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에서 어묵탕 끓이기

CAMPING COOKING

길바닥에서 요리하는 걸 이렇게 좋아할 줄 나도 몰랐지

지난 2월 말의 캠핑날, 저는 파쇄석 위에 깔아 놓은 돗자리에 명절날 전 부치는 사람처럼 철퍼덕 주저앉아 전 재료를, 아니 어묵탕 재료를 손질하고 있었습니다. 돗자리를 왜 깔았냐면 파쇄석은 전면 레고바닥이나 마찬가지라 맨발로 밟으면 죽기 때문이고, 테이블 놔두고 거기서 손질을 시작한 건 제가 거기 앉아야 아기가 편하게 드러눕기 때문이었는데요. 바람이 부는 가운데 엉덩이 깔고 앉아서 어묵을 꼬치에 하나하나 꿰면서 실감했습니다.

 

'이야… 내가 길바닥에서 요리하는 걸 이렇게 좋아할 줄은 몰랐는데.'

 

캠핑 요리는 지금까지 거쳐온 주방과 집밥을 집대성한 응용의 현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학 공식을 한참 배우면서 기초 문제를 푼 다음 이제 심화로 들어갈 순서인 거죠. 저의 직업은 푸드 에디터이자 요리 전문 번역가. 집에는 나름 오븐과 에어프라이어, 튀김기, 착즙기, 곰탕 냄비에서 무쇠팬과 토스터까지 저마다의 목적을 위한 각종 크기와 기능의 조리 기기를 갖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캠핑을 나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바람막이를 쳐도 불꽃은 흔들리고, 날씨가 추우면 이소가스의 화력이 점점 약해지기 시작하는데 흔들면 다시 활활 타올라요. 이 요리는 여러 화구와 냄비 중에서 어느 것을 선택하고 조합해야 가장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을지, 하필 딱 놓고 온 재료가 필수품일 때 – 팬케이크를 구워야 하는데 믹스도 달걀도 없다거나 – 바보 – 무엇으로 대체하면 만들 수 있을지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하게 됩니다. 생각보다 숯불을 피우고 유지하는 데에는 품이 많이 들고, 살아있는 야생의 불을 통제하면서 요리를 하려면 눈을 떼지 않고 위치를 조절해야 하기도 합니다.

 

이 모든, 말하자면 불편하고 따져보면 흥미로운 날것의 환경이 저의 요리 도전 정신에 불을 붙였습니다. 그거죠, 어떤 음식을 봐도 이 요리….. 캠핑에서는 어떨까?’ 생각하게 되는 상태. 저는 지금 캠핑카를 처음 인도받은 가을 이후로 캠핑 요리밖에 모르는 바보가 되어있습니다.

 

밖에서 먹으면 무엇이든 맛있다고 하잖아요. 물론 진짜로 직사광선을 받으면서 밥을 먹으면 한겨울에도 약간 정신이 혼미해집니다. 타프나 쉘터나 어닝이 꼭 필요한아니, 그건 그렇고. 지금까지 알던 요리를 이 새로운 환경 속에서 각종 궁리를 통해 만들어 내고 나누어 먹고 싶어서 지금 안달이 나 있는 상태입니다.

 

길바닥에서 요리하고, 나무 밑에서 함께 먹으며 다음 캠핑 끼니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요.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캠핑 요리 뉴스레터를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길게 쓸 생각이 아니었는데, 먹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즐거워서 어쩔 수가 없어요😅


CAMPING RECIPE

캠핑에서 어묵탕 끓이기

사실 이 어묵탕의 주인공은 물떡입니다. 부산 해운대 출신인 저에게 학창 시절 추억의 맛은 떡볶이도, 어묵도 아닌 물떡. 이건 정말 진한 육수에 오랫동안 푹 잠겨 있어서 퉁퉁 불어야 하기 때문에 집에서는 그 맛을 내기 힘들어요. 그래서 나름의 고민을 통해 캠핑에서 즐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1. 국물 내기

먼저 캠핑에서 육수를 직접 내는 분이 있다면 제가 존경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냄비에 모둠 어묵을 사면 들어 있는 시판 육수 가루를 넣고 물을 80% 정도만 붓습니다. 그게 아니면 압축한 동전 모양 육수처럼 가지고 다니기 편한 시판 육수를 넣어주세요. 그리고 여기에 국시장국이나 가쓰오장국, 쯔유 같은 가다랑어포+간장 계열 양념을 세 큰술 정도 넣습니다. 단시간에 물떡에 간을 하려면 국물 간은 센 편이 좋거든요.


  1. 어묵탕 재료 손질하기

우선 캠핑에서는 먹고 싶은 음식이 많으므로 무엇이든 다품종 소량 손질을 추구하는 것이 음식물 낭비를 줄이는 길입니다.

ᆞ원하는 어묵을 냄비에 들어가는 크기로 손질해서 꼬치에 끼워주세요.

ᆞ떡볶이는 밀떡파지만 물떡은 쌀떡이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쌀떡을 냄비에 들어가는 크기로 손질해서 꼬치에 간신히 끼웁니다.

