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즌 3'를 시작했습니다. 월~금요일 매일 아침 8시, 에세이를 보내드립니다.

💬 목요일에는 '위스키에 진심입니다'가 연재됩니다. 그를 따라 우리도 위스키 러버가 되어봅시다.

🥃 위스키에 진심입니다 |  고현

하루키와 커티삭

“무라카미 하루키와 인터뷰를 해볼 수 있을까요?”

다소 무모하고 맹랑한 질문임에 분명했다. 사연인즉 이렇다. 2001년 나는 창간을 준비하는 잡지의 편집장을 맡게 됐다. 매호 하나의 주제로 여러 인물을 다루는 콘셉트였는데, 첫 호의 주제가 ‘수상한 여행가’로 정해졌다. 여행을 업으로 삼지 않더라도 뭔가 유별난 성취를 이룬 인물을 찾던 중 무라카미 하루키가 거론됐다. 매년 노벨 문학상 후보군에 빠지지 않고 이름이 오르내리는 세계적 소설가이자, 수많은 하루키스트를 양산해온 동시대의 아이콘. 그는 쉬지 않고 소설을 쓰는 틈틈이 에세이 작업도 게을리 하지 않았는데, 높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여행 에세이에 주목해보기로 했다. 소설가가 아닌 오로지 여행작가로서 하루키와 인터뷰를 시도해보면 흥미롭지 않을까? 이런 순진무구한 발상과 함께 조금 들뜬 마음으로 한국에서 하루키의 작품을 관리하는 에이전시를 수소문해 전화를 걸었다.


“아마 쉽지는 않을 거에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현지 에이전시에 연락은 해볼게요.”

인터뷰 요청에 에이전시 담당자는 제법 담담하게 답했다. 일단 거절은 아니었으니 일말의 희망을 품게 했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도록 어떠한 소식도 들려오지 않았다. 잡지 창간호의 마감 일정은 빠듯하게 다가오던 중이었다. 더는 지체할 수 없어 현지 에이전시에 직접 연락을 해보기로 했다. 지인의 도움을 받아 일본어로 작성한 서면 인터뷰 질문지를 첨부해 메일을 보냈다. 이틀쯤 지나 현지 에이전시로부터 회신이 도착했다. 두근두근.

“무라카미 하루키 씨는 정해진 스케줄로 인해 당분간 인터뷰에 응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 평소 인터뷰를 잘 하지 않기로 유명한 하루키가 (공식적으로 그는 출판사를 제외하면 국내 매체와 인터뷰를 진행한 적이 없다) 이제 막 창간을 준비하는 신생 잡지사와 인터뷰를 하리라 기대한 것 자체가 허무맹랑한 일이었다. 예의상 ‘당분간’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기약 없는 단호한 거절임에 분명했다. 대신 하루키의 작품 속 문장과 사진을 인용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답이 왔다. 조금은 김이 샌 기분으로 하루키의 여행 에세이를 분석하고, 인상적인 문장들을 발췌하고, 하루키의 여행 스타일에 관한 에세이를 수록하는 것으로 잡지 지면을 채워야 했다.


위스키를 주제로 에세이를 쓰기로 한 뒤, 얄궂게도 무라카미 하루키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내가 하루키 때문에 위스키에 심취하게 된 건 결코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의 작품에 수없이 등장한 위스키는 은연중 나의 기억 어딘가에 잔상으로 남았고, 위스키를 알아가면서 하나씩 실체를 드러냈다. 하루키의 소설을 섭렵한 이라면 한 번쯤 커티삭이라는 이름의 위스키에 호기심이 동할 것이다. 초기작 『양을 쫓는 모험』부터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댄스 댄스 댄스』 『태엽감는 새』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까지 무려 6편의 소설에 반복해서 등장하니 말이다. 가장 궁금증을 증폭시킨 대목은 『1Q84』에 나온다.


