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친배우미, 안녕하신가요? 안녕하세요. 2013년 시작한 PaTI에도 이제 모든 과정을 끝낸 ‘마친배우미’ 명단이 서서히 쌓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PaTI 소식>은 마친배우미의 현재 활동과 PaTI에서의 추억, PaTI 배우미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루는 ‘마친배우미, 안녕하신가요?’를 시작합니다. 첫 주인공은 두성집에서 PaTI와 특별한 관계를 이어가는 ‘SAA’입니다. 한배곳 2기를 마친 이산하(산하)와 더배곳 1기를 마친 정성훈(성훈)이 함께 운영하는 SAA의 이야기, 이제 들어보실까요?
팀 이름이 SAA에요. ‘싸’라고 불러야 할 거 같은데 ‘샤’라고 하고. 이름 교통정리 좀 해주세요! SAA는 ‘스크린 아트 에이전시(Screen Art Agency)’의 영문 약자에요. 그래서 공식적으로는 ‘에스 에이 에이’라고 읽어야 하죠. 하지만 편하게 ‘샤’라고 부르면 좋겠어요. 실크스크린 작업에 쓰이는 천 이름이 ‘샤(Sha)’거든요. (웃음)
‘스크린 아트 에이전시’라는 이름은 어떻게 짓게 되었어요? PaTI를 마치고 실무를 하다 보니 디자이너와 업체 간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보통 디자이너와 작가를 ‘이미지 생산자’라고 정의하고, 이를 전문 기술로 실현하는 존재를 ‘이미지 제작자’라고 정의해 볼게요. 이들 사이에는 사실 보이지 않지만 넓은 간극이 존재해요. 생산자는 제작 기술에 대한 이해력이 완전하지 않아서 자기도 모르게 무리한 요구를 할 때가 있고, 제작자는 생산자의 각종 요구를 비생산적이라는 이유로 단칼에 거절하는 경우가 자주 있어요. 그래서 생산자와 제작자 간에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고 열린 태도로 실험하며 좀 더 좋은 작업을 협업할 수 있는 관계를 꿈꾸게 되었어요. SAA가 그런 매개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지금은 실크스크린을 주로 활용하지만 여기에 국한되지 않고 오프셋 인쇄를 비롯해 동판과 석판 같은 예술적인 기법부터 그라비아, UV 같은 상업적인 부분까지 다루고 싶어서 ‘스크린’이라는 단어를 썼고, 좀 더 실험적이고 재미있게 작업하고 싶어서 ‘아트’를, 그리고 실제로 제작하지 않더라도 생산자와 제작자를 연결하는 대행사 역할도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에이전시'를 붙여서 지금의 이름이 만들어졌어요.
현재 SAA는 무슨 일을 주로 하나요? 크게 두 가지 성격을 가지고 있어요. 먼저 ‘이미지 제작자’로서 실크스크린 전문 인쇄 공방을 운영합니다. 디자이너와 이미지를 다루는 작가로부터 인쇄 의뢰를 받으면 잉크 선택, 용지 선택, 인쇄 방식 등을 컨설팅하고 제작 환경을 대하는 주의사항을 세심히 조율하는 게 주 업무입니다. SAA는 아직 제작에 대한 기초를 몸으로 겪어야 하는 시기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기본기를 쌓기 위해 제작자 역할에 집중하고 있어요. 하지만 동시에 그래픽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이미지 생산자’의 자아도 가지고 있죠. 그래서 자체적인 작업도 꾸준히 하는 중이고, 이런 태도를 유지하기 위한 일환으로 워크숍을 주기적으로 열어요. SAA는 PaTI 출신 두 명이 꾸리고 있어요. 함께 한 계기가 궁금해요. 두 사람이 조금씩 다른데요. 먼저 산하는 PaTI 재학 시절부터 실크스크린에 관심이 많았어요. 실크스크린 공방을 책임지는 관리자 역할도 했었고, 배우미 때도 간간이 외주를 받아 전문적인 작업도 진행했었죠. 2016년 ‘AGI Seoul’ 행사 홍보에 쓰인 반투명한 실크스크린 포스터가 바로 산하의 손에서 탄생했죠. 사실 1년 정도 계속 생각하던 아이디어였는데 산하가 당시 다니는 회사를 그만두면서 1주일에 2번씩 만나며 스튜디오를 만드는 이야기를 나눴고 결국 PaTI 두성집에 자리를 잡았어요. 활동은 전부터 했지만, 법적으로는 2019년 1월에 시작한 ‘신생 스튜디오’랍니다.
