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 회의적인가?[풀칠 81호]

안녕하세요, 이번 주 에세이 당번 아매오입니다.

회사로 이행시 해보겠습니다.

회: 회의하다보니
사: 사라진 하루

풀칠 81호의 주제는 회의입니다. 저희는 매주 일요일 밤 10시에 편집회의를 하는데요. 에세이 초고를 바탕으로 코너별 콘텐츠를 정하고 각자 해야 할 일을 정리하죠. 보통 3~40분 정도 걸리고 별도로 얘기할 안건이 있을 경우에도 1시간을 넘지 않도록 조절합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이번 주에도 다들 회의 많이 하셨죠?(하실 예정이죠?) 업무 시간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회의 시간. 대체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 생각해보는 밤입니다... 함께하시죠.

지금도 기억하는 최악의 회의는 입사한 지 한 달도 안된 시점에 참여한 리브랜딩 회의였다. 리브랜딩이란 무엇인가. 브랜드가 가지고 있던 원래 이미지에 변화를 주는 작업이 아닌가. 정도에 따라 서비스 또는 상품의 종류부터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까지 갈아 엎을 수 있는 중대한 프로젝트다. 과거도 알고 현재도 알고 미래도 알아야 한다. 그런데 그에 대한 어떤 맥락 설명도 없이 일단 참석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것도 회의 5분 전에. 이거 맞나?

아니나 다를까. 전형적인 ‘모이면 뭐든 나오겠지’형 회의였다. 킥오프 미팅도 아니고 얼추 나온 결과물을 공유하는 자리도 아닌, 너무 실무적이어서 민망하기까지 회의. 프로젝터 빔을 맞으며 상사가 말했다. 리브랜딩을 할 거고, 홈페이지 디자인을 몇 개 잡아봤다, 마음에 드는 것을 꼽고 이유를 말해라. 침묵이 이어졌다. 남은 순서는 “뭐든 좋으니 일단 말해보세요.”라는 잽과 “어, 그건 아닌 것 같아.”라는 어퍼컷을 번갈아가며 처 맞는 것이었다.

일이 되게 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회의를 해야 하는데, 회의만 했음에도 일한 기분이 들었다. 일하는 데 쓰는 만큼의 에너지도 썼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된 일’은 하나도 없었다. 업무 시간은 업무시간대로 모조리 증발했다. 우리 팀은 팀원 간 자유로운 수다도 언제든지 업무 회의가 될 수 있는 문화를 갖고 있다며 으스대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얼굴에 세게 카운터를 꽂고 싶었다. 대부분의 회의는 어떤 감흥도 주지 못하는 잡스러운 이벤트일 뿐이었다.

그렇다고 상사 혼자 만족하고 그러는 것도 아니다(가만 있자... 만족해 하면 더 열 받을 거 같긴 한데...). 그의 마음에 드는 회의는 유니콘과 같다. 없다는 얘기다. 회의가 끝나면 회의 태도에 대한 피드백이 이어졌다. 이쯤 되면 회의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회의란 거... 사실은 ‘과정'이 아니라 ‘결과'였던 걸까? 난 정말 몰랐네... 속으로 욕을 퍼붓는다. 여보세요, 회의는 예술작품이 아니라 생활용품입니다. 회의를 ‘해야’지, 왜 ‘감상'하려고 하나요?

어찌저찌 결과물도 나온다. 일단은 데드라인이 있으니까. 그러나 회의 내용을 간신히 엮어 만든 결과물 앞에 놓인 운명은 무자비한 난도질뿐이다. 그 순간만큼은 “뭐든 좋으니 일단 말해보세요"와 “어, 그건 아닌 것 같아.”라는 두 가지 답만 할 줄 아는 듯했던 상사는 온 데 간 데 없다. 단죄자의 자리에서 칼을 휘두르는 상사의 뻔뻔한 해체쑈를 1열에서 보고 있으면 지난 회의는 우리에게 뭘 남겼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뭘 남기긴. 허무함을 남겼다.

그럼에도 우리는 회의에 충분히 시간을 들이는 수밖에 없다. 누군가와 의견을 조율하고 일정을 맞추고 결과물을 공유하는 시간은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일의 시작부터 끝까지 매 단계에서 우리는 회의장으로 소환된다. 어떤 회의는 완전히 허무하고 어떤 회의는 조금 덜 허무하지만, 모든 성취는 그러한 과정을 착실히 밟은 끝에 나온다. 그러니, 오늘은 회의하자. 내일도 회의하고. 좀 덜 허무하려면, 글쎄, 회의록이라도 꼼꼼하게 적어볼까.

