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e%$님이 '독립언론' <시사IN>의 자존심입니다
안녕하세요,
$%name%$ 후원 독자님
〈시사IN〉 변진경입니다




편집국장을 맡고난 뒤 $%name%$님께 처음 편지를 씁니다. 매주 ‘편집국장의 편지’로 독자님들께 인사를 드리지만, $%name%$님 같은 후원독자님께 편지를 쓸 때는 조금 더 각별한 마음이 듭니다. 저희 <시사IN>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이 감사하지만, $%name%$님을 생각하면 조금 더 편안하고 든든하다고 할까요. 작은 허물이 들통나버려도 왠지 이해해주시지 않을까 하는 철없는 안도감이 듭니다.

 

$%name%$님은 요새 어떤 마음으로 지내시는지요. 어렵고 어두운 시기입니다. 2024년 12월이 영원히 이어지는 느낌이지요. 악몽을 꾸다가 깼는데 또다시 다른 악몽이 시작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차라리 정신없이 바쁘니 괜찮다가, 주말에 잠시 여유가 나면 저도 마음이 가라앉아 버리곤 했습니다. <시사IN> 편집국장을 맡은 책임감도 무겁지만, 한 명의 국민과 시민으로서도 막막하기 그지없는 시절입니다. 이 나라의 앞길, 이 지구의 미래가 나 한 명 우리 매체 하나가 애쓰고 노력한다고 바뀔 수나 있는 것인가 깊은 회의감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호기롭게 매주 굳센 보도를 이어나가고 있었지만 100% 솔직한 모습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내란성 우울’이라는 언뜻 재미있게도 들리는 이 유행어가 사실은 얼마나 좌절스러운 집단 심리를 내포하는 것인지, 저도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던 제가 최근 큰 위안을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설 합병호 커버스토리로 실은, ‘1972년 김대중의 비상계엄 망명 일기’ 원고를 처음 읽었을 때였습니다. 손바닥 만한 양장 수첩 안에 당시 48세 신민당 의원 시절 김대중 전 대통령의 하루 일과와 소회, 반성, 향후 계획과 각오가 빽빽이 적혀 있었습니다. 일기의 첫 시작일은 1972년 10월17일, 박정희 정권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날이었습니다. 박정희 유신 독재의 밑바탕이 된 당시 비상계엄은 향후 20년 가까이 이어진 대한민국 민주주의 암흑기의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또다른 민주주의 암흑기에 접어들고 있다는 체감이 생생한 요즘, 53년 전 일기를 다시 읽으며 ‘과거는 반복된다’는 명제를 또렷이 느꼈습니다. 반복된 ‘비상계엄’뿐만이 아닙니다. 일기에 서술된 당시의 시대 공기, 유력 정치인들의 판단과 행보, 국제적 분위기들이 오늘의 일인 듯 생생하고 또한 뼈아팠습니다. 날짜만 ‘1972년’에서 ‘2025년’으로 바꾸면 오늘날 쓰인 일기라 봐도 무방할 문구들이 곳곳에서 보였습니다. 동시에 그때 글쓴이를 포함한 우리나라 국민이 느꼈을 공포와 좌절감도 깊이 공감되었습니다. 그 감정이 바로 오늘 우리의 감정일 테니까요.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일기에 여러 가지 감정을 솔직히 담았습니다. 비상계엄과 박정희 정권에 대해서는 분노하고, 민주주의를 빼앗긴 대한민국 국민에게는 애달파했습니다. 물심양면 도와주는 지기들과 해외 인사들에게는 고마움을, 이희호 여사에게는 미안함을, 그리고 가끔은 자신이 처한 고립무원의 상황을 인식하며 문득 두려움과 외로움도 토로합니다.

