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락 첫날 밤, 우정원정대는 큰 위기에 처했습니다.
뿌하인드
뿌하인드는 계단뿌셔클럽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하는 비정기 레터입니다. 계뿌클 오피스 구성원들이 가끔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때 써서 보내드립니다. 오늘 작성자는 버기입니다.
우정원정대 2 솔직 후기
by 버기 · 2026. 10. 16.
우정원정대 2의 관객 대원들

모두가 즐거운 부산국제록페스티벌(이하 ‘부락’)의 첫날 밤, 저는 초조했습니다. 멋진 아티스트들의 연주와 노래도 전혀 들리지 않았습니다.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호기롭게 준비한 두 번째 우정원정대가 큰 위기에 처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뿌하인드에는 BGM이 있습니다. 극동아시아타이거즈의 ‘흔들리는 시간 속에’를 틀어두고 읽어보세요.

수요 예측 대실패
산더미처럼 쌓인 우정원정대 굿즈 상자들
산더미처럼 쌓인 우정원정대 굿즈 상자들

우정원정대의 위기는 ‘수요 예측 실패’에서 왔습니다. 조금다른 주식회사와 함께 기획한 우정원정대의 목표는 음악 페스티벌에서 ‘다양한 몸과 마음을 가진 관객들이 다정하게 어울려 노는 장면 만들기’입니다. 페스티벌 너무 즐겁죠. 근데 이동약자와 친구들 입장에선 장벽이 있거든요. 그래서 휠체어로 탈 수 있는 셔틀버스도 운영하고, 축제 현장에서 이동 지원도 하고, 편리하게 관람할 수 있는 컴포터블존도 운영하는 것이 우정원정대입니다.


예측에 실패한 건 ‘우정원정대원 모집’입니다. 우정원정대원의 임무는 장애인, 어린이 관객들과 다정하게 어울리는 것,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것인데요. 취지와 임무 설명을 듣고, 대원임을 보여주는 뱃지를 착용해야 합니다. 원하면 대원 양말을 구입해 대원임을 더 드러내도 됩니다. 지난 1기 때 대원 1,500명 모집에 성공했는데요. 전체 관객의 10% 정도였습니다. 부락은 관객이 6만 명 이상이라 5,000명으로 잡았습니다.


금·토·일 3일 동안 진행되는 ‘부락’의 첫날 밤, 부스를 닫고 결산을 했습니다. 약 300명이 모집됐습니다. 굿즈가 4,700인분 남았다는 뜻입니다. 5,000명의 대원 모집을 예측해 5,000개의 뱃지, 1,300개의 양말을 만들어 갔습니다. 트럭 한 대 분량입니다. 첫날 추세면 4,000인분을 그대로 들고 가야 합니다. 산더미 재고를 쌓아놓고 떨이 세일을 하는 가게들에 ‘사장님이 미쳤어요’라고 쓰여 있는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이걸 그대로?’ 미칠 노릇이었습니다.


“그래도 한 5,000명은 해야죠?”


목표를 몇 명으로 하면 좋겠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꺼드럭대며 5,000명을 말했던 저의 입을 틀어막으러 가고 싶은 밤이었습니다. 그때 그 얄미운 입을 왜 아무도 틀어막지 않았던 걸까요?

정~면~돌~파~ 하러 간다~
등에 대원 모집 QR을 붙이고 거리 영업 중인 스태프
출격 준비 중

문제의 원인은 부스의 입지였습니다. 우리 부스가 좀 외진 곳에 있었습니다. ‘부락’이 열리는 삼락생태공원은 엄청 큽니다. 여의도의 1.5배 면적입니다. 무대만 5개입니다. 우정원정대 부스는 메인 스테이지인 삼락, 그린이 아닌 리버에 있었습니다. 비가 와도 진흙탕이 되지 않는 유일한 구역이라 리버를 선택했습니다. 바닥이 뻘이 되면 이동약자와 그 친구들이 찾아오기 어려우니까요. 그런데 메인 스테이지와 멀어 오는 사람이 예상보다 적었습니다.