'AGI Seoul' 포스터 제작 과정
스튜디오를 시작하면 보통 독립적인 작업실을 꾸리는데, 왜 PaTI 두성집에 자리를 잡았어요? 장점이 많았어요. 작업실 임대료, 장비 구입비 등 현실적인 문제도 해결할 수 있고, 두성집에서 계속 학교 장비를 관리했기 때문에 몸에 익숙했고. 공간의 동선이 실크스크린 작업에 적합하게 짜여 있거든요. 게다가 두성집은 알다시피 두성종이 건물에 있잖아요. 기본적으로 종이를 다루는 회사의 건물이라 그런지 종이 보관을 전제로 만들어서 습하지 않아요. 실크스크린의 특성상 책보다는 포스터를 주로 만들어서 특별한 종이가 필요한 경우가 많거든요. 종이회사와 함께 있으니 종이를 구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죠. 무엇보다 의미가 깊은 건, SAA가 장소와 장비 사용에 대한 의견을 PaTI에 먼저 공식적으로 제안했다는 점이에요. PaTI를 다닌 배우미라서 사정을 봐준 게 아니라 동일한 입장에서 서로에게 모두 좋은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협의한 거죠. 제안 내용을 간략히 정리하면 · SAA는 PaTI 두성집을 작업 공간으로 사용하면서 동시에 PaTI라는 교육기관의 공간과 실크스크린 장비를 체계적으로 관리한다. · 최소한 주 2회는 상주하며 배우미의 장비 사용을 돕고 제대로 사용해 망가뜨리지 않도록 관리한다. · 방학 중에는 배우미 대상으로 실크스크린 워크숍을 진행한다. · PaTI와 관련된 실크스크린 인쇄물은 협의를 통해 가격을 낮춘다. · 계약은 1년마다 갱신한다. 뭐, 이 정도인 것 같아요.(웃음)
PaTI 두성집 실크스크린 공방 풍경
‘이미지 제작자’로서 SAA가 진행한 작업 중 특히 기억에 남는 건 무엇인가요? 유명상 디자이너와의 작업. 명상은 오는 10월 5일 시작하는 <타이포잔치 2019: 국제 타이포그라피 비엔날레> 공식 포스터를 디자인한 주인공인데 PaTI 더배곳 1기 마친배우미에요. 저희와는 문화역서울284 TMO에서 열린 <variation> 전시를 위한 티저 포스터를 만들었죠. 크기가 무려 가로 1.5m, 세로 2m였어요. 이 작업이 특별한 이유는 생산자가 기대하는 인쇄물을 제작자가 단순하게 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서로 간에 긴밀히 협의하며 만들어낸 결과물이기 때문이에요. 종이도 규격 크기가 아니라서 롤지를 재단했고, 포스터 크기에 맞는 판이 존재하지 않아서 어떻게 분절해서 인쇄를 해야 하나 고민도 많이 했고,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사진의 느낌을 살리고 원하는 색을 발현하기 위해서 오랜 시간 잉크 조합을 테스트하고 조율했었죠. 포스터를 최종적으로 제작하는 과정에서 이미지 생산자가 자기 작업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변경해야 하는지 서로 고민했기 때문에, 공방으로서 SAA의 정체성을 말할 때 이미지 생산자와 이미지 제작자 간의 협업 관계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해요.
유명상 디자이너의 <variation> 전시 티저 포스터
자, 이제 두 사람의 PaTI 시절을 되돌아볼까요. PaTI 초반에는 어땠어요? 산하 처음 들어왔을 때 낯선 이미지가 들진 않았어요. 뭐랄까...에너지가 굉장히 역동적으로 도는 느낌이 강했죠. 하고 싶은 게 많았고, 배우고 싶은 게 많았는데 PaTI 수업이 그런 욕구를 충족시켜줘서 정말 좋았어요.
