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의 커피, 좋아하시나요?

비 오는 날 마시는 커피가 더 맛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했다는 신상 카페 호우주의보는 살라댕방콕, 청수당, 온천집 등을 전개하고 있는 것으로 잘 알려진 글로우 서울이 오픈한 신규 공간입니다.

건물 입구의 마당에는 공간의 이름처럼 호우주의보를 불러일으킬 것 같은 장대 비가 주기적으로 쏟아집니다. 공간 내부에도 날씨 예보 영상들이 나오는 대형 조형물 사이로 비를 내리게 만들어 무드를 이어갑니다. 핸드드립으로 마실 수 있는 커피 또한 원두의 종류를 맛과 산도에 따라 SUNNY부터 WIND, CLOUD, RAIN DROP, STORM까지 나누어 콘셉트를 유지하며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합니다. 이외에도 세서미 클라우드, 페퍼 클라우드, 클라우디 데이, 써니 데이와 같은 이름의 음료들로 호기심을 자극하고, 이에 못지않게 준비된 여러 종류의 디저트들은 공간을 더욱 풍요롭게 합니다. 한남동에 많지 않은 대형 카페답게  좌석도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어 혼자서도, 작은 규모의 단체로도 방문하기에 용이합니다.

날씨가 도와준다면 내리는 비 사이에 뜬 쌍무지개를 볼 수 있는 행운도 기대해 볼 수 있으며 밤에 방문하면 조명과 함께 또 다른 분위기를 즐길 수 있으니, 맑아도 흐려도 낮에도 밤에도 호우주의보를 신나게 즐겨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일본의 유명 아티스트 무라카미 다카시는 1994년 한 인터뷰에서 비용이 많이 들고 손이 많이 가는 거대한 규모의 작품을 만드는 이유에 대한 답으로 “대중이 예술 작품을 감상하러 오는 이유는 비범한 것을 보고 충격을 받는 경험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TV 프로그램과 영화에서 그 충격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그 이상을 원합니다.” 라는 답변을 했습니다. 요즘 늘어가고 있는 공간들을 보면 많은 이들이 리테일 공간 또한 단순히 소비를 위한 목적이 아닌, 일상에서 누릴 수 없는 가치를 경험하고 어떤 신선한 충격을 받을 곳을 찾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식사를 하기 위해서,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 쇼핑을 하기 위해서 음식점이나 카페, 몰과 같은 공간을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을 찾고 경험하기 위해 소비자는 새로운 공간과 이벤트를 찾아 헤맵니다. 이는 온라인이 기본적인 생활 요소들을 충족시켜주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마켓컬리’, ‘쿠팡프레시’와 같은 새벽 배송 시스템은 굳이 퇴근길에 무겁게 장을 보지 않아도 되게 만들어 주었고, ‘배달의 민족’, ‘쿠팡이츠’ 등의 배달 서비스는 맛집에 가지 않아도 충분히 먹고 싶은 음식을 맛있게 집에서 먹을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외출을 자제하게 되며 사회는 웬만한 시스템을 집 안에서 충분히 가능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집에만 머물지 않고 먼 길을 기꺼이 감수해 찾아가고, 오랜 시간 웨이팅을 불사하는 이유는 방문하는 공간만이 가진 고유한 힘이 있고, 소비자는 지속적으로 그 힘이 주는 충격을 받고 싶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독일 광장을 콘셉트로 한 뮌스터담(위, 출처:@munsterdam),

프렌치 카페를 지향하는 모쿠슈라(아래, 출처:@mochuisle.life)

대형 카페들이 다양한 양상으로 진화, 변형된 이유 중 하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새로운 공간에서 하는 특색 있는 경험만큼이나 그 경험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데에 진심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같은 공간이라도 어떤 스폿에서 어떤 포즈로 사진을 찍는지, 같은 음식이라도 어떤 조명과 각도로 사진을 찍는지에 따라 같은 장소를 전혀 새롭게 보고 느낄 수 있는 만큼, 요즘엔 얼마나 사진 혹은 영상으로 기록할 만한 것들이 있는지도 어떤 카페를 갈지 고르는 데에 중요한 포인트가 됩니다. 콘셉트를 가지고 건축, 인테리어에 집중한 공간들이 공간이 넓다는 이유 자체만으로는 더 이상 새로워 보일 수 없는 요즘, 완성도 높은 이색 인테리어와 브랜드만이 가진 아이덴티티를 강조하여 눈길을 끄는 공간들이 각광받고 있습니다.

더티트렁크로 대형 카페의 가능성을 보여준 CIC는 더티트렁크 근처 ‘말똥도넛’이라는 국내 최대 디저트 타운을 오픈해 같은 지역 내에서도 콘셉트만 다르다면 얼마든지 새로운 카페들이 잘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냅니다. 커다란 창고를 새로 지어 아메리칸 스팀펑크 콘셉트의 공간에 캐주얼 팜하우스 다이닝을 제공했던 더티 트렁크와는 정 반대의 콘셉트인 말똥 도넛은 도넛을 메인으로 케이크, 쿠키 젤리 등을 모아두고 형형색색의 페인팅과 오브제들로 가득 찬 미국식 빈티지 디저트 놀이동산입니다. 이 공간의 가장 큰 특징은 어디를 배경으로 두고 사진을 찍어도 잘 나온다는 것, 디저트 자체에도 색감이 넘쳐나 눈이 즐겁다는 것, 국내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규모의 디저트 놀이터라는 것입니다. 콘셉트가 강한 만큼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지만 이러한 파격은 모두에게 궁금증을 유발한다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며, 끊임없이 새로운 공간이 생기는 요즘과 같이 선택의 폭이 넓은 시기엔 누구에게라도 궁금증을 유발한다는 자체가 1차적으로는 고객을 유치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것으로, 높은 평가를 받기에 충분합니다. 대형 공간이어서 주차가 쉽고 웨이팅이 없다는 것도 옛말, 이곳은 어떤 놀이동산과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의 긴 줄을 불사하고도 방문하겠다는 사람이 줄을 잇습니다.

