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alks; 재생 에너지 전환을 핀테크로 앞당기다

재생 에너지 전환을 핀테크로 앞당기다

루트에너지 윤태환 대표

강원도 태백시 가덕산 고지대엔 국내 첫 시민 참여형 육상 풍력 발전소가 있다. 2단계 사업 기준 연 수익률이 11퍼센트에 달한다. 발전소의 이용률도, 채권 투자자로 참여한 주민들의 만족도도 높다. 재생 에너지 확대의 걸림돌인 주민 갈등을 획기적으로 해결한 사례다. 이 투자를 이끈 것은 기후 금융 플랫폼 루트에너지(Root Energy)다. 기존에 없던 재생 에너지 주민 참여 시장을 개척했다는 평을 받는다. 윤태환 대표를 만나 재생 에너지의 과제와 해결책을 물었다.

루트에너지는 왜 기후 문제 해결을 위해 금융을 선택했나.

피터 틸이 쓴 책 《제로 투 원(Zero To One)》을 좋아한다. 스타트업이라면 가장 독점 가능하고 1등이 될 수 있는 분야를 진입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가르침이 있다. 그러려면 시장의 규모나 수요가 의미 있게 커야 하고, 누구도 해결하지 못한 분야여야 했다. 재생 에너지 밸류 체인을 펼쳤을 때 금융 분야, 특히 시민 참여를 유도하는 건 대기업도, 공기업도 어려워하는 과제였다. 그 난제를 해결하면 1등이 된다는 믿음이 있었다. 적은 자본으로 시작하기도 적합했다.

현재 주민 참여형 재생 에너지 투자 플랫폼으로는 루트에너지가 유일한가?

압도적으로 1위이고 거의 유일한 사업자다. 발전소 투자 상품 말고도 기업들의 RE100(기업에서 사용하는 모든 전력을 재생 에너지로 전환하는 다국적 캠페인) 솔루션도 제공하고 있다. 넷플릭스나 JYP엔터테인먼트가 고객이다. 그밖에 재생 에너지 밸류 체인에서 다양한 신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기존의 기후 투자 상품과는 무엇이 다른가.

탄소 배출권 ETF 등이 기후 금융으로 유명하지만 막상 탄소 배출권 가격이 올라가면 기업들이 감축을 하는 게 아니라 차라리 배출권을 사버리는 경우가 왕왕 발생한다. 탄소 배출권이 감축에 도움이 되는지는 학계에서도 갑론을박이다. 기후 금융에서 가장 중요한 KPI는 탄소 배출을 얼마나 감축하느냐다. 재생 에너지가 늘어나면 온실가스가 줄어드는 것은 명확하다. 그래서 우리는 태양광이나 풍력 중심으로만 기후 분야 상품을 만든다. 전기차 충전 인프라도 신규로 확대하고 있다.

투자 방식이 채권이더라. 주식이 아닌 채권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도 루트에너지의 특징이다. 주식은 채권보다 후순위다. 담보가 없으니 원금 손실 가능성도 크다. 그래서 채권으로 만들어야 했다. 우선순위가 있으니 안정성이 높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유럽 국가들처럼 재생 에너지에 대한 인식이 높지 않아 에쿼티(자기 자본)가 없는 채권 투자가 적절하다 생각했다. 에쿼티는 사업에 대한 책임도 함께 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론 에너지 리터러시가 올라가 에쿼티로 들어오는 분들이 많아지는 게 바람직하지만 아직은 채권이다.

루트 에너지의 기후 금융은 어떻게 작동하나?

커뮤니티 펀드와 일반적인 수익형 펀드인 기후 펀드가 있다. 커뮤니티 펀드는 주로 공공이 진행하고 발전소 인근 주민만 투자가 가능하다. 수익률은 다 10퍼센트 이상, 채권 순위에서도 주민이 1순위로 안정성이 극강이다. 투자금은 발전소를 건설하고 운영하는 비용으로 쓰인다. 가동이 시작되면 거기서 나오는 전기를 한전에 팔고 매출을 주민부터 나누는 형태다. 일반 기후 펀드는 모두가 참여 가능하지만 비교적 규모가 작은 발전소에 해당하고 민간이 한다. 커뮤니티 펀드보다는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있으니 수익률이 13~14퍼센트로 더 높다.

새로운 투자처를 발견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부동산을 예로 들겠다. 임차인이 나가면 공실이 생기지 않나. 임대료를 못 받으면 건물주의 수익이 떨어진다. 그런데 우리 발전소는 전기를 100퍼센트 한전이 다 사주게 되어 있다. 임차인이 정해져 있는 셈이다. 20년 동안 고정된 가격으로 사주니 캐시 플로우가 안정적이다. 부동산 투자보다 태양광 투자가 안정적이고 수익률이 좋은 경우가 많다. 참고로 요즘 오피스텔 등 부동산 투자하면 수익률이 2~6퍼센트다.

강원도 태백시 가덕산 풍력 발전 단지 ⓒ루트에너지

론칭한 건 금융 서비스인데 덴마크에서 풍력 에너지를 전공했다. 원래 어떤 일을 했나?

