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경제를 만드는 수퍼빈
VOL. 009  |  2024. 01. 17.
'스피커스'를 구독하시는 분들 중에는 기후변화에 대한 민감도가 높은 분들이 많으실 것 같아요. 최근 생활 폐기물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거나, 분리배출을 열심히 하고, 될 수 있으면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려 애쓰는 분들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고마운 분들이지요😍

한데, 이러한 활동에 참여하는 분 중 '기후우울증'을 겪는 경우가 많다고 해요. '기후우울증'은 계속 악화되는 기후재난을 보면서 자신의 실천이 무기력하다고 느끼며, 우울감·불안·분노·좌절 등 복합적인 증상을 경험하는 상태입니다. 2017년 미국 정신의학계에서 공식 명명할 정도로 두드러지고 있는 정신적 현상입니다.

오늘 소개할 AI를 활용한 자원순환 소셜벤처 수퍼빈의 선장 김정빈 대표는 '기후우울증'에 빠져있는 분들께 위로와 용기를 주는 기업가라고 생각합니다. 제21회 사회적경제 정책 포럼 '소셜 임팩트 토크쇼: 사회적 경제를 다시 생각한다'에 참여하셨던 김정빈 대표님의 접근방식과 관점을 스피커스의 시선으로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김정빈 수퍼빈 대표.  페이스북 갈무리
수퍼빈(SuperBin)의 선장, 김정빈 대표

김정빈 대표는 2015년 6월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 폐기물 관리 플랫폼 '수퍼빈'을 창업했어요. 이후 8년 동안 대통령표창, 국무총리상, EY최우수기업가상 등 여러 상을 수상했죠. 그의 회사는 초기 400억원이 넘는 투자를 유치하며 현재 기업가치는 약 2000억원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개인의 이력도 화려합니다. 한림대 경제학과를 조기 수석 졸업하고, 미국 오리건대학 수학과에 입학해 1년 만에 졸업합니다. 그리고 코넬대에서 경제학 박사를 수료하고,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죠.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 삼성화재, HR 컨설팅 회사, 삼정 KPMG, KOTITI 시험연구원(한국섬유기술연구소)에서 경력을 쌓았어요. 그리고 철강회사 코스틸 대표이사(CEO)를 역임했습니다. 당시 그의 나의 서른 여덟이었어요.


김 대표는 여러 자리에서 허심탄회하게 말합니다. 한림대 출신이라는 타이틀이 갖는 우리 사회에서의 불리함을 인정하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새롭게 도전해 성공의 발판을 마련했다고 말이죠. 그는 사람들이 주목하는 이력 뒤에 가려진 어려운 환경을 버틴 경험이 다른 시도를 하거나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기초 체력 역할을 했다고 말합니다.


정부가 '규제와 의무' 중심으로 관리해 온 자원순환 영역을 '놀이와 보상'이라는 개념으로 재정의한 인공지능 기술 기반의 비즈니스를 만든 김정빈 대표, 이러한 그의 접근 방식은 기후위기 대응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란 기대를 품게 하는데요. 이제 수퍼빈의 혁신적인 사업 모델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선형경제'에서 '순환경제'로
일상생활에서 분리배출을 통한 재활용은 친숙하지만, 실제 효율성은 제한적입니다. 예를 들어, 페트병은 80%가 분리배출되지만, 실제 재활용되어 재생원료로 사용되는 비율은 약 45%에 불과합니다. 여기에 주목한 수퍼빈은 폐페트병 수거율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방법을 찾고, 고품질의 PET 재생원료를 생산하는 통합 가치사슬을 만들었어요.

