같은 것이어서 흥미롭다. 그렇다면 이번 전시에서 그 의미가 특별히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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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은유적인 의도가 있다. 대상이 되는 것을 화면 안으로 가지고 올 때 경험에 따른 기억을 꺼내온다. 그리고 기록해 온 사진에서 마치 선을 추출하는 듯한 과정을 거쳐 스케치를 진행한다. 그렇게 특정 대상이 그림으로 바뀔 때, 즉 실물과 가상 그 둘 간의 ‘관계’에 대한 고민을 거듭하다 보니 ‘기준’이라는 것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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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UM》 전시 전경, 팩토리2, 2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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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서 두 번의 개인전이 있었다. 작품들을 보면 거대한 건설 현장을 묘사한 것이 이번 전시와 궤를 같이하는 것 같다. 첫 전시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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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개인전 《My Earth Worker》(2018)는 내 아버지의 서사를 강조했던 전시였다. 당시 건축 다큐 ‘My Architect: A Son's Journey(2003)’를 봤는데, 이 작품은 루이스 칸의 아들인 나다니엘 칸이 아버지가 생전 건축한 것을 방문하며 기록한 것이다. 감독인 칸의 아들은 자신이 사생아였기에 개인적인 서사를 더 앞세울 수 있었음에도, 아버지로서의 루이스 칸이 아닌 건축가 루이스 칸을 조명했다. 나도 토목 건설 현장에서 작업하신 아버지를 떠올리며 전시명을 위와 같이 지은 것인데, 실제 전시에 선보인 작업들은 아버지가 공사하시던 강릉 현장을 처음으로 방문하며 시작된 것이다. 토목업에 종사하시는 아버지의 기술을 미술을 하는 아들인 나의 기술로 읽어나가듯 작업을 진행했는데, 이는 당시 아버지가 해오신 일들과 부자간의 상실된 시간이 내게 서사적으로 크게 작동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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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My Earth Worker》 전시 전경, 이응노미술관, 2018
(우) 《My Earth Worker》포스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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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부터 아버지의 직업을 작업의 출발점으로 삼으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나 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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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회사에서 현장 감독을 하시던 아버지는 주말에만 만날 수 있었고 예전에는 주 6일근무 였기에 토요일 저녁에 퇴근하시면 일요일 하루 쉬고 다시 출근하시는 게 보통이었다. 지방에 공사 현장이 정해지면 연 단위로 공사가 이루어 지기 때문에 일상을 엄마와 누나와 지내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다가 내가 대학교 4학년 때 정년퇴직을 앞둔 아버지의 일을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해 드리고자 했다. 아버지의 졸업앨범이라 생각하고. 그렇게 일터를 찾아갔다가 아버지가 평생 해오신 일을 인지하게 됐고, 아버지가 공사했던 현장을 시간순으로 다 찾아다닌 거다. 당시 내 졸업작품에 그 일련의 기록을 선보이진 않았지만, 이후에도 잔상이 남아서 결국 2018년 첫 개인전부터 이를 유화, 잉크, 목탄, 모르타르 등 다양한 재료로 표현하게 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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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Earth Worker》 전시 전경, 이응노미술관, 2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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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전시도 그러하지만, 2018년부터 해온 주요 작품들의 작품명이 교량, 난간, 터널과 같은 건조한 타이틀이어서 아버지와의 관계 서사가 배경에 있다는 걸 예상하기 어렵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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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아버지와 함께 현장을 다니며 직접 설명을 많이 들었다. 나와 아버지의 관심사가 다르니까 다른 관점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도 흥미로웠다. 초기에는 구체적인 지명이나 검색만 하면 알 수 있는 교량이나 저수지의 이름을 작품명으로 했는데, 어느 시점에서는 작업 과정에서 내게 정말 중요한 게 무언가를 고민하게 됐고, 수없이 다양한 구조물들을 그려 나가면서 내가 현장에서 실제 그것을 바라봤을 때의 물질적인 경험을 더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처음부터 목적의식이 잡혔다기보다는, 작업 과정에서 내 기질과 관심의 변화를 추적했다는 게 더 맞다고 할 수 있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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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 개인전은 〈SAFE FAIL〉(2020)이라는, 다소 아이러니한 의미의 타이틀이었다. 