파주 : 충격적인 사실을 하나 말씀드리자면, 저는 최근에 회의에서 재미라는 걸 느꼈습니다. 하나의 대상을 두고 각기 다른 시선과 생각을 공유하는 것. 때로는 과감하게 포기하는 업무의 요령들을 회의를 통해 배우고 있거든요. 동료들이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들을 보고 있으면 저도 이 천하제일 아이디어 대회의 참가자 중 한명으로서 분투해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되고요.

회의와 관련해 하나 분명한 건 제 경험상 일을 잘하는 사람일수록 회의를 줄이려는 경향이 있다는 겁니다. 그도 그럴 것이 회의라는 건 자고로 생각보따리를 풀어내는 시간이 아니라 선택지를 줄여나가는 시간이니까요. 물론 아무런 준비도 없이 모여 '머리를 맞대면 무엇이든 나올 것'이라는 식의 회의가 도움이 될 때도 분명 있겠지만요. 각자의 뾰족함을 발휘해 자료를 긁어모은 뒤 그것들을 취사선택을 하는 작업이야말로 회의의 본질이자 묘미가 아닐까요.

야망백수 : 회의가 제대로 굴러가려면 관리자의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먼저 실무자에게 회의의 필요성을 납득시켜야겠죠. 실무자는 회의 시간만큼 당장 오늘 퇴근이 늦어질 수도 있으니까요. 보상체계 점검도 필요하겠고요. 괜히 열심히 참여했다가 대가 없이 일만 늘어난다면, 개인 입장에선 손해가 이만저만 아니겠어요. 무엇보다도, 회의를 했으면 뭐라도 결정했으면 좋겠네요. 기껏 모인 결과가 “그럼 00씨(원래 담당자)가 다음 회의까지 좀 더 디벨롭 해봅시다!”라면, 이 얼마나 큰 낭비입니까.

‘수평적 의사결정 구조’라는 말로 회의의 당위성을 설파하는 걸 종종 목격하는데요. ‘수평적 의사구조’는 물론 ‘좋은 말’이기야 합니다만, 그 ‘좋은 말’이 결정권자의 업무 유기를 정당화하는 레토릭으로 쓰이는 걸 볼 때마다 회의감이 솟구치곤 합니다. 차라리 이런 게 나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공화정의 탈을 쓴 독재 같은 회의는 집어치운다! 탑-다운으로 가고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요식행위에 동원되는 것만큼 힘빠지는 일은 없으니까요.

마감도비 : 회의는 예술작품이 아니라 생활용품이라는 말 공감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사무용품이 돼야겠죠. 편리하고 실용적이고 생산적인 그 무엇이요. 가끔은 목적 없는 회의에 참석할 때가 있어요. 갑자기 소집된 탓에 구성원들 모두 고민할 겨를도 없이 모여 앉아 표면적인 아이디어만 내뱉다가 끝나는 거요.

어떨 땐 제가 맡은 직무와 상관없는 안건이어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가만히 앉아있어야 할 때도 있어요. 나는 누군가 여긴 어딘가. 보내다 만 메일, 오전 중에 처리해야 할 업무, 점심에 잡아놓은 미팅 등등 이거 할 시간에 차라리 빨리 일할 수 있게 보내줬음 싶더라구요.

격렬한 논쟁거리가 있는 게 아니라면(사내 회의에서 그럴 수나 있을까요?) 다들 아이디어를 곰곰이 생각한 뒤에 결론만 내놓을 수 있는 그런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회의가 열렸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이 있습니다. 전국에 계신 팀장님들, 부디 이 글을 읽어주세요!

BY.야망백수

▲ 회의적인 하루

BY.아매오

마케팅부 회의 - 해외문학팀 회의 - 한국문학팀 회의로 이어지는 쓰리콤보에 콘텐츠 하나가 뚝딱. 갓생 사는 직장인의 하루는 이렇게 뚝딱. 회의가 이렇게 재밌어도 되는 건가요. 남의 회의라 그런 걸까요? 꽤나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오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저거야말로 회의의 이상향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 다 편집의 힘이겠거니 합니다.

분명한 건 책뿐만 아니라 우리들이 접하는 수많은 제품과 서비스는 이런 시간들로 쌓아 올린 저마다의 성채라는 사실! 우리 모두가 갓생러입니다.

