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기억'하는 일

Season 4 🌊🏄‍♀️ Vol 13. 2024.06.28. ~ 2024.07.04.

AV 배우가 양지로 나올 때
'최저임금 차등 적용'이 겨누는 대상은
당신의 그 감정, 사소한 게 아니에요

AV 배우가 양지로 나올 때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몇년 전 유행하던 '짤' 중에 이런 게 있었어요. '남자는 아는데 여자는 모르는 이름' 같은 거요. 전 난생처음 들어보는 이름과 얼굴들이었는데, 알고 보니 그게 일본 AV(성인 비디오)에서 유명한 배우들이었습니다. 남자들만 아는 경험과 이야기, 여자를 객체로 보면서 배제하는 행위로 '그들만의 연대'를 끈끈하게 이어나가는 듯한 불쾌감은 꽤 오래 남았습니다. 🙁 최근 유튜브 채널 '노빠꾸 탁재훈'에 게스트로 출연한 AV 배우의 논란을 지켜보며 그 기억이 떠올랐어요.

지난 19일 이 채널에선 일본인 AV 배우가 여성 아이돌 MC에게 "몸매가 좋으니까 AV 배우로 데뷔해 달라"고 말한 것이 공개돼 크게 비판받았습니다. 여성 MC가 당황하는 모습, 다른 남성 MC들이 이 모습을 보며 웃는 장면이 영상에 담겼죠. 명백한 성희롱과 모욕이라는 비난이 일자 제작진은 사과문을 올리고 "새 MC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며 "탁재훈씨가 만류했지만 재미만을 위해 편집하는 과정에서 그 의도가 드러나지 않게 편집됐다"고 했습니다. 이 장면은 해당 영상에서 삭제됐습니다. ❌

최근 몇년 새 플랫폼과 콘텐츠가 다양해지면서 AV 배우들도 우리에게 '익숙한' 존재가 됐습니다. 🤔 지난해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성+인물: 일본편'은 AV 산업 종사자를 직접 인터뷰하면서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AV 배우들을 초청해 '성인 페스티벌'을 개최하겠다던 논란도 불과 두어달 전입니다. 지난 4월 썼던 레터에서 이런 내용을 다뤘죠.

AV 자체가 문제인가요? 아니면 AV 배우들이 등장하는 게 문제인가요? 성인들만 볼 수 있는 영상이면 상관없나요? 🙅‍♀️ 저는 AV 배우를 당연하게 여기는 '인식'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AV 배우가 누구나 볼 수 있는 유튜브에서 자신의 일을 설명할 때, 다른 사람에게도 '데뷔'를 권할 때, 그래서 AV 배우가 우리에게 익숙해질 때 음지와 양지의 경계가 모호해지기 때문입니다.

위근우 칼럼니스트는 "과거라면 떳떳하지 못해 비밀로 하는 프라이버시거나, 남성들의 사적 모임에서 비공개적으로나 공유하던 포르노 소비의 경험을, 이젠 여성 MC가 동석하는 자리에서 불특정 다수 시청자를 향해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또한 말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이 사안의 핵심"이라고 말합니다. ✅

"성적으로 상품화된 여성의 이미지에 내재된 성차별에 아무 문제의식이 없다는 것을 공표하고, 농담거리 삼으며, 심지어 그 농담에 동참할 수도 화낼 수도 없는 젊은 여성의 난감함을 배경 삼아 낄낄댈 때, 성적 담론의 자유란 오직 남성들끼리 왜곡된 성적 판타지와 경험을 공유하고 가지고 노는 자유를 뜻할 뿐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미디어에서 AV 산업의 문제는 외면하고 '배우에 대한 욕망만 구체화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 실제 이 산업은 합법과 불법을 교묘하게 넘나듭니다. 영상 촬영 과정에서 출연자들이 부상을 입거나 성폭행을 당해도 '동의'라고 여겨 처벌하지 않는 등 성착취의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어요.

김주희 덕성여대 교수는 "AV 배우가 등장하는 콘텐츠에서는 주로 남성의 시각에서 제작된 AV의 협소한 성적 판타지가 되풀이 된다"며 "이는 '성 엄숙주의'를 깨는 것이 아니라 여성 혐오적인 성적 판타지를 재생산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배우보다는 이런 콘텐츠를 만들고 여성의 몸을 성애적으로만 재현하는 제작자의 시각을 비판해야 한다"고요.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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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빈 기자

🗞️ '최저임금 차등 적용'이 겨누는 대상은

💣 내년도 최저임금 수준을 결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심의 법정 기한인 27일까지 결론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이번 심의 과정에선 정부·여당과 경영계가 주장하는 '업종별 최저임금 차등 적용'이 쟁점인데, 노동계에서 이를 반박하며 저지하고 있거든요. 경영계는 숙박업이나 음식업 등의 자영업자가 최저임금도 지급하지 못할 정도로 경영난이 심각하며, 때문에 몇몇 업종에 대해선 법정 최저임금보다 낮게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해요. 하지만 이렇게 된다면 저임금 노동자에게 '최저 생활 수준'이라도 보장하기 위한 최저임금제도 취지가 완전히 무너질 수 있겠죠.