배곳 과정에서 많은 수업을 들었을 텐데, 특히 기억에 남는 수업이 궁금하네요. 산하 김도형 디자이너의 수업이 기억에 남아요. 기술적인 부분보다 태도에 대해서 배웠죠. 디자이너의 태도보다 작가에 가까운 태도였는데 한마디로 솔직함에 가까웠어요. 지금도 그때의 경험이 다른 작업을 보는 데 기준이 되기도 해요, 자기 자신의 솔직한 이야기가 담긴 작업을 볼 때 다가오는 충만함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어요. 성훈 김영나 디자이너의 수업이요. 공간을 해석하고 그래픽으로 풀어내는 수업이었는데 무척 어려웠어요. 클라이언트 작업이라든지, 의뢰받아 문제를 해결하는 디자인을 하다가 자기 의도, 자기 발언을 디자인하는 경험은 처음이라서 그랬던 것 같아요. 접근 방식 자체가 달라서 적응을 못했고, 어떻게 바라보고 응답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웠죠. 결국 최종 작업물을 제출하지 못했는데, 지금도 계속 생각이 나요. 아까웠던 수업이에요.
PaTI에서 잊을 수 없는 추억이 있나요? 산하 한배곳 1, 2학년 때 ‘동네 부엌 천천히’가 생겼어요. 해외 스승들이 많이 찾아왔는데 천천히에서 밥해 먹고 파티하면서 함께 이야기하는 기회가 많았었죠. 저녁 시간 즈음, 다 같이 모여서 밥 먹고 술 먹고. 하하. 앞으로도 계속 이런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게 된 기분 좋은 추억이에요.
이산하, 정성훈이 함께 작업한
<SAA 실크스크린 워크숍> 포스터 <'바우랑 그리자' 어린이 기초디자인 워크숍> 포스터 <2019 광주디자인비엔날레>를 위한 이산하의 작업이다.
정성훈의 개인 작업들. 왼쪽부터 <무제>, <Fountain>
마친배우미 입장에서 PaTI는 어떤 장점을 가지고 있는 곳일까요? 산하 가능성이 열려있어요. 예를 들어 제가 실크스크린 공방의 관리자를 맡은 것도 스스로 먼저 학교에 제안한 거였어요. 근데 그게 실제로 이루어졌죠. 자기가 진지하게 고민한 다음 어떤 걸 제안하면 학교에서는 여기에 대응해 실제 구현하기 위해 노력을 합니다. 합리적인 수준에서 학교에 계속 제안하면 학교도 충분히 검토하면서 서로 좋은 쪽으로 발전하려고 노력하죠. 이런 열린 태도가 좋아요. 성훈 스승들이 참 좋았어요. 의견을 제시하면 그에 대한 반응이 즉각적으로 있었거든요. 된다, 안된다에 대해 어떻게 할 수 있고, 어떻게 할 수 없는지 소통이 가능했어요. 배곳에 들어올 때 인터뷰를 보았는데요. 커리큘럼 표를 보여주며 혹 부족한 게 있냐고 물어봐서 색에 대한 수업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한 기억이 나요. 근데 2학기 때 색 수업이 생겨서 신기했어요.
PaTI와 관련해 혹 당황스러운 경험이 있었나요? 산하 4학년 1학기 때 프랑스 자매학교인 르아브르-루앙미술디자인학교(ESADHaR)로 교환학생을 갔어요. 실크스크린에 특성화된 학교였는데요. 가보니까 일종의 차가움이랄까,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PaTI가 부드럽지만 막연하고 안개 같았다면, 여기는 뚜렷하고 날카로우면서 무척 선명한 느낌이 왔어요. 저와 제 작업에 대해서 좀 더 냉정하게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죠. 이 학교는 도시 전체에서 열리는 그래픽 페스티벌에 주도적으로 참여해요. 행사에 초대된 작가가 학교의 실크스크린 공방에서 직접 작업을 찍고, 전시를 한 뒤, 학생들과 함께 워크숍을 했던 기억이 나요. 이미지 생산과 이미지 제작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었다고 느꼈던 지점이었는데, PaTI에서는 그런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어요. 성훈 PaTI에서 여러 가지를 경험하고 마지막에 정했던 진로가 일러스트레이션이었는데 막상 사회에 나와보니 상업적인 작업을 할 기회가 적다는 사실에 무척 당황했었어요.