어떤 전시였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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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에서 사용하는 안전설계 용어인 ‘fail safe’를 참고한 것이다. 다리나 기계장치를 만들 때 혹여나 고장이 나거나 붕괴가 되더라도 나머지가 버텨주는 안전장치를 뜻한다. 구조물을 예로 들면 일부가 붕괴하더라도 전체가 무너지지 않도록 하는 설계를 의미한다. 다만 ‘fail’이라는 단어가 전면에 드러나는 게 부담스러워 두 단어를 역전시켜 봤다. 그때쯤부터 이전 작업 문법을 내려놓고 현재와 유사한 방식과 태도가 시작됐다. 재료로서의 재현을 시도하기 위해 모르타르를 사용하여 부조 작업을 하다가 다시 그림, 즉 평면으로 돌아오면서 변화하게 된 작업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변화된 태도와 방법론을 보여주는 전시를 하려고 했다. 두 번째 개인전 소개글 속 황아람 큐레이터의 코멘트를 아래에 덧붙여 부연하는 게 설명에 도움이 될 것이다.
“작가는 마치 안전설계와 실패를 저울질하듯, 건축적 풍경을 회화로 재현하지만 반대로 그것을 소거하거나, 자연물을 콘크리트 구조의 표면과 대조하는 동시에 동화시키거나, 건축적 소실점을 불러와 평면으로 회귀시키거나, 혹은 물감을 겹겹이 쌓아 올려 대상을 거꾸로 평탄화하기도 한다. 이상균의 회화는 구축적인 방법론을 통해 회화적 평면을 건축한다. 말하자면, 안전설계의 실패, 나아가 실패의 안전설계인 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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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FE FAIL》 전시 전경, ArtSpace128, 20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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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관 전시 《그렇게 침묵들은 저물어 가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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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신이 태어난 이래의 모든 시간과 사건을 기억할 수 없으며, 기록할 수도 없다. 더 나아가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세대의 사건은 ‘나’와 도리어 상관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저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이며, 던져지기 전의 과거와 역사는 분명히 존재한다. 공적 역사에 빼곡히 존재하는 구멍들, 잊힌 역사들이야말로 매번 우리의 일상에 잔존하는 역사가 아닌가. ... 권력과 담론의 위계를 흔들며, 아카이브의 대항정보 역할에 주목한 《그렇게 침묵들은 저물어 가고》 전은 ‘전시장’이라는 공간 안에서 ‘대안 역사’를 펼쳐 보인다. 20세기 후반 이후, 담론 내에서 주변(the marginal)과 타자(the Other)를 주목하는 동시대 경향이 나타나고 있지만, 여전히 비서구, 노동자, 지방 거주인, 여성, 퀴어 등 문화적 주변성을 배회하는 자들의 삶은 가려진 채 존재한다. 전시는 그들의 삶을 주목하고, 이를 “텍스트, 이미지, 도큐먼트, 사운드”를 활용하여 체계를 부수고, 연대의 끈적함을 높이고자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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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개요
전시명 그렇게 침묵들은 저물어 가고
작가 A-P-P(Archive of Public Protests), Ama-gum, SEOM:, Kwon wook(Seoul Queer Collective)
기획 신효진
장소 factory2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10길 15)
기간 2024.03.29.(금) - 2024.04.18.(목)
관람 시간 화-일요일, 11-19시(월요일 휴관)
기획 신효진
그래픽 디자인 HWAL works @hwal_works
현수막 디자인 오늘의풍경 신인아
공간 디자인 신인세
촬영 곽동경
글/비평 황지원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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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한 감각과 시간이 빚어내고 가치와 재료를 엮은 물건은 은은하면서 단단한 기운을 품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물건에 자연스레 눈길이 닿고 손이 갑니다. 나의 곁에 오랫동안 두고 싶은 물건을 만날 수 있는 《한적한숍》이 작년에 이어 올해도 열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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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6일부터 5월 26일까지 한달간 열리는 《한적한숍》은 팩토리에디션을 주축으로 창작과 실천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브랜드와 제작자를 팩토리2의 공간에 초대하여 이들의 제품을 전시하고 판매합니다. 또한 예술과 삶의 다양한 접근 방식을 함께 경험할 수 있는 워크숍 자리도 마련됩니다. 특정한 장르에 속하기보다는 각자의 길을 걸어온 예술가와 제작자가 아름다움과 유용함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삶의 기초인 의, 식, 주를 풍요롭게 보여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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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토리에디션은 《한적한숍》에서 ‘심리스 플로우: 감상과 경험의 경계 없는 교감’이라는 태도을 통해 예술과 일상이라는 전혀 다른 듯한 두 세계가 서로를 자연스럽게 넘나들고 스미는 아름다운 순간을 선사하고자 합니다. 고유한 취향과 가치를 공유하는 브랜드와 제작자는 이러한 팩토리에디션의 철학을 나누고, 관객은 창작자가 지향하는 의미와 맥락이 담긴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을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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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숍
