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역의 세계

11월 2째주 뉴스레터

* Contents｜번역의 세계｜직역 vs 의역｜미술｜책 추천｜미션｜지성인의 책장

님, 좋아하는 번역가님이 있으신가요?

우리가 영화를 볼 때 영화의 장르, 출연하는 배우, 감독 등의 기준으로 고르다 싶이 책을 고르는 기준 또한 사람마다 다양합니다. 저는 사람들이 저자 외에도, 번역가를 기준으로 책을 고르곤 한다는 사실이 신세계였어요. 그 후로 잘 읽히는 책의 역자를 유심히 살펴보며, 그분의 해제를 읽는 것 또한 책을 읽는 기쁨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번 주는 번역본의 최전선에서 씨름하고 계시는 세 분의 편집자를 모셔 왔습니다. 편집자와 번역가의 경계선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고르는 기준은 어떤지, 좋아하는 번역가는 누구인지 알찬 내용을 담아왔으니, 이번 주도 유익하게 읽어주세요 :)

번역의 세계

Q. 편집자와 번역가의 경계선에서 일어나는 일

번역가는 충실하게 작업했지만 원문의 문장 자체가 우리말 어법과 다르고 내용도 오늘날 우리의 정서로는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정말 난감합니다. 특히 고전 작업을 할 때마다 이런 상황을 마주합니다. 이럴 경우 저자의 의도를 왜곡하지 않는 선에서 독자가 원문의 본뜻에 최대한 다가갈 수 있도록 앞장서서 길을 헤쳐 나아가는 것이 편집자의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Q. 번역가를 선택하는 기준

원서가 속한 영역의 배경지식이 풍부하고 작업 경험이 많으신 분을 선호할 수밖에 없습니다. 번역가가 내용을 충분히 소화하지 않은 상태로 작업하면 차라리 원서를 보는 것만 못한 결과물을 낼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평소 일정을 잘 지켜서 신뢰를 쌓은 분에게 연락을 하게 됩니다(마감을 터무니없이 어겨서 전체 일정이 어그러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니까요).

Q. 좋아하는 번역가와 그 이유는?

2023년에 현대지성 클래식 시리즈로 출간될 <금오신화>의 번역가 김풍기 교수님이 기억에 남습니다. 번역가들은 해설이나 부록 집필 작업을 많이 부담스러워하시는데, 이분은 편집자가 제시한 아이디어를 발전시켜서 완성도 높은 작업을 해주셨습니다. 좋은 책을 위해 스스로 시간을 내고 노력하시는 모습, 한 분야의 전문가이시면서도 편집자의 제안을 기꺼이 수용하시는 겸손한 모습이 존경스러웠습니다.

Q. 편집자와 번역가의 경계선에서 일어나는 일

우선 번역가와 계약을 하고 완역 원고를 받아보기 전까지도 여러 업무가 있습니다. 원서를 보내드리고, 출판사 내부 편집 매뉴얼을 보내드리죠(출판사마다 책 표기 등 문장 부호를 어떻게 쓰는지가 다르거든요). 책이 까다롭거나 함께 작업을 처음 해보는 분이라면 샘플 번역본을 미리 받아본 후 함께 방향을 설정하여 이후 번역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곧 출간되는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가 그런 경우였죠.

원문을 잘 살리면서도 독자들이 잘 이해할 수 있는 번역이 좋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번역을 하려면 외국어 능력도 좋아야 하지만 한국어 능력도 뛰어나야 하고요.

예를 들어, 영어는 시제를 명확히 구분하는 편이잖아요. 과거, 과거완료, 현재완료, 현재진행...등등. 근데 한국어는 과거 시제가 좀 모호해요. 그래서 영어 시제를 엄격하게 구분해 “말했었다”, “먹었었다”, “대답했었다”를 계속 쓰면 아무래도 좀 어색하거든요. 그런 부분을 번역가와 조율하는 게 어려울 때도 있어요. 그 외에도 외래어 표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등등 고민할 부분이 많아요. 이럴 때는 편집자가 임의로 고치기보단 번역가 선생님께 묻기도 하고, 또 사전이나 국립국어원 용례를 찾아보면서 편집을 합니다.

