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의 본능>
퇴근길에 자연스럽게 동물 다큐 영상을 켠다. 본능에 충실한 그들의 모습이 위로 비슷한 것을 주기 때문이다. 몇 미터짜리 비단뱀은 먹잇감 옆에 몸을 나란히 뻗어보며 소화 가능한 크기인지를 가늠하고 펠리컨은 냅다 주둥이를 가져다 대며 가늠과 식사를 동시에 시도한다. 제각기 다른 동물들의 습성은, 너무나도 본능적으로 보여 웃기기까지 하다.
펠리컨도 아니면서 나도 비슷한 짓을 행한다. 타인의 일하는 모습을 보며 내가 소화할 수 있을까를 재보는 거다. 오픈키친에서 웍을 휘두르는 셰프를 보며 ‘나는 땀이 많으니 어렵겠다’ 싶고, 메뉴와 페어링하는 와인 설명을 술술 늘어놓는 서버를 보면서 ‘나는 기억력이 좋지 않으니 쉽지 않겠다’ 싶다. 하필 말도 느린데 낯까지 가리니까 손님이 올 때마다 절절거릴 게 분명하다. 뭐 이런 식으로 댄서, 래퍼, 인플루언서… 최근 한 달 사이에 포기한 꿈이 10대 내내 꿈꿨던 직업보다 많다.
더군다나 신체적인 한계도 자각하게 되는 사건이 생겼는데 올해 건강검진에서 몸 안에 있어서는 안 될 것들이 발견됐다. 용종 같은 걸 떼어낸 뒤엔 위장에 자리잡은 균을 없애준다는 약도 받았다. 그 기간 동안 커피를 줄이면서 세 잔이 아닌 한 잔으로도 직장인이 평일을 버틸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처방받은 무수한 약을 삼키다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몸 안에 나를 갉아먹는 무언가를 없애겠다고, 나 역시 매일 뭔가를 몸속으로 밀어 넣고 있구나. 약사 선생님의 말처럼 속이 불편하고 가끔씩 위가 있겠구나 싶은 위치를 무언가 쥐어짜는 듯한 통증이 생기기도 했다.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르면서 하루 두 번 정해진 시간이면 꼬박꼬박 입을 벌렸다. 이제는 맥주도 신경 써가며 마셔야 하는 나이가 됐다니. 한계가 눈앞에 아른거리는 기분이다.
철없는 시절엔 다른 일은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일 뿐, 시도만 하면 능히 해낼 수 있으리란 착각에 빠져있었다. 당연히 그럴 리가 없는데도 그렇게 믿었다. 요즘엔 정반대의 생각을 한다. 다른 사람의 직업과 하는 일들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나면, 나는 절대 못한다는 확신을 쉽게 한다. 한계를 직면한 나는 스스로를 바라보면서도 이런 질문을 하루 세 번씩 한다. 언제까지 일을 해야 할까. 그보다 언제까지 일을 할 수 있을까.
모든 에너지를 소비하곤 퇴근길에 나섰다. 무의식적으로 켠 동물 다큐엔 방금 사냥에 실패한 표범이 다시 몸을 일으켜 초원을 가로지르고 있다. 실패 같은 것에 여운 따윈 없다는 듯, 발걸음에도 망설임이 없다.
다음 컷에 등장하는 그물무늬비단뱀도 마찬가지다. 다 자라지 못한 아성체 비단뱀이 냅다 삼킨 먹잇감을 소화하지 못한다는 걸 뒤늦게 깨닫곤 도로 게워낸다. 그러더니 이내 몸을 틀어 다시 삼킬 거리를 찾아 나선다. 가늠을 잘못했다고, 사냥에 실패했다고 그 자리에 주저앉는 동물은 없다. 실패 뒤엔 다음 시도만 있을 뿐이다.
올해 여름은 유난히 지독했지. 밥벌이를 하러 비장하게 나서지만 상처만 입는 날들이 많았다. 하지 않은 말을 했다고, 또 했던 말은 하지 않았다고 발뺌하는 촉새. 협업 관계를 갑을 관계로 착각하며 으름장만 놓는 오만한 하이에나. 상대해야 하는 인간군상도 가지각색이었다. 여름은 끝났지만 밥벌이는 여전히 지난하다.
오늘도 사냥을 나선 뒤에 어김없이 작은 절망에 빠졌다. 언제까지 일을 해야 할지, 애초에 일을 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지만. 직장인의 본능을 따라서 내일도 출근길 지하철에 몸을 내던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