첫날 밤 비상대책 회의를 했습니다. 다행히 접근성 지원, 관람 구역 운영은 스태프들의 고민과 노력으로 안정화되고 있었습니다. 대원 모집이 관건이었습니다. 우정원정대 스태프들은 고심 끝에 정면 돌파를 결정합니다. 찾아가는 거리 영업을 하기로 했습니다. 대원 모집 QR을 배와 등에 붙이고, 사람 많은 곳에 가서 대원 합류를 권유하는 것입니다. 모르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말 걸고, 설명하고, 뱃지를 달아주는 고귀하지만 심란한 일을 하기로 한 것입니다.


이 결정을 내려준 동료들에게 말로 다 못 할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거리 영업이 보통 일인가요? 그렇지만 대원 모집은 정말 중요했습니다. 대원 모집이 되어야 우정원정대가 관객들 사이에서 알려질 수 있고, 그래야 접근성 부스와 이동 지원, 관람 구역을 이용하는 장애인 관객들도 늘어납니다.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이 많아야 포용적인 축제 분위기도 만들어지고, 굿즈 판매로도 이어져 우정원정대가 적자를 면할 가능성이 생깁니다.


효과가 있었습니다. 첫날 종일 모집된 대원이 300명이었는데, 둘째 날은 점심 무렵에 이미 이 숫자를 추월하게 됩니다. 그러나 국면을 전환하는 결정적 한 방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터지게 됩니다. ‘우정타임’입니다.

우정타임
해 질 녘, 무대 앞에 모인 우정원정대
우정타임 시동 걸기 시작하는 대원들

우정타임은 조금다른 충현님의 기획입니다. ‘다양한 몸과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즐겁고 안전하게 어울리는 슬램존’입니다. 락페에는 ‘슬램’이란 문화가 있습니다. 서로 몸 부딪히면서 노는 것입니다. 우정원정대 버전은 좀 더 부드럽고 다정합니다. 이동약자와 그 친구들도 다치거나 다툴 일 없이 평화롭게 어울리며 즐기는 것이 추구미입니다.


원래는 30여 명의 관객 대원들을 위한 기획이었어요. 장애인 관객 대원들과 사전 워크숍에서 만나보니 ‘동시에 공연이 여기저기서 열리는데, 어디서 어떻게 놀아야 잘 노는 거예요?’라는 질문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우정타임을 배치했습니다. 각자 놀다가 이 시간에는 깃발 아래 모여서 같이 놀자고요. 그런데 이 우정타임에 더 폭발적으로 반응한 건 우릴 모르는 평범한 관객들이었습니다. 초면의 관객들이 우정원정대 깃발 아래로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리버 스테이지 앞, 우정원정대 단체 사진
우정원정대 관객 대원, 스태프 함께 단체 사진

장애인 관객 대원들이 휠체어 리프트 버스를 타고 도착한 일요일 낮부터 우정타임이 크게 흥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우정원정대 스태프, 1기에 왔던 장애인 관객 친구들 몇 명이 소소하게 시작했던 우정타임이 일요일에는 100명도 넘는 사람들이 엉켜 노는 거대한 서클핏이 됐습니다. 우정원정대 깃발 아래에서 수백 명이 기차놀이도 하고, 가볍게 몸도 부딪히고, 하이파이브도 하고, 휠체어 붙잡고 춤추는 평화로운 폭주가 종일 반복, 확대됐습니다.

우정원정대 깃발 아래 둥글게 모인 우정타임
우정타임의 풍경

우정타임이 끝나자 사람들이 부스로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얼떨결에 우정타임 때 같이 논 관객들이 뚜벅뚜벅, 스스로 대원으로 합류했습니다. 함께 놀다 보니 마음에 느닷없이 우정이 자란 것입니다. 그 수가 2,000명입니다. 아쉽게도 5,000명은 끝내 못 채웠습니다. 그러나 50명에 불과한 관객, 스태프로 시작한 우정원정대는 2,000명이 됐고, ‘부락’의 공기를 우정으로 물들이는 데 성공합니다. 최선을 다했고, 잘 해냈습니다.