풀칠러A

저만의 슬럼프 이겨내는 팁이 있어요. 엄청쉬운 네모로직퍼즐이나 스도쿠 풀기. 진짜 작은건데 이거 해내고 나면 '호호 쉬운데? 나 좀 똑똑한거 같아' 하고 스스로를 칭찬할 수 있어요. 슬럼프라는게 삶이 무료하게 느껴지고 축축 처지는 기분이 많이 드니까요. 진짜 말도 안되게 작은걸 해내지만 그 성취감은 꽤나 달더라구요. 저는 그렇게 시작했던 네모로직퍼즐에 맛들려서 이제는 30x30짜리 퍼즐을 풀고있답니다. '호호 나 좀 똑똑한거 같아’

마감도비

스도쿠로 슬럼프를 이겨낸다. 근래 들은 것 중에 가장 신선한 방법인데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정말 맞는 말인 거 같아요. 보통 슬럼프에 걸리면 나머지 일상생활에서도 자신감을 잃게 되잖아요. 자잘한 실수를 연발한다거나 방 청소에 게을러진다거나 하는 것들이요. 뭔가 해냈다는 감각에서 멀어지는 느낌? 저도 스도쿠로 슬럼프 극복 좀 해봐야겠어요. 감사해요!

풀칠러B

이번 주 레터를 받고 정말 너무 소름이었는데요..! 제가 수요일 오전에 친구에게 딱 그랬거든요. "요즘에 아무것도 안해. 취업준비는 해야되는데, 목표가 없어. 왜 살고 있는지 모르겠어." 이랬더니 친구가 "그거 슬럼프아니야?"라고 해서 저는 "슬럼프는 뭔가를 하는 사람들이 하다가 정체기가 오는건데, 나는 아무것도 안했으니까 아니야. 나는 그냥 게으른 사람인거야."라고 대화를 했거든요. 저와 비슷한 생각을 파주님께서도 했다니 잠시 짠하면서도 보편적으로 겪는 감정인가 싶기도 했어요.

그래서 이번주 레터를 받고 지금까지 한 10번정도는 다시 읽어봤는데요, 저랑 같은 감정을 겪고 있는 사람이 이렇게 이겨냈다 혹은 이겨내려고 한다를 보니까 저도 조금씩 움직일 힘을 얻은 것 같습니다. 뭐든 우선 앞에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우선 저에게 칭찬하는 것부터 하기로 했습니다! 나 잘하고 있어, 나 이만하면 열심히 한거야 꼭 마음과 몸을 다하지 않아도 괜찮아 기타 등등... 생활에서 칭찬을 듣기가 어려우면 스스로 칭찬하면서 자기효능감을 잔뜩 올려보겠어요!

부디 이번 주는 슬럼프아닌 슬럼프에서 벗어나 나에게 조금 너그러워져서 조금 따뜻해진 날씨와 하늘을 보면서 그래도 이만하면 나 잘 하고 있는거야 라고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ㅎㅅㅎ

파주

제 글을 10번씩이나 읽어주셨다니 정말 고맙습니다. 몹시 민망하지만 저는 풀칠러님이 남겨주신 글을 하루에 세 번 씩, 한 주에 도합 20번 정도를 읽는답니다. 풀칠러님이 소망하신 것처럼 스스로를 충분히 칭찬하는 한 주를 보내셨는지 궁금하네요. 만약 그렇지 못하셨더라도 다음 한 주가 남아있으니 기꺼운 마음으로 재도전을 해보시기를! 남겨주신 품앗이를 볼 때마다 응원을 보내겠습니다😀

풀칠러C

안녕하세요! 고양시민입니다. 파주님의 닉네임이 파주에 사셔서 파주인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저의 거주 도시를 밝혀보고 싶었어요.ㅋㅋ 오늘 파주님의 글 '슬럼프'와 그에 대한 아매오, 마감도비, 야망백수님의 답글, 그리고 짤과 툰까지 너무 너무 좋았어요. 전 2020년 6월에 입사하여 직장생활 기간이 1년 9개월을 지나고 있네요. 아직 2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직장생활과 일은 쉽지 않고, 회의감이 들기도 하고, 내 삶은 어떻게 살아야하는 것인지,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 것인지 고민이 참 많은것 같습니다. 그래도 최근에는 과정이 어떠하였든 입사 시점의 나보다 현재의 내가 분명 성장하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앞으로도 이대로 살고 싶은지, 어떻게 사는게 좋을지는 여전히 물음표 투성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레터가 정말 마음에 와닿고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파주

안녕하세요 풀칠러님. 저는 파주에 살고 있진 않지만 고양시에는 아주 가까운 곳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TMI를ㅎㅎ; 저도 아직까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갈팡질팡 하곤 하는데요. 풀칠러님이 하신 것처럼 뒤를 한번쯤 돌아보는 의식이 필요할 거 같네요. 회고하고 나면 저도 분명, 이전보다는 나은 사람이 되어있겠죠?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