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ford Cyber Policy Center, Freeman Spogil Institute “Midd
안솔비 태재미래전략연구원 연구원 (solbee@fcinst.org)
독점이 진행될수록 민주주의에 위협

플랫폼 기업 독점 문제는 현대 자본주의가 직면한 결정적 위협 중 하나다. 구글 같은 검색 플랫폼과 메타나 트위터 같은 SNS는 이미 전 세계를 장악했다. 초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AI 경제 시대가 본격화됨에 따라 독점은 더 가속화될 가능성이 크다. 개별 기업 시총 3조 달러 시대에도 진입했다. 독점은 시장을 위축시키고 경쟁 기업을 퇴출시키며 결국 경제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

각국 정부는 이제까지 플랫폼 독점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부심해왔다. 특히 이렇다 할 플랫폼 기업을 배출하지 못한 EU 국가들이 그렇다. EU 집행위원회는 최근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메타에 대해 ‘디지털 시장법’ 위반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빅테크를 겨냥한 반독점법이다. 위반이 최종 확정되면 3개 기업에만 약 730억 달러(100조 원)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고 한다. 이 조치는 전 세계적 파장을 낳을 것이다. 미국을 제외한 지역에서 형성되고 있는 ‘소버린(주권) AI’ 논의도 활발해질 가능성이 있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플랫폼 기업들이 제공하는 콘텐츠가 확증 편향을 강화하고 가짜뉴스를 확산시켜 결국 민주주의를 뿌리부터 위협할 것이라는 비판이 심각하게 지적되어 왔다. 독점이 진행될수록 민주주의에 위협이 된다는 것이다. 알고리즘이 편집한 개인 취향은 상품 소비는 물론 뉴스 소비와 정치 성향을 양극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런 콘텐츠 편향성, 중립을 내세우는 알고리즘의 문제에 대해서는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 막 진입하고 있는 AI 시대에 독점과 편향은 점점 더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다.


정치 담론 독점하는 플랫폼, ‘제3의 알고리즘’으로 견제

‘역사의 종말’로 잘 알려진 프랜시스 후쿠야마 스탠포드대 국제학연구소 교수가 몇 년 전부터 스탠포드 사이버정책센터와 함께 내놓은 제안은 이 ‘편향성’과 ‘비민주성’ 문제와 관련해 주목할 만하다. 단순화 하자면 알고리즘 상품을 추천하고 뉴스를 편집하는 알고리즘을 플랫폼 기업에만 맡겨둘 것이 아니라 기업과 사용자 사이에 ‘제3의 알고리즘’을 두자는 것이다. 후쿠야마 팀은 이를 ‘미들웨어’라 부른다. 2021년 처음 미들웨어 도입을 제안한 이후 여러 전문 매체와 심포지엄 등을 통해 논의 확산에 주력하고 있다. 작년 10월에는 기술 정책 전문 매체인 ‘Tech Policy Press’가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기도 했다.

후쿠야마 팀은 플랫폼이 정보 전달과 정치적 담론 형성에 상당한 통제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결과적으로 가짜뉴스 확산, 필터 버블, 사용자 데이터 조작 등의 위험을 초래하며 특정한 주장과 관점을 증폭시키거나 배제함으로써 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고 한다. 2021년 보고서는 사용자와 플랫폼 사이에서 완충 역할을 하는 ‘미들웨어’가 이 문제를 해소 또는 완화할 수 있는 기술적 솔루션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미국 수정헌법 제1조의 비전에 부합하는 기술적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을 저자들은 강조한다. 미들웨어는 A 플랫폼을 쓰는 사용자가 결합해 쓰는 B사나 C사 소프트웨어로, 콘텐츠가 큐레이션 되고 표시되는 방식을 직접 선택할 수 있게 한다. 만약 여러 회사가 경쟁하는 미들웨어 시장이 구축되면 몇몇 지배적인 플랫폼의 편집권을 희석해 투명성 제고, 신뢰 확보, 사용자 데이터 보호를 훨씬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미들웨어 제공업체는 팩트 체크나 랭킹 뉴스 등 주요 서비스가 왜곡되는 것을 막고 균형 잡힌 정보 환경을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들웨어 공급사가 살아남을 시장 시스템 만들어야