우정원정대 후기
형광 대원 양말을 자랑하는 대원들
우정원정대원의 징표 형광 양말

‘부락’이 끝나고 기대 이상의 반응이 쏟아졌습니다. 우정원정대가 노는 장면이 릴스가 되어 수십만 명에게 닿기도 했고, 소셜미디어에도 언급이 많았습니다. 2,000명의 대원 중 후기를 보내준 인원만 400명이 넘었습니다. 장문의 글도 많았는데, 다 합쳐보니 3만 자가 넘습니다. 정말 많은 분들이 우정원정대를 좋아해주셨습니다.


사람들은 우정원정대가, 우정타임이 왜 좋았을까요? 힌트가 된 후기를 몇 편 소개합니다.

깃발 아래 모인 수백 명의 대원들
깃발 아래 모인 수백 명의 대원들

[장애인 관객 대원 후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비장애인분들과 이렇게 경계 없이 놀아본 적은 처음인 것 같아요. 저 스스로도 행복하다고 느낄 만큼 원을 만들어 같이 돌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너무 웃어서 광대 아파요)로 모르는 사람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는 것에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느꼈습니다. 원 안에 있는 사람, 원을 만든 모든 사람들과 친구가 된 것 같아 가슴이 벅차고 내가 만약 꿈을 꾸고 있다면 절대 깨고 싶지 않은 꿈이었을 정도로 기억에 남습니다.”


“김뜻돌님 무대 때 동그랗게 모여 옆 사람과 손뼉치기를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제가 손에 장애가 있어 선뜻 손을 보이거나 내미는 것에 부담감이 있었는데 굽고 휘어진 손이지만 내밀면 박수 쳐주는 옆 사람이 있다는 게 정말 벅찬 순간이었습니다. 휠체어를 타다 보니 항상 아래를 보는 경우가 많은데 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웃으면서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박수로 연결되어 있었어요.”


[현장 합류대원 후기]


“장애인 관객분들과 함께 써클핏을 돌면서 하이파이브를 할 때 눈시울이 붉어지더라구요.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하잖아요. 부락 때 함께 놀았던 그 순간만큼은 한마음 한뜻으로 같은 소리를 냈던 거 같아요. 이번 경험을 통해 부락이라는 한정된 공간이 아닌 사회에서도 장애인분들과 한마음 한뜻이 될 수 있게끔 같은 소리를 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음 원정에서도 같은 소리를 내고 싶어요! 다시 꼭 만나요!”


“이번 락페에서는 휠체어도 많이 보이고, 페스티벌 안에서만큼은 소수자든 조금 다른 사람이든 사람들이 차별의 시선을 보내지 않으니까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어요. 무대를 같이 보면서 써클핏을 만들고 크라우드서핑도 하고 모두가 행복하고 신나는 시간을 가지고 나니 그 순간이 꿈이나 잠시의 풍경이 아닌 일상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리버 스테이지 위로 휘날리는 우정원정대 깃발
휘날리는 우정원정대 깃발

사실, 정말 힘들었습니다. 관객 대원, 스태프 모집 외에는 기대했던 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 프로젝트였습니다. 조금다른 주식회사도, 계단뿌셔클럽도 회사로서 큰 무리를 하고 뛰어들었고, 저는 물론이고 스태프 모두 체력의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그래서 '부락'의 첫날 밤 산더미 같이 쌓여있는 뱃지와 양말을 보면서 억울했던 것 같아요. '정말 열심히 했는데, 하늘도 무심하시지!'


우정원정대를 또 하게 되더라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겁니다. 자금 조달은 잘 안되고, 주최 측과의 협의는 마음처럼 되지 않고, 현장에는 수많은 변수가 생기고, 수요예측은 또 실패하겠죠.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기심에서 해방되어 우정을 선택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면, 같은 결정을 할 것 같습니다. 설령 하면 안 될 것 같은 여러 현실적인 이유가 있더라도 말입니다.


우정원정대의 시작과 다음을 만들어주신 지원대원(후원자) 분들, 갑작스러운 요청에도 흔쾌히 우정원정대를 안아주신 부산축제조직위원회, 삼락 배프존부터 접근성 부스까지 늠름하게 책임져주신 동료 스태프 분들, ‘부락’에서 처음 만나 기꺼이 친구가 되어주신 현장 합류 대원 여러분,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주신 용감한 장애인 관객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 모든 아름다움이 여러분 덕분에 또 한 번 가능했습니다.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버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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