김정빈 대표는 수퍼빈의 비즈니스 모델을 '선형경제(linear economy)'가 아닌 '순환경제(circular economy)'를 설계·구현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보통의 기업이 생산이나 소비 어느 한쪽에 치중에 서비스를 구현하고 있다면, 수퍼빈은 생산 시스템뿐만 아니라 소비패턴까지 아우르는 친환경적인 순환경제를 만드는 데 방점을 찍고 있죠. 
순환자원 회수로봇 '네프론(Nephron)' 사용 장면. 출처: 수퍼빈 공식 누리집
뭐니뭐니해도 수퍼빈 사업의 출발점은 '네프론(Nephron)'입니다. 자판기 형태의 순환자원 회수로봇 네프론은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해 페트병, 알루미늄 캔 등 재활용품을 선별해 수거합니다. 네프론에 재활용 쓰레기를 넣으면 현금화할 수 있는 포인트를 제공 받을 수 있어요(개당 10포인트=10원). 순환자원 대면 회수 서비스 '수퍼빈모아'를 이용해도 대량의 순환자원에 대한 합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현재 네프론을 사용한 분들이 65만명 정도에요. 한 달에 많게는 30~50만원, 적게는 10~20만원씩 폐기물을 제공하고 현금을 받아가고 계세요. 폐지나 폐품을 줍던 분들도 페트병이나 알루미늄 캔 같은 것을 모아 수퍼빈에 판매합니다. 기존에 한 달 내내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을 일주일만에 벌어가시기도 하죠. 매달 5~6억 정도의 폐기물을 회사의 자금으로 구매하고 있습니다."

네프론은 주로 각 지방자치단체와 기업이 구매하고 있어요. 지금까지 전국에 1000여대가 설치되어 있으며, 주로 시민들이 자주 찾는 공원, 역 주변, 행정복지센터 등 공공장소에서 볼 수 있어요. 네프론 설치 장소가 궁금하신 분들은 여기를 클릭해주세요!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수퍼빈의 '아이엠팩토리'. 폐기물을 재활용 플라스틱 소재(PET 플레이크)로 만드는 공정의 시작 지점으로 전국의 AI 로봇 네프론을 통해 모은 페트병들이 압착되어 소재화 공정을 기다리고 있다.
수퍼빈은 네프론을 통해 수거한 재활용 폐기물을 처리하기 위해 특화된 물류 시스템을 개발했습니다. 이 시스템은 폐기물 운송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염을 최소화하기 위해 전용 운송 차량인 '수퍼카'를 사용해요. 또한, 전국에 '자원순환 창고'라는 수퍼빈 전용 물류 허브를 설치해 효율적인 물류 관리를 실현하고 있어요.

수거된 플라스틱은 고품질의 PET 플레이크로 가공되어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다양한 재활용 제품의 원료로 판매됩니다. 이 고품질 PET 플레이크는 GRS(Global Recycled Standard, 국제 재생표준인증)를 받았으며, 환경부로부터 식품 용기용 재생원료로 사용하기에 적합하다는 확인도 받았습니다.
국내 최대 규모의 폐플라스틱 가공 공장 '아이엠팩토리'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에 위치한 PET 플레이크 생산 공장 수퍼빈의 '아이엠팩토리' 전경. 약 4000평 부지에 건평 약 1200평 규모로 만들어진 국내 최대 규모의 폐플라스틱 가공 공장.
우리나라 폐기물 재활용품 선별장은 대부분은 쓰레기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온갖 종류의 재활용품들이 뒤엉켜 있고, 악취가 나는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어요. 비교적 깨끗하게 배출된 폐플라스틱도 여기서 다른 쓰레기와 섞여 오염되곤 합니다. 김 대표는 이런 상황을 보며 "재활용품 선별장이 자원순환을 위한 보루 역할을 할 수 없다"고 진단합니다. 

김 대표는 "대표적 혐오 시설인 폐기물 공장을 사회와 사람들로부터 사랑 받는 공간으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합니다. 그렇게 2022년 8월 폐기물을 재활용 소재로 가공하는 수퍼빈의 첫 번째 공장이 완공되었고, 현재 두 번째 공장이 계획 중입니다.