기간 2024.04.26. (금) ~ 2024.05.26.(일)
시간 수 - 일, 12:00 - 19:00
장소 팩토리2
참여 팩토리에디션 및 창작자 15여팀 워크숍 4종, 각 1회 (날짜 상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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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한적한숍》 전시 전경 / 사진. 김다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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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균 작가의 인터뷰 내용이 아래에서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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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전시에 처음으로 소개하는 작품들의 시작은 정년퇴직을 앞둔 아버지가 일하는 현장이었지만, 시간을 지나오며 개인적인 서사성은 줄이고 그 자리를 현장에서 대상을 보고 느낀 작가님 고유의 경험으로 채웠다고 이해했다. 이제는 작가 개인만의 감각적인 기록이라는 새로운 챕터로 진입한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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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서사적인 부분은 이제는 시발점 정도로 여긴다. 그래서 작품도 전보다 차갑고 세부도 생략되었는데, 표면적으로는 그렇다 해도 나조차 미처 몰랐던 아버지의 혹은 나와 아버지 사이의 서사가 전혀 없다고 말할 순 없을 것이다. 다만, 지금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현장의 구조물을 대상으로 삼으면서 구조물 자체가 작업의 주제이자 소재가 되었다는 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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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제이자 소재라는 것을 좀 더 부연한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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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방식이나 재료 및 도구의 선택에서도 작업이 상기되는 방식을 택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시멘트로 작업한 것들을 들 수 있는데, 이전엔 사실적인 재현을 내려놓되 시멘트나 모르타르를 사용함으로써 또 다른 재현을 시도한 바 있다. 그렇다 보니 화면에서 구체적인 상을 재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없어졌고 표현 자체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때의 다양한 매체 실험은 어떻게 하면 물감을 구조물 제작 방식과 유사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의 실마리가 되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지금의 부피나 질감을 강조하는 그림 방식에 적용되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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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료의 재현이라는 게 물성 자체도 주제가 된다고 이해하면 되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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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앞서 시멘트는 매우 직설적인 재료이지 않나. 물론 거기에 자갈을 섞으면 콘크리트가, 모래를 섞으면 모르타르가 되기도 하고, 나 또한 기법을 실험하고 재료로서의 재현을 위해 콘크리트 활용은 어려워 모르타르로 작업한 적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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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의미에서 (다른 글에서) 스스로를 ‘화가’라고 강조해 표현한 게 이제 이해된다. 그간 다양한 매체와 설치를 시도했기에 화가라는 자칭에 고개를 갸웃했던 게 사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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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LAY KIT》 전시 전경, SOSHO, 20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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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전시로 돌아와서, 팩토리2에서는 전시장 구현이 예상대로 잘 되었나. 작품들이 크게 윈도우, 1층 메인 공간, 안쪽 작은 공간으로 나눌 수 있다. 