“남자는 문득 생각난 듯 커티삭이 있느냐고 물었다. 있다고 바텐더는 말했다. 나쁘지 않아, 아오마메는 생각했다. 그가 선택한 게 시바스 리갈이나 까다로운 싱글몰트가 아닌 점은 마음에 들었다. 바에서 필요 이상으로 술의 종류에 집착하는 인간은 대개의 경우 성적으로 덤덤하다는 게 아오마메의 개인적인 견해였다.”


『1Q84』를 읽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에 갈 일이 생긴 나는 문득 생각난 듯 바텐더에게 커티삭이 있느냐고 물었다. 소설과 달리 현실에서 나는 까다로운 손님이 구는 것처럼 메뉴에도 없는 커티삭 하이볼을 주문했다. 처음 맛 본 커티삭 하이볼의 맛은 밍밍했고 어쩌면 좀 평범했다. 위스키 향을 살짝 가미한 탄산수의 맛이라고 해야 할까? 그도 그럴 것이 커티삭은 애시당초 가볍고 부드러운 맛을 추구하는 미국 시장을 겨냥한 스코틀랜드의 블렌디드 위스키였다. 상징과도 같은 녹색병을 감싼 노란 라벨의 돛단배는 본래 홍차를 싣고 나르던 커티삭이라는 이름의 범선이다. 기존에 독주라는 이미지가 유독 강했던 스카치 위스키는 커티삭과 함께 미국은 물론 영국 본토에서도 놀라운 반향을 일으키며 그야말로 돛 달린 듯이 팔려나갔다.


바에서 경험한 커티삭은 좀 실망스러웠지만, 훗날 진가를 알게 됐다. 일단 커티삭은 바보다 집에서 즐기는 편이 낫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리고 니트나 온더록보다 탄산수를 넣어 마시는 하이볼이 확실히 매력적이다. 근래에는 주류 상점뿐 아니라 편의점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는데, 가격부터가 일단 부담스럽지 않다. 500ml 사이즈는 2만 원 이하로 구입할 수 있다. 평소 한두 병 정도 구비해 두었다가 갈증이 날 때면 하이볼을 만들어 마신다. 나만의 커티삭 하이볼 레시피는 이렇다. 얼음잔에 커티삭을 60ml 정도 따르고 탄산수와 함께 레몬을 듬뿍 짜 넣는다. 평소보다 2배 정도의 위스키에 레몬까지 가미되니 커티삭 특유의 산뜻한 풍미가 한층 도드라진다. 지인들과의 모임에서도 커티삭 하이볼은 꽤 요긴하다. 일단 평소 즐기던 하이볼과 비교해 맛이 진하고, 무엇보다 커티삭이 등장했던 하루키의 작품을 하나씩 열거하면 왠지 모르게 품격이 상승하는 기분도 든다. 『1Q84』의 그 대목은 늘 그렇듯 아껴뒀다 마지막에 풀어놓는다.


하루키는 장편소설 중 가장 근작인 『기사단장 죽이기』에 작정이라도 한 듯 수많은 위스키를 출연시켰다. 시바스 리갈과 듀어스 같은 상징적인 블렌디드 위스키는 물론, 라프로익과 주라 같은 싱글몰트 위스키까지 상황에 맞춰 다양한 위스키가 등장한다. 실제 위스키 애호가이기도 한 그는 위스키를 주제로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스코틀랜드의 아일라 섬과 아일랜드를 여행하며 위스키 증류소를 탐방한 여정을 엮어 『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여행』(현재는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고 한다면』으로 개정)을 펴냈다. 나온 지 20년이 훌쩍 지난 이 단출한 여행서는 하루키스트뿐 아니라 위스키 애호가라면 한 번쯤 읽어야 할 바이블이 됐다. 


