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비운의 어린 왕, 단종의 흔적을 찾아서
: 강원도 영월 답사기
수습위원 전진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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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7년 11월, 비운의 어린 임금 단종은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단종이 사망한 지 몇백 년이 지난 2023년, 단종이 죽었던 날과 같은 11월입니다. 이번 건빵레터 <비운의 어린 왕, 단종의 흔적을 찾아서>는 단종의 흔적을 찾아서 떠난 강원도 영월의 답사기를 담고 있습니다. 필자는 역사적 사건을 공부하고 그 현장을 찾으며 현재 스스로의 삶에 대해 성찰합니다. 역사를 통해서 자신은 어떻게 살 것인지 사유하고자 하는 분들께 이곳, 영월을 추천합니다. 역사적 내용과 개인적인 경험을 담은 이번 건빵레터,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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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은 조선 제6대 왕으로 제5대 왕 문종과 그의 비 현덕왕후 권씨 사이에서 태어난 장자이다. 삼촌(수양대군, 훗날 세조)에게 어린 나이로 죽임당한 비운의 왕으로 알려진 그의 흔적을 쫓아, 강원도 영월로 향해 보았다. 서울에서 영월로 향하는 동안, 먼 유배길 동안 답답했을 단종의 마음이 느껴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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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로 향한 곳은 그의 능인 영월 장릉이었다. 장릉은 서울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데, 대부분의 조선 왕릉이 수도권에 위치한 것과 비견했을 때 다른 왕릉과는 달리 먼 거리에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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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유는 단종이 영월에서 죽음을 맞았기 때문이다. 1453년 수양대군은 단종이 즉위한 지 1년 만에 계유정난을 일으켜서 단종의 지지자였던 황보인, 김종서 등을 죽이고 정권을 차지했다. 이때 대부분의 권력은 수양대군에게로 넘어갔으므로, 단종이 허울뿐인 왕으로서 살았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단종은 수양대군의 압박을 이기지 못해 선위하고 상왕이 되니, 고작 즉위 2년 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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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단종을 복위시키려는 운동이 일어나자, 세조는 단종을 노산군으로 강등시키고 영월로 유배 보낸다. 영월에서 유배 중인 단종을 복위시키려는 수양대군의 동생이었던 금성대군의 시도가 실패하자, 세조는 결국 단종을 서인으로 강등시키고 죽음에 이르게 한다. 단종의 사망과 관련해서는 다양한 설이 존재한다. 『세조실록』에서는 단종이 자결했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병자록』에서는 왕방연이 사약을 들고 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기록마다 다르게 되어 있어 진실은 알 수 없지만, 단종이 받았을 압박들로 미루어 보았을 때 단종의 죽음은 왕권을 확실히 하고 싶었던 삼촌 때문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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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후, 단종의 시신이 방치되었는데, 영월의 관리였던 엄흥도가 단종의 시신을 수습해서 영월에 묻었다고 전해진다. 따라서 단종의 능이 다른 능에 비해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영월에 있는 것이다. 이후 시간이 흘러 숙종 때 서인으로 강등되었던 그가 복위되어 단종이라는 이름을 얻고, 그의 묘 또한 왕릉으로서의 위엄을 어렴풋이 갖추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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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타 조선왕릉들과는 다르게 단종의 능은 조금 다른 형태를 띠고 있다. 능은 언덕 위에 있어 한참을 걸어가야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제례를 위한 공간인 정자각은 언덕의 한참 밑에 있다. 봉분을 둘러싸고 있는 난간석*도, 병풍석**도 존재하지 않고 오직 봉분만 존재한다. 왕릉을 둘러싸고 있는 석물 또한 간단하고 왜소하다. 불완전한 단종의 삶을 반영하듯, 그의 능 또한 매우 불완전한 모습이었다.
* 난간처럼 능을 둘러싼 둘레돌을 의미한다.
** 능을 보호하기 위해 능을 병풍처럼 둘러 세운 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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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에서 단종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곳이 또 있으니, 두 번째로 향한 곳은 단종의 유배지로 알려진 영월 청령포였다. 청령포의 서쪽은 험준한 암벽이 솟아있고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마치 섬과 같은 형상을 띄고 있다. 청령포는 배를 이용해야지 들어갈 수 있으며, 단종어소 또한 배를 타고 내린 후 한참을 걸어야 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쉽게 이곳에 들어갈 수 있지만, 단종이 유배되었을 때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이 홀로 첩첩산중에 갇혔을 것이다. 단종은 강으로 둘러싸인 이곳이 홍수의 위험이 있어 두 달 동안만 유배되었다고 한다. 이후 그는 영월의 관아인 관풍헌으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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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령포에 있는 단종어소는 승정원일기의 기록에 따라 그 당시 모습을 재현한 것으로, 실제로는 지금의 형태보다 많이 작았을 것으로 추측한다. 청령포에는 높고 험준한 모습의 바위도 자리 잡고 있는데, 단종이 유배된 후 해 질 무렵 한양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던 곳으로 이름을 노산대라 붙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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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장릉과 청령포 모두,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가 아무 잘못도 없이 왕위를 찬탈당한 후,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된 단종의 삶을 보여준다. 외딴곳에 의지할 사람 하나 없이 쓸쓸한 생활을 했을 단종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적장자로서 총명하고 명석한 자질이 있었으나, 삼촌에 의해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단종의 안타까운 삶을 느껴보고, 자신은 어떻게 살 것인지 생각해 보고 싶은 사람은 이곳, 영월에서 단종의 흔적을 찾아보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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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영월 장릉으로 향하는 길.
정자각과 장릉이 멀리 떨어져 있다. |
<그림 2> 청령포 전경.
배를 타야만 이곳에 들어갈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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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대학교 교지편집발행부 건대교지
주소 서울시 광진구 능동로 120 제1 학생회관 30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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