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시.사 레터 68회 (2022.08.24)

저 어제부터 1일이에요!

🤷 누구랑요?

🙆 ‘문학동네’랑요!


안녕하세요, 문학동네 마케팅팀 김수인입니다. 

불과 삼 개월 전까지만 해도 한 사람의 독자에 지나지 않았던 제가 이런 문장으로 저를 소개하다니 새삼스럽습니다. 무사히 수습 기간을 마치고 정식 마케터로의 출발선에 서 있는 이 시점에, 시를 사랑하는 독자분들과 글을 나눌 수 있다는 게 어찌나 경이롭고 벅차오르는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문학동네의 오랜 팬과 이제 막 첫발을 내디딘 직원, 그 경계 어디쯤에 서서 마음 깊이 아끼는 시 두 편을 꺼내봅니다. 

💚김수인 마케터가 사랑하는 첫번째 시💚

 

플랫폼 (이다희, 『시 창작 스터디』 )


긴 복도를 따라 걷는 발걸음이 있다

발소리가 길게 따라붙는다


홀로 걷는 사람은

자신의 발소리를 자신만 듣는다


복도는 항상 어디쯤이어서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는 일이

여기가 어디인지 묻는 물음이

미궁에 빠진다


자신의 발소리를 자신만 듣는 일이

자신의 울음소리를 자신만 듣는 일과

어떻게 다른가


복도가 휘는 것은

시간이 흐른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긴 것에 대한 착시일 뿐이라고


어디에나 있는 복도가 어디인지 묻는 일이

얼마나 치사한가


아무도 복도에서 생활하지 않고

걸어오다 문득

사라지는 사람이 있다


햇빛이 복도를 오래 사랑했다

일상의 언어를 작품 속에서 발견할 때 작품의 세계와 나의 세계 사이가 한 뼘 가까워지는 걸 느낍니다. 『시 창작 스터디』를 처음 만났던 계기는 함께 ‘시 창작 스터디’를 하는 친구들의 추천이었습니다. 시를 쓰는 과 동기들과 함께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서로의 창작 시를 합평하거나 인상 깊었던 시 구절을 나누는데, 어느 여름날 “이번 시인선 제목이 ‘시 창작 스터디’더라. 우리가 꼭 읽어야 하는 시집이야!” 하고 한 친구가 웃음을 머금으며 이야기했습니다. 스터디가 끝난 후 저는 그 길로 서점으로 달려가 시집을 샀습니다. 다음달 스터디에서 저는 친구가 지었던 표정을 하고 말했습니다. “이거, 우리가 꼭 읽어야 하는 시집이야.”

삶이란 각자의 플랫폼에서 기나긴 복도를 향해 홀로 걷는 일이 아닐까요. 매일 잠을 자고 일어나서 먹고, 마시고, 움직이며 각자의 리듬에 맞춰 ‘발소리’를 만들어냅니다. 이 일련의 과정을 우리는 일상이라고 부릅니다. 시시하게 반복되는 일상의 틈을 비집고 문득 ‘물음’ 하나가 떠오릅니다. 인생이 원래 이런 것이냐고요. 주위를 둘러보면 다들 신나게 달려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나만 홀로 부유하는 기분이 듭니다. 시간 한가운데 우두커니 멈춰 방향을 상실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어두컴컴한 “미궁에 빠집”니다. “자신의 발소리를 자신만 듣는 일"과 "자신의 울음소리를 자신만 듣는 일”은 인간이 원초적으로 느끼는 외로움이 아닐까요. 

불이 꺼져 텅 비어 있는 복도를 혼자 타박타박 걷는 듯한 이미지는 마지막 연에 다다라 반전됩니다. “햇빛이 복도를 오래 사랑했다”, 미궁 속에 빠져 길을 잃고 헤매던 순간 드리워진 빛줄기가 여름날의 석양처럼 오래도록 부서집니다. 이 ‘햇빛’ 덕에 우리는 앞을 보고 다시 걸어나갈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읽는 사람에 따라 제각기 다른 의미로 존재하겠지만, 제게 햇빛은 삶 속에 녹아 있는, 크고 작은 온기들입니다. 곁에 있는 사람들과 주고받는 따뜻한 말 한마디와 미소, 마음을 울리는 시의 구절들 같은 사소한 것들이 때로 오늘의 걸음을 지속하게 하는 힘이 되어주기도 하니까요.

  💛막간 우.시.사. 소식💛
📹시인들의 인스타그램 라이브 다시보기📼
지난 두 달간 문학동네에서는 인스타그램에서 '동네 라이브'를 진행했습니다. 서효인, 박판식, 정재학, 이원석, 박승열 시인이 자리를 함께 했는데 <우시사> 구독자분들에게는 모두 익숙하지 않나요? 😌 아래 라이브 다시보기 링크를 드릴게요. 웃느라 배가 아팠던 1회부터 3인3색 시인열전이었던 4회까지 잔잔하면서도 유쾌한, 감동적인데 재밌는 시인들의 시 이야기, 함께 봐요! 