전시를 준비하며 특별히 신경 쓴 점이 있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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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작업의 중심이 언제나 그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준비 과정에서 다른 작업들이 파생되곤 하는데, 그것이 윈도우의 드로잉 설치 〈가이드〉와 1층 안쪽 공간의 〈안식각〉 설치이다. 캔버스 안에서 해결되지 않는 벽화 성격의 작업을 해보고 싶었는데, 그런 욕구들을 솔직하게 따라가다 보니 캔버스 위에 표현된 것을 다양한 맥락으로 확장하고 싶었다. 그리고 작품명도 예전과 같은 건설 용어로 그 흔적은 남았지만 내용적으로는 개인 서사를 벗어나 일정 거리를 두었기 때문에 다소 차갑고 호방한 전시를 구성하고자 했다. 그래서 조명도 스팟은 지양하면서 백색 조명을 사용했고, 자연광도 차단했다. 구조적인 장치를 곳곳에 설치함으로써 그간 해 온 것을 정리하고자 했고, 크게 공간을 야외, 메인 공간, 안쪽 공간으로 나누어 전시를 구성했다. 안쪽의 흰색 구조 작업은 그간 리서치 과정에서 구조물을 직접 마주했던 경험, 그리고 요즘 작업실에서 두터운 그림을 그려내며 관찰한 경험을 토대로 제한된 공간에 설치를 시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가이드〉와 〈안식각〉같이 팩토리2 고유한 공간에 맞춰 제작한 작업은 현재 진행 중이자 실험 중인 나의 회화 작업을 보완하고 확장해 줄 것이라 기대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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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 2024, 벽면, 유리에 먹줄, 가변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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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각〉, 2024, 퍼티, 나무, 페인트, 먹줄, 가변설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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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UM》 속 작품들에는 먹줄의 흔적이 많다. 이 기법이 이번 전시가 처음은 아닌 것으로 안다. 먹줄을 활용하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가. 그리고 이전 전시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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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내가 그린 대상이 구조물이다 보니 직선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인 것 같다. 대상에 곡선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나, 작품의 초기 단계에서 소거 과정을 많이 밟는다. 소거라는 게 사실적인 묘사를 계속 덜어내고 깎아내는 것이기에 자연스럽게 내게 중요한 것만 최소한으로 남은 게 지금의 상태이다.
처음부터 먹줄을 사용한 것은 아니었다. 초기에는 유성 마커펜이나 색연필을 자에 대고 선을 그었다. 선을 남기기도, 유화와 비벼 지우기도 했는데 100호 이상의 큰 작업에서는 팔이 흔들리니까 곧은 선을 직접 긋는 게 매우 힘들었다. 그러다가 먹줄을 알게 되었고 처음엔 기능적인 이유로 활용했던 것인데, 이것이 건설 현장에서 사용된다는 점이 내가 다루는 대상과 정서적으로도 일치한다는 점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됐다. 작은 그림에는 먹줄을 쓰지 않아도 충분히 그을 수 있는 선이지만, 이제는 먹줄을 튕겨서 생기는 선의 형상이나 주변에 잉크가 번지는 등 고유의 매력이 있어 2021년부터 지금까지 사용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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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미로운 점은 먹줄의 본래 역할이 건설 현장에서 초기 ‘기준’을 만들어주는 것인데, 작가님은 작품 초기 단계에서도 사용하고 캔버스 위에 축적된 것을 다시 소거하면서 초기의 흔적을 드러내기도, 덧붙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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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초기에는 스케치의 역할이 컸다면 이제는 붓의 역할을 하는 수준에 이르러 하나의 조형요소가 되었다. 붓이라는 게 그림의 초반 후반 상관없이 계속 사용하는 도구이지 않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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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윈도우의 〈가이드〉 작업이 전시의 포문을 여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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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토리2 1층 바깥에서 보이는 창문과 벽면에 진행한 먹줄 작업은 이전에도 소개한 적이 있다. 먹줄이 건설 현장에서 쓰는 것이다 보니 몇십 미터도 감당하는 매력적인 도구이다. 나 또한 가로 7미터의 벽화나 프랑스의 한 대형 윈도우에서도 구현한 적이 있다. 먹줄은 캔버스 작업에도 활용하지만, 실제 이 먹줄이 소화할 수 있는 캔버스 바깥의 직선을 팩토리2에서도 선보이고 싶었다. 다만 이전과 같은 것을 하기보다, 윈도우 유리에 한 겹, 그리고 그 뒤로 막은 가벽에 원근감을 표현한 먹줄 그림을 한 겹 더 올렸다. 실제 뒷면의 먹줄은 내가 그림에서 사용하는 스케치 선과 유사하고, 유리면에 얹힌 먹줄은 수직 수평만 사용해서 이번 전시명인 《DATUM》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자 했다. 