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따봉민주주의 시대
지금을 읽고 싶은 사람들의 미디어 이야기, 어거스트
안녕하세요! 에디터 찬비입니다.

지난 달,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Jonathan Haidt)가 애틀랜틱에 기고한 8천 단어 에세이가 바이럴되었습니다. 제목은 발칙해요. “지난 10년간의 미국인의 삶이 특히 멍청했던 이유(Why the Past 10 Years of American Life Have Been Uniquely Stupid)”

SNS는 민주주의를 저해했을까요? 하이트는 그렇다고 이야기하는데요, 오늘은 이 에세이의 내용을 살펴보려고 해요!
👋  오늘의 에디터 : 찬비
심리학을 전공했고 데이터 분석을 하며 세상을 궁금해하는 사람
오늘의 이야기
1. 사람들의 정치 성향이 다른 이유
2. 2010년대의 SNS
3. 집단 속 이단에게 다트를 던져라
4. SNS에 대한 연구 모아보기

🥊 사람들의 정치 성향이 다른 이유

제가 처음 하이트를 접했던 건 심리학 전공 수업에서였어요. 그 수업의 주요 커리큘럼 중 하나는 하이트의 ⟪바른 마음(원제: The Righteous Mind)⟫을 읽고 다른 학생들과 토론하는 것이었거든요. 이 책의 부제를 직역하자면 “왜 바른 사람들이 정치와 종교로 분열되는가"인데요, 즉 사람들의 정치 성향이 왜 다른지에 대한 연구를 이야기하는 책이에요.


우리는 보통 누군가를 논리로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감정을 공략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해요. 사람은 이성적이기보단 직관적인 존재이고, 내세우는 '논리'는 대부분 인지하기도 전에 생긴 감정을 뒷받침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설명이라고요. 그렇기 때문에 정치 성향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이미 감정적으로 거부감이 들고 있을 테니까요.


하이트는 도덕성 기반 이론(moral foundations theory)을 통해서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의 도덕 기반이 다르다고 주장합니다. 소위 말하는 좌파는 ‘피해/배려'와 ‘공평성/부정'을 도덕의 전부로 보고 중시하는 데에 반해, 우파는 그 외에도 ‘충성심/배신', ‘권위/전복', ‘고귀함/추함' 등의 다섯 가지 요소가 모두 도덕의 요소로 포함된다는 것이죠. 좌파와 우파 모두 사회를 구성하고 지속해나가기 위해서는 필요하기 때문에 책의 말미에는 이런 특성을 알고 서로를 좀 더 이해해보자로 귀결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너무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책을 더 영업하고 싶지만… 부차적인 내용이기 때문에 이만 줄여볼게요.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시다면 ⟪바른 마음을 읽어보시는 것을 추천해 드려요! 맛보기로 굉장한 조회수를 자랑하는 하이트의 TED 영상을 보시는 것도 좋고요.
Jonathan Haidt | The moral roots of liberals and conservatives  
하이트는 감정, 도덕, 정치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서 이어갑니다. 그의 다음 저작은 ⟪나쁜 교육(원제: The Coddling of the American Mind)⟫인데요, SNS가 청소년의 정신건강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는 내용을 담았어요. 제가 이야기하려는 에세이가 이 책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 2010년대의 SNS

Amanpour and Company | "Uniquely Stupid": Dissecting the Past Decade of American Life  

에세이에서 하이트는 2010년대의 SNS가 사람들이 정보를 받아들이고,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었고, 그것이 결국 ‘미국을 멍청하게 만들어' 민주주의를 저해했다고 주장합니다.


SNS가 처음 생겼을 땐 분명 민주주의에 긍정적인 영향만을 줄 것 같은 기술-민주주의 긍정주의(techno-democratic optimism)가 있었어요. 페이스북이 처음 생겼을 때 사람들은 연락이 끊겼던 친구들과 연결(connecting)하는 데에 집중했거든요. 하지만 점점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에 익숙해지면서 사람들은 보일 이야기를 하는 것(performing), 퍼스널 브랜딩을 하는 것에 치중하게 됩니다.


민주주의는 사람들의 집단적 판단에 기반해요. 사람들의 순간적인 격분과 열정에는 취약할 수밖에 없는 설계죠. 이를 알고 있었던 미국 헌법의 아버지, 제임스 매디슨은 지속 가능한 민주주의를 위해 속도를 늦추고, 열정을 식히고, 타협을 요구하고, 지도자들이 순간의 열광에서 거리를 둘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해요. 2010년쯤, 페이스북에서는 ‘좋아요'와 ‘공유’ 버튼을, 트위터에서는 ‘리트윗' 버튼을 만들어 사람들이 더 빠르게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게 하는데요, 그러면서 소위 말하는 바이럴이 가능해집니다. 제도적으로 늦춰둔 속도를 SNS가 다시 가속화시킨 것이죠. 그 결과 어떤 사람은 말 한마디로 며칠간 인터넷에서 유명해지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은 실수 한 번으로 며칠간 수많은 트윗으로 비난을 받게 돼요.