Q. 번역가를 선택하는 기준

저는 원고의 스타일을 살펴서 해당 주제나 분야에서 경력이 있는 분을 선호합니다. 과학책을 번역해야 하는데 해당 분야의 용어를 하나도 모른다면 아무리 외국어 능력이 뛰어난 분이라고 해도 원고가 좋을 수 없겠죠. 그래서 과거에 어떤 작업을 해오셨는지 중점적으로 봐요. 그리고 평가가 좋은 작품이나 베스트셀러가 있으면 플러스 요인이 되기도 해요. 그렇게 후보를 세 분 정도 추리고 팀장님께 컨펌을 받아 차례로 컨택을 합니다. 그 외에도 마감 기한을 잘 지키시는지, 단순히 글로 옮기는 게 아니라 팩트 체크도 해주시는지, 질문을 했을 때 답변을 잘 해주시는지 등등 여러 요소도 부가적으로 고민하게 되죠.

Q. 좋아하는 번역가와 그 이유는?

<번역의 탄생>과 <번역의 모험>을 재미있게 읽어서 이희재 번역가님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번역가뿐 아니라 문장을 잘 쓰고 고치고 싶은 편집자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는 책이었어요.

그 외 꼭 함께 작업해보고 싶은 분은 마스다 미리, 히가시노 게이고, 무라카미 하루키 등등의 책을 번역하신 일본어 번역가 권남희 번역가님, <명랑한 은둔자>를 번역하신 김명남 번역가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번역하신 정지인 번역가님이요.

워낙 유명하고 또 너무 바쁘신 분들이죠. 번역가를 알게 되는 건 거의 책을 통해서인 것 같아요. 와, 이 책 정말 잘 읽힌다! 번역 누가 하셨지? (마음에 저장저장).

Q. 편집자와 번역가의 경계선에서 일어나는 일

저는 편집자지만 번역가이기도 해서 흥미로운 주제네요. “번역은 글쓰기다”라는 말도 있잖아요. 그런데 번역가 중에 우리말 자체를 잘 구사하지 못하는 분들이 간혹 있어요. 읽어도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를 정도로... 그럴 때 편집자로서 작업하기가 너무 힘듭니다. 그리고 오역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땐 일일이 원서 대조를 해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어요.

Q. 번역가를 선택하는 기준

당연히 번역(글쓰기)을 잘해야 하고요. 분야도 어느 정도 맞아야 하고요. 프로필도 좋아야 하고요(비밀인데 학력도 따지고요 베스트셀러 번역 경력 등도 봅니다. 요즘에는 독자들도 번역가를 꼼꼼히 따지거든요). 마감 기한도 잘 지켜주셔야 하고요. 의사소통도 잘 되어야 하고요.

Q. 좋아하는 번역가와 그 이유는?

우리나라 1세대 전업 번역가인 이윤기, 안정효, 이종인 선생님을 좋아합니다. 이분들이 나오기 전까지는 모두 교수나 작가들이 겸업으로 번역을 했는데, 이분들은 번역을 전문으로 하는 전업 번역가였어요.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로도 유명한 이윤기 선생님은 <그리스인 조르바>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언어를 춤추듯 현란하게 갖고 놀 정도로 번역이 탁월하시고요. 안정효 선생님은 원어의 뜻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완벽주의자입니다. <안정효의 오역사전>이라는 책도 쓰셨어요. 이종인 선생님은 책 1권 번역할 때마다 관련 원서 10권을 공부한다는 말을 듣고 혀를 내둘렀습니다. <번역은 글쓰기다>라는 책도 내셨어요. 모두 번역의 장인들입니다. 요즘에는 이런 장인들을 찾기가 힘들어 아쉬워요.