부연하면, 건설 현장에서 실측할 때 기준이 되는 선이 전면에, 그리고 실제 구현한 구조물이 배경에 위치한 것인데, 전시를 시작하는 가장 첫 평면인 유리에 ‘기준’이 되는 직선들을 제시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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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 2024, 벽면, 유리에 먹줄, 가변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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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장 가운데에는 대형 작업 세 개와, 정사각형의 작은 작업 셋으로 구성되어 있다. 흡사 부조처럼 보일 정도로 물감을 매우 두껍게 얹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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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집중하는 표현이, 두께감이나 부피감으로 캔버스 위에서 각과 면을 만드는 것이다. 내가 ‘가이드 선’이라고 칭하는 스케치 선이 완성되고, 그 안에 상정된 면적에 유화 물감을 사용해 각과 면을 잡으며 부피감을 만들어낸다. 내가 작업을 설명하면서 ‘건축’이라는 표현을 잘 쓰지 않는 이유는, 건설도 건축과 토목으로 나뉘는데 토목에서 감각하는 것은 건축적인 경험과는 조금 다르기 때문이다. 현장 리서치 중 신체를 훨씬 상회하는 구조물이 자연 속에 덩그러니 자리한 모습을 자주 발견한다. 인적 없는 곳의 농업용 저수지나 교량을 떠올려보면 무슨 이야기인지 짐작하실 거다. 이러한 경험과 기억을 토대로 그려진 그림을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도록 고민하며 작품을 배치하고 공간을 조율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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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고 보니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건축’이라는 건 일상과 매우 밀접하다. 매우 높은 빌딩이라 하더라도 그 안의 구석구석이 인간의 스케일을 기준으로 하지 않나. 그런 맥락에서 토목 건설은 자연을 스케일의 기준으로 삼아 자연의 힘을 견디고 컨트롤해야 하니, 작가님이 느낀 서늘하고 이질적인 감정을 더욱 이해할 수 있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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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경험에 더해 내 회화 작업을 좀 더 설명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리고 가운데 벽면에 위치한 6점의 작품도 전부터 팩토리2를 종종 방문하며 각 벽의 면적과 조명 라인을 감안해 제작에 들어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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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전시는 팩토리2 공간에 최적화한 신작들로 꾸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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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대형 평면 세 점 <슬래브>, <교대 기초>, <보강토 옹벽>을 중점으로 작은 작품 <여수로>, <교대>, <암거>는 앞의 큰 작품을 보조하기도 하고, 매우 차이가 큰 작품을 병치하면서 드러나는 긴장감도 의도했다. 큰 그림은 관람을 위해 적정 거리가 필요하다. 조망하듯 그림을 파악한 후 여러 거리와 각도로 그림을 감상하게 되는 것이다. 그에 비해 작은 그림은 이러한 과정이 더 압축적이어서 디테일을 읽어내는 데 상대적으로 더 용이하다. 작업의 과정에서도 이 차이를 의식하며 다소 극단적인 크기들을 선택하며 작업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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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 2024, 벽면, 유리에 먹줄, 가변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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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 것은 가로 혹은 세로가 2미터가 넘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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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현장에서 바라보며 체감했던 대상의 스케일을 관객에게도 전달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크기를 키우기도 했고, 작은 것은 내가 바라봤던 시선을 강조할 수 있어서 각각의 역할을 감안했다. 그런데 그토록 서로 극명한 차이를 가진 크기임에도, 물감의 두께는 비슷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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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재 이야기가 나왔는데, 캡션을 보면 ‘알키드’라는 게 있다. 이것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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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키드 수지는 유화 보조제로 주로 사용된다. 그림의 크기와 상관없이 물감이 버틸 수 있는 질량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알키드를 보강제처럼 사용하여 유화와 섞어 패널에 부착한 것이다. 유화도 화학이다 보니 알키드가 접착력을 강화해 주고 물감도 빠르게 마르도록 해준다. 무엇보다 광택을 낼 수 있어서 필요한 경우 사용하며, 작업에 따라 매트한 질감을 원하면 왁스를 대용한다.