또한 사람들은 점점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도 쉽게 분노하게 돼요. 누군가의 행동 하나, 말 한 마디도 눈에 들어오게 되니까요. 이렇게 작은 것들에 빠르게 분노하게 되면서 결국 사람들은 사회에 대한 신뢰가 감소하고 파벌화가 더 심해지게 돼요. 사람들은 더 이상 정부나 기관을 신뢰하지 않아요.


혹자는 우리가 좀 더 투명하게 알게 된 결과이니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고 할 수 있겠죠. 아마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덜 발달한 국가에서는 SNS가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연구들이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문제는 대안이 제시되지 않은 채로 신뢰만 감소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미국이나 우리나라와 같이 민주주의가 더 발달한 국가들에서는 부정적인 영향이 더 다고 하이트는 이야기해요.


민주주의는 곧 속도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것을 읽으면서 저는 금방 끓어올랐다가 금방 식어버린다고들 말하는 우리나라의 특성을 생각했어요. 에세이에서 언급된 바에 따르면 정부/기업/미디어/비정부단체에 대한 시민의 신뢰 수준을 측정하는 에델만 신뢰도 조사에서 미국, 영국, 스페인과 함께 우리나라 역시 신뢰도가 바닥에 있었다고 해요. 그런 점에서 이 에세이가 분명 우리나라에도 적용될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기관에 대한 신뢰도가 낮아질 수밖에 없었던 일련의 행동과 발언들이 분명히 있었겠지만, SNS가 이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기에 적합한 플랫폼이 아닌 것은 확실해요. 그런 점에서 하이트의 말에 대체로 동의하게 되었습니다.

 🎯 집단 내 이단에게 다트를 던져라

Illustration by Nicolás Ortega. Source: Belshazzar’s Feast, John Martin, 1820.

하이트는 왜 “멍청하다"는 표현을 썼을까요. 이 에세이에서 ‘멍청하다'의 의미를 하이트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When critics go silent, the group gets stupid (비판하는 사람들이 침묵하면 집단은 멍청해진다).” SNS의 발달로 인해서 집단 내에서 반대 목소리를 내기가 어려워졌고, 그래서 집단적으로는 멍청해질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SNS 플랫폼이 커지면서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고 ‘벌'을 주는 것이 훨씬 쉬워졌어요. 좋은 영향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특히 트위터 덕분에 #미투 운동과 같이 소수자가 목소리를 내고 공론화하기 훨씬 쉬워졌죠. 하지만 SNS는 세 가지의 잘못된 방식으로 정치의 기능적 장애(political dysfunction)를 가져왔다고 하이트는 설명해요.


첫 번째는 ‘트롤'들에게 너무 큰 발언권을 주었다는 것. 위키피디아에서는 트롤을 “고의로 논쟁이 되거나, 선동적이거나, 엉뚱하거나 주제에서 벗어난 내용, 또는 공격적이거나 불쾌한 내용을 공용 인터넷에 올려 사람들의 감정적인 반응을 유발하고 무임의 생산성을 저하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어요. 이렇게 설명하지 않아도 우리는 대부분 트롤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불필요하게 공격적으로 변해 다수의 사람을 공격하고 조롱하고 욕하는 몇몇 사람들이요. 이런 사람들을 만났을 때 우리는 ‘저 사람 왜 저래?’ 생각하면서 입을 다물고 자리를 피하죠. 많은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를 보이는데요, SNS가 소수의 사람이 더 많은 사람에게 공격할 수 있는 장이 된 탓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끄러운 사람들을 피해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침묵하고 신경을 끄게 되었다고 해요.


두 번째는 정치적으로 온건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줄이고 양극단에 있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힘을 주었다는 것. 에세이에서는 “숨겨진 종족(Hidden Tribes)” 연구를 인용하는데요, 이 연구는 친민주주의(pro-democracy) 단체인 More in Common에서 진행한 것으로  2017~2018년에 8천 명의 미국인의 서베이를 받아 정치 성향에 따라 7개의 집단으로 분류했다고 해요.

(c) Hidden Tribes

가장 좌측에는 진보적 운동가(Progressive Activists, 8%)가, 가장 우측에는 헌신적 보수주의자(Devoted Conservatives, 6%)가 있는데요, 놀랍지만 놀랍지 않게도 이들이 가장 정치적인 발언을 활발하게 하는 그룹이라고 해요. 직전 해에 정치적인 콘텐츠를 공유한 적 있다고 응답한 사람들의 비율이 각각 70%, 56%로 가장 높았다고요. 그런데 이 두 그룹은 7개 그룹 중 가장 부유하고 가장 백인의 구성 비율이 높아요. 즉, SNS에서 보이는 정치적 발언의 대부분이 미국의 엘리트 그룹에서 이뤄지고 있으며, 미국 전체를 대변할 수는 없다고 볼 수 있는 거죠.


