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동행은 왜 찾아가는 염전 생산자 인권교육을 할까?)

어울리는 사람 기린
 
1. 다음 법을 그저 기다리지만은 않기 위해

장애인복지법 [법률 제14562호, 시행 2017. 8. 9.]


 제59조의7(금지행위) 누구든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② 장애인을 폭행, 협박, 감금, 그 밖에 정신상 또는 신체상의 자유를 부당하게 구속하는 수단으로써 장애인의 자유의사에 어긋나는 노동을 강요하는 행위 <신설>

 새로운 법의 탄생이 늘 기쁜 것은 아닙니다. 오랜 시간, 장애인 학대 피해자 지원 활동을 하면서 간절히 법령으로 이루고 싶었던 한 문장이지만, 이 문장이 기어이 한 줄 법이 된 까닭은 이 세계에 장애인의 자유의사에 어긋나는 노동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의미니까요.


 세계 제2차 대전 속 무수한 이들의 고통이 쌓여 1948년 세계 인권 선언문을 켜켜이 써낸 지가 76년이나 흘렀음에도 여전히 당연하듯 얻어지는 인권이 그다지 없는 세상은 때론 퍽 아름답지 않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동행은 변화하는 법조문과 법조문 사이 사이에서 다음 법이 오기 전까지, 누락되는 인권이 없도록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해내며 나아가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동행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2. 그저 흘려버리지 않고 진심으로 만나기 위해

 동행의 기린은 2014년 전남에서 거주시설 사회복지사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하필 그 지역에 사는 터라 2월 무렵 시작된 염전 노동력 착취 피해 장애인 이슈가 지역 식당 곳곳, 거리 곳곳을 메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과도한 지역 혐오 여론이 가득한 온라인 속 말들에 가끔 지역민으로서 조금 억울한 마음도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그저 지켜보는 것 외에 딱히 어떤 결심도 없었던 시간이었고, 한 번도 직접 맞닿아 보지 않은 막연한 현장을 상상만 하면서 “아니 21세기에 노예라니 말이 되나?”하고 짐짓 생각할 뿐, 그 이야기는 제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곧이어 4월에는 세월호 참사가 있었고 그렇게 제게 염전은 시간이 지나며 씻기듯 홀연히 머릿속에서 사라졌습니다.


 2016년 다시 어떤 사람을 만났습니다. 손마디가 휘고 나이보다 훨씬 더 주름진 얼굴, 잔고라고는 전혀 없는 낡은 통장을 든 짠 내가 가득한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토끼질(도망) 해봐야 어디 갈 데가 있가디? 이젠 다 늙어서 잡으러도 안 오것지”라며 호탕하게 웃어 보이는 막 염전에서 나온 고령의 클라이언트였습니다.

3. '그 사람'이 환대받는 세상을 위해

 이상했습니다. 이 사람은 왜 그토록 온 세계가 떠들썩했던 염전에서 그 후로도 2년 동안 그저 살기를 선택했을까? 왜 이 사람의 퇴직은 남들처럼 찬란한 은퇴가 아닌 은밀한 장애인 거주시설 입소로 시작되어야 하는가? 의아해하는 저를 이 사람도 이 세상도 당시에 전혀 이해시킬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제가 만난 이 사람이 조금이라도 더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환대의 손을 내밀기로 했습니다.

 첫 번째 피해 장애인을 만나 그 사람의 삶을 함께 기워나간 2016년이 되어서야 제가 외면했던 인권이 있었음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 앞에 닿았던 이 사람에게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어떤 이의 인권도 배제해선 안된다는 믿음으로 숱한 ‘그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고, 또 만나기 위해 ‘그곳’에 다니길 시작했습니다. 그제서야 점차 알게 되었습니다. 염전 노동력 착취 사건과 피해자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일도 삶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그 사람의 사장님과 소개소, 혹은 오래전 그 사람을 버렸던 부모나 사회에도 “왜”라는 질문이 필요했다는 것을요.

 물론 오랜 시간 염전과 여러 방면으로 함께 했지만, 여전히 제 마음속 모든 “왜”가 사라지진 않았습니다. 여전히 답답함의 그늘이 제 마음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기도 합니다. 다만, 동행에 오고 나서야 드디어 “어떻게”라는 질문에 조금씩 답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그 사람’을 진정 환대하기 위해서는 제 현장이 법원이나 기자회견장이 아닌 ‘그곳’에 단단히 붙어있어야 한다는 것도 더욱 느끼게 되었습니다.
4. 필요한 일을 알게 되었고, 해왔던 일로 변화를 만났으니까

 동행에 와 그곳의 목소리를 드러내기 위한 근로실태조사를 국내 처음으로 진행하였고, 이후에는 그들의 진짜 목소리가 가리키는 정책을 제안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여전히 염전에서 나와 불안정한 지역사회에 겨우 발붙이고 있는 이들의 곁에 옹호인으로 남으려 노력하며, 또 아직 여전히 그곳에 있는 어떤 사람들에게 닿기 위해 찾아가는 인권 교육도 삼 년째 하고 있습니다.

 정답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동행이 하는 “어떻게”는 분명히 조금씩 ‘그곳’과 ‘그 사람’을 바꾸고 있습니다. “염전 밖에서 어짜고 산데요?”라고 거칠게 질문하던 몇몇 피해 장애인들은 이젠 누구보다 찬란한 염전 밖 자립생활을 해내고 있고, 매년 인권 교육에 빠지지 않는 사업주와 노동자들이 늘고 있으며, 학대 피해를 넘어 당사자의 삶을 함께 고민하는 또 다른 축의 사람들과 연대도 깊어갑니다.


 그래서 매년 찾아가는 염전 생산자 인권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섬과 섬을 찾아다니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모쪼록 첫 소금이 오는 그날부터 광 치는 마지막 날까지 누구의 인권도 소금꽃에 녹아 사라지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이 마음이 ‘그 사람’에게 무사히 가 닿도록요.

공익변호사와함께하는동행
companion.lfpi@gmail.com
광주광역시 동구 천변우로339, 제일오피스텔 302호 062-351-0518 '
수신거부
사용된 일러스트는 Lazypink Whale(신주욱)의 작품이며, 일러스트와 로고 저작권은 '동행'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