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한 마음


부디, 제 편지를 기다렸기를 바랍니다. 기대되는 사람이 되고 싶거든요. 여러분은 이 편지를 언제 읽으실까요. 이 편지는 2025년 12월 16일 0시 46분에 쓰고 있습니다. 저는 이 편지를 언제쯤 여러분에게 보낼 수 있을까요.


어느샌가 12월도 중순입니다. 시간이 올해의 끝으로 달려갑니다. 올해의 끝으로 달려갈수록 부채감이 늡니다. 솔직한 마음을 보내겠다고 했는데 보내지 못했던 저를 용서해 주세요. 왜 보내지 못했냐고 물어보신다면 솔직할 수 없어서라고 말할 수 있어요. 솔직하지 못하고 외면하는 중입니다. 외면은 해결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주아주 마음이 편해질 수 있습니다. 아주 잠시 마음이 편해지는 것인데, 그것은 만족하고 또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이런 제가 지겹습니다.


지난 편지에서 어딘가에 이력서를 넣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좋은 소식을 전해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원하는 회사가 있었습니다. 연봉은 높지 않은 회사였지만 글쓰기 생활과 출판사 업무를 할 수 있는 환경의 회사였습니다. 마침 채용 공고가 나와서 지원했습니다. 일주일 뒤에 서류 탈락 메일을 받았고, 동일한 회사의 비슷한 공고가 나와서 바로 또 지원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뒤에 또 떨어졌습니다. 그렇게 비슷하게 계속 네 번의 원서를 넣었습니다. 그리고 전부 떨어졌습니다. 거절의 문에서 추락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손잡이도 돌리지 못한 채 떨어지는 기분입니다. 아픕니다. 떨어졌기 때문에 줍는 일만 늘고 있습니다. 저는 바닥에 있다는 말입니다.


하고 싶었던 일, 경찰이라는 일을 하고 싶어서 도전했었고 아주 수없이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돈을 벌기 위해 지원했던 원서들이 의미 없어지면서 마음이 가난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자존감도 많이 떨어졌습니다.


가난한 마음으로 밀린 드라마와 영화를 보고 살고 있습니다. 책은 자주 읽지 못합니다. 집중력도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모범 택시>를 보고 있습니다. 유치할 것 같다는 오만한 생각을 했습니다. 보면서‘정의’를 생각했습니다. 최근에 본 영화는 좋아하는 감독, 캐서린 비글로우의 <하우스 인 다이너마이트>입니다. 미국에 미사일이 떨어지기 20분 전에 일어나는 일을 이야기하는 영화입니다. ‘책임’과 ‘어쩔 수 없는 일’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 읽는 책은 <그린 라이트>라는 매튜 맥커너히 자서전입니다. <인터스텔라>의 주인공 매튜 맥커너히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배우입니다.


<그린 라이트>는 초록불을 이야기합니다. 초록불이요. 이제 막 읽기 시작한 책이라 정확하게 알지 못합니다. 다만 저자는 계속 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고 싶은 것에 대한 직진을 이야기합니다. 읽으며 신호등이 생각났습니다. 지금 저는 주황불에 있는 기분입니다. 엑셀을 밟아야 할지, 브레이크를 밟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알고 있습니다. 교차로에서 주황불이 들어올 때는 멈춰야 한다는 것을요. 하지만 딜레마 존에 있을 때는 달라집니다. 여기서 멈추면 사고가 날 수 있을 것 같은 불안감도 옵니다. 계속 가는 것이 맞는 건지, 아니면 멈추고 다음 신호를 기다려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경찰관이 되는 준비, 다음 책을 위한 준비, 돈벌이를 위한 준비 같은 모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힘듭니다. 누가 정답을 알려주면 좋겠습니다. 사실 정답을 알려줘도 그게 정답이라고 믿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가장 사랑하는 책은 저의 첫 책 <2분 30초 안에 음료가 나가지 않으면 생기는 일>입니다. 2020년 12월에 나온 내 첫 책,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책입니다. 오늘은 <2분 30초 안에 음료가 나가지 않으면 생기는 일>의 생일이기도 합니다. 저에게 <2분 30초 안에 음료가 나가지 않으면 생기는 일>은 이제 한 권도 없습니다. 모두 다른 이에게 떠났습니다. 데려간 이의 마음에 한 문장이라도 깊게 다가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분 30초 안에 음료가 나가지 않으면 생기는 일> 다섯 번째 인쇄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전과 다르게 ‘개정’으로 준비 중입니다. 부족한 문장들을 만지며 부드럽게 읽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몇 편의 글도 더 싣습니다. <2분 30초 안에 음료가 나가지 않으면 생기는 일>을 따뜻하게 읽어주신 마음들을 기억합니다. 책을 읽고 남겨주신 문장들 하나하나 전부 기억합니다.


