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ㅣ 아이들과 갈등이 있을 땐 어떻게 해결하세요?
희경ㅣ 저는 내버려 두는 편이에요. 화가 날 때는 일단 그 상황을 피해요. "엄마 지금 너무 화가 나니까 조금 있다가 얘기하자"라고 얘기해요. 회피가 아니라 잠시 서로의 시간을 가지는 거예요. 아이의 감정도 나의 감정도 존중하는 거죠. 가끔은 아이가 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리기도 해요. '너 버르장머리 없이 무슨 행동이야! 이리 나오지 못해'라는 말이 턱끝까지 차오를 때도 있지만 그때 부딭혀서 아무것도 얻을 게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 순간을 잠시 벗어나요.
엄마라는 존재는 아이들이 어떠한 상황에서 무엇을 던져도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설사 그게 나한테 상처가 되는 물건이라도 기꺼이 받아야 하는 게 엄마가 해야 할 일인 거죠.
그게 당연히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면 화낼 일도 별로 없어지더라고요. 어떤 사람들은 제가 이렇게 말하면 그렇게 다 받아주면 애들 버르장머리 없어진다고 하기도 해요. 그런데 절대 그렇지 않아요.
지혜ㅣ저도 아이들한테 많이 허용해 주는 부모인 편인데요, 혹시 내가 이렇게 다 허용해주면 버릇없는 아이가 되지 않을까?라는 걱정이 되더라고요. '집에서는 이렇게 다 받아주는데 세상에 나가면 허용되지 않는 일이 더 많을 텐데... 적응을 못하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내가 이렇게 하는 게 맞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때가 많아요.
희경ㅣ맞아요 지혜씨가 무슨 말 하는지 알아요. 저도 똑같이 그런 불안함이 있었어요. 내가 이렇게 하는 게 맞을까? 너무 허용해 주는 거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아이들이 커서 학교에 가고 선생님들이 우리 아이들에 대해서 해주는 긍정적인 얘기를 들으면서 '내가 틀리지 않았구나, 내가 맞았어'라고 깨달았어요. 어느 날은 후석(둘째 아들)이가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엄마 나는 집에 오면 뭐든지 할 수 있잖아. 나는 집에 오면 다 되잖아~!"
이렇게 '집에서 뭐든지 다 할 수 있어'라는 생각이 있으니까 아이들이 밖에서 거절당하거나 허용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굳이 애달파하지 않더라고요. 아이들이 클수록 더 느꼈어요. 한 가지 얘를 들자면 저는 성에 대한 얘기도 솔직하고 편하게 하는 편이에요. 그러니까 오히려 옳고 그름에 대한 가치관을 스스로 건강하게 만들어 가는 것 같아요. 뭐든지 숨기고 못하게 한다고 안 하는 거 아니에요. 우리도 다 겪어봤잖아요.(웃음)
지혜ㅣ 내 아이들이 행복하다고 생각하시나요? 그 행복은 어디서 왔을까요?
희경ㅣ 네.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그 행복은 아이들이 스스로 만든 것 같아요. 저는 울타리가 되어줬을 뿐이고 그 울타리 안에서 아이들이 만들어 온 거죠. 스스로 행복할 줄 아는 아이들이라서 너무 감사해요.
지혜ㅣ 행복한 아이로 자라게 하기 위해서 엄마가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을까요?
희경ㅣ 그럼요. 최대한 말을 아끼고 믿어주고 기다려 주는 거요. 기다림은 아주 사소하고 작은 것부터 시작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밥 먹어~" 했는데 안 나오면 잠시 기다려주는 거예요. 잠깐 기다리는 거 어렵지 않잖아요.
지혜ㅣ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기다려 주라는 거군요?
