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은 저와 입맛이 잘 맞습니다. 단맛을 싫어하고, 디저트나 빵을 즐기지도 않고, 산미 있는 원두를 좋아합니다. 딱히 가리는 음식도 없고 새로운 음식 도전을 즐기며 향신료에 대한 감각은 저보다 예민한 편이죠. 좋아하는 음식이 비슷한 것보다, 싫어하는 취향이 같다는 부분이 특히나 함께 먹을 때 즐겁게 음식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포인트가 되어줍니다. 쿵짝이 잘 맞는다고나 할까요. 무슨 음식을 만들어도 다 잘 먹어주면 요리하는 재미가 생긴다는 말을 애인을 만나고서 알았습니다. 손이 커서 항상 제가 소화하는 양보다 많이 만드는 주제에 같은 음식 연달아 먹기 싫어하는 저에게 애인은 끼니마다 음식을 싹싹 먹어주는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었습니다.
그래서 애인이 여행을 떠났을 때 오랜만에 혼자 집에서 밥을 먹으려니까 문득 요리하기 귀찮다고 느껴지더라구요. 설거지는 또 얼마나 하기 싫은지 밥그릇 하나 안 쓰겠다고 냉동밥 담아둔 밀폐용기째로 식탁에 올려 먹기도 했습니다. 나를 먹일 때 가장 열심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하곤 했는데 어느새 거짓말이 되어버린 것 같았어요. 나 프랑스 살 땐 어떻게 했더라?
뒤이어 생각났습니다. 저는 프랑스 살 때도 그랬었다는걸요. 언제나처럼 함지박만큼 만들고는, 저녁에 먹고 남긴 음식을 다음날 도시락으로 싸가곤 했습니다. 도시락 메뉴는 언제나 파스타였고요. 만들기 쉽고, 설거지 덜 나오고, 다른 면처럼 불어 터지지도 않고, 무엇보다 다음날 먹어도 질리지 않는 유일한 음식이었거든요.
만만치 않은 파리 물가에 도시락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도시락 점심이 있어서 전날 저녁에 음식물이 덜 남기도 했고요. (손이 큰 사람에게 애초에 적게 만들면 안 되냐는 가설은 통하지 않는답니다.) 동네 생활용품점에서 밀폐용기 하나 사서 정말 잘 들고 다녔어요. 가끔 파스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는 볶음밥을 해 먹기도 했습니다.
다시 돌아와서, 이제는 딱히 도시락을 싸서 갈 곳도 없거니와 무엇보다 도시락을 싸지 않아도 앉은 자리에서 착실히 먹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은연중에 위안이 됩니다. (그 착실히 먹어주는 사람이 설거지까지 해줘서 얼마나 만족스러운지요.)
프랑스에 있을 때는 외롭다고 느낀 적이 없다시피 했는데, 애인이 없는 며칠이 꽤 적적했습니다. 그렇다고 식사를 거르는 일은 없었지만, 아무래도 둘이 주는 안정감을 인정할 수밖에요.
매달 마지막 날에는 애인과 서로 한 달의 수고로움을 짚어주고, 다음 달에도 잘 부탁한다는 인사말을 나누곤 합니다. 1분도 안 되는 사소한 루틴이긴 한데 이게 또 하는 것과 안 하는 건 마음에서 큰 차이가 나거든요. 올해가 끝나는 마지막 날에도 똑같은 인사말을 나누겠지요. 이번에는 파스타 도시락을 싸던 때를 떠올리면서 애인에게 고맙다는 말을 더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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