벌써 만으로 5년입니다. 중학교에 입학한 나이라면 이제 수험생이 되는 기간이고, 대학생이라면 벌써 4년을 꽉 채운 기간입니다. 저는 이 기간 동안 어떤 것을 배웠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변한 것은 많습니다. 여러 권의 책을 냈고, 앤솔러지 원고로 참여하기도 하였습니다. 북페어는 수십 번 나가 나만의 부스를 꾸몄습니다. 그리고 출판사를 만들었죠. 출판사로 살아남는 방법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계속 쓰고 만들 것인데 어떻게 읽힐 것인가 고민하고 있습니다. 해결책을 찾지 못했습니다. 문득 나의 장점은 무엇일까 생각합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알고 계시다면 저에게 알려주세요.


만드는 사람 이전에 쓰는 사람이었는데 쓰는 일이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글쓰기가 쉬워질 줄 알았는데, 가끔 쉬운 날도 있지만 어떤 날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이제야 알았습니다. 글쓰기는 마음을 여는 일과 같아서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용기를 매일 챙기고 싶습니다. 쓰고 싶은 날 쓰고, 자주 마음을 열고 싶습니다.


글쓰기와 멀어진 요즘, 마음을 닫고 삽니다. 올해 진행한 수업도 모두 끝났고, 어딘가에 일하러 갈 일도 없는 요즘 단지 자고 먹고 놉니다. 이런 제가 밉습니다. 다시 용기를 내고 싶습니다. 저는 따뜻한 말에 용기를 내는 사람입니다. 따뜻한 말을 건네 주세요.


[솔직한 마음]을 아주 비정기적으로 보내고 있는 요즘, 누군가 [솔직한 마음]에 대해 말해줄 때 참 고맙습니다. 제가 자신 안의 문상훈을 깨운다고 했던 친구의회신도 마음 아주 깊은 곳에 새겼습니다. 퍼블리셔스 행사장에서 솔직한 마음 잘 읽고 있다고 전해준 마음들도요.


오랜만이라 어떻게 마무리 지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이 글을 읽는 당신의 행복을 빕니다. 진심으로요. 올해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올해 속상한 일이 있었다면 금방 치유되기를 바랍니다. 계신 곳에 너무 추운 바람 불지 않기를 바랍니다. 손이 꽁꽁 얼 것 같은 날에는 꼭 손난로를 챙길 수 있는 겨울 보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건강하세요. 진심입니다.


해가 지나기 전 한 편 더 보내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행복하세요.


2025년 12월 18일 성혁

 

P.S 1. 아래는 <그린 라이트>의 서문입니다.

가끔 제가 쓰는 글들이 제가 저에게 보내는 러브레터 같다는 생각을 해요.

2. 함께 보낸 영상은 보면 위로가 되는 혁오의 공드리 뮤직비디오입니다. 위로가 필요할 때 듣고 읽어보세요.


반쯤 뜬 태양 위에다 다릴 포개고 앉아서 그냥 가만히 있자

따뜻한 이불 속같이 햇살이 우릴 덮으면 녹아버릴 거야

한밤만 자고 일어나면 금방 돌아올 거야

우리의 어린 밤을 지켜줬던 그 빛일 거야 또 보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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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혁   |   forestwave.officia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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