ᆞ이제는 본인이 좋아하는 재료를 추가합니다. 그때그때 땡기는 재료가 무엇이냐에 따라 구성이 달라지는데요, 토마토도 껍질을 벗기려다 귀찮아서 그냥 넣었습니다. 국물이 조금 새콤해지는 효과가 있어요. 어묵탕 국물에 푹 익은 무도 별미죠! 두부, 삶은 달걀, 물만두 등도 뭉근하게 익어서 맛이 들면 먹기 좋습니다. 뭐든 최대 한 세 입 정도 크기로 손질해서 넣어주세요.

 


  1. 오랫동안 익히기

국물을 넣은 어묵탕 냄비에 손질한 재료를 넣고 불에 올립니다. 이때 사용하는 화구는 안정적으로 올려놓을 수만 있으면 뭐든지 상관없지만, 모름지기 어묵탕의 매력이란 추운 날씨에 분식집 비닐을 뚫고 폴폴 피어 오르는 은은한 김이죠.

팔팔 바글바글 끓지 않고 적당히 뭉근하게 뜨거운 상태를 유지하려면 화목 난로만한 가열원이 없습니다. 물론 부루스타나 캠핑 요리의 멀티플레이어 구이바다를 쓰셔도 괜찮아요. 그냥 약한 불에 천천히 뭉근하게 익어가는 상태를 유지해주면 됩니다. 국물에 재료의 맛이 퍼지기 시작하고, 무에 다시 국물의 맛이 배어들기 시작하고, 물떡은 서서히 1.5배 정도로 부풀면서 찹쌀떡처럼 말랑말랑해지기 시작하고그러면 이제 먹을 때가 된 겁니다.

 

  1. 먹기

저는 어묵탕 국물에 면을 말아 먹는 것도 꽤 좋아해서요, 우동면이나 생소면을 미리 삶아서 찬물에 헹궈 돌돌 말아 준비합니다. 이건 집에서 미리 해오셔도 돼요. 물을 편하게 쓰기 힘든 캠핑장에서는 쉽지는 않은 과정이거든요.

이제 양념장을 앞에 두고, 시에라 컵에 어묵탕 국물을 담고 소면을 말고, 어묵과 물떡과 국물에 푹 익은 채소를 번갈아 베어 물면서, 시원한 맥주 한잔과 함께 캠핑의 여운에 푹 빠질 시간입니다.

 

, 이 냄비는 이번 생일에 선물로 받은 유니프레임의 오뎅 냄비예요. 꽉 닫히지 않는 뚜껑이 있어서 어묵탕이 끓어 넘치지 않도록 데우기 좋습니다. 찾아보면 더 큰 냄비도 많은데, 앞서 말했듯이 캠핑을 오면 먹고 싶은 것이 많아서 저는 이 정도 크기가 딱 좋았어요.

CAMPING MOMENT

이것은 얼음인가 수프인가 두부인가

이것은 무엇인가이곳을 클릭하면 동영상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따뜻한 수프는 쌀쌀한 아침, 야외에서 먹기에 딱 좋은 메뉴입니다. 아직 초봄이라 식재료를 아이스박스가 아닌 바깥에 그냥 내놔도 문제없는 날씨였어요. 그래서 편의점에서 사온 생수병을 그냥 밖에 내놨지요. 아직 추워서 사방에 가볍게 서리가 내렸지만 물은 전혀 얼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냄비에 수프 가루를 탈탈 털어 넣고 생수를 콸콸 부은 다음 숟가락으로 휘젓는 순간! 어디선가 나타난 얼음 조각이 빙산의 일각처럼 쉴 새 없이 떠오르는 겁니다. 이건 뭐지??

 

사실 예전에 열심히 본 식탐정만화에,서 냉동실에서 얼지 않은 생수병에 충격을 주는 순간 꽝꽝 얼어버리는 과냉각이라는 현상이 있다는 건 주워들어서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 생수병은 들었을 때도 부었을 때도 변함이 없었고, 심지어 아직 생수병에 남은 물도 액체 상태였거든요. 그런데 수프 가루를 개려고 휘젓자 일부만 얼음이 되어서 계속 떠오르는 거예요. 이런 과냉각 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건 처음 체험했습니다.

 

이 놀라운 현상을 SNS에 올리니 트친분께서 초당순두부냐고 하시더라고요. 정말 어딘가 몽글몽글한 순두부 같기도 하고요? 오 그러고보니 캠핑 아침식사로 따끈하고 슴슴한 순두부에 양념장을 먹는 것도 매우 행복할 것 같습니다? 두부부터 만들어도 될까요? 그건 너무 일이 많을까. 저의 다음 메뉴 짜기는 보통 이런 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언젠가 강원도 캠핑장에서 아침 메뉴로 순두부를 차리는 제가 등장하기를 바라면서, 첫 캠핑 요리 뉴스레터를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의 뉴스레터는 여기까지

앞으로 하고 싶은 캠핑 이야기가 너무나 많습니다! 혼자 너무 신나버린 사람()

캠핑을 즐기시는 분도, 대리 만족을 원하시는 분도 모두 즐겁게 보실 수 있는 캠핑과 요리 에세이를 보내드릴게요. 주변에도 많은 추천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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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주 dksro4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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