그나저나 만일 하루키와의 인터뷰 기회가 생긴다면 어떤 질문을 해야 할까? 가끔은 이런 미련에 가까운 상상을 해볼 때가 있다. 여러 후보군이 머릿속을 맴도는데, 세상에 많고 많은 위스키 중 유독 커티삭에 집착하게 된 이유를 물어보고 싶다. 『1Q84』에서 커티삭을 주문한 남자의 대사가 그 대답에 힌트를 제시하는 듯하다.

“옛날부터 라벨이 마음에 들어서 자주 마셨어요. 돛단배 그림이 그려져 있어서.”

싱겁지만, 어쩐지 그게 또 하루키답다고 해야 할까. 🔖

고현은 낮에 글을 쓰고 밤에 위스키의 세계로 안내하는 공간 운영자다. 작업실이자 위스키 시음실로 사용하는 무용;소(@mooyong_so)에서 위스키와 취향을 매개로 크고 작은 프로젝트를 시도하고 있다.

📄 기획자의 마음, 작가의 생각 |  최갑수

용기, 뭐라도 해보자 하고 일어서는 그 마음

돈을 받고 글을 쓴 지는 올해로 25년이 됐습니다. 책을 쓰고 판 지는 19년이 됐네요(길군요). 책을 만들고 판 건 딱 1년이 됐습니다(짧군요). 작가와 기획자로 오랫동안 살아왔네요. 성공한 작가와 기획자는 아니지만 그럭저럭 잘 버텨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난해부터 약간의 변화가 생겼습니다. 이전까지는 작가로서 일을 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왔지만, 지난해 어느 날엔가부터 기획자로서 해야 하는 일이 슬금슬금 끼어들기 시작하더군요. 이제는 기획자로 일을 더 많이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얼론 앤 어라운드⟩에서는 뉴스레터를, ⟨얼론북⟩에서는 책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얼론티비⟩라는 유튜브 채널도 기획중이죠. 그리고 틈틈이 작가로서 글을 씁니다. 


지난해 『어제보다 나은 사람』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글쓰기라는 직업’을 가진 작가로서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일을 하고 생활하는지, 그 생각과 태도가 작가인 나를 어떻게 버티고 살아남을 수 있게 했는지에 대해 써보고 싶더라고요. 개인적으로도 한 번쯤 정리를 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프리랜서를 꿈꾸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실제로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다행히 많은 분들이 공감을 해주셨습니다.


이번 ‘시즌3’에서는 작가로서의 일하기가 아닌, 기획자로서의 일하기에 관해 써보려고 합니다. 저는 초보 기획자입니다. 아직 걸음마조차 시작하지 못한 단계죠. 이제 겨우 기어가는 정도라고 할까요? 매일매일 수많은 실수를 저지르며 노트북과 스마트폰과 원고와 복합기 사이를 뛰어다니다 보면 어느새 퇴근 시간. 사무실 문을 나설 때마다 참담한 기분이 앞섭니다. (그래도 사무실 건너편으로 번지는 찬란한 노을을 볼 때마다 약간이나마 위로가 됩니다) 실무적인 일처리에는 서툴고 예상(기획)은 언제나 보기좋게 빗나갑니다. 결과물은 초라하고 성과는 보잘것없죠.


실수투성이의 초보 기획자이지만 이렇게 글을 쓰겠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저는 용기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이런 저를 보고 주제 넘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저도 그렇게 생각하니까 괜찮습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생각으로만 가지고 있어 주시고, 저한테는 격려를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그래도 용기를 내어보려고 합니다. 〈얼론 앤 어라운드〉의 첫 레터에서도 썼지만, 저는 ‘저지르고 수습하는’ 스타일입니다.


