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 타카하시가 설립한 언더커버(Undercover). 영국의 펑크 문화와 일본, 미국의 팝 컬처가 함께 버무려져 있는 브랜드입니다. 2002년 파리 컬렉션에 처음 참가하여 주목을 받았으며 현재는 여성 라인 ‘undercover(언더커버)’, 남성 라인 ‘undercoverism(언더커버리즘)’, 그리고 슈(SUE) 언더커버, 존(JOHN) 언더 커버 등 세컨드 라인을 운영하고 있어요. 눈에 띄는 유니크한 프린트와 과감한 디테일의 옷들로 동시대의 스트릿 패션이 나아가는 방향을 제시하는 중이죠.

언더커버의 창립자, 준 타카하시는 1969년 9월 21일, 일본 구마현 큐리시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어린 시절은 만화와 음악 잡지로 가득했으며, 많은 시간을 어머니의 옷과 액세서리로 장난을 치며 보냈어요. 1970년에서 1990년까지는 일본의 격동의 시기였는데요. 서구 문화가 홍수처럼 쏟아져 들어오던 때였습니다. 준 타카하시는 당시 비비안 웨스트우드(Vivien Westwood)와 기타무라 노부히코(Nobuhiko Kitamura)의 패션 레이블 히스테릭 글래머(Hysteric Glamour)를 보며 처음 패션 세계에 눈을 떴어요.

준 타카하시는 1988년에 성인이 되어 도쿄의 패션전문학교 문화복장학원에 입학했습니다. 디자인을 공부하는 동시에 직접 록 밴드를 결성하여 단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는데요. 그 밴드 이름은 ‘도쿄 섹스 피스톨즈’. 영국의 펑크 록 밴드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에 대한 오마주였습니다. 그는 전공이었던 '패션'과 취미였던 '음악' 사이에서,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갈팡질팡했습니다. 그러다 평생 잊지 못할 기회를 맞게 되죠.

학창 시절 때 만난 친구가 끌고 간 '꼼 데 가르송(Comme des Garçons)' 패션쇼를 보게 된 겁니다. 당시 꼼데 가르송의 디자이너였던 레이 가와쿠보(Kawakubo Rei)의 패션쇼를 보고, 준 타카하시는 큰 감명을 받게 됩니다. 패션 디자인이야말로 창조 그 자체, 완전히 자유로운 무언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1989년에 친구 히노리 이치노세(Ichinose Hinori)의 도움으로 브랜드 언더커버(Undercover)를 설립하게 됩니다. 언더커버의 초기 제품은 대부분 타카하시가 직접 리메이크한 빈티지 티셔츠와 각종 피스로 구성되어 있었어요. 어린 시절 영향을 받았던 ‘펑크’와 ‘스트릿’이 섞인 묘한 디자인은 대중들의 관심을 빨리 불러왔고, 당시 유명한 하라주쿠 패션 숍이었던 빌리(Billy)나 밀크보이(Milk Boy)의 행거에도 점차 언더커버의 옷들로 채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일본 하라주쿠의 전설적인 브랜드라고 하면 바로 베이프(A Bathing Ape)인데요. 준 타카하시는 1993년, 베이프의 디자이너 니고(NIGO)를 만나 인연을 맺게 됩니다. 둘은 ‘Nowhere’라는 자그마한 스토어를 오픈했어요. 철조망을 기준으로 한쪽에는 언더커버 옷들을, 반대편에는 니고가 직접 큐레이팅한 상품을 진열하는 방식으로 운영한 숍이었지요. 니고와의 협업으로 언더커버는 점점 유명세를 타게 됐고, 준 타카하시 역시 팝 컬처 잡지인 타카라지마 매거진(Takarajima Magazine)에 칼럼을 기고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준 타카하시의 시작, 그리고 언더커버의 시작이었어요.

항상 그래왔듯, 언더커버는 펑크로 이어집니다. 특히 준 타카하시가 엑스 피스톨즈로부터 강하게 영향받았다고 직접 언급한 것처럼, 그의 디자인 대부분에는 펑크적인 맛을 볼 수가 있어요. 그러나 결코 ‘펑크로만 귀결된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언더커버 옷들에는 '순수 펑크’ 특유의 공격적인 요소들이 드러나지 않거든요. 

그는 펑크를 색다르게 바라봅니다. ‘일상적인’ 가정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펑크 정신이라고 말해요. 준 타카하시가 매일 달리기를 즐기고, 성실하고 꾸준한 일상 작업을 고수하는 이유죠. 그는 분노로 뭉친 펑크정신 대신, '본 적 있는 듯하지만 아무도 본 적 없는 옷’을 만들고자 온갖 감정을 녹여내는 데 힘씁니다. 장난, 익살, 비웃음부터 우아함과 정교함까지. 예술, 음악, 서브컬처 등 다양한 재료들을 활용하여 아낌없이 감정을 창조해요.

“펑크라는 건 정직하고 올바른 생각을 지닌 사람이 아니면 오히려 이해하기 힘들다. 펑크는 아웃사이더를 뜻하기도 하지만, 난 오히려 일반적인 삶을 펑크로부터 배웠다. 펑크라는 건 세간의 그릇된 시각에 저항하는 의견을 대변하는 거니까."