✔️1회차 <시인도 이렇게 웃길 수 있다?! 서효인 시인의 포복절도 라이브> (07.07)
서효인 시인 『나는 나를 사랑해서 나를 혐오하고』 (w. 김복희 시인) 다시보기

✔️2회차 <투 박PARK의 라이브 신고식> (07.21)
박판식 시인 『나는 내 인생에 시원한 구멍을 내고 싶다』 (w. 박상수 시인) 다시보기

✔️3회차 <시인이기 이전에 아빠입니다> (08.04)
정재학 시인 『아빠가 시인인 건 아는데 시가 뭐야?』 (w. 이재훈 시인) 다시보기

✔️4회차 <3인3색 시인열전> (08.18)
이원석 시인 『엔딩과 랜딩』, 박승열 시인 『감자가 나를 보고 있었다』 (w. 박연준 시인) 다시보기

아직 동네 라이브는 끝나지 않았어요! 8월 25일부터는 소설가와 편집후기로 독자 여러분을 찾아뵐 예정이랍니다. (feat. 이주란, 김멜라 소설가) 그럼 목요일에 만나요🤩
💚김수인 마케터가 사랑하는 두번째 시💚

어느 별의 편지 (이윤설, 『누가 지금 내 생각을 하는가』 )


우리는

사막의 절반을 지나왔으니

이 기후가 바뀌어도 이젠 좋겠다 우주는 먼 시간을 돌아 순환한다는데

화석이 부서져내리며

이제는 내 차례가 되어도 좋겠다

하늘이 준 눈물과 마른 땅이 고요히 입맞춤하는 계절이 나의 별에 시작되어도

좋겠다 그 사막의 폭풍이 지나가는 길에

나는 죽은 나뭇가지로 모래에 귀를 대고 누워 있었으나

누운 채로 오래도록 뜨거운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고

최초의 나무가 시작되는 것을

당신이 숲이 되어 치마를 끌고 나와

그 치마폭에 나를 주워가줄 것을 알고

내 가지는 내 뿌리가 될 것을 알고

떠났던 잎들과 비와 향기로운 바람과 함께 당신이 오기 쉽도록

모닥불을 피우고 별은 양치기를 찾아 줄지어 떠나가는 하늘 아래

이 사막은 모래를 모두 쏟아버리고 맑은 유리잔 같은

밤하늘 북극성 아래 내가 누워

이렇게 너를 기다려도 좋겠다

“취업 준비는 짝사랑 같아.”

친구와 함께 지원 서류를 준비하다가 나도 모르게 뱉은 말이었습니다. 어쩐지 자기소개서가 연서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를 나타낼 수 있는 표현 중 가장 좋은 말을 고르고, 내가 가진 매력들을 한껏 끌어모아 구애의 몸짓을 펼치지만 결국 돌아온 대답은 ‘불합격입니다’. 나도 어디서 꿀리지 않는다며 분노하다가도 내가 부족한 탓이었겠지 체념하고, 선택받은 자들을 질투하고 그런 내 모습에 초라함을 느낍니다. 기다림은 시대를 막론한 보편의 정서이지만 ‘취준’ 기간의 기다림은 더 짙은 농도를 띠는 듯합니다. 문학동네 채용 전형 서류를 제출한 어느 날, 머리 식힐 겸 집 근처에 있는 무인 서점에 갔다가 『누가 내 생각을 하는가』를 만났습니다. 「어느 별의 편지」를 얼마나 읽고, 또 읽었는지 모릅니다. 

물기 없이 버석버석한, ‘사막’과 같은 날들을 견디다보면 자연히 비를 꿈꾸게 됩니다. “하늘이 준 눈물과 마른 땅이 고요히 입맞춤하는 계절”이 오길 기대합니다. 그리하여 오랫동안 품고 있었던 ‘죽은 나뭇가지’가 생명을 품을 ‘뿌리’가 되리라 믿습니다. 아마 “모래에 귀를 대고 누워 있는” 동안 죽은 듯한 나뭇가지의 쓸모에 대해 무한히 질문했겠지요. 세상을 유용함과 무용함, 자로 잰 듯 두 개의 가치로 분류하는 기준에 자기 자신을 끝없이 대입하며 자신의 쓸모없음에 실망하고 상처받았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나뭇가지는 오랜 기다림 끝에 마침내 쓸모를 찾을 겁니다. 시간이 오래 흘렀을지언정 더 많은 잎을 틔우고 향기로운 바람이 머무는 풍경을 만들어내리라 생각합니다. 기나긴 기다림 끝에 “모래를 모두 쏟아버리고 맑은 유리잔 같은/ 밤하늘 북극성 아래”에 존재하는 순간 속에 서 있을 터입니다. 

집으로 돌아와 일기장에 시를 적어두고 마지막 연 밑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답장을 받는 5월이 되었으면 좋겠다”라고요. 목마름에 허덕이던 저는 초록빛이 가득하던 5월의 어느 날, 문학동네로부터 답장을 받았습니다. 지금 사막 속에서 기약 없는 기다림을 계속하고 있는 모든 분에게, 머지않아 ‘죽은 나뭇가지’도 ‘최초의 나무’로 시작되어 울창한 ‘숲’을 이룰 거라는 말을 건네고 싶습니다.   

📢 다음주 <우리는 시를 사랑해> 시믈리에
다음주 아름다운 시 두 편을 추천해줄 시믈리에는 교보문고 일산점의 문학담당자 김혜리 대리입니다. 교보문고 문학코너 담당자는 어떤 시집을 읽을까요? 다음주 수요일, 두 편의 시와 함께 만나요! 
💛우.시.사의 시믈리에가 되어주실 분 🙋‍♀️💛

우시사 독자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시가 있다면 아래 링크의 양식을 작성해 제출해주세요. 차곡차곡 쌓아두었다가 하나씩 꺼내어 우시사 독자분들께 대신 소개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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