이 글의 제목을 〈기획자의 마음, 작가의 생각〉으로 정했습니다. 네. 맞습니다. '기획자의 생각, 작가의 마음'이 아니라 '기획자의 마음, 작가의 생각'입니다. 기획자의 생각에 관한 글은 많이 있을 겁니다. 작가의 마음에 관한 책도 많이 있을 것이고요. ‘그들의 생각과 마음’이 궁금하고, 거기에 대해 알고 싶다면 그 책들을 읽어보시는 게 훨씬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저보다 더 뛰어난 통찰과 비전을 보여줄 테니까요. 저는 오히려 ‘그들의 마음과 생각’이 더 궁금합니다. 기획자는 어떤 마음으로 일을 해야 할까? 작가는 어떤 생각으로 글을 써야 할까? 그래서 여기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기로 한 겁니다. 어떤 문제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거기에 대해 써 보는 것이 좋은 방법이 된답니다. 써 보면 자기가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를 알게 되거든요. 아는 것은,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는 그 자리에서 출발합니다.


조금 더 알게 된다면 조금 더 좋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고, 조금 더 좋은 일을 한다면 조금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그 마음과 그 생각의 행방을 쫓아가 보기로 했는데, 그 여정이 쉽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을 것이고, 갔던 길을 수없이 다시 돌아와야 할 것입니다. 그래도 일단 해봅니다. 제 마음은 막막하고 생각은 희미하지만, 일단 써봅니다. ‘보이니까 쓰는 게 아니라, 쓰다 보면 보인다.’ 제가 작가로 일해오며 굳건히 가지게 된 생각입니다. 


‘마감이 없다면 내가 마감을 만든다.’ 작가로서 일하는 저의 방식입니다. 저한테 여행에 관한 글을 청탁하는 편집자는 많았지만, ‘작가로서 살아가는 법에 대해 매주 글을 써 주세요’하고 청탁서를 보내는 편집자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저는 마감이 없으면 글을 못 쓰는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글에 관해서는 전혀 자발적인 인간이 아닙니다. 편집자가 ‘3월 5일 오후 6시까지 원고지 20매를 써주세욧!’ 해야 3월 5일 오후 6시까지 겨우 써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를 마감의 올가미 속으로 스스로를 던져 버리기로 결정했습니다. 뉴스레터를 만들고 구독자를 모았죠. ‘매일 아침 8시, 에세이를 보내드립니다.’ 세상에, 매일 아침이라니!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 주 <기획자의 마음, 작가의 생각>에서 조금 더 자세히 써도록 하겠습니다.


아무튼 이번에도 일단 시작해 봅니다. 용기를 가지고서 말입니다. 뭔가를 시작할 때 가장 필요한 마음은 용기인 것 같습니다. 특히 기획자에겐요. 물론 ‘남들과 다르게 보는 눈’, ‘세상을 세밀하게 관찰하는 시선’도 중요하겠지만, 그래도 가장 필요한 건 용기가 아닐까요? '뭐라도 해보자.' 하고 일어서는 그 마음 말입니다. 뉴스레터 <얼론 앤 어라운드>와 <기획자의 마음, 작가의 생각>이라는 글 역시 용기를 가지고 시작한 일입니다.


오늘도 용기를 내보는 아침이면 좋겠습니다. 🔖

최갑수는 작가지만 요즘에는 기획 일을 더 자주 한다. 새벽 3시부터 오전 8시까지는 작가로 살고,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는 기획자로 산다. 그의 일과 일상이 궁금하다면 인스타그램 @ssuchoi를 들여다 보자.

📎 Words | 일단 뛰어드는 거죠

내 선택이 모여 내 인생이 만들어집니다. 선택을 잘하기 위해서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를 명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이 경험해봐야 하죠. 경험을 통해 취향이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젊었을 때 미니멀리즘에 빠져드는 건 개인적으로는 권하지 않습니다. 경험을 통해 우리는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즐겁고 행복한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내가 어떤 일을 잘할 수 있는지도 말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가 즐겁고 행복한 일에 대한 생각이 명확하게 섰다면 편견과 차별의 시선, 행동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입니다. 하기 싫은 일도 억지로 버티며 해낼 수 있는 의지도 생겨나죠. 일단 뛰어들어 보세요. 수영을 잘하기 위해서는 물을 겁내선 안 되는 법입니다. - alone&ar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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