💣 특히 이 주장이 우려스러운 이유는 결국 최저임금 차등 적용의 대상이 되는 것이 여성들이기 때문입니다. 💰 최저임금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저임금 노동자의 비율은 비정규직, 여성, 19세 이하, 60세 이상, 고졸 이하 노동자일수록 높습니다. 현재 노동시장에서 취약한 상황에 놓인 건 여성이고, 성별 임금 격차 역시 28년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일 정도로 크잖아요. 최저임금에도 '계급'을 두겠다는 건 결국 여성 노동자에 대한 차별을 강화하겠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전북소방본부 제공

🗞️ "내가 못 버티면 후배들은 기회 없을 거라 생각했어요"

👩‍🚒 지난 5월 24일, 소방 76년 역사상 첫 여성 소방감(2급)이 나왔습니다. 이오숙 전북소방본부장 얘기인데요. 소방감은 소방총감, 소방정감에 이어 소방 조직에서 세번째로 높은 계급입니다. 여성이 소방감 이상 고위직에 오른 건 1948년 정부 수립 당시 내무부 치안국 산하 소방과 설치 이후 처음이에요. 지난해 기준 소방공무원 중 여성은 10%에 불과해 여성 고위 간부 또한 적은데, 이 본부장이 두터운 유리천장을 깨뜨린 겁니다.

👩‍🚒 이 본부장은 발령 초창기 "여성과 일하기 싫다"는 다른 부서원들 때문에 '문서 수발'을 들어야 했지만, 오랜 시간 스스로 일을 찾아가며 버텼습니다. "못 버티면 후배들에겐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요. 지난해 넷플릭스 예능 '사이렌: 불의 섬'에 출연해 큰 화제를 모았던 김현아 소방관, 기억하시죠? 이오숙 본부장도, 김현아 소방관도, 이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버티는 여성들이 있기에 조금씩 우리 사회도 바뀌는 것이겠지요.

당신의 그 감정, 사소한 게 아니에요 🧘‍♀️

💬 입주자 여러분, 2021년 출판돼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한 책 '마이너 필링스' 읽어보셨어요? 직역하면 마이너, 즉 사소한 감정이라는 뜻인데요. '마이너리티'라는 맥락을 고려해 '소수적 감정'으로 풀이할 수 있겠습니다. 아시아계 미국인인 저자 캐시 박 홍 UC버클리대 교수는 이 책을 통해 누적된 차별과 배제의 경험이 어떻게 소수자 자신에게조차 내면화되는지 설명합니다.

💬 이 소수적 감정은 결코 사소하지 않습니다. 개인이 삼키고 있을 때 상처가 되고 삶을 뒤흔들지만, 그걸 표출했을 땐 '도가 지나치다'며 쉽게 혐오의 표적이 되기도 하죠. 인종차별적인 모욕을 당했는데도, 오히려 '이게 내 피해망상은 아닐까', '내가 착각한 게 아닐까'라고 생각하게 되는 건 이 때문입니다.

💬 소수적 감정은 인종의 문제에만 해당하는 건 아닙니다. 한국에서도 이 책이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인기를 끌었거든요. 여기에 대해 박 홍 교수는 "인종차별을 주제로 한 이 책에 대해 한국 독자들이 공감한다는 게 인상적이었다"며 "'소수적 감정'은 어느 집단에서든 지배적 문화에 따른 억압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하지 못하고, 이러한 경험을 인정받지 못하는 모든 이들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 최근 박 홍 교수는 서울에서 열린 '2024 경향포럼' 대담 자리에서도 이와 같은 얘기를 했어요.

"성차별, 인종차별, 제국주의 등은 결국 자기 자신을 혐오하도록 한다. 이런 혐오와 차별이 어떤 심리적인 영향을 만들어내는지에대한 책을 썼다. 문제의 원천은 나를 고립시키는 사회이고, 이에 대해 인식하는 건 집단 행동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것이 마이너 필링스의 핵심이다."

도서출판마티 제공

📝 To. Flat ☕

👤 오늘 레터도 넘 재밌었어요🧤

👤 저출생 정책 결정권자가 전부 기득권 ‘개저씨’층만 아니었어도 이 사달까진 안났을거라 확신해요. 오늘도 잘 읽었습니다.!

👤 버닝썬 BBC 유튜브 썸네일을 처음 봤을때 부터 인것 같아요. 계속 속이 울렁거리고 모든 세상의 남자들이 너무 더럽게 느껴지는 거예요. (…) 그 뒤로도 하루가 멀다 하고 여성 살인사건들을 보고 듣고, 5.18 성폭력 피해자들의 수기, 밀양 성폭력 사건도 자꾸 눈에 띄고….썸네일만, 제목만, 단어만 봐도 즉시 어마어마한 구역감과 공포심을 느낀겁니다. 진지하게 정신상담을 찾아보고 있어요. 다들 한통속이라는 배신감, 바뀌지 않는 남성들, 언제든 나도 당하겠구나, 무력감, 피해자에 대한 공감, 트라우마가 된것 같아요… 그래도 오늘 플랫 레터에서 본 두 가지 장면이 저를 조금 편하게 만들어 주네요. 5일만에 1억 돌파….어떤 마음들이 모였는지 알거같아요. 그리고 자수 작품.. 외롭지만 당당하게 어딘가에 항상 있는 여성들 같아서 눈물이 핑 돌아요. 오늘 플랫레터, 정말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