희경ㅣ맞아요.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믿고 기다리면 아이들은 언젠가는 와요. 잔소리하지 않고 기다려 주면 아이들이 크면서 다 알더라고요. 엄마를 보고 배우는 거예요. 어느 날 큰 아이가 할머니니 집에서 자고 왔는데 어머님이 전화 와서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후경이 고 계집애 야무지더라. 자기 자고 일어난 방 깨끗하게 정리해놨더라" 제가 아이들에게 방 치우라는 잔소리는 하지 않지만 아이들 방은 항상 깨끗이 정리해놓거든요. 그래서 또 깨달았죠. '아. 내가 집에서 굳이 닦달하지 않아도 아이들이 다 보고 배우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혜ㅣ 희경님 보면 정말 아이들과 가까운 친구처럼 지내는데요, 특별한 비결이 있나요?
희경ㅣ 가깝긴 하지만 친구 같은 부모라는 말은 부모의 착각이고 욕심인 것 같아요. 부모와 자식 사이에는 아무리 가까워도 지켜야 할 선이 있고, 아이들이 알아서 그 선을 넘지는 않더라고요. 성인이 되어가면서부터는 더욱더 그렇고요. 그런데 그걸 서운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아이들이 나한테 100퍼센트 모두 다 얘기하지 않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거죠. 저는 항상 아이들이 '이만큼이나 얘기해줘서 참 고맙다'라고 생각해요.
지혜ㅣ그래도 희경님을 보면 평균적으로 봤을 때 아이들과 정말 가까운 엄마인 것 같은데. 비결이 있을 것 같아요.
희경ㅣ 음.. 비결은 '쉬운 엄마'요! 저는 정말 쉬운 엄마거든요. 제가 아이들한테 쉬운 엄마인 게 너무 좋아요. 쉬운 걸 넘어서서 헤프죠.(웃음) 저희 아이들은 세상에서 제가 가장 쉬울 거예요. '우리 엄만 세상 쉬운 사람이야'라고 생각할걸요. 장난처럼 말하지만 이게 저희 집에서는 나쁜 의미가 아니에요. 저희 아이들은 어떤 상황에서든 '일단 엄마한테 한번 얘기해 보자'가 먼저에요. 전 그게 너무 좋고요.
지혜ㅣ오. 쉬운 여자 말고 쉬운 엄마. 너무 좋네요 :)
지혜ㅣ아이들 교육에 있어서 꼭 지키고 싶은 가치관이 있나요? 또는 바른 아이로 자라게 하기 위해서 엄격히 지켜온 가치가 있나요?
희경ㅣ예의 있는 사람이 되는 거요. 그런데 엄격하다고 말하는 게 좀 안 어울리긴 해요. 왜냐면 내가 보여주는 거지 그걸 '너 이렇게 해!' 하고 가르치려고 하진 않았어요. 내가 먼저 좋은 어른이 되는 거죠. 보여주려고 하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이 그런 사람이 되는 거예요. '엄마가 이렇게 하니까 너도 보고 배워'가 아니고 내가 가르치고 싶은 게 있다면 내가 먼저 그런 사람이 되는 거, 거기까지가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지혜ㅣ예의 얘기하시니까 제 고민이 하나 생각났어요! 저희 아이들도 낯을 많이 가려서 어른들을 봐도 인사를 안 하고 대답도 잘 안 하거든요. 그걸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 많이 고민이 됐었거든요. 근데 희경님 얘기 들으니까 깨달음이 왔어요.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만 생각했지 내가 보여 줄 생각은 해보지 못했어요.
희경ㅣ맞아요. 내가 하면 돼요. '다른 사람들이 내 아이를 버릇없게 보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면 남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전혀 그럴 필요 없어요. 사람들은 생각보다 남의일에 관심이 없고 아이들에게 버릇없다고 욕하지 않아요. 그 부모를 보죠. 그저 부모인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면 되는 거예요.
지혜ㅣ 후경이와 후석이 모두 대학생이 됐는데요 둘 다 자신이 좋아하는 공부와 일을 향해 잘 나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아이들이 좋아하고 잘하는 걸 찾아가는 과정에서는 어떤 도움을 주셨어요?