지금 재학 중인 배우미에게 PaTI를 영리하게 다니는 법을 귀띔해 준다면요? 산하 수업 때 만든 포스터, 세미나를 알리려고 만든 포스터처럼 이미지 중심의 작업을 공모전에 내본다든지, SNS에 올린다든지, 외부에 내 작업을 효과적으로 노출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내 작업에 대해 외부의 반응을 듣는 게 무척 중요하거든요. PaTI에서는 책으로 모든 것을 완성 짓는걸 목표로 삼지만, 사람들이 쉽게 다가설 수 있는 포스터 류의 그래픽 작업을 영리하게 활용했으면 좋겠어요. 성훈 배곳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서 벙찌지 않으려면 기본기가 탄탄해야 해요. 기본기의 수준에 따라 그 사람의 다음 행보가 결정되거든요. 수업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확실히 얻어서 기본에 충실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PaTI 입학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어떤 점을 고민해봐야 할까요? 산하 자기가 정말 디자인에 관심이 있는지 그 여부에 대해 스스로 고민할 필요가 있어요. 그래야 나갈 때 얻는 게 있으니까요. 성훈 제가 다닌 더배곳은 2년 과정이에요. 한배곳보다 짧죠. 그래서 자기가 좋아하는 걸 명확히 알고 그 세계를 좀 더 확장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들어온다면 훨씬 도움이 될 거라고 봐요.
PaTI에서의 경험은 지금 SAA에게 어떤 도움이 되었나요? 산하 PaTI는 손으로 작업하는 것의 중요성을 늘 강조했어요. 손을 통해 무언가를 만들면서 작업을 이끌어가는 거죠. 머릿속에 떠다니는 이미지를 손으로 단순히 구현하는 것과는 좀 달라요. 이미지를 가상으로 조합하지 않고 실크스크린을 직접 이용하면서 물리적 감촉을 겪는 경험이 작업에 영향을 많이 주는 느낌이 들어요. 성훈 PaTI는 아직 완성된 곳이 아니라 계속 만들어지는 학교죠. 체계와 공간을 만드는 과정을 겪으면서 실크스크린 공방이 탄생했고, 그 공방이 지금은 SAA의 활동 공간이 되었죠. PaTI의 변화와 성장의 과정을 자연스럽게 같이 겪은 게 지금의 SAA를 시작하는 데 밑거름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PaTI 배우미를 대상으로 정기적으로 여는 SAA의 실크스크린 워크숍
SAA에게 있어 PaTI란? 좋은 파트너, 긍정적인 파트너입니다. (웃음)
SAA는 미래에 대해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나요? 꿈이 궁금해요. 일단 인쇄물 기반 프로젝트는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떠다니는 큰 계획이고요. 공간에 대한 여러 가지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어요. 싱가포르에 있는 인쇄 레지던시인 STPI를 비롯해 독일과 미국에 있는 여러 공방과 레지던시의 움직임에 주목하면서요. SAA가 단순히 인쇄 공방이 아니라 작가들이 인쇄 실험을 할 수 있는 곳으로 특화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해요. 공간을 매개 삼아 좋은 작가가 찾아와서 좋은 작업을 생산하면, 다른 사람들이 모여 그 지식을 습득하고 공유하면 어떨까 싶은 상상.
마지막으로 SAA에 대해 자랑 좀 해주세요. 홍보도 환영입니다. SAA는 앞서 말했듯이 단순한 실크스크린 공방에 머물 생각은 없어요. 이미지를 제작하지만 동시에 생산자의 정체성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디자이너, 작가들과 서로 협의해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고 이미지 생산자가 원하는 작업을 의도에 맞게 효과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모색합니다. 그래서인지 극히 적은 규모의 인쇄, 초대형 크기의 인쇄, 특수 소재를 활용한 인쇄 등 보통 인쇄소라면 기겁할 작업도 가능하고, 샘플에 공을 들이는 사람들에게도 친절합니다.(웃음) 맞춤 인쇄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SAA가 특별하고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더 궁금한 점이 있다면 SAA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을 찾아주세요!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Paju Typography Institute, PaTI)은 2013년 봄, 파주에서 움튼 독립 디자인 학교입니다. 새로운 디자인 교육의 필요성에 동감한 시각 디자이너 안상수와 여러 스승이 꾸린 교육협동조합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동아시아의 지혜와 정체성에 바탕을 두고 무권위와 무경쟁을 지향합니다. 배우미는 스승과 함께 학교를 디자인하며 점수에 구애받지 않고 스스로 뜻한 바를 자발적으로 성취합니다. PaTI는 일반 대학교에 준하는 4년제 바탕 과정 ‘한배곳’과 대학원에 준하는 2년제 심화연구 과정 ‘더배곳’, 1년 동안 원하는 수업을 듣는 ‘더배곳 진수 과정’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2019.9.20.쇠날 글: 전종현(해리) | 멋지음: 박하얀(하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