직역 vs 의역

그 결과는...

지난 주 뉴스레터에서 직역과 의역 중, 어떤 번역 스타일을 선호하는지 독자님들의 취향을 조사해보는 시간을 가졌어요. 설문을 바탕으로 어떤 의견과 단상이 있었는지 공개합니다✨

💭 이런 의견이 있었어요!

직역 (52%)

직역은 그 언어만의 표현을 잘 알 수 있어요. 언어는 당연히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담는데, 특히 문학에서 한국어와는 다른 사고를 읽어낼 때 흥미롭습니다. 저는 주석도 좋아하기에! 직역하고 주석으로 뜻을 풀이해주는 게 좋아요. 그리고 의역은 번역가의 사견이 좀 들어갈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싶네요.

"의역은 오역이다."라는 말이 있다. 일반적으로 독자의 입장에서 직역보다 의역이 읽기에 수월하다. 하지만 의역은 자칫 글쓴이의 의도를 잘못 반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뿐만 아니라 고전(古典)의 경우 의역은 독자의 상상력을 뭉개버리기도 한다. 직역은 독자의 입장에서 이해가 잘 안 가는 부분이 있기도 하고, 시대와 동떨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상상력을 발휘하고, 스스로 검색해 봄으로써 학습의 기회를 얻기도 한다.

💭 이런 의견이 있었어요!

의역 (48%)

고전의 경우에는 의역, 최근에 출간된 경우에는 직역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문화나 시대적 배경에 이해가 필요한 경우에는 의역을 통해 보정된 글을 읽는 것이 나은 것 같더라구요. 동시대에 쓰여진 경우에는 이해도가 상대적으로 높으니까 번역의 정확도에 신경을 쓰게 되는 것 같아 직역이 좋습니다.

특히 문학의 번역은 언어의 전달이 아니고, 사고의 전달이라 생각된다. 비문학은 어느정도 직역에 가까워야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작품이 문학이라면 언어뿐 아니라 작가의 정신, 역사, 배경 등 모든 부분이 담겨있는것이다. 그런 작품을 단지 말을 그대로 옮긴다는 것은 자칫 겉핥기가 되기 쉽다. 문학은 그냥 소설이 아니라 그 작가의 정신이 닮긴 것이라 생각된다. 그렇다면 그 정신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여기서 번역가의 역량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온전한 작가의 정신을 전달 받고 싶다. 그러나, 의역과 오역은 구분 되어야 한다.

✨ 이런 단상이 있었어요!

번역은 우주선같아요. 은하계를 이어주는 느낌을 받는데요, 어떤 우주선이냐에 따라 비행이 부드럽기도 할것 같고 거칠기도 할거 같아요. 번역해주시는 분들의 성향,경험에 따라 전 과정이 흥미롭다고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출판사마다의 번역가에 따라 같은 도서이더라도 조금 다르게 풀이나 해석이 되는것 같아요.

현재 추세는 의역보다는 직역쪽으로 흘러가는 느낌이 드네요.

사실 의역과 직역이 칼로 무 자르듯이 나뉠 순 없다고 생각해요. 직역을 선호하긴 하지만, 원어의 표현이 도저히 우리 독자들에게 와 닿지 못할 것 같다면 번역가의 개입(도움)이 있어야겠죠. 어느 쪽이든 번역가의 노고는 상상을 초월할 것 같습니다. 전 세계의 좋은 작품들을 만날 수 있게 해 주시는 번역가님들께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외국어 공부하다보면 의역이 필요하다는 걸 알겠더라구요.
직역은 때로는 이야기의 흐름을 방해하는 것같아서...

💚 넓게 읽어요!