하지만 미들웨어를 개발하고 구현하는 데는 극복해야 할 여러 과제가 있다. 첫째 미들웨어의 역할과 기능을 명확하게 정의해 빅테크 기업이 미들웨어를 받아들일 수 있게 해야 한다. 둘째 미들웨어 공급자와 플랫폼 기업 모두에게 충분한 시장 인센티브가 있어야 한다. 빅테크 기업들의 저항을 막고 미들웨어 전문기업들이 시장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일종의 ‘규모의 경제’가 달성돼야 한다. 미들웨어를 성공적으로 통합하고 경쟁 시장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미들웨어 제품을 육성하는 기술 프레임워크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새로운 공공정책이 필요하며 이 문제를 다룰 전문 규제기관 정비도 필요하다. FTC(연방거래위원회)나 FCC(연방통신위원회) 같은 기존 기관의 권한을 확대하거나 새로운 전문 기관을 설립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저자들은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미들웨어가 플랫폼 독점에서 발생하는 정치적, 민주적 도전에 대한 유망한 기술적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제안한다. 미들웨어를 통해 사용자에게 온라인 환경에 대한 더 많은 자율 통제권을 부여하고 빅테크 기업의 데이터 독점을 막기만 해도 민주주의에 대한 위험을 완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은 원래 정보를 소수(정부나 기업, 전문가)의 손으로부터 해방시켜 민주주의를 강화하고 더 큰 자유와 평등을 촉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손만 바뀌었을 뿐 또 다른 독점이라는 문제로 귀결되고 있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 이후 자유민주주의에 위협이 되는 사회현상을 꾸준히 분석해 왔다. 자유민주주의 신봉자임에도 대처리즘 레이거노믹스 신자유주의 등을 신랄하게 비판해 왔다. 모든 사회적 연대를 폄훼하고 정부의 기초적 역할조차 부정해 정치적 경제적으로 분열된 피폐한 사회를 낳는다는 이유에서였다. 또 과학기술을 이용해 인간의 능력을 개선하는 트랜스휴머니즘에 대해 심각한 불평등을 초래하고 민주주의를 훼손할 수 있다며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미들웨어 제안은 그런 연장선상에서 나왔다.

1) 김용학 외 (2024), 『문명대변혁의 시대』 중 “AI, 4차 산업혁명인가 문명혁명인가”

2) 클라이브 톰슨(2020), 『은밀한 설계자들』

☑️ 거대한 양극화와 정체성 정치, ‘미들웨어’는 새로운 관점이자 타당한 방향

- 현재와 같은 플랫폼 환경에서는 ‘에코 챔버(echo chamber)’와 ‘호모필리(homophily)’ 효과로 비슷한 소리, 같은 사람들만 만나게 될 것이다. 정치에서는 거대한 양극화가 점점 심해질 것이다. 우리는 지금 세계 곳곳에서 민주주의가 왜곡되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다. 이를 완화하고 공동체성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교차된 사회집단(cross-cutting social circles)’이 필요하다.¹ 개인들을 점점 더 좁은 영역 속에 맥락화하며 파편화를 부추기는 정체성 정치를 극복하고 자유민주주의적 가치를 공유하는 공동체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 할 수 있다.

- 보고서는 미들웨어라는 소프트웨어 기술을 통해 독점적인 디지털 플랫폼의 문제를 해결할 것을 제안한다. 디지털 기술로 야기된 문제를 다른 기술로 대처하자는 제안이다. 말하자면 견제를 통해 독재를 막는 정치 시스템을 IT 생태계에 적용하자는 얘기와 같다. 새로운 관점이고 타당한 방향일 수 있다. 다만 기술에만 의존하여 문제를 해결하려는 접근은 자칫 소수 기술 엘리트에 의한 지배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²

- 미들웨어 기술의 핵심은 사용자에게 더 공정하고 다양한 피드를 큐레이션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다. 온라인상의 보편적 시민 참여와 숙의를 강화하면 플랫폼 독점이 완화되고 민주주의가 더 건강해질 것을 기대할 수 있다. 독점으로 인한 양극화 문제, 민주주의 퇴행의 문제는 그만큼 심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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