이들은 또한 집단 내 도덕성이나 정치적인 태도의 유사성도 가장 높게 나타나는데요, 연구자들은 그 이유를 이들이 시행하는 ‘사상경찰(thought-policing) 행위’로 듭니다. 이들은 다른 생각을 가진 집단을 공격하기도 하지만 못지않게 많은 시간을 할애해 집단 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공격하기도 한다는 거예요. 그 결과, 각 진영 안에서의 비판적인 목소리는 강하게 비난받거나 제거되고, 온건한 구성원들은 결국 침묵하게 됩니다. 생각의 타협이 일어날 수 있는 과정 자체가 소거되어 버리는 거예요. 


마지막으로는 모두에게 발언권이 주어진 탓에 사람들은 자신이 직접 정의를 실현하게 되었다는 것.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모두가 모두에게 “정의"를 실현할 수 있게 된 거예요. 작은 말실수에도 사람들은 쉽게 ‘조리돌림'을 당하고, 맥락이 소거된 채로 오해받는 경우도 왕왕 발생합니다. 최악의 케이스로는 죄 없는 사람들이 직업을 잃거나 자살을 하게 되는 결과를 불러오기도 하고요.


하이트는 자신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며 확증 편향을 줄일 기회, 다르게 생각할 기회가 줄어들면서 미국이 더 ‘멍청해졌다'고 이야기해요.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두려움 때문에 건강하지 않은 수준까지 자기검열을 하게 되고,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서도 비판을 하기 어려워지면서 자정작용이 일어날 수 없게 되었다고요. 여러 기관에서도 비판적인 목소리들이 축소된 탓에 ‘다양성 교육 정책'과 같이 연구를 통해 효과가 증명되지 않은 정책들이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행해지면서 ‘구조적으로 멍청해진다'라고까지 이야기합니다.

 👀 SNS에 대한 연구 모아보기

하이트가 던지는 해결책은 사실 익숙한 것들이에요. 민주주의 제도를 강화하라.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틈이 생기도록 알고리즘을 변경해라. 아이들을 대비시킬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라. 해결책이 놀라워서 이 에세이가 바이럴 된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죠. 이 글의 놀라운 점은 그의 주장들이 모두 연구로 뒷받침되어 있다는 거예요. 그는 이 글을 쓰면서 동시에 SNS가 민주주의에 미친 영향을 살펴본 연구를 모아둔 구글 닥스를 공개했어요. 이 문서는 지금도 지속해서 업데이트되고 있으며, 어떤 연구자든 신청만 한다면 이 문서에 기여할 수 있어요.


문서는 7개의 주요 질문과 이 질문에 ‘YES’라 답하는 연구, ‘NO’라 답하는 연구, 분류하기 어려운 연구 순서로 구성되어 있어요. Appendix C에는 에세이에 반대하는 글들 역시 리스트업되어 있습니다. 누구든 쉽게 접속해서 현재의 연구를 따라갈 수 있도록요. 하이트는 에세이 마지막에 우리가 직접 나서서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하는데, 어쩌면 이 문서는 하이트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실행했다고 볼 수 있겠죠.


이 문서를 읽으면서 저는 이전의 레터에서 다뤘던 데이터 투명성과도 이어지는 생각을 했어요. 만약 플랫폼에서 특정 데이터들을 공개하도록 강제된다면 이런 연구들이 더 활성화되고, 우리가 SNS의 영향력을 더 잘 알게 되지 않을까요?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저는 사실 요즘의 정치 이야기가 너무 피곤해요. 하필 가장 정치에 관심이 생긴 것이 지금인 탓에 사람들과 정치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는데, 누군가를 지지한다는 이야기보다 누군가를 욕하는 이야기를 더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서요. 그런데도 재미있는 건 이번 대선에서 다른 후보를 찍었더라도 대화를 하다보면 비슷한 생각을 하는 부분도 많이 찾을 수 있다는 거예요. (결국엔 싹 갈아엎어야 해 류의 결론으로 도달하는 이야기들…)


제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생각을 자극하는 에세이를 여러분께 공유하고,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경청하는 것이라 생각했어요. 관심이 간다면 링크로 에세이 전문을 읽어보시는 것을 추천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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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알저알 | 최면에 대한 모든 것

에디터 <찬비>의 코멘트
인류애가 바닥을 칠 때, 그알저알에서 범죄자들을 잡고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노력하시는 전문가의 이야기를 보면 좀 힘이 되더라고요. 특히, 이번 편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오해로만 가득했던 최면에 대한 것을 많이 알게 되어서 재미있었어요. 2편까지 하면 거의 1시간 가량의 분량인데도 홀라당 빠져서 봐버렸지 뭐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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