원래 에너지와 환경 쪽 컨설턴트로 일했다. 2008년부터 2011년까지 했으니 꽤 오래 다녔다. 당시 했던 게 ‘카본 어카운팅(Carbon Accounting)’인데 탄소 배출량을 측정하고 검증하며 이를 관리하는 걸 말한다. 이를 기반으로 탄소 저감 수단을 기업이나 정부에 자문하는 역할을 했다.

재생 에너지에 대한 관심은 어떻게 생겼나.

탄소 저감을 위해 살펴봐야 할 첫째는 에너지 효율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에너지 효율 분야에서는 할 수 있는 것을 거의 최대치로 다 해놨다. 그러면 가능한 시나리오가 두 개다. 발전원을 탄소 배출이 적은 재생 에너지로 전환하거나, 아니면 배출된 탄소를 저장 혹은 제거하는 ‘카본 싱크(Carbon Sink)’ 등을 하거나. 이러한 대안 중 재생 에너지가 거의 7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탄소를 줄이기 위한 대안으로 재생 에너지에 계속 관심을 갖고 있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유학길에 오르기까지 어떤 고민이 있었나.

재생 에너지 쪽 컨설턴트들은 다양한 사례를 벤치마킹한다. 이를테면 “이 나라는 어떻게 이렇게 재생 에너지 전환을 잘 해냈을까?”를 파헤치는 거다. 그 이유를 논리적으로 찾아가며 예쁜 파워포인트로 만드는 게 맨날 밤새우면서 하는 일이다. 그러다 덴마크의 사례를 접하게 됐고 오랜 고심 끝에 유학을 결정했다. 기왕 배울 거라면 제대로 잘하는 곳에서 공부하고 일하며 그 나라 국민과도 어울리고 싶었다.

재생 에너지 강국으로는 독일도 자주 거론된다. 왜 덴마크였나.

일하며 알게 됐는데 덴마크가 독일보다 재생 에너지에서 10년이나 앞서 있더라. 전 세계 풍력 터빈 1위인 베스타스, 해상 풍력 개발 1위 오스테드 등 전 세계 1위가 다 덴마크에 있었다. 당시 네덜란드의 델프트 공대나 미국의 다른 공대도 합격했지만 덴마크 공대로 결정했다. 논문의 수나 연구진 수도 많고 산업 연계도 잘 되어 있었다.

하필 공대로, 그것도 태양광이 아닌 풍력을 전공한 이유가 무엇인가?

당시 제너럴리스트에서 스페셜리스트가 되고픈 마음이 있었다. MBA가 아닌 공과 대학을 선택한 이유다. 유학을 고민할 당시 태양광은 얼리 스테이지였다. 기술도 진보돼 있지 않고 밸류 체인도 제대로 완성되지 않은 상태였다. 반면 풍력은 태양광보다 훨씬 오래된 기술이라 A부터 Z까지 밸류 체인이 완성돼 있었다. 풍력을 공부하면 태양광이나 다른 재생 에너지를 공부하는 게 훨씬 쉽다고 생각했다. 덴마크 공대가 세계에서 풍력 쪽으로 제일 잘하는 곳이었다.

공학을 배웠는데 지금처럼 기후 금융이 아닌 C테크에 도전해 볼 생각은 없었나?

처음엔 C테크 창업을 생각했다. 경진 대회도 나갔었다. 당시 아이템은 초소형 풍력 발전기였다. 아프리카 등 저개발 국가에 보급할 목적이었다. 그런데 한 번 고장 나면 고치는 비용이 더 크더라. 기자재를 생산하는 곳도 역외에 있어 어려움이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애초에 최소한의 부품과 3D 프린터를 패키지로 묶어 보내는 방법도 강구했지만 그 과정에서 중요한 걸 깨닫게 됐다. 아무리 새로운 기술을 만든다 해도 이를 도입하고 팔 시장이 먼저 갖춰져야 한다는 점이다. 시장이 클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드는 게 내 세대에선 우선 중요하겠다 생각했다.

시장 형성을 가로막는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이었나.

기술이나 경제성은 시간이 지날수록 좋아진다. 가장 허들이 되는 것은 지역 수용성 문제다. 재생 에너지 설치를 지역 주민들이 반대하는 것을 말한다. 수용성 문제가 해결되려면 시민들이 먼저 원해서 도입을 하는 바텀업 방식으로 가야 하는데 이게 사회 민주주의가 발달한 유럽 국가들에선 잘 작동한다. 재생 에너지에 대한 이해도도 높고 지역에서 뭔가를 할 때 주민들끼리 합의를 거쳐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한국이나 동아시아 국가들은 에너지 리터러시도 낮고 많은 일이 톱다운으로 진행되니 수용성 개선이 힘들었다.

그 해결책으로 탄생한 게 지금의 루트에너지인가.

그렇다. 바텀업으로 주민들이 참여해 안정적 이익을 나눌 수 있는 모델을 만들고자 했다. 이를 위해 핀테크 기술 도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일단 돈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지 않나. 사회 민주주의의 바탕이 없는 우리나라에서 금융과 IT를 융합해 재생 에너지의 접근성을 높이는 솔루션을 만드는 게 우선적 목표였다. 즉, 재생 에너지를 ‘나’의 문제, ‘내 돈’의 문제로 치환하는 것이다.