궁금하면 직접 가봐야죠🧐 지난 1월 10일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에 있는 PET 플레이크 생산 공장을 찾았습니다. 공장은 작지만 고풍스러운 정원 산책로를 품고 있었어요. 외견 상 '공장 같지 않은 공장'으로 보이기 때문이었을까요? 공장의 이름은 '아이엠팩토리(i'm factory)'입니다. 전국에서 회수된 페트병이 이 곳에서 수많은 공정을 거쳐 고품질의 재활용 소재(PET 플레이크)로 바뀌고 있었습니다. '쓰레기를 쓰레기 같지 않게' 만드는 작업이었어요. 

수퍼빈은 진보된 기술과 제품을 사람들의 문화와 언어에 맞게 디자인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어요. 사용자 인터페이스(UI)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공장 디자인에서도 엿볼 수 있었어요. 투명 유리창을 통해 생산과정을 볼 수 있는 견학 프로그램, 플라스틱 체험존, 업사이클링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된 공간 등을 통해 자원순환 문화를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더라고요. 기술과 인간 중심의 디자인이 융합되어 있다고 느꼈습니다.
"버려지는 것들의 가치를 다시 만들겠습니다."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수퍼빈 아이엠팩토리 4층에 마련된 유기견 임시 보호 공간 '두부 아이 놀이터' 야외 공간에서 뛰어노는 아가들. 수퍼빈 제공
사용 후 쉽게 버려지는 물건들, 유기되는 반려동물, 무분별하게 베어지는 꽃과 나무 등을 볼 때가 많죠. 김정빈 대표는 이러한 문화를 바꾸고 싶어해요. 그는 "버려지는 모든 것들의 가치를 다시 살리는 문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합니다. 이는 그의 사업과 일상에서 드러납니다. 실제로 김 대표는 유기견 보호와 구조 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어요. 그는 아이엠팩토리 4층에 유기견 임시보호소를 만들어 구조하거나 돌보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김정빈 대표는 지난 9월, 동물보호단체와 함께 경기 화성시의 한 번식장에서 1426마리에 달하는 번식견 구조에 참여했어요. 그리고 구조된 아이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을 아이엠팩토리 한편에 만들었습니다. 소형 품종견들이 햇빛도 없고 통풍도 안 되는 비좁은 공간에 갇혀 펫숍 '납품'을 위해 임신을 반복하며 새끼를 낳고 있던 처참한 상황이었어요. 구조견들의 출산과 치료 등으로 동물단체의 병원비 부담이 늘어나자 김 대표가 직접 나서 모금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참, 수퍼빈은 2023년 제5회 대한민국 동물복지대상 기업 부문 수상 기업입니다🤗


"버려진 폐기물이 이 공장을 거쳐 다시 제품화되어 사회에 돌아가듯이, 버려진 반려견들도 이곳에서 보호받은 뒤 다시 좋은 가정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유기견 임시 보호소를 마련했습니다."


순환경제 현장을 배우기 위해 수퍼빈을 찾은 월드뱅크 관계자들이 공간을 보면서 "인간이 가진 폐기물·유기동물·유기식물에 대한 프레임이 똑같다. 이건 문화적 사건"이라며 놀라워했다고 해요. 이 이야기는 정작 버려져야 할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버려져야 할 것은 생명의 '고유한 가치'를 배제하고, 경제적 논리에 따라 '교환가치'로 대체하는 산업구조가 아닐까요? '반려동물'을 물건처럼 펫숍에서 사고팔고 폐기물처럼 쉽게 버리는 문화가 이어진다면 이런 일들이 반복될 거에요.

'스마일빈'에서 '수퍼빈'으로 이어진 성공적인 실패
수퍼빈의 시작은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지금과 유사하게 재활용품 회수와 보상을 제공하는 자원순환 플랫폼 '스마일빈' 창업이 먼저였어요. 당시 이 사업은 고가의 해외 장비, 유지 관리의 어려움, 그리고 현금이 아닌 문화상품권 보상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족 등으로 실패합니다. 

