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Live Love Inc.의 11분짜리 비디오는 '픽셔널 실버 볼', 혹은 정체불명의 신제품을 홍보합니다. 불신을 버리고 믿음을 가지라고 지속적으로 강요하는 홍보 영상은 이것을 가질 때 심리적 만족감과 불안 해소를 얻을 수 있다고 설득합니다. 그러니 우선은 믿는 마음으로 전시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CHN Sculpture House의 제품은 조각과 인테리어 사이를 진동합니다. 눈부신 LED 조명으로 빛나는 그것은 인테리어 혹은 상품이 되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미술이기를 포기하지 못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pic.construction의 도면도 전시장에서만큼은 실용적인 목적에서 벗어나 하나의 이미지가 됩니다. Tiffany Kim Company의 프로모션 공간은 단적으로 그들의 상황을 보여줍니다. 티파니 킴은 그들의 새로운 에디션이 '순수한' 예술가 사치 장과 명품 브랜드를 가진 티파니 킴이 협업하여 만든, 단지 비싸고 좋은 것뿐만 아니라 예술적 숭고함까지 지닌 명품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므로 이 작품(혹은 상품)은 예술이 그 숭고함을 통해 명품의 명분이 되어줄 수 있다고 스스로 이야기합니다. "내 이름과 명예를 빌려줄게. 그러니 돈을 줄래?"라고 말하는 격이라고 할까요. 과연 거래는 성공할 수 있을까요? 

Snow Business는 눈이 오지 않는 할리우드에서 눈을 파는 회사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인공적으로 제작한 눈은 눈이 내리지 않는 도시에 일시적인 마법의 순간을 만들어줍니다. 인공 눈은 잠깐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지만, 결국 실제와 섞이지 못한채 사라져 버립니다. Snow Business는 무엇을 파는 것일까요? 아마도 꿈처럼 짧고 덧없는, 잠깐 나타났다 사라지는 기쁨을 파는 것일까요? 저는 그게 자꾸만 미술을 말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잠깐 기쁨을 주고 사라져버려서 허무하기만 하지만, 그렇지만 우리가 끝내 붙잡고 있는 것. 그것은 가짜 눈 같은 게 아닐까요. 

다시 Long Live Love Inc.의 영상 앞에 섭니다. 영상 속의 모델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이상한 세계에 살고 있어요. 이곳밖에 없어요 그런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는 곳은. 오직 이곳 뿐이죠. 다들 살아 있으면서 죽어있어요." 저는 여기가 아무래도 거기 같은데, 여러분은 어떠세요? 그런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는 이 이상한 세계, 미술은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미술이 사업이 되려는 시도는 성공할 수 있을까요? LLL Inc.의 말을 믿고 우선 불신은 미뤄두기로 합니다. 이 마법은 늘 그랬듯이 자신의 몸을 바꿔 새로운 존재를 창안할 테니까요. 

조금 멀리 떨어진 나라에서 지낼 때, 시차 때문에 생기는 이상한 감각이 있습니다. 여기는 새벽을 향해가는데 한국에서는 막 새로운 소식이 올라와 잠을 못 자는 밤이 있고, 여기는 하루를 시작할 때 하루를 마무리 하는 소식을 듣게 되기도 하죠. 저에게는 2014년 4월 16일이 그런 날이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떠 SNS 타임라인을 따라 밀린 소식을 따라가는데, 처음에는 작은 사고처럼 시작된 뉴스가 밀린 시간을 따라잡으면 따라잡을수록 심각해지고 있었습니다. 그 시차를 따라잡으며 뉴스를 읽어갈수록 내가 있는 곳이 더욱 멀게 느껴지고 더욱 속수무책으로 느껴진 그런 날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집에서 떨어져 네덜란드에 사는 두 작가의 작업은 어딘가 아련합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하는 작은 전시공간은 마치 누군가의 방처럼 느껴집니다. 나풀거리는 흰색 커튼 너머로 따뜻한 빛이 전시장에 들어오고, 전시장 곳곳에 마치 흔적처럼 작품들이 놓여있습니다. 한쪽 바닥에서 구를 듯 말 듯 누워있는 석고 조각은 눈사람을 닮기도 하였으나 보아하니 눈알인 것 같습니다. 이 이상하게 생긴 눈은 지나간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라도 되는 듯 한켠에서 방 안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희미한 연필선에 존재를 의지하는 동전들이 바닥에 흩날려 있고, 얼굴을 가린 곰인형, 혹은 곰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사람의 정체는 아리송합니다. 불안한 마음은 마스크 뒤에 혹은 가면 뒤에 얼굴을 숨기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정체를 숨기지 않는 애니메이션 속의 곰은 조금은 유쾌하게 물 위를 떠다닙니다. 실체를 알 수 없는 힌트만 무성한 방이 사건의 중심에 가 닿기를 원하지만 시간의 간격을 두고 흐릿하게 이야기에 닿는 일을 닮은 전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