교외로 대형 공간을 찾아 나서던 시대는 끝이 난 것일까? 이젠 빽빽이 밀도 높은 서울 안에서도 심심치 않게 대형 카페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물론, 교외의 공간들을 넘어설 만큼 점점 더 큰 공간을 새로 만들기는 어렵지만, 이미 만들어져 있는 큰 공간 안에 이런 카페가 들어선다면 말은 다릅니다. 최근 잠실엔 롯데월드가 아닌 새로운 놀이동산이 생겼습니다. 바로 롯데월드몰 내에 오픈한 340평 규모의 ‘노티드 월드’입니다. 노티드는 이미 서울을 중심으로 광교, 부산, 대전, 제주 등지에 18개의 지점을 가지고 도넛을 메인으로 케이크와 음료를 즐길 수 있는 인기 디저트 카페입니다. 이들이 새롭게 펼쳐낸 19번째 매장 노티드 월드는 사람들이 노티드를 좋아하는 이유를 집약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플래그십과 같은 공간으로, 기존에 큰 인기를 누려온 이들의 크림 도넛과 함께 노티드의 시그니처와 같은 일러스트를 그린 작가와의 협업 공간, 이 지점에서만 판매하는 특별 메뉴와 노티드의 캐릭터 굿즈들로 알차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또, 다른 교외의 대형 공간들이 가진 자연 조망 뷰에 뒤지지 않는 ‘석촌호수’뷰를 가졌다는 것도 브랜드의 네임밸류를 넘어서서 이 공간에 방문하고 싶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서울 내, 특히나 대형 몰 안에 위치하다 보니 평일 오전에도 이곳을 방문하려는 사람들로 오픈 런은 기본이고 최소 1-2시간은 기다려야 입장이 가능, 주문하기까지도 2-30분은 걸립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가는 이들은 이 기다림을 감수하고 공간을 즐길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이런 소비자의 마음을 헤아리듯 일부 공간은 전용 포토존으로 만들어 기다리는 시간이 길지 않게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으며 매장 어느 곳에서도 노티드의 감성을 느낄 수 있도록 디테일에 신경을 썼습니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후기엔 기다리다 지쳤다는 말 대신, “기다리는 시간 동안 사진 찍느라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웨이팅이 있었지만 구경할 것도 많고 사진 찍을 곳도 많아 재미있었다.”와 같은 후기가 대부분입니다.

위의 공간들을 통해 이제 단순히 어떤 메뉴를 판매하는지, 어떤 콘셉트를 가지고 있는지를 넘어 공간이 얼마나 더 밀도 있게 브랜드가 추구하는 콘셉트와 맞닿을 수 있는지, 공간 내에서 소비하는 비용만큼의 즐길 거리가 있는지가 사람을 불러들이는 대형 카페의 새로운 지표가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점점 더 커지고, 특이해지고, 새로운 것들이 쏟아져 내리는 공간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또 어떤 신선한 충격과 방문의 즐거움을 느끼게 될 수 있을지 매번 기대하게 됩니다. 개인이 가질 수 있는 공간이 점점 작아지고 있는 요즘, 외부에서 비교적 저렴한 가격을 지불하고 잘 갖춰진 대형 공간을 누릴 수 있는 기회가 늘고 있다는 것은 어떤 면에선 분명히 축복입니다.

하지만 이런 대형 공간이 무조건적으로 긍정적인 면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교외에 발전하지 않은 지역의 토지를 매입해 지역 발전을 이끈 누군가 덕분에 주변의 상권이 살아나는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지역에서 생활을 하는 등 그 공간이 일상의 터전이었던 누군가에겐 외부인의 끊임없는 방문과 소음, 심한 교통체증 등이 달갑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또, 이런 카페를 오픈해서 많은 이들을 불러 모았다고 하더라도 공간이 크다 보니 금전적으로도, 완성도면에 있어서도 밀도 높게 공간을 채우고 콘셉트를 유지하기 위한 여력이 충분치 못한 것으로 보이는 곳이 많은데, 이는 공간의 지속성에 문제가 되어 일회적인 방문객들로 얼마간은 성공적으로 운영될지 몰라도 조금만 사람이 줄어도 넓은 공간 대비 인건비, 운영비를 감당할 수 없어 금방 어려워지기 쉬운 구조를 갖고 있어 위험성을 동반하기도 합니다.

최근 인천에 오픈한 대형 카페 ‘메이드림’은 120년 된 왕산 교회를 업사이클링 하여 교회만이 가진 건축적 특징과 트렌디한 인테리어를 결합해 대형 공간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 주었습니다. 김포의 ‘포지티브 스페이스 566’은 약 3600평의 초 대형 카페로 ‘세계에서 가장 큰 카페’로 기네스북까지 오르며 세간을 놀라게 했습니다. 더 특이하고 더 큰 공간들이 나올 때마다 우리는 오늘도 새로운 충격을 받습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크기를 키워서, 파격적인 비주얼을 선보여서 충격을 주는데 그치지 않고 지역적으로도, 공간 그 자체로도 지속 가능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 보는 것이 대형 공간이 나아가야 할 다음 단계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