언더커버 디자인의 원천은 스트리트와 펑크의 줄다리기. 처음에는 젊은 층을 겨냥하였지만, 지금은 연령에 관계없이 도전적인 기질이 있는 개성 강한 이들의 마음을 울리고 있습니다. 너덜너덜한 소재, 과해 보일 수 있는 요소들을 세련되고 캐주얼하게 풀어내는 것이 언더커버가 가진 힘이에요. 가령 레이어드, 독특한 컬러 프린트, 페미닌 스타일, 그런지한 샤비룩 등의 각 테마에 맞추면서 여러 가지 수법을 시도하고 있어요. 그래서 언더커버는 마틴 마르지엘라, 꼼데가르송, 비비안 웨스트우드보다 훨씬 늦게 런칭했지만, 지금은 그들과 이름을 견줄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으며 세계적인 골수팬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귀엽지만 동시에 무시무시하고 아름답지만 동시에 거칠고 충격적이고 싶다."

시즌별로 티셔츠에 프린팅한 ‘U’로고부터 다운재킷에서 스웨터까지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독보적인 그래픽 디자인은 언더커버만의 분명한 차별점입니다. 언더커버의 시작점이 콜라주를 비롯한 실크 스크린 프린팅을 통해 시작되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 확실한 건 준 타카하시가 패션 디자이너인 동시에 뛰어난 그래픽 디자이너라는 점이에요. 가령 동료와 아파트 욕조에서 만들어냈다는 언더커버의 그래픽 티셔츠는 현재까지 사랑받는 아이템이죠.

늘 예상치 못한 이들과 손을 잡는 언더커버입니다. 헬로키티든, 슈프림이든, 유니클로(UU)든,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이든 장르를 넘나드는 협업으로 기존의 카테고리에 얽매이지 않는 활동을 하고 있어요. 그중에서 에디터인 제가 개인적으로 감명받았던 컬렉션을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2019년 1월 16일, 발렌티노의 쇼장에 언더커버의 디자이너 준 다카하시가 모습을 드러냈는데요. 2시간 후 언더커버의 쇼가 펼쳐질 예정이었지만 그 바쁜 시간을 쪼개어 발렌티노의 쇼를 찾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2019 FW 발렌티노 x 언더커버 협업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발렌티노의 디렉터 파올로 피치촐리(Pier paolo piccioli)는 도쿄 컬렉션을 위해 언더커버의 준 다카하시와 만났는데, 잠깐의 인사는 꽤나 깊은 대화로 이어졌어요. 이내 그들의 공통 관심사를 바탕으로 한 그래픽을 디자인하여 다가오는 패션 위크를 통해 동시 발표하기로 합의하게 됩니다.

언더커버와 발렌티노의 두 수장이 공통적으로 겹치는 관심사를 프린팅으로 표현해낸 컬렉션. '과거와 미래'라는 주제를 바탕으로 '시간'이라는 심오하면서도 방대한 심상을 컬렉션에 잘 녹여냈습니다. 언더커버의 U와 렌티노의 V를 결합한 VU로고, 시간 여행에 영감을 준 미국의 작가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er)'와 UFO,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시계태엽 오렌지(A clockwork orange)' 속 베토벤의 9번 교향곡 이미지까지. 커다란 프린팅과 미래에서 온듯한 핏과 텍스처는 모던하면서도 날것의 느낌이 묻어나는 느낌인데요. 동일한 그래픽 디자인들은 언더커버와 발렌티노의 정체성에 맞게 자유롭게 변형되어 등장한 모습. 똑같은 그래픽이, 각 브랜드의 색깔에 맞게 다른 모양새로 쓰인 것이 참 재밌지 않나요?

스트릿 패션으로 시작했지만 점차 창의적 발상으로 자신만의 컬렉션을 만들어가는 언더커버. 이번에는 칼로 베인 것처럼 보이는 양복, 드레스, 그리고 캐주얼한 옷들로 특별한 감정을 전달해왔습니다. ‘꿈’, ‘천사’, ‘사랑’이라고 쓰인 티셔츠와 청바지, 치노팬츠를 입은 모델들은 어깨 위에 살포시 플로럴 브로치를 꽂은 채로 등장했는데요. 독특한 컷팅 기법과 변형된 절개, 캐주얼 재킷은 실용성마저 갖추고 있었으니. 희망 가득한 미래의 패션은 과연 이러한 모습일까, 궁금증을 가지게 됩니다. 신선함과 창의력을 두루 갖춘 이번 2023 컬렉션을 함께 보시길.

믹스매치가 한눈에 보이는 룩. 숄더 쪽 컷아웃과 사이드 슬릿 디테일이 포인트인 크롭 MA-1 점퍼, 그리고 섹시한 스커트는 각기 다른 무드를 지향하는데요. 그러나 스커트의 와이드한 스팽글 블록과 원단을 늘어뜨려 레이어링한 디테일이 ‘시크함’이라는 키워드와 맞물려 자연스레 돌아가는 느낌입니다. 전혀 다른 무드의 아이템들의 조합이 신선하고, 러블리하지만 또 묘한 느낌. 아우터의 슬릿 디테일과 비슷한 앵클부츠도 룩을 더 멋있게 만들어주는 듯합니다. 

언더커버의 옷들은 펑크하지만, 사실 이렇게 사랑스러움 한 방울을 머금고 있는 게 포인트입니다. 한쪽 어깨만 언밸런스하게 컷아웃한 뒤 레이스로 마감하고, 플로럴 브로치로 포인트를 준 레드 블레이저-팬츠 셋업은 섹시하고 유니크한데요. 

수트 셋업은 자칫 포멀하거나  오피스룩으로만 입어야 할 것만 같은 프레임이 있지만, 컷아웃 디테일과 레이스 원단을 활용해 전혀 다른 공식인, ‘섹시+러블리+시크’로 연출시켰다는 점이 관점 포인트입니다. 마무리로 블레이저 라펠을 세워서 스타일링한 것은 눈여겨볼 만한 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