기후 금융으로 탄소 중립을 이루려면 얼마나 많은 시민의 참여가 필요한가?

5000만 국민 중 약 500만 명 정도가 재생 에너지에 투자해서 안정적인 소득을 얻어간다고 하면 거의 게임이 끝난 거다. 수용성은 거의 다 갖춰진 거라 보면 된다. 독일도 현재 8000만 인구 중 800만 명이 재생 에너지에 투자한다. 세상을 바꾸는 것엔 여러 접근 방법이 있다. 만약 국민 10퍼센트가 재생 에너지의 투자자라면 정치인이 바뀐다. 좌우 없이 표를 얻기 위해 재생 에너지 친화적 정책을 낼 수밖에 없다. 정치인이 바뀌면 정부도 바뀐다. 정권 교체에 따른 정책 변동이 사라진다. 흔들리지 않고 예측 가능한 장기적 정책이 나온다. 특히 에너지 분야는 안정적 정책이 바탕이 돼야 산업이 발달할 수 있다.

덴마크의 풍력 발전 사례 ⓒDenmarkdotdk

장기적으로는 재생 에너지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변화할 필요가 있겠다.

혹시 독일 북부에 가본 적 있나. 함부르크를 예로 들면 거리나 버스, 지하철 등에 우리나라 강남의 성형외과 광고만큼이나 풍력에 투자하라는 광고가 많다. 아무 은행 지점에 가도 바로 재생 에너지에 투자할 수 있을 정도로 일반화돼있다. 이미 크리티컬 매스를 넘어선 것 같다. 하나의 사회적 규범이 생기기 위해선 각각의 티핑 포인트가 있다. 텀블러를 1~2만 명이 들고 다닐 때만 해도 이걸 왜 갖고 다니나 하지만 10만 명이 들면 하나의 사회적 규범이 된다. 그 규범은 곧 문화가 되어 개인 컵을 안 갖고 다니는 게 이상하게 느껴지는 때가 온다. 우리가 에너지의 주인이라는 인식은 그렇게 싹 튼다.

재생 에너지 확대의 걸림돌 중 하나인 공급 불안정 문제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이미 20~25년 전 다 기술적 해결 방안이 나왔고 적용됐다. 예를 들어 덴마크는 바람이 좀 많이 불어 전기 생산이 많으면 그 전기를 저장했다가 노르웨이나 스웨덴에 판다. 노르웨이는 그 전기로 양수기를 돌려서 댐에다 물을 더 퍼 올려 저장을 해 둔다. 그러다 덴마크가 전기가 부족할 때 노르웨이는 양수 발전으로 다시 전기를 판다. 저장 기술과 SCADA(산업 제어) 시스템을 기반으로 국가 간 연계가 잘 되어 있어 가능한 일이다.

우리나라는 왜 이같은 방식을 취하지 못했나.

우리나라와 같이 섬처럼 고립된 경우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저장을 잘하던가 아니면 다른 나라와 잘 연계해 해결하던가. 기술이 없던 것도 아니다. 저장에 쓰이는 배터리 기술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중국이나 일본, 몽골과 연결해 전기가 부족할 땐 사 오고 남을 땐 팔고 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했다. 재생 에너지는 고립된 계통(전력 체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단 지정학 리스크나 외교 문제가 있고 주변국의 재생 에너지 보급률도 올라가야 하는 문제가 있다. 게다가 기술이 있어도 제도적 지원이나 의지가 부족해 시장 형성이 안 된 측면도 있다.

재생 에너지 확대를 막는 또 다른 변수가 있나.

지금 딱 떠오르는 사례는 그린워싱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RE100을 이행한 기업들의 대부분이 그린 프리미엄이라는 방식을 쓴다. RE100을 달성하는 다섯 방법 중 하나인데, 그린 프리미엄을 제외하고는 모두 재생 에너지 발전소가 새로 생긴다. 신규성이 있는 거다. 그런데 그린 프리미엄은 이미 설치되어 판매된 발전소의 전기를 프리미엄을 주고 산 뒤 인증서를 발급받는 방식이다. 한 번 거래가 끝난 것을 더블 카운팅 하는 것이기에 재생 에너지 확대에 도움이 안 된다. 그런데 이게 가장 저렴하니 기업들이 다 이것을 선택한다.

앞으로의 과제는 무엇인가.

주민 투자형 재생 에너지 시장에서 압도적인 위치를 유지하는 것에 더해 신규 발전 사업들을 많이 늘리고 싶다. 신규 발전소가 많아야 RE100을 제대로 하고픈 기업들이 살 수 있는 발전소가 생긴다. 공급을 늘리기 위한 다음 단계는 IPP(민자 발전 사업)에 진출하는 것이다. 풍력 발전소를 중심으로 자체 발전소를 개발하고 있다. RE100을 위한 좋은 솔루션을 지속 개발함과 동시에 2차 시장 형성을 위해 규제 샌드박스를 풀어나가고 싶다.

글 이현구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