 

그런 와중에 가장 인상적인 모습은, 끝까지 긍정적인 태도를 놓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당시 김대중은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몸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일본에 출장 겸 치료를 받으러 갔다가 고국의 비상계엄 선포 후 사실상 망명 상태에 들어가게 된 때였습니다. 정권의 탄압으로 인해 고국으로 돌아갈 길은 묘연하고, 가져온 돈도 바닥나고, 도청으로 인해 아내와의 전화 통화마저 마음 놓고 할 수 없었습니다. 실제로 이듬해 박정희 정권의 납치 및 살해 미수 사건을 겪기도 했을 만큼, 그는 벼랑 끝에 몰려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일기에 따르면 그는 매일 하루에 정말 많은 일을 했습니다. 여러 종류의 외신 매체 기자들을 만나 한국의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일본과 미국의 유력 정치인들을 만나고, 전문가와 대중 대상 강연을 준비하고, 해외 매체에 기고할 원고를 밤새도록 작성합니다. 그러면서 적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니 이런 일을 하면 나의 신변이 위험한 줄 알지만, 그러나 나나 가족의 안전을 위해서 나에게 그토록 성원을 보내준 국민을 배신할 수는 없지 않은가. 더욱이 지금 그들은 이번의 실신한 충격 속에 자기들이 하고 싶은 말을 한 마디도 못하고 있는 기막힌 처지가 아닌가. 떳떳하게 소신껏 그리고 나의 친애하는 국민들을 위해 살다 죽을 뿐이다(1972년 10월19일).” 그리고 다짐합니다. “세상은 결코 인간의 지혜로는 측량할 수 없다. 내일은 결코 오늘이 아니다. 변화가 있기 마련이다. 그 변화를 참고 기다리며 꾸준히 노력하자!(1972년 10월29일)”

 

‘난관에도 굴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뚜벅뚜벅 걸어 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희망이 찾아올 것이다’ 류의 ‘무턱대고 긍정적’ 서사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입니다. 무책임하다고도 느낍니다. 그랬던 저는 1972년 김대중의 ‘초긍정’ 망명 일기를 읽고 큰 위안을 얻었습니다. 읽는 내내 제 마음속 어두운 전망이 조금씩 걷혀나가는 걸 느꼈습니다. 심란한 뉴스들을 봐도 금세 시무룩해지지 않았습니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김대중이 확신했던 그 ‘변화’의 증거가 바로 1972년 이후 53년간의 대한민국 역사였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지금 발 딛고 서 있는 민주화된 대한민국이 바로 그가 예감했던 ‘오늘이 아닌 내일’이니까요. 그를 비롯한 당시 국민 한 명 한 명이 각자 그토록 애를 썼기에 독재가 끝나고,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국민이 직접 뽑고, 국민이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시사IN>이라는 매체도 존재할 수 있게 되었고, 거기에서 저와 기자들이 ‘써야 할 기사’들을 쓰며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전에 한번 ‘편집국장의 편지’에서도 썼던 말을 다시 한번 적어봅니다. “머지않아 증명될 것이다. 돌고 돌아도 결국 옳은 것이 이긴다.” 우리가 지키고 가꾸어왔던 공동체의 소중한 가치가 지금 다소 흔들리고 훼손된다 하더라도 그 현상이 영구히 지속되지는 않을 거라 믿습니다. 역사가 그것을 증명하니까요. 또한 2025년을 살아가는 우리 또한 그 역사의 주인공이 되어 계속 애쓰고 노력할 테니까요. 그러니 포기하지 말아야겠다는 각오를 다지면서 $%name%$님께도 같은 마음을 권해 봅니다. 오늘 우리의 긍정적 각오가 훗날 또 다른 위기를 맞은 후손에게 다시 위안이 되기를 바라면서요.

 

설 연휴가 지나면 <시사IN> 편집국에 새 식구가 들어옵니다. 얼마 전 <시사IN> 신입 기자 공채 전형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전형이 진행되는 동안 열심히 시험에 임하는 지원자들을 보면서 큰 감동과 위로를 받았습니다. 이런 시대에 기자라는 직업을 갖고자 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 감사하고 또 짠한 일입니다. 그들에게 부끄러운 선배가 되지 않도록 더 노력해야겠다며 편집국 기자들이 바짝 긴장했습니다.


전형 과정에서 만난 예비 언론인들의 빛나는 눈동자를 상기해보니, 희망을 가져 볼 근거들이 역시나 꽤 많은 것 같습니다. 과거가 뒷받침하고 미래가 예견하는 희망의 증거가 곳곳에 존재합니다. 그것들을 잘 엮어 실제로 만들어가는 게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몫이겠지요. $%name%$님도 계속 <시사IN>을 응원해주세요. 지치지 않고 열심히 뛰겠습니다.


 


             2024년 1월31일

 변진경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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