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진이 조사한 한 기술기업에서는 활발한 토론을 장려한다는 캐치프레이즈를 갖고 있었는데요, 그래서 그런지 리더들은 회의 중에 서로의 말을 끊는 행동을 열정적인 토론의 증거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직원들은 전혀 다르게 받아들였죠. 기존 의견에 반대하는 발언이 자주 끊겼고, 이런 상황을 제지하는 사람도 거의 없었습니다. 리더들에게는 활발한 토론이었지만 직원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제약이었던 것이죠.
더욱 심각한 문제는 발언을 자주 가로채기당한 직원들이 자신의 행동을 바꾸기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의견을 짧게 말하거나, 발언하기 전에 변명부터 늘어놓거나, 상사가 발언권을 줄 때까지 기다리는 식이죠. 이런 자기검열이 반복되면 직원들은 회의에서 무엇을 말해도 되고 무엇을 말해서는 안 되는지를 저절로 학습합니다.
이것이 바로 조직문화가 형성되는 과정입니다. 조직문화는 벽에 걸린 '사훈'이 아니라 직원들이 매일 반복하는 행동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아무리 심리적 안전감을 강조해도 회의에서 반대 의견을 끝까지 말하기 어렵다면 그 조직에 심리적 안전감이 있다고 보기 힘들죠.
발언 가로채기는 의사결정의 질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연구진의 관찰에 따르면, 중간에 끊기는 의견 중에는 위험이나 윤리적 문제, 장기적인 영향을 지적하는 발언이 적지 않았습니다. 회의가 신속하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여도 정작 중요한 정보가 논의에서 배제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고 회의 중 다른 사람의 말을 끊는 행위를 모두 금지해야 할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발언을 가로채는 것이 협력이나 열정의 표현일 수 있으니까요. 중요한 것은 누가 반복적으로 말을 제지당하고, 그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입니다.
연구진은 회의에서 발언 시간을 기계적으로 똑같이 배분하는 것보다 발언권을 보호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조언합니다. 누군가의 말이 중간에 끊겼다면 리더는 "잠시만, 김대리의 말을 끝까지 들어보자"라고 말하면 됩니다. 회의 진행 속도를 조금 늦추고, 회의 사회자를 돌아가며 맡는 방법도 도움이 되죠.
조직문화가 좋은지 알고 싶다면 거창한 설문조사를 하기 전에 회의실부터 살펴보세요. 누가 거리낌 없이 말하고, 누가 머뭇거리며, 누구의 말이 반복적으로 끊기는지 관찰하는 겁니다.
오늘 회의에서는 누군가의 발언이 끊기는 순간, 그 사람에게 말을 마칠 기회를 돌려줘 보세요. 이런 행동이 직원들에게는 어떤 조직문화 선언문보다 강력한 메시지가 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