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전에도 그런 질문이 있었어서 그다지 낯설지가 않네. 질문 받은 그 당시 흐름에 따라 답변했던 것 같아.

한창 친구가 좋았던 시절에는 단짝과 간다고 했고, 밤새도록 수다떨며 살겠다고 했어. 더 나아가서는 실용적으로 대답했던 것 같아. 근데 원시인처럼 살겠다고 작정했는지 성냥 한 통 가지고 가겠다는 사람은 있었어도, 남자친구랑 가겠다는 사람은 없었던 것 같아. 책을 한 다발 들고 가겠다고 답변한 적도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무슨 생각으로 그 무거운 걸 들고 가겠다는 건지 참 순진무구했던 것 같아. (그냥 e-book 하나면 되는데 말이지...ㅎ)

느그들 키울 때 그 질문 받았으면 아마 안가겠다고 대답했을 것 같아. 그냥 여기서 함께 죽고 말지 뭐... 지금은 아마도 추상적으로만 생각하면 스맛폰이 대세겠지만, 실리적으로 생각해보면 무인도라서 충전도 안되고, 와이파이도 터질지 모르니 별 이용가치가 없을듯 해. 단순히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가져가면 되는데, 나이 먹어서인가 자꾸 현실적으로 생각해보게 된다.

지금 무인도에 딱 한 가지만 가져가야 한다면, 아주 어린 강아지 한 마리 데리고 가야겠어. 자그마한 생명을 돌보기 위해 열심히 먹이를 구할 테고, 같이 껴안고 있으면 춥지도 외롭지도 않을테고, 사람처럼 징징대고 귀찮게 하지 않겠지. 너무 실리적이지 않니?

강아지가 사람처럼 징징대고 귀찮게 하지 않는다라,,, 쉴새 없이 짖어대는 깐돌이를 볼 때면 가끔은 차라리 사람이 낫다는 생각도 하는데 엄마는 역시 대단해.

이런 보편적인 질문에도 역시 사람 성향이 다 나오네. 엄마는 엄마가 돌볼 무언가가 있는 것이 삶의 의미잖아. 나는 늘 그렇듯 이 세상의 진리를 깨닫는 것이 삶의 의미이기에.... 성경을 한 권 챙겨갈래. 성당에 열심히 다니던 그 당시에도 제대로 읽어본 적은 단 한번도 없었지만, 그래도 성경이 얼마나 대단한 경전인지는 아주 잘 알고 있지.

성경을 대하는 관점은 매우 다양하대. 문학적인 관점, 역사적인 관점, 철학적인 관점 등등... 아무래도 나는 철학적인 관점으로 성경을 대하게 되겠지만, 어찌되었든 성경만 한 권 가져가도 무궁무진한 사유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 성경에 대한 재밌는 정보들이 궁금하다면 '일당백(일생동안 읽어야 할 백권의 책)' 이라는 유튜브 채널에서 성경에 대해 토론한 영상/팟캐스트를 추천해.

무인도에 떨어진다 했을 때 내가 가장 두려운 건 내가 외로움에 미쳐버리는 거야. 원래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니 혼자 고립되었다는 사실은 사람을 한없이 나약하게 만들거든. 그래서 사람과의 교류가 없다면 이 세상과의 연결성을 강화하는 수밖에 없어. 왠지 성경 한 권만 죽도록 읽어도 눈을 감는 순간까지 끊임없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 유일신을 믿는 편은 아니고, 성경의 가르침때문에 과거에는 잔혹한 전쟁이 많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어차피 무인도에는 전쟁을 일으킬 사람도 없을테니 만일 내가 성경을 읽고 나서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된다 해도 문제될 건 전혀 없잖아?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며, 의식을 가진 유일한 존재로서 궁극적으로는 다른 이 세상 모든 요소들과 어우러지는 것이 무인도에서의 내 소명이 될 것 같아. 그 무엇도 바라지 않고 흐르는 파도처럼 나의 삶도 자연의 섭리에 맡기는 것, 그게 결국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