희경ㅣ 아이들 꿈을 찾는 과정 참 어렵죠. 요즘 부모님들이 그런 말 많이 해요. '애가 좋아하는 것도 없고 꿈도 없어요' 그런데 그런 꿈을 자른 건 부모일지도 몰라요.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무조건 공부하라고만 하잖아요. 남들이 다 하는 거니까 그냥 하라고만 하죠. 아이들이 뭘 좋아하고 뭘 할 때 행복해하는지 관심 있게 보지 않고 그저 내가 생각하는 성공에만 집중하는 것 같아요.
저도 아이들 꿈에 관련된 일화가 하나 있는데요 '내가 크게 잘못 생각하고 있었구나'하고 깨우쳤던 일이 있어요. 저희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첼로를 배웠어요. 재능도 있었고 열심히 했어요. 서울 심포니 저학년부에서 1등을 하기도 했었죠. 그러다 어느 날 취미로 방과 후에 야구를 하게 됐는데 아이가 야구를 너무 좋아했어요. 그런데 저는 운동선수가 싫었어요. 엄마 마음이 다 그렇죠. 직업에 귀천을 따지는 건 아니지만 땡볕에서 하루 종일 땀 흘리고 힘들게 몸을 쓰는 직업보다는 조금 더 편안하고 힘들지 않은 일을 했으면 했어요. 그래서 아이의 꿈을 포기하게 하기 위해서 설득하려고 여행을 떠났어요. 그 여행에서 둘째 아이가 울면서 얘기하더라고요.
"엄마 나는 야구할 때가 제일 행복해"
그 순간 제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졌어요. 아이에게 사과하고 그 후로는 옆에서 최선을 다해 도와줬어요. 그렇게 후석이는 지금 행복한 야구선수가 되어 있죠.
지혜ㅣ아이들이 생각하는 엄마로서의 희경님의 모습은 어떨 것 같아요?
희경ㅣ그냥 쉬운 엄마요. 뭘 해도 다 받아주는 사람. 아이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제가 느끼는 건 그래요 :)
지혜ㅣ 희경님은 행복하신가요? 어떤 순간에 행복하다고 느끼세요?
희경ㅣ 현실적인 상황들만 보면 벅찰 때도 있고 힘들 때도 있어요. 그래서 항상 '나 너무 행복해' 이렇게 느끼진 않지만 이런 생각은 해요. '나는 참 많이 가진 사람이다, 이만하면 됐다, 참 감사하다.'라고요.
물질적인 걸 떠나서 아이들이 집을 좋아하고 엄마를 찾아주는 순간순간이 행복인 것 같아요. 밖에서 지치고 힘들 때 생각나는 사람이 '엄마'라는 사실이 참 고마워요.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엄마가 공허함을 느끼는 건 사실이긴 해요. 크면 클수록 방에서 잘 나오지도 않고 딱히 뭘 엄마랑 같이 하지는 않거든요. 하지만 한 공간에 그저 공기처럼 엄마랑 함께 존재하고 있다는 걸 좋아하고 편안해하는 거 자체가 저에겐 큰 행복이에요.
지혜ㅣ희경님이 생각하는 행복은 무엇인가요?
희경ㅣ편안함이요.
지혜ㅣ희경님이 생각하는 성공은 무엇인가요?
희경ㅣ그것도 편안함이요. 편안하면 성공한 거 같아요. 침대에 누웠을 때 이런저런 걱정거리들만 생각이 난다면 돈이 아무리 많아도 그게 성공일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지혜ㅣ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기 위해 꼭 필요한 배우자의 조건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희경ㅣ성실함이요. 결혼생활은 사랑만으로 되는 건 아니더라고요. 내가 만든 가정에 대한 꾸준하고 성실한 책임감. 이건 꼭 필요한 배우자의 조건이라고 생각해요. 성실함과 꾸준함이 결국 그 가정에 제가 생각하는 행복인 '편안함'을 가져다주는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