캡션에 관해 좀 더 부연하면, 윈도우 작업의 소재 중 ‘먹줄’은 엄밀히는 도구이지 재료가 아니다. 재료라면 잉크만 써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사용한 도구나 재료를 최대한 노출하면 작업을 설명 혹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느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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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대〉, 2024, 패널에 유화, 알키드, 왁스, 먹줄, 20 × 20 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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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캔버스 위 물감 두께가 엄청나서 점토 같은 것을 올리고 칠을 한 건 아닐까 싶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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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율성과 안정성을 위해 그것도 생각해 본 게 사실이다. 하지만 즉각적인 물성의 반응을 위해 내부에 지지대 없이 유화 물감을 사용하고 있다. 이전에 물감 대신 플라스틱 점토를 안료화 시켜서 작업을 시도해 본 적도 있다. 당시 작업에서는 점토 고유의 색상을 그대로 살렸는데 만약 그 위에 칠을 한다면 도색의 개념이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림을 그리는 영역 안에서 최대한의 표현을 해보고 싶었고, 다양한 실험을 시도해 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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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에도 이번 작품들의 두께감 표현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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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부피감과 각도를 조율하며 하나의 화면 안에 서로 어떤 상응을 하는지 고민하면서 하다 보니 아주 작은 분할이라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게다가 건조 과정에서 유화가 수축하며 형태가 조금씩 변하기 때문에 작업 과정에서 속을 단단히 채워 넣고 다져서 완전히 건조된 후의 차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한다. 이러한 수고로움이 있지만 건조 과정에서 그림이 미묘하게 변화하는 모습이 유화의 매력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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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대 기초〉, 2024, 패널에 유화, 알키드, 왁스, 먹줄, 139.8 × 186 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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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 시간을 자체 진화한 것이기에 작업 과정을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다. 아이디어를 작업으로 옮겨오는 과정에도 변화가 있었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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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물과 건설 현장을 방문한 경험과 그것을 기록한 사진이 내 작업의 출발점이 된다. 그리고 같은 곳이라도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자주 가려 한다. 사진들을 쭉 보다 보면 같은 곳도 다르게 보여서 같은 곳이라도 나만 아는 여러 버전의 사진이 있다. 사진을 고를 땐 감각에 기대는 편이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기존과 다르게 보는 지점, 즉 사진 속 시점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다. 그래서 세로로 긴 그림은 상당히 위협적인 시각적 경험을 주고, 다른 하나는 평탄하고 넓게 조망하는 등 서로 간의 시점 차이를 의도했다. 스케치는 선을 추출하는 과정이기도 한데, 예전에는 이미지 속 선을 그림에 1대 1로 환원했다면, 지금은 자체적으로 선을 제거, 추가, 변형하기도 한다. 스케치 이후 안료가 많이 올려지지만, 드로잉 자체로 완성된 느낌을 원해서 만족할 때까지 하는 편이고 이러한 과정이 내겐 또 다른 의미로 하나의 건설 현장을 짓는 것 같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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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노트 중 마지막 단락이 이번 전시에서 작가 보여주고자 한 것이 아닌가 한다. 전시를 준비하며 어떤 것을 가장 보여주고 싶었나. 아래 노트에 대한 작가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고 싶다.
