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잠에서 깬 늦은 밤. 왠지 모르게 우리 집이 ‘우리 집’이 아닌 것처럼 느껴집니다. 벽에 걸린 그림 속 사람이 자꾸만 나를 보는 것 같고, 베란다에 일렁이는 옷들이 유령처럼 보입니다. 물을 마실까? 화장실을 다녀올까? 잠시 고민하다가 불도 켜지 않은 채 일어서는 그 순간! 누군가 등 뒤에서 나를 움켜잡을 듯한 두려움으로 덜컥 숨이 막혀옵니다. 다른 가족이 자고 있건 말건 후다닥 뛰어가 불이란 불은 모두 켜고, 아무것도 없음을 확인하고서 안도의 한숨을 내쉽니다.

"안녕하세요, 독자님!"
마음을 두드리는 이야기, 넉넉(Knock Knock)레터 김 피디입니다. 

여러분도 다들 한 번쯤 저런 경험이 있지 않나요?

익숙한 공간이 갑자기 낯설고 무서워질 때 말이에요.

 오늘 소개해드릴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일상과 맞닿은 오싹한 공포를 다룬 소설집, 『호러 픽션 나이트』를 소개합니다.

제가 문틈으로 뭘 봤는지 아세요?”

그날 새벽이었나, 자다가 갑자기 눈이 떠졌어요. 아마 화장실에 가려고 그랬을 거예요. 어두컴컴한 방을 손으로 더듬어가면서 나갔어요. 어차피 그렇게 넓은 집도 아니어서 굳이 불을 켤 필요는 없었거든요. 그렇게 거실을 지나 화장실에 가려고 하는데 어디선가 찹, 찹, 찹, 하는 소리가 들려왔어요. 뭐랄까. 걸음마를 막 떼기 시작한 아이가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내딛는 듯한 소리랄까. 어디서 나는 소리인가 싶어서 가만히 귀를 기울여봤어요. 그러자 또다시 찹, 찹, 찹 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거예요. 바깥에서 나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예전 제 방에서 나는 소리 같았어요. 혹시 언니가 내는 소리인가 했는데 문틈 새로 보이는 방은 어둠 그 자체였어요. 온 집 안이 깜깜했죠. 캄캄한 어둠 속에서 계속 찹, 찹, 찹, 하는 소리가 들려오는데 진짜 너무 무서워서 손가락 하나 까딱거리지 못하겠더라고요. 그치만 도저히 확인해보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언니가 걱정되기도 하고, 혹시 내가 꾼 악몽이랑 관련된 일인가 싶기도 해서요. 겨우겨우 용기를 내서 방문을 살짝 열어봤어요. 그때 목격한 광경이 저는 아직도 잊히지가 않아요. 제가 문틈으로 뭘 봤는지 아세요? 바로 물구나무를 서서 기괴하게 걸어가고 있는 언니의 모습이었어요.


- 『호러 픽션 나이트』, 「당신과 가까운 곳에」 중에서

  공포, 다가가기 어렵지만 매혹적인

 

납량특집이 조금은 시들해진 요즘, 예전만큼 TV나 극장가에서 공포 콘텐츠를 보긴 힘들지만, 그럼에도 공포는 우리 곁에 있습니다. 요즘에는 접근이 쉬운 유튜브 통해 공포 콘텐츠가 많이 나오곤 하죠. 저는 겁이 많은 편이지만, 희한하게도 무서운 이야기에 끌리더라고요. 무서운 이야기를 들은 날이면 자기 전 불을 켜둬야 하는 부작용(?)이 있지만요. 그런 걸 보면 공포가 인간이 지닌 가장 기이한 감정이라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닌가 봐요.

  놀래지 않아도 충분히 무서운


공포 콘텐츠를 좋아하긴 하지만, 징그럽고 피가 튀는 건 좋아하지 않습니다. 청소는 어떻게 할까 싶을 정도로 잔인한 죽음과 냉혈한 살인마 그리고 절로 비명이 나는 흉측한 귀신들로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건 별로 취향에 안 맞더라고요. 제가 좋아하는 공포물은 곱씹을수록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이를테면 흉가 체험이라든지, 운전하다가 본 귀신, 사람들이 사라지는 수상한 섬마을 등 실제로 겪을 법한 일상과 맞닿은 이야기들이요. 그런 오싹한 이야기들은 비명이 나오진 않지만, 잔향처럼 오랫동안 머릿속에 머물게 됩니다.