Square Calligraphy Classroom 英文方块字书法入门

1955-, Xu Bing

오늘 '번역의 세계'에 함께 소개할 미술 작품은 바로 중국 현대 작가 쉬빙의 'Square Calligraphy Classroom'입니다. 이 작품은 서예 교실의 문법을 재창안한 관객 참여형 설치 작품입니다. 책상에 교재를 두어 관객이 직접 서예를 연습을 할 수 있는 형태를 띠고 있죠. 핵심은 교재에 적혀 있는 문자가 한자의 형태를 빌린 영문이라는 데 있습니다. 외국인에게는 한자로 보이지만 사실 중국인도 해석하기 어려운, 어찌보면 모든 문화권에 상충되는 문자로 만들어 버렸죠.

이 작품은 동서양의 융합과 충돌, 배척으로 읽어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작가는 번역이라는 행위가 단순히 글자를 옮기는 것을 넘어서, 문화와 역사, 사상 등을 조작하는 '수단'이 될 수 있으며, 관객들로 하여금 글자들로 쌓여진 지식체계에 대한 의심을 이끌어내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요? 오늘 쉬빙의 작품을 '번역'이라는 행위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 함께 읽어요!

"프랑스어를 우리말로, 영어를 우리말로 번역할 때 책 한 권에서 한두 번쯤 그런 문장을 만날 때가 있다. 품고 있는 침묵의 저변이 아주 넓은, 그 깊이가 아주 깊은 문장. 그럴 때면 그저 가만히 들여다보는 수밖에 없다. 때로는 소리 내어 읽기도 한다. 그러고는 내버려둔다. 얼마간 시간이 흐른 후 다시 들여다본다. 그러다보면 온다, 그 순간이." p.154

💭 『사라지는 번역자들』은 가즈오 이시구로, 아멜리 노통브 등을 번역해온 김남주 번역가의 산문집입니다.

프랑스 번역자회관에 모인 각지의 번역가들이 나눈, '좋은' 번역과 번역자로의 태도, 불가능한 번역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이야기가 담겨있어요. 번역가가 사라진 자리에 글자에 남겨진 흔적을 느껴보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세요!

💭 기존까지 국내에는 『사람을 얻는 지혜』는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스페인어를 독일어로 번역한 것을 다시 한국어로 번역한 중역본으로 소개가 되어 왔어요.

이번에 현대지성이 출간한 『사람을 얻는 지혜』는 국내 최초로 1647년 판 스페인어 원서에서 직접 옮겼습니다. 원문을 생략하거나 편집하지 않고, 순서 그대로, 발타자르 그라시안이 적어 내려간 날것 그대로의 지혜의 정수를 맛보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세요. + 중역본과 대조하며 읽어보는 재미도 찾아보실 수 있을 거예요😊

님 11월 2째주, 함께 미션을 수행해요!

한 주의 MISSON

💫 한 줄 번역하기

"Call me Ismael"

"이제 마지막으로 "나를 이슈메일이라 불러다오" 이야기를 한 마디만 더 하고 끝내려 한다. 이 말을 하도 입에 달고 다니다 보니 어느 날 나도 모르게 콜 미 다음에 쉼표를 넣어 "콜 미, 이슈메일"이라고 중얼거렸다. 이어서 자연스럽게 이런 말이 흘러 나왔다. "And tell me what your true identity is"(그리고 당신의 진정한 정체를 말해주세요). 이슈메일 뒤에 있는 허먼 멜빌은 아마도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내 정체는 책 속에 다 밝혀 놓았습니다." 그러니 이제 소설을 재독 삼독하며 이슈메일의 정체를 알아내는 수밖에 없다."

『모비 딕』, P.735, 해제, 이종인 번역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첫 문장으로 꼽히는 'Call me Ishmael'. 그렇기에 여러 출판사에서 이 짧은 문장이 다양하게 번역하곤 했는데요. 현대지성의 『모비 딕』의 번역을 맡아주신 이종인 역자님은 "나를 이슈메일이라 불러다오"이라 번역하였습니다. 님은 이 문장을 어떻게 번역하시고 싶으신가요? 나만의 언어로 함께 번역해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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