“전통적인 재현의 방식을 내려놓고 그림을 그려나갈수록 중력을 이겨내며 만들어지는 물감의 두께와 각도, 그림자 등이 내게 중요한 조형 언어로 여겨졌다. 대상이 상기되는 그리기 방식과 색의 선택은 화가인 나에게 통제된 자율성을 부여하고, 그림을 그리고 있음을 잊지 않게 만들어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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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이 상기되는 그리기 방식’이라는 건 (앞서 설명했던) 먹줄 사용이나 물감을 대하는 태도와 평면에 접착시키기 위해 미장칼이나 산업용 헤라 등의 도구를 활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화면을 구성할 때 결정하는 색은 자의적이거나 감각적이어서 복합적이다. 그리고 작품 제작 초기 단계는 사진을 기점으로 출발하지만, 선을 추출하는 작업이 끝난 이후에는 사진을 거의 보지 않는다. 후반에는 구조물의 세부가 더 이상 별 의미가 없다. 과거 한 작업 노트에서 “그림이 그려지는 다양한 평면, 종이, 캔버스, 패널이 대지가 되고 그 위에 올려지는 안료들은 자재가 된다”고 언급한 바 있 다. 이는 대지에 도로, 다리, 저수지 등을 만드는 작업과 평면 위에 그림을 그리는 일련의 과정이 근본적으로는 동일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다시 말해, 작업의 과정과 시공의 과정을 동일시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입장은 현재까지도 유효해서 작업방식에 여러 변화를 만들어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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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제된 자율성’도 자율성으로 귀결되는 듯하지만, 작업 과정에선 둘 사이에 긴장 또한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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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라는 건 형식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내 작업이 결과적으로는 기하학적인 모습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안에 엄정한 규칙이 있거나 수학적인 방식을 의도하지도 않는다. 단지, 출발에서 기준이 되는 선들, 그리고 많은 것을 소거해서 결과적으로 남은 선들이 있을 뿐이다. 화면의 영역을 설정하는 과정에서 직선에 의한 제약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안에서 색, 광택의 정도, 안료의 두께 등은 일말의 자율성을 가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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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으로, 이번 전시는 작가가 사전에 전시 공간을 충분히 숙지했고, 작품들도 햇수로 약 7년을 거치며 나름의 숙성 기간을 거친 결과물이다. 앞으로도 이와 같은 내용을 더 발전시킬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챕터를 준비하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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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기존과 같은 구조물을 대상으로 더 표현하고 싶은 게 있어서 여기서 좀 더 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시간이 지나면 구조물이 중요하지 않은 순간이 올 수도 있을 것이지만, 아직은 미술적인 표현을 떠나 개인적으로도 뭔가 더 할 수 있게 하는 추동하는 힘이 있다. 그리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대상에서 무엇이 남고 무엇이 새롭게 발견될지는 알 수 없으나 계속 변화하기 위해 노력할 거라는 점이다. 이를 위해 조급하게 움직이지 않고 좀 더 긴 호흡과 시간을 가지고 작품의 추이를 지켜보고, 또 끝을 열어놓고 작업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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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일, 아니 당장 몇 시간 뒤의 내 마음도 알 수 없는 것이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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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동료들과 장난으로 얘기할 때 ‘사람을 그려보고 싶다’고 말하곤 한다. 그게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 내가 하는 작업은 많은 양의 유화를 섞으며 조색하느라 시간도 매우 오래 걸리고 손목에도 무리가 많이 간다. 물론 이것이 재미있어서 하지만, 이따금 가벼운 붓을 가지고 유기적인 인체를 그리고 싶을 때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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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팩토리2
진행 김다은, 김다인, 김보경, 김채리
헤더 디자인 리모트 스튜디오(강주성, 김승환)
에디터 팩토리2
디렉터 홍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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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토리2
factory2.seou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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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 10길 15 02-733-48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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