김 대표는 스마일빈 창업 경험을 수퍼빈 창업의 첫 출발점으로 삼았다고 해요. "어떻게 국내 기술로 재활용 쓰레기 인식률을 높일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답을 찾고자 한 거죠. 결국, KAIST 권인수 교수와 RCV(Robotics & Computer Vision) 연구팀이 개발한 로봇 휴보의 인공지능에서 힌트를 얻습니다. 휴보가 카메라로 물체를 구분하는 과정을 참고해 재활용 쓰레기를 구분하는 새로운 방식에 착안했죠. 보상 방식도 현금으로 전환했어요. 스마일빈의 '성공적인 실패 경험'이 수퍼빈의 밑거름이 된 것입니다.

"초기 스타트업은 시스템과 방법론, 프로세스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사람들과 시간의 연결과 연대에 의해 초기 세팅을 해야 합니다. 과정을 생략하고, 시스템과 프로세스 기반으로 사업을 구축하려고 했던 시행착오를 겪습니다." - 김정빈 대표 강연中

반면, 창업하기 전의 '성공 경험'이 시행착오를 겪게 했다고 하는데요. 대기업 경영자 시절의 성공 경험을 스타트업 창업 생태계에 적용하려고 했던 것이 실기였었다고요. 과거의 성공 경험이 오히려 발목을 잡고, 반대로 실패 경험은 성공의 자산이 된 것이죠😲
"단호하고 의연하게, 하지만 몸에 힘 빼고"

김 대표는 검도인으로도 유명합니다. 그의 페이스북에는 검도 수련 모습이 자주 등장해요. 김 대표는 실제 경기에도 종종 출전한다고 하는데요, 검도에 대한 그의 '진심'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스타트업 경영을 검도에 비유하곤 합니다. 그에 따르면, 검도 고수들은 상대방의 움직임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그에 반응해 움직인다고 해요. 스타트업 경영도 시장의 반응을 면밀히 살피며 그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고요. 수퍼빈의 발전 과정은 고정된 계획을 따르기보다 시장의 반응을 살피면서 다음 단계, 또 다음 단계를 도전하는 여정이었다고 설명합니다. 


김정빈 대표는 한 강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계획을 세웠다고 계획대로 밀고 나가는 게 아니에요. 계획을 던지면 세상에서 음파가 반사되어 옵니다. 그걸 잡는 거예요. 나의 계획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계획에 대한 세상의 반응을 포착하는 게 중요한 거죠."


한편, 검도의 스킬을 배우기 위해선 폐활량과 체력을 먼저 갖춰야 한다는데요, 이를 스타트업 경영에 적용해보면 이렇습니다. "머리에서 몸통까지 몸을 감싸는 '호구(보호장비)'를 입고 5분 동안 깡충깡충 뛰어다니면서 죽도질을 해야 합니다. 폐활량이 터지고 나면, 비로소 기술 연습이 어렵지 않아집니다. 스타트업의 성장 속도를 따라올 수 있도록 구성원들에게 어려운 일을 과감하게 주면서 체력적 소모를 감당하는 경험이 필요해요. 폐활량과 체력이 커진 상태에서 새로운 일을 감당할 수 있는 맷집과 성과가 좋아질 수 있습니다." 스타트업의 무기는 주어진 시간에 얼마나 많은 일을 밀도 있게 해낼 수 있는가에 달려있기 때문이겠죠!

📝이번 <스피커스> 어떠셨나요?

잘 지내셨나요? 포럼 읽는 뉴스레터 스피커스가 돌아왔습니다. 올해 스피커스는 격주로 구독자분들을 찾아갑니다. 다양한 포럼과 세미나를 통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를 읽는 관점을 포착하는 한편, 진취적 사고와 신선한 발상으로 변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려고 합니다. 스피커스를 좀 더 능동적으로 소비(!)하고 싶으시다면 다양한 의견을 스리슬쩍 알려주기를 통해서 전해주세요. 정성껏 읽고 고민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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