  포와 단편의 결합이 불러오는 시너지

 

『호러 픽션 나이트』가 바로 그렇습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이야기들은 겉으로 봐서는 호러와 먼 일상을 배경으로 펼쳐져요. 사람들이 실종되는 폐병원, 노인과 아이가 보이지 않는 기묘한 마을, 특이한 생물이 발견되는 바다, 미지의 존재가 감지되는 가정집 등 흥미로워 보이지만 무섭다고 딱히 여겨질 게 없을 설정이죠. 하지만 이야기를 따라 작가가 치밀하게 설계한 반전에 다다르면, 뒤늦게 스파크가 이듯 공포가 찾아옵니다. 태연히 지나온 길 곳곳에 무엇이 있는지 눈치챘을 땐 이미 깊은 공포에 빠져버린 자신을 발견하게 될 거예요.

  

한국 전통 기담이 보여주는 놀라운 세계

『삼개주막 기담회』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국의 전통이 녹아든 기담을 다룹니다. 지난 넉넉레터 <책으로 읽는 심야괴담회> 편에서도 무려 네 번째 기담 도서 출간을 맞아 소개한 적이 있죠. 

처음에는 삼개주막을 오가던 여행객들이 안주 삼아 풀어내던 소설 속 기담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점점 몸집을 불립니다. 마치 기담이 다른 기담을 불러오는 것처럼요.

미래 배우자의 얼굴을 그려주는 기이한 노인, 탐스러운 가체에 숨겨진 소름 돋는 비밀, 청나라에 팔려 간 소녀를 구해준 여인과 그 곁에 선 빨간 옷의 여자 등 주모의 아들인 선노미의 눈과 귀를 빌려 풀어내는 기담들은 하나 같이 기이할 뿐만 아니라 숨 쉬는 것도 잊을 만큼 흥미롭습니다. (각각 분홍색 문구를 클릭하시면 기담 동영상을 확인할 수 있어요!)

이처럼 기이하고 오싹한 이야기를 다루는 『삼개주막 기담회』이지만, 무서운 걸 싫어하는 사람들조차 부담없기에 기담 입문서로도 훌륭합니다. 재미는 두말할 것도 없고,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는 자극적이고 불쾌한 공포가 없거든요. 『호러 픽션 나이트』처럼요. 두 작품 모두 흥미로운 소재와 번뜩이는 반전으로 독자들을 유혹합니다. 두 작품 사이에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는지 살피며 책을 읽는 것도 또 하나의 즐거움이 될 것 같아요.

귀신은 자기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이번 넉넉레터에서는 호러, 미스터리, 판타지 등 다양한 장르를 능숙하게 다루며 여러 문학상에서 주목받고 있는 반고훈 작가의 호러소설 『호러 픽션 나이트』를 소개해드렸습니다. 이 책은 작가 특유의 능청스러움으로 그려낸 흥미진진한 전개와 이야기 곳곳에 숨겨진 은밀한 공포가 매력적인 작품이에요. 

책의 첫 번째 이야기와 마지막 단편이 이어지는 독특한 구조의 단편이 공포라는 장르를 만나 어떤 시너지를 불러일으키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예상치 못한 반전과 일상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소름 돋는 이야기를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호러 픽션 나이트』를 꼭 읽어보시라 추천하고 싶습니다. 분명 지금껏 알지 못했던 색다른 공포의 영역을 알게 될 거예요.

여러분은 살면서 기억에 남는 '무서운 일'이 있나요?

 독자님! 오늘 저희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오늘의 두드림에서 소개한 이야기들처럼 실제로 겪은 무서운 경험이나
사람, 물건에 관련된 이야기가 있을까요? 
오싹하고 소름 돋는 이야기라면 어떤 사연이든 들려주세요. 
더 나은 《넉넉레터》를 위해 FEEDBACK 꼭 부탁드립니다!